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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Joon의 아침 묵상

시드기야 왕과 이스라엘

작성자마르셀|작성시간26.06.08|조회수0 목록 댓글 0

<100Joon의 아침묵상>
시드기야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보인 완악한 불순종은 그들 자신에게 엄청난 재앙과 비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딛고 살아가던 삶의 터전까지도 깊이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역대하 36:21)
성경은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해 그들이 살던 토지가 황폐해졌다고 명확히 기록합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은 인간인데, 그 대가로 땅마저 황무해졌다는
사실은 참으로 심오한 영적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영적 원형은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에서부터
발견됩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세기 3:17)
죄는 인간이 지었으나, 인간의 범죄로 인해 그들이 살아가던
땅이 대신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 줍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연계와 토지는 인간과 영적으로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지으면, 인간이 다스리는 지경인 가정과
일터뿐만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선 환경과 토지마저 가장 먼저 탄식하며 황폐해집니다. 죄의 영향력은
결코 나 하나로 끝나지 않고, 내가 머무는 지경을 오염시키는 법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신
것과 유다 백성을 유다 땅에서 바벨론으로 쫓아내신 것은 영적으로 동일한 맥락입니다. 죄로 오염된 인간이
그 땅에 계속 머물러 구르게 둔다면 땅도, 인간도 결국 영원한 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유다 땅에서 격리해 70년이라는 포로기를
보내게 하신 이유는, 인간의 손길을 거둠으로써 땅에는 온전한 안식과 복원의 기회를 주시고, 인간에게는 광야의 시간을 통해 죄를 씻어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땅의 황폐함은 형벌과 저주의 연속이 아니라, 인간과 땅 모두를 살려내어
다시 시작하시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리셋(Reset)이자
사랑의 배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에덴동산과 이 지구를 창조하셨을 때, 성경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고 증언합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들이셨을 때,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그러나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죄악은 그 아름답던 땅을 저주와 황폐함으로 얼룩지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문명화라는 명목 아래, 얼마나 많은 땅과 자연이 신음하며 황폐해져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아름다운 천연계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점차 그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궁극적인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그것은 단순히 인간만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함께 신음하며 황폐해진 이 피조 세계를 온전히 재창조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 이 땅에는 마침내 온전한 안식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온전한 안식의 시간을 '천년'이라는 기간으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남방 유다가 멸망할 당시 그들의 죄악이 극에 달해 땅이 황폐해졌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딛고
선 지구 환경이 점차 피폐해지는 모습은 아담 때부터 이어져 온 안타까운 반복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땅이
황폐해진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진정한 안식을 주시기 위해 직접 개입하실 때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강력한 신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날로 신음하며 황폐해져 가는 이 땅의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절망하기보다 이제 곧 만물을 새롭게 하러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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