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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산행사진방

연평도 조기잡으러 갔다.

작성자몽산|작성시간26.06.13|조회수31 목록 댓글 0

 


산행일시 : 2026. 6. 11(목)
◇ 산행장소 : 연평도
◇ 산행코스 : 새마을 - 망향전망대 - 민간인추모비 - 서정우하사피폭지 - 연평평화전망대 - 구리동해변 - 평화공원

                      - 조기역사관 - 군터널관광시설  - 등다공원 - 연평면사무소 - 충혼탑 - 연평바다역 - 선착장
◇ 거리 및 시간 : 16.9km, 4시간 34분

 

☆연평도

연평도는 경기만 북서쪽에 있는 대한민국 관할의 섬 또는 제도로, 주 섬인 대연평도를 비롯하여 소연평도 등 주변의 부속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모두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속한다.

1945년 9월 2일 미국과 소련이 38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함으로써 38선 남쪽인 연평도는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되었으며, 이는 한국전쟁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한국전쟁 중에는 수 만 명의 피난민이 이 섬을 거쳐 남하하였다.

 

2022년 12월 말 주민등록 기준으로 연평면의 총 인구는 2,138명인데, 주민 중 군인과 어민의 비중이 높아 남초 현상(성비 1.76:1, 남 1,362, 여 776)이 심하다.

꽃게어장이 형성되어 있는 등 어업상으로 중요한 곳이다. 예전에는 5월 조기철에 1,500척 이상의 어선이 모여들어 파시가 섰었으나 1966년 이후에 사라졌고, 현재는 조기 대신 꽃게를 중심으로 한 어장이 형성되었다. 대부분의 주민이 농업 및 어업에 종사한다.

교육기관으로는 1999년에 초중등학교가 하나로 통합된 연평초·중·고등학교가 있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황해도 해주군 송림면에 속했다. 병자호란 때 임경업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선원들의 부식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나뭇가지를 꺾어 개펄에 꽂아두었더니 물이 빠진 뒤 가지마다 조기가 걸려 있어, 이것이 조기잡이의 시초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현재까지도 임경업을 기리는 사당 충민사가 존재해 있다. 연평도는 조기잡이가 시작되면서부터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외래문화의 도입은 1910년대에 천주교인 전응택 일가가 입도하여 교회(공소)를 설립하면서 비롯되었다.

 

 

서해 5도중 하나로 군사적 요충지인 탓에 한국군 부대가 주둔 중이다. NLL(북방한계선)에 가까워 남북한의 해군 간에 여러 분쟁이 발생한 바 있다.

1999년 6월 15일에 연평도 근해에서 서로 NLL 침범을 주장하며 대치하던 대한민국 해군과 북한과 전투가 벌어져 인민군 50여명이 사상하였다. 이후 제1연평해전으로 명명되었다.

3년이 지난 2002년 6월 29일에는 NLL로 출동한 남한의 고속정에 북한의 해군이 기습적으로 발포하며 전투가 벌어졌다. 이후 제2연평해전으로 명명되었으며, 양측에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북한의 강령반도와는 불과 12 km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경에 북한군이 대연평도를 향해 갑작스럽게 170여 발을 포격하였다. 이에 우리군은 진돗개1호를 발령하고 80여 발의 대응사격을 실시하였다. 연평도 포격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후 상대방의 영토에 대해 직접 포격을 가한 첫번째 사례이다. 해병대 병사 2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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