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Joon의 아침묵상>
바벨론을 떠나, 임재의 예루살렘으로
역대기의 마지막 기록은 남방 유다가 황폐해지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 듯하지만, 그 끝자락에서 뜻밖의 찬란한 희망을 선포하며 마무리를 짓습니다. 그리고 에스라서는 그 희망의 바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시작됩니다. 실제로 역대하 36장의 마지막 두 구절은 에스라 1장의 시작부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거의 흡사하게 연결됩니다.
이 절묘한 성경의 배치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까요? 우리가 영적으로 완전히 넘어지고 인생의 종말을 맞이한 것 같은 순간에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결코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역대하의 끝이 곧 에스라의 시작이듯, 하나님의 역사에는 결코 단절이 없음을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에스라 1장 3절은 더욱 가슴 벅찬 희망의 사명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 에스라 1:3
대제국 바사의 왕 고레스의 입을 통해 선포된 이 메시지는, 영적 바벨론(세상)에 안주하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제2의 ‘출바벨론’ 사명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단순히 포로에서 해방시켜 세상에서 편하게 살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올라가서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확한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이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세상의 안일함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무너진 영적 성전을 재건하라는 강력한 영적 파송의 기별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고레스가 점령국의 절대 군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지 않고,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고레스는 70년 동안 포로 생활에 길들여져 있던 유다 백성들에게, “너희는 내 노예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다”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서 사는 동안 이름과 문화가 바뀌어 자신들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채 동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방 왕의 입술을 빌려 “너희는 여전히 나의 백성이다”라는 영적 정체성을 깨워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방황하고 무너졌을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부르실 때는 우리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 하나만 보시고 기회를 주신다는 은혜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비록 지금은 이 세상에 섞여 살고 있으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시민이 아니라 하늘의 백성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일 뿐, 이곳에 안주하며 뿌리를 내리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본국인 하늘로 돌아갈 준비가 언제든 되어 있어야 하는 백성들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레스는 에스라 1장 3절에서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당시 바벨론은 당대 최고의 문명과 풍요,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겉보기에는 가장 살기 좋고 신들의 축복이 가득한 땅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고레스의 입을 통해 울려 퍼진 하나님의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아무리 화려해도 이 바벨론에는 하나님이 없다. 진짜 하나님은 저 무너진 폐허, 예루살렘에 계신다.”
이는 백성들에게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곳을 향해 영적 이동을 감행하라는 강력한 기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별은 마지막 지구 역사를 통과하고 있는 남은 백성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세상(바벨론)이 주는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이 아무리 화려할지라도, 그곳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는 세 천사의 기별을 따라, 무너져가는 바벨론을 언제든 미련 없이 떠날 준비를 하는 자들이야말로 진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비록 가야 할 길이 고생스럽고 좁은 길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그리고 주님의 임재가 머무는 ‘예루살렘’을 향해 오늘 아침 우리의 마음과 삶의 방향을 온전히 돌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