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Joon의 아침묵상>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1차로 귀환한 백성들은 숱한 방해를 극복하고 BC 516년, 마침내 '스룹바벨성전'을 완공했습니다. 첫 유월절의 감격도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질서가 무질서로 향한다는 엔트로피의 법칙처럼, 이스라엘은 점차 첫 마음을 잃어갔습니다.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예배는 형식화되었고, 제사장들의 부패와 무분별한 이방 통혼으로 영적 매너리즘의 깊은 늪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영적 위기 속에 하나님은 준비된 개혁자 에스라를 세우셨습니다. 성경은
그를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에스라 7:6)로 소개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라”(에스라 7:14)는 왕의 조서를 들고, 성인 남성 기준 1,500여 명과 함께 2차 귀환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아하와 강가에 모인 이들을 살피던 에스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합니다. 성전 예배를 수종들 레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낯선 고국 땅에서 경제적 이득 없이 헌신해야 하는 직무를 모두가 기피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에스라는
여정을 지체하면서까지 레위 사람들을 찾아내어 합류시킵니다. 아무리 위대한 비전이 있어도, 예배의 질서와 예배자가 무너져 있다면 결코 온전한 출발을 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어 에스라는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합니다. 대적과 강도들이 도사린 험난한 여정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는 왕에게 군대와 마병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왕에게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신다”(에스라 8:22)고 당당히 선포했기에, 세상의 권력을 의지하는 것을 도리어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위기 앞에서 세상의 방법 대신 오직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기 위해 기도의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결과가 어떠했을까요? 군대의 호위도 없이, 수많은 어린아이들과 보물을 이끌고 광야를 지난 그들은 마침내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성경은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에스라 8:31)고 승리를 선언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진짜 위기 앞에서 우리가 먼저 구하는 것은 세상의 ‘돈과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손’입니까? 우리의 계산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인생길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이함께합니다. 오늘도 그 선한 손을 신뢰하며, 예배의 중심을 바로 세우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