1948년 1월,
미 군정시절.
아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기도 전,
사회가 한창 혼란스럽고 어지럽던 그 때,
명동에서는 그 단어도 귀에 선 오페라가 열렸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
뒤마의 소설 '춘희 椿姬, La Dame aux Camélias'를 각색한 작품이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그 때 그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명동의 옛 국립극장인 시공관
市公館에서 절찬리에 공연됐다.
닷새동안 하루 두 차례씩
총 10번 공연 모두 전석 매진이었다.
말 그대로 명동은
인산인해였다는 신문 기사가 남아있다.
이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한 사람은
의사였던 이인선 李寅善.
그는 오페라 대본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직접 주인공 알프레도
Alfredo Germont역을 맡아 열연했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전문 음악가도 아닌, 42살의 의사가 1인 4역을 해서 한국 최초로 오페라를 만들어 공연하다니!
대한민국의 오페라는 이렇게 나라가 세워지기도 전, 극한의 혼란 속에서 의사 한 사람에 의해 시작돼 올해로 77년째, 이인선이 태어난지 120년이 되는 해다.
이인선은 1906년
평양에서 목사아들로 출생.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시절,
미국인들로부터 성악을 배우다
1931년 이탈리아 밀라노로 건너가
정식으로 성악을 공부했다.
4년 만에 귀국한 이인선은
부민관(現 서울시의회 의사당)에서
귀국 독창회를 가졌고, 병원이 끝나면
그 공간에서 성악가들을 가르쳤다.
김자경, 안형일 등이 그의 문하생이다.
1950년 5월, 카르멘 초연자들
1948년 1월,
라 트라비아타를 시작으로
6.25 발발 한 달 전인 1950년 5월에는
비제 Bizet의 카르멘 Carmen을 공연했다.
그때도 이인선은 주인공인 돈 호세 역을 맡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오페라를 위해 이인선은 집을 담보로 맡기며, 의사로 번 돈을 모두 쏟아부었다.
선구자는 이런 것이다.
피땀과 열정은 물론 돈과 재산까지 다 쏟아붓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외과의사를 하면서 메트로폴리탄 오디션에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합격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우리 민요를 번역하고 소개하는 등 과로한 탓에 1960년, 54살의 나이에 인생을 접어야 했다.
이인선 탄생 120년.
오페라 역사 77주년을 기념하는
오페라 갈라 콘서트가 어젯밤,
빨간 달 red moon이 환하게 뜬
국립극장에서 있었다.
공연은 주로 2025년, 작년에
오페라 대상을 수상한 연주자들이 열연했다.
라 트라비아타와 카르멘은 물론, 피가로, 토스카, 라보엠, 로미오와 줄리엣, 나비부인 등 유명한 오페라의 주요
아리아들은 물론 우리나라의 창작오페라 '대한광복단'에 삽입된 어린이곡 봉선화 등도 공연했다.
MBC 입사 동기 김영철 '대한민국오페라대상조직위원회' 조직위원장의 초대로 모처럼 어린이부터 푸릇푸릇한 신인들과 테너 김동원, 메조 소프라노 백재은, 소프라노 윤상아, 테너 김재민의 열연에 행복했다.
성악은 아니지만 전자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출신 피아니스트 임은혁이 연주한 거쉰 Gershwin의 피아노 콘체르토도 나는 참 좋았다.
공대를 나와서 사업을 하다
피아니스트가 된 남다른 이력 때문일까?
뭔가 좀 달랐다.
많이 달랐다.
흡인력이 대단했다.
피아니스트 임은혁은 지난해
최우수예술가상을 받고 '주목할 예술가'가 되었다.
붉은 달이 둥글게 떠오른 남산 자락,
처녀때는 엄마랑 문턱이 닳도록 다니던
그 국립극장엘,
손주들 키우며 공무원한다고 거의 4년만에,
실로 오랫만에 막내동생과 손잡고 다녀왔다.
초대해주신 김영철 위원장님,
평생 나의 지짓대 역할을 확실하게 해주는 내 동생, 그리고 열연해주신 많은 연주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덕분에 행복했어요.
접기/펴기
오페라77년
* 공연 후 인사장면 외에
관련 자료사진은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출처: 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