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뱀을 넘어서는 신앙(민수기 21:4-9)
4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길로 좇아 에돔 당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6여호와께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원망하므로 번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랄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 본즉 살더라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홍해로 가는 길'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주어진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민수기 14장에서 보는 것처럼 12명의 정탐꾼사건 이후 불신앙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선조들의 불신앙을 잊지 않을 법도 한데 광양 40년 연단의 세월을 보낸 후 다시 신광야에 이르러 가데스에 거한 지금에도 여전히 불신앙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이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민 20: 13)
불뱀이 나타나게 된 진짜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옛날 20세 미만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기성세대가 된 지금 그들에게는 선조들이 행했던 불신앙의 태도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은 바뀌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원망은 상습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졌던 원망과 이 백성이 오늘 본문에서 토해 놓은 원망들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김영철 교수는 '불뱀과 놋뱀'이라는 설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원망을 터뜨리게 된 상황이 아주 다릅니다. 원망 속에는 불신앙이 전제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제까지의 원망은 광야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한 일로 생존과 관련된 것이지만 이번 원망의 이유는 빠른 길로 갈 수없고 우회해서 가야한다는 상황, 귀찮음과 번거로움 때문에 쏟아 놓은 원망이었습니다.
둘째 물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기는 했지만 방법적으로 이제까지의 원망은 한 사람 즉 모세나 또는 모세와 아론 이 두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 하나님을 향한 직접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새째 원망의 내용이 이전의 것들에 비해서 훨씬 노골적일 뿐만 아니라 훨씬 악하였습니다.애굽생활을 동경하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죽게 만들고 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지나 번에 하나님의 심판 때 우리도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애굽으로 돌아가자'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양식과 물도 없다는 것은 다만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마음이 '이 박한 식물' 하나님께서 만나를 싫어한다는데 있습니다. '박하다'는 말은 '딱딱하다'거나 '맛이 없다'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무가치하다' 보잘 것 없다'라는 뜻입니다. '좋고 싫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혐오하다', '진절머리가 나다'는 뜻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넜고 눈부신 여호와 구원을 목도한 바 있습니다.(출 15) 이후 40년 광야 생활을 통해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자비와 은혜를 통해 살아왔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단순한 투정이나 원망이 아닙니다. 지난 시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인한 은혜와 자비를 무시하는 태도 인 것입니다.
그들은 성막과 기물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것을 의지하는 삶이 없었습니다. 지식적으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통해 구원의 하나님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 이것을 반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도우심으로 해결해 주셨던, 그들이 지난날에 겪었던, 그 곤란을 가증스럽게 기억에서 지우는 것보다 더욱 옳지 않은 일도 없을 것이다....어떤 의미로 보든지 그들이 스스로 원한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이러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으므로 그들은 앞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활기 있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를 몹시 싫어했으며, 마음에 큰 고통을 주거나 번민을 주는 '지루한'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존 칼빈-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시어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즉각 치유하시지 않고 뱀의 모형을 만들어 그것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간 그들에게 만나를 통해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에게 뱀의 모형인 놋뱀을 바라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여호와에게 있다는 믿음이 없이는 결코 구원을 받지 못하는 절실함이 그들에게 요구 되어졌습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뱀의 모형이 그 자체가 특별한 의미나 능력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것을 보면 살리라하신 여호와의 말씀과 그 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통해 얻는 구원임을 잘 깨닫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처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15)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영생이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말씀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낍니다. 생명의 떡인 예수그리스도를 다시 생각해보며 놋뱀의 원형을 알고있는 자로 참으로 믿음이 없음을 느낍니다. 이스라엘의 범죄처럼 옛날의 범죄로 되돌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자주 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와 고신을 사랑하신다면 반드시 우리를 칠 것입니다. 우리는 한시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온전한 삶을 이루지 못하고 누리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배반하는 태도와 행동이 우리에게 있는지 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께 자신의 고범죄를 고백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참으로 이전의 범죄로 계속해서 돌아가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보면서 참으로 미련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들의 신앙과 우리의 신앙이 전혀 차원이 다른 것처럼 생각하지만 우리의 삶과 현대교회의 신앙을 볼 때 그들처럼 저급한 신앙이 우리의 삶과 교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는 사실이 성경에 기록된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예가 열왕기하 18장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주전 720년경 히스기야는 그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품(神品)으로 보존되어 오던 이 놋뱀을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건이 있는데 이 놋뱀은 그때까지 약500년 동안 하나님의 성소에 조심스럽게 보존되어 있던 것입니다. 단지 놋조각에 불과한 이것을 섬기며 분양하며 섬겨 왔던 것입니다.
열왕기하 3-4절에서 보는 것처럼 놋뱀은 아세라를 비롯해 여러 수상들과 같은 반열에서 취급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또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행하여 분향 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 이라고 일컬었더라"
실제로 근동에는 다양한 리워야단이 사회와 문화적으로 반영되고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리워야단의 영상/김정우 총신대 출판사 이스라엘과 유다의 여러 왕들은 주위 사방에 있는 이교들의 그 민속적이고도 예술적인 매력에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금하시는 우상숭배이지만 적당히 시류와 형편에 따라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개혁자 히스기야가 나타나기 전까지 조상 대대로 성소에 보관되어 오던 놋뱀을 부수지 못했습니다. 역사와 전통에 밀려 잘못된 것을 혁파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태도가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과 교회, 교단을 통해 비슷한 현실을 쉽게 목도합니다. 이상한 보수성을 앞세워 교단의 위대한 누가 설교하던 강대상인데, 어떻게 설립한 교단이고 병원인데...뿐만 아니라 성경이 지지하지도 않는 이상한 종교적 윤리와 도덕적 덕목들과 규범들이 신성한 권위의 이름으로 강요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10년 20년 계속해서 불법을 행하다보니 이제는 우리의 정신과 마음이 무디어져 쉽게 타협해 가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놋뱀에 얽힌 부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참으로 큽니다. 장구한 세월 수대에 걸쳐 성경 여러 부분에 언급되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놋뱀을 추종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놋뱀을 넘어서려면 우리의 마음을 열고 말씀을 통해 성령이 외치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자신이 섬기는 놋뱀이 없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놋뱀은 은밀한 중에 우리가운데 계속해서 자리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