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Joon의 아침묵상>
가장된 호의를 분별하는 힘, 타협 없는 영적 분별력
예루살렘 성전의 기초가 세워졌다는상소식은 주변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사탄은 주변 민족들을 동원해 즉각적인 방해 공작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에스라 4장 9~10절에 따르면 이 대적들은 과거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당했을 때 사마리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이방 민족들의 후손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아있던 소수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들이 섞이게 되었고, 여호와 신앙과 우상숭배가 뒤범벅된 ‘사마리아 혼혈 민족’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본색을 숨긴 채 유다 백성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접근해 옵니다.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에스라 4:2)
대적들은 유다 백성들의 경계심을 허물기 위해, 자신들도 똑같이 하나님을 섬기며 제사를 드린다는 감미로운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무너뜨릴 때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정면 공격이 아니라, 이처럼 호의를 가장한 ‘타협’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신앙생활을 꼭 그렇게 유난스럽게 해야 하니?”, “세상 트렌드에 맞춰 유연하게 믿는 게 현명한 거야.”
그들은 “당신들이나 우리나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인데, 단지 예배드리는 날이 다를 뿐”이라는 논리로 우리의 영적 무장을 해제하려 합니다. 이는 마치 “착하게 살면 천국 가고 나쁘게 살면 지옥 가니, 결국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다 같은 것 아니냐”는 종교다원주의적 발상과 닮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재림 교회 안에서조차,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타 교단이 믿는 하나님이 결국 같은 분이라는 식의 유화적인 논리를 펴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진리는 분명합니다. 천지와 만물을 안식일에 창조하시고, 오직 그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구별하신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편의에 따라 일요일을 성일로 예배하는 이들의 하나님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분입니다. 에스라와 스룹바벨이 사마리아인들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겉모습의 화려함이나 편리함에 속지 않고 ‘신앙의 순결성’을 지켜내는 날카로운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종교적 혼합주의로 이스라엘을 오염시키려던 목적이 좌절되자, 대적들은 곧바로 가면을 벗어 던졌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며, 거짓 고소장을 올려 성전 건축을 강제로 중단시켰습니다.
우리 역시 말씀의 원칙대로 살기 위해 세상의 가치관을 거절할 때, 주변 환경이 악화되거나 소중했던 인간관계가 틀어지는 등 사방에서 압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탄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마음에 ‘낙심’을 심어주어 영적 성장의 성전을 짓는 일을 중도에 포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신앙의 길에 제동이 걸리고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내가 잘못 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하나님의 선한 일’을 바르게 행하고 있기에, 위기감을 느낀 대적이 필사적으로 발악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거센 방해 앞에서도 낙심치 말고, 도리어 영적으로 담대히 일어서는 믿음의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