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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참으심

작성자마르셀|작성시간26.06.22|조회수95 목록 댓글 0




디모데전서 1장, 오늘 제목은 ‘오래 참으심’입니다. 디모데전서는 사도 바울이 영적 아들이자 에베소 교회의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목회서신입니다. 낯선 목회지에서 고군분투하는 그에게 선배 목회자로서, 또 영적 아버지로서 교회의 행정과 조직, 그리고 진리를 어떻게 증거할지 자상하고 섬세하게 조언하는 사랑의 편지죠. 그런데 바울은 진지한 목회적 가르침에 앞서, 자신이 만난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소개합니다. 바울은 12절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이라며 감사의 찬송으로 포문을 엽니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았습니다. 13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여러분 바울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청년이었습니다. 교회를 잔해하고 성도를 잡아 가두던 박해자였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마치 자신의 손과 발에 못을 박는 로마 군인들을 바라보시며,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기도하셨던 주님의 그 놀라운 긍휼이 바울에게도 그대로 임한 것이죠.

16절에 바울은 이 신비로운 은혜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예수님은 바울을 일체 오래 참으셨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는 것입니다. 너처럼 실패하고 깨어진 사람도, 엉망진창인 존재도 내가 구원하길 원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성경의 역사는 인간의 거듭되는 실패와, 이를 끝까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가 부딪히는 사랑의 기록이죠. 이집트의 완악한 바로 왕을 열 번이나 참으셨고, 교만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참으셨습니다. 젊은 혈기에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친 모세를 40년간 묵묵히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끝내 그를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시죠.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치던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여러분 요나가 하나님께 원망하고 화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런 그를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성격이 얼마나 급하고 불같았던지 별명이 우레의 아들이었습니다. 사마리아 마을을 향해,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눅 9:54). 사람을 태워 죽이자는 사람들이었죠. 예수님은 이 철없고 과격한 사람들을 3년 반 동안 늘 곁에 두시며 오래 참음으로 하늘의 사랑을 가르치셨고, 결국 요한을 사랑의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베드로는 어리석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정확히 대변합니다. 아마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벧후 3:9,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 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대단히 영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향해 일체 오래 참아주신 하나님의 눈물 겨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같지 않음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분이시라면,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여전히 주님의 손목에 못을 박고 사는 죄인을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주님의 그 오래 참으심과 긍휼이 누구에게도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주님이 나를 참아주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향해, 연약한 지체들을 향해 기꺼이 오래 참아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도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빗나갔던 바울을 끝까지 기다려 주시고,
이방의 사도로 세우신 주님의 그 오래 참으심이,
오늘을 사는 나를 향한 눈물겨운 사랑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기다리는 사랑이 우리를 여기 까지 인도했음을 잊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는 우리의 삶도 누군가에게 영생의 본이 되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 연약한 이웃과 지체들을 바라볼 때,
주님께서 나를 참아주셨듯이 기꺼이 오래 참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UP
26.06.22
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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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1장, 오늘 제목은 ‘오래 참으심’입니다. 디모데전서는 사도 바울이 영적 아들이자 에베소 교회의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목회서신입니다. 낯선 목회지에서 고군분투하는 그에게 선배 목회자로서, 또 영적 아버지로서 교회의 행정과 조직, 그리고 진리를 어떻게 증거할지 자상하고 섬세하게 조언하는 사랑의 편지죠. 그런데 바울은 진지한 목회적 가르침에 앞서, 자신이 만난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소개합니다. 바울은 12절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이라며 감사의 찬송으로 포문을 엽니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았습니다. 13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여러분 바울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청년이었습니다. 교회를 잔해하고 성도를 잡아 가두던 박해자였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마치 자신의 손과 발에 못을 박는 로마 군인들을 바라보시며,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기도하셨던 주님의 그 놀라운 긍휼이 바울에게도 그대로 임한 것이죠.

16절에 바울은 이 신비로운 은혜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예수님은 바울을 일체 오래 참으셨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는 것입니다. 너처럼 실패하고 깨어진 사람도, 엉망진창인 존재도 내가 구원하길 원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성경의 역사는 인간의 거듭되는 실패와, 이를 끝까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가 부딪히는 사랑의 기록이죠. 이집트의 완악한 바로 왕을 열 번이나 참으셨고, 교만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참으셨습니다. 젊은 혈기에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친 모세를 40년간 묵묵히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끝내 그를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시죠.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치던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여러분 요나가 하나님께 원망하고 화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런 그를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성격이 얼마나 급하고 불같았던지 별명이 우레의 아들이었습니다. 사마리아 마을을 향해,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눅 9:54). 사람을 태워 죽이자는 사람들이었죠. 예수님은 이 철없고 과격한 사람들을 3년 반 동안 늘 곁에 두시며 오래 참음으로 하늘의 사랑을 가르치셨고, 결국 요한을 사랑의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베드로는 어리석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정확히 대변합니다. 아마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벧후 3:9,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 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대단히 영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향해 일체 오래 참아주신 하나님의 눈물 겨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같지 않음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분이시라면,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여전히 주님의 손목에 못을 박고 사는 죄인을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주님의 그 오래 참으심과 긍휼이 누구에게도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주님이 나를 참아주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향해, 연약한 지체들을 향해 기꺼이 오래 참아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도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빗나갔던 바울을 끝까지 기다려 주시고,
이방의 사도로 세우신 주님의 그 오래 참으심이,
오늘을 사는 나를 향한 눈물겨운 사랑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기다리는 사랑이 우리를 여기 까지 인도했음을 잊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는 우리의 삶도 누군가에게 영생의 본이 되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 연약한 이웃과 지체들을 바라볼 때,
주님께서 나를 참아주셨듯이 기꺼이 오래 참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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