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Joon의 아침묵상>
에스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2차 귀환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먼저 정착해 있던 동포들의 영적 실상은 참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성경은 당시의 충격적인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씨가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에스라 9:1-2)
1차 귀환자들이 고국 땅에 성전을 완공한 지 어느덧 8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처음의 뜨거웠던 예배의 감격은 안개처럼 사라졌고, 백성들은 주변 이방 문화에 서서히 동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고달픈 바벨론 포로기에도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려 몸부림쳤던 이들이었건만, 정작 고향으로 돌아와 자유와 안정이 주어지자 영적 방임과 세속화의 늪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죄와 세속화는 결코 한순간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문화라는 보기 좋은 이름으로 세상의 가치관을 용인하고 타협하다 보면, 결국 신앙의 본질마저 통째로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지 않는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물결에 떠내려갈 수 있음을 성경은 엄중히 경고합니다.
오늘날도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바로 ‘불신자와의 통혼’입니다. 아무리 신앙의 뿌리가 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배우자의 영향력 앞에서는 흔들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믿음의 청년들이 비신자와의 결혼을 계기로 오랜 신앙의 자리를 떠나곤 합니다. 이 역시 단번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배우자를 배려한다는 핑계로 예배를 한두 번 거르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 가슴 아픈 사실은, 에스라를 깊은 절망에 빠뜨린 주동자들이 다름 아닌 영적·정치적 지도층이었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고 고발합니다. 백성을 거룩함으로 인도해야 할 리더들이 도리어 죄의 선봉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특권을 많이 받은 사람, 교회나 가정에서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리더가 무너지면 공동체 전체가 죄를 당연하게 여기는 타락의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바닷길을 비추어야 할 등대가 무너지면, 배들의 항해를 가로막는 치명적인 암초가 되고 맙니다. 오늘 하루,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삶의 터전에서 먼저 믿은 자 된 나의 모습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나는 영혼들을 안전하게 인도하는 든든한 ‘등대’입니까, 아니면 누군가의 신앙을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암초’입니까?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서 나 자신을 무겁게 돌아보며, 다시금 영적 파수꾼의 자리를 회복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