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 어느 때인가, 아니면 지금인가?
“나는 내일 완전해지겠다”는 태도는 위험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완전하다”는 태도 역시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주제를 둘러싸고 교회 안에는 적지 않은 오해와 긴장, 그리고 때로는 두려움마저 존재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한 삶은 장래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완전한 품성의 성숙은 평생에 걸쳐 계속 자라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먼 장래에 이르러 비로소 완전해지는 특별한 날이 따로 올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알고 있는 죄, 오늘 붙들고 있는 습관, 오늘 미루고 있는 순종을 바로 지금 주님께 드리는 것, 이것이 헌신된 삶의 완전함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의로 말미암아 완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나는 이미 완전하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여전히 자라야 할 성숙의 여정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죄 됨을 더 선명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분의 절대적으로 완전한 빛 앞에 설 때, 인간이 내세우는 완전함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지푸라기와도 같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의 생애 말년에 가까운 서신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이 고백은 어떤 이들이 말하고 싶은 것처럼 “괴수였다”가 아닙니다. 성경은 현재형으로 “괴수니라(πρῶτός εἰμι)”고 기록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우리는 여전히 달려가야 할 성숙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성화는 한순간의 감정이나 한 번의 결심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닙니다. “성화는 한 순간, 한 시간, 하루의 일이 아니라 평생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완전한 삶을 산다는 것은 “나는 이제 더 이상 자랄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오늘 받은 빛에 온전히 순종하며, 내일은 오늘보다 더 깊이 그리스도를 닮아 가겠다는 거룩한 응답입니다.
여기에 복음의 중요한 균형이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그분을 의지하고 신뢰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그분의 백성을 “순간순간 그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제시하십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은혜가 우리를 안일함이나 방종으로 이끌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그분 안에 거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균형입니다. 내 안에서는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완전한 자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우리는 날마다 자라갑니다.
우리는 장래 어느 순간 갑자기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은 지금 시작되어야 하며, 우리의 성장은 영속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심지어 이 성장은 저 하늘에 이르러서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늘은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는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배우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넓게 깨닫고, 구속의 신비를 영원토록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죄를 품은 성품을 고치는 보충수업장이 아닙니다. 하늘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시작된 생명이 영원히 꽃피는 학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중요합니다. 지금 드리는 작은 순종, 지금 내려놓는 작은 교만, 지금 용서하는 한 사람, 지금 주님께 굴복하는 한 마음이 마지막 날을 위한 참된 준비입니다. 완전은 먼 미래에 걸려 있는 추상적인 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예수님께 온전히 마음을 드리는 믿음의 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도 완전하신 그리스도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갈 뿐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 머무는 사람은, 비록 자신의 연약함 앞에서 눈물 흘릴지라도, 마침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형상을 조용히 반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이것이어야 합니다.
“주님, 내일이 아니라 오늘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장래 어느 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제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게 하십시오.
내 안의 불완전함 때문에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받으시는 은혜 때문에 다시 일어나게 하십시오.
오늘도 아주 작은 삶의 자리에서부터,
예수님의 품성을 조금 더 닮아 가게 하십시오.”
<제3795회-일요칼럼>
천수답의 일요칼럼
"장래 어느 때인가 아니면 지금인가.."
——<Link 1>——
https://www.podbbang.com/channels/10726/episodes/25290130
——<Link 2>——
http://file.ssenhosting.com/data1/chunsd/260621.MP3
——<Link 3 유튜브>——
https://youtu.be/2DZbM3ma9pU?si=6RftrJwLwcmt6Gv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