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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신앙 고백

부활의 아침 정성스러운 여인들이 놓친 것

작성자최재호|작성시간05.03.24|조회수151 목록 댓글 0
부활의 이른 아침 주님의 무덤으로 달려간 여인들은 텅빈 무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당황하고 근심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의 시신이 무덤 안에 없다는 사실에 그들을 매우 당혹해하며 낙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여인들의 태도를 보면서 평소에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인간적인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시 중한 죄목으로 처형되신 예수님의 시신을 보러간다는 것이 그 시대 사회로부터 어떠한 시선의 대상이 될 것인지 우리는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
그들의 사랑과 열심 앞에 우리는 종종 도전을 받곤 합니다. 주를 사랑하는 마음에 세상으로부터 받는 손가락질을 의식하지 않았던 그들.


하지만 우리들이 여기에 머물러 있다면 아직 어린 성도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 전에 자신이 갈릴리로 가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여인들의 이러한 태도는 그들이 주의 말씀을 잊었거나 믿지 못했음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결코 옳지 못한 태도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것이 무덤이 비어있음을 증언토록 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섭리된 것이 아닌지도 생각해 볼 수는 있습니다.

부활의 아침을 우리 기독인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또 주의 부활하심이 우리의 그것이 될 것임을 믿고 소망하게 됩니다. 그것은 지극히 옳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인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들을 통해 얻게 되는 참 앎(지식)이 없이 막연한 감정이나 지적인 동의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빈 무덤으로 찾아간 여인들과 같이 열심과 사랑은 있으나 참 믿음은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하여야 될 것입니다.


부활은 연중 절기에 따라 기념하는 한 날이 아니라, 우리의 순례길동안 순간순간 또 날마다 기억하고 묵상하며 경험해야 하는 영적인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이러한 참 의미를 새겨갈 때 우리는 죽음의 권세를 깨치시고 의와 참 빛의 세계로 인도한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또 그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깊은 의미를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아 우리는 먼저 주의 고난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말씀 가운데서 묵상하여야 합니다. 고난의 의미를 깊이 알게 될 때 우리는 부활의 영광이 얼마나 기쁜 것이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막연히 기쁜 날이라는 생각에 흥분하고 있을 때 우리들에게 있는 부활절은 참의미를 상실해 버린 성탄절과 같이 되고 말 것입니다. 고난에 대한 묵상은 반드시 말씀을 통해 가능합니다. 말씀을 뒷전으로 하고 어떤 영화나 시청각 자료를 통해 우리가 감정적인 접근을 하게 될 때, 우리에게 있는 묵상의 깊이는 천박한 수준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분명 부활은 기쁨이며 감격이지만, 우리의 감사와 깨달음의 깊이가 말씀에 기초한 깊이 있는 경건함으로 기뻐하고 감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윗글은 부활절을 맞아 교회 주보에 실은 글입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이 곳이 좀 더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옮겨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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