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답 8]
상처받지 않으려니까 상처받는 것이다.
<전등록>
혜가(慧可)는 유·불·도(교)에 통달해, 문적으로는 이미 당할 자가 없었다. 그는 불혹(不惑·마음이 흔들리지 않음)이라는 40살이 되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조금도 안정되지 않았다. 기막힐 노릇이었다. 여전히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죽음이 두려울 뿐이었다. 그는 자신을 떠나지 않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애타는 혜가의 부름에도 달마는 묵묵부답이었다. 초저녁부터 내린 눈은 새벽녘이 되자 무릎을 덮었다. 그러나 달마는 여전히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혜가는 ‘붉은 눈을 내리게 하는 자가 동굴 속 괴승의 첫 번째 제자가 될 것’이란 전설 같은 얘기를 듣고 있었다. 혜가는 칼을 빼어들었다. 그리고 왼팔을 단박에 내리쳤다. 팔이 잘려나간 어깨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붉은 눈이 내렸다.
자른 팔을 들고 동굴 안에 들어가 달마 앞에 내놓자 드디어 달마가 몸을 돌려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혜가가 구슬피 울며 말했다.
“제 마음이 너무도 불안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사께서 제 마음을 편케 해주십시오."
우는 혜가에게 달마가 말했다.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러면 너를 편안케 해주겠다.”
이 문답 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다. ‘불안한 마음’을 찾는데, 얼마나 치열했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팔을 잘랐던 혜가였던 만큼 아마 침식도 잃고 자신도 잃어버릴 만큼 몰두했을 것임에 틀림 없다.
‘내’가 없는데, ‘불안’이 어디에 붙을 것인가. 혜가가 다시 달마 앞에 섰다.
“아무리 찾아도 찾아도 그 마음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달마가 말했다.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노라.”
달마는 밖에서만 극락을 구하던 마음을 내면으로 돌리게 했다.
(한겨례 조현 기자 / 중국 사찰순례
'선의 원류를 찾아서' 중에서)
■ [해설]
마음의 위치를 알 수 있다면, 빨간약을 발라주면 그만이다. 지독하게 아픈데 어디가 아픈지 모르면 기가 막힌다. 마음을 꺼내 보여줄 수가 없어서 사람은 기어코 서로의 멱살을 잡고 연애를 실패하며 뒤돌아서 운다.
그러나 마음은 없다. 실재하지 않으며 '마음'이라는 언어로만 살아 있을 뿐이다.
바람이고 꿈이며, 밝다손 벼락이요 어둡다손 그림자다.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 있지도 않은 것을 붙잡으려니 답답하기만 하고, 종적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다스리려니 답이 안 나오는
법이다.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난 대로 내버려 두고 모순은 모순대로 존중하는 것이 상책이다. 단연코 마음은 없다.
있어 봐야 짐이다. 없어야 한다.
마음을 다잡으려 할수록 마음은 멀리 달아난다. 마음먹은 대로 살려다간 배탈만 나기 일쑤다. 그러므로 마음에 대처하는 최적의 방법은 수색이 아닌 매복이다. 상처받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정체를 들킨다. 욕심 난다고 섣불리 움직이다가 총알 세례를 당한다. 비루하면 비루한 대로, 병들었으면 병든대로 갈 길은 먼데 눈이 내린다?
갈 길이 있고 눈은 내렸다.
▪︎ 보리 달마(菩提達磨, ?~536)
중국 선경의 초조(初祖). 인도 남부 팔리바 왕조의 왕자로 태어났다. 반야다라(般若多羅)의 법을 이었다. 서기 527년 중국으로 건너와 형상과 개념을 초월한 무심(無心)의 선법을 펼쳤다.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이란 화두의 연원이다. 불사(佛事)의 공덕을 사랑하던 양(梁)의 무제(武帝)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불상(佛像)만이 아니라 모두가 부처임을 가르쳤다. 스스로의 팔을 자를 만큼 마음의 고통에
몸부림치던 혜가(慧可)에게는 마음이란 것 자체가 없음을 일깨우며 평정을 되찾아줬다. 줄곧 소림사(少林寺)에서 은둔했다. 제도권의 질투로 독살 당했으나 홀연히 부활했다. 히말리아를 맨발로 걸어서 서역으로 돌아갔다. 저작으로 '심경송(心經頌), 파상론 (破相論), 이종입(二種入), 안심법문 (安心法門), 오성론(悟性論), 혈맥론 (血脈論) 등 소실육문(少室六門)이
전한다. '소림사 조실(祖室)의 여섯 가지 법문'이란 뜻이다. 150세 넘도록 살았다는 풍월이 있다. 험악한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설적인 카리스마는 달마도의 흥행을 불러왔다.
▪︎혜가(慧可, 487~593)
선종의 제2조, 본명은 신광(神光).일찍이
유학의 시서(詩書)를 섭렵하고 32세에 대소승(大小乘) 경전 전체를 통달한 천재였다. 40세가 된 어느 날 갑자기 발병한 두통이 인생을 바꿔놓았다. 우울증으로 추정되는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달마를 찾아갔다. 눈보라 속에서 자신의 왼팔을 끊어버림으로써, 침묵하던 달마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마음의 실체가 없다'는 달마의 접문에 문득 깨달았다. 말년에는 음주와 식육 등 파계(破戒)를 일삼으며 마음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삶을 만끽했다. 역모를 꾸민다는 모함을 당하자, 일언반구 없이 그냥 죽어줬다.
▪︎ 전등록(傳燈錄)
석가모니부처님 아래 북송(北宋) 초기까지, '깨달음의 등불을 이어받은 전등(傳燈)' 1,701 명 조사(祖師)들의 행적과 언설을 모은 계보다. 1004년 편찬, '경덕전등록'의 준말로, 당시 북송의 황제였던 경덕제(景德帝)에세 진상하는 국가 차원의 불사였다. 인쇄술의 비약적 발달로 대장경 조성사업이 활발하던 시절이다. 경덕제 재위 시 비구의 숫자는
공식집계만 40만 명이었다. 당말(唐末) 부터 중원의 불교권력을 장악한 선종(禪宗)은, 전체 30권에 달하는 전등록을 편찬함으로써 교세의 지성을 과시하고 자신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완성했다.
장웅연 지음
선문답 중에서
2026. 6. 3
#상처받지않으려니까
#상처받는것이다
#너의마음을가지고오너라
#마음을아무리찾아도
#찾을수가없습니다
#나는이미너의마음을
#편안하게해주었다
달마도 / 경봉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