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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수요설교]예수의 행하심과 사도들에게 명하심(사도행전 강해 1)

작성자自由魂|작성시간05.08.23|조회수277 목록 댓글 0

2005. 5. 11 수요 예배 - 사도행전 강해 1

예수의 행하심과 사도들에게 명하심

사도행전 1장 1-2절(264장)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오늘부터 수요 예배로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사도행전을 강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다는 것은 사도행전이 기본적으로 28장이나 되는 많은 분량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도행전만을 강해하기보다는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중간 중간에는 다른 본문을 설교하는 것도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분간은 사도행전의 기본적인 부분들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함께 시작하고 세워나가면서 가장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교회가 과연 무엇인가?’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교회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려 한다면 사도행전도 좋은 본문이 되지만 에베소서가 조금 더 정리가 잘 되어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001년도에 교회를 개척했을 당시에 수요일에 1년 반에 걸쳐 에베소서를 강해했었고, 최근 매일성경 본문도 에베소서이기 때문에 우선은 사도행전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의 서론으로 1장 1-2절에 나오는 누가의 서론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서론 부분은 우리가 사도행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1a은 ‘누가행전’, 1b은 ‘예수행전’, 그리고 2v은 ‘사도행전’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누가행전(1a)

 

본문 1-2v에서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이렇게 사도행전을 시작합니다.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우리가 보는 개역 성경은 “데오빌로여”라고 해서 이 편지(사도행전도 하나의 편지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를 받는 수신자를 먼저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문인 헬라어 성경은 조금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1) To;n me;n prw'ton lovgon ejpoihsavmhn peri; pavntwn, w\ Qeovfile, w|n h[rxato oJ !Ihsou'" poiei'n te kai; didavskein, (2) a[cri h|" hJmevra" ejnteilavmeno" toi'" ajpostovloi" dia; pneuvmato" aJgivou ou~" ejxelevxato ajnelhvmfqh:). 그것을 우리 원문에서 새롭게 직역하면,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됩니다. “(1) 나는 내가 전편으로 쓴 글에서 모든 것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오 데오빌로여,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두 가지의 시작으로부터 (2) 그의 선택하신 자들인 그 사도들에게 거룩한 영을 통하여 명령하시고 들어올려지신 날까지.” 이것을 다시 어순을 무시하고 알아듣기 쉽게, 그리고 1v과 2v이 원래 하나의 문장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조금 다듬으면 이렇게 변역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전편으로 쓴 글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두 가지의 시작에서부터, 오 데오빌로여, 선택하신 자들인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명령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 모든 것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1) 두 권의 책

제가 1a을 첫 번째 단락으로 삼고 ‘누가행전’으로 이름 붙인 것은 개역 성경에는 ‘먼저 쓴 글’로 번역되었지만, 제가 ‘전편으로 쓴 글’로 번역한 문장 때문입니다. ‘먼저’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처음에’나 ‘먼저’로 번역할 수 있지만 이런 연속되는 글과 관련시켜서는 ‘전편’을, 그것도 특별히 ‘두 권짜리 책/글의 전편’을 가리킵니다(세 권으로 된 책의 첫 번째 책을 가리킬 때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도행전보다 앞에 기록된 ‘전편’이 무엇일까요? 바로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모두 의사인 누가가 기록했습니다. 우리 성경책에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두 책 모두 누가가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행적과 사도들의 행적을 소개하고 믿음을 돈독하게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한 한 권의 책의 전편과 후편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 두 권의 책을 함께 묶어서 ‘누가행전(Luke-Acts)’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누가복음을 염두에 두고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단락에서 조금 더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2) 데오빌로

한편 여기서 누가가 ‘데오빌로여’하고 부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① 첫째로는, ‘데오빌로’라는 이름을 가진 로마의 고관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단지 ‘데오빌로여’라고만 했지만 누가복음 1장 3절에서는 ‘데오빌로 각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각하’라고 번역된 단어(kravtisto")는 ‘가장 강한, 가장 존경하는, 가장 고귀한, 가장 유명한, 최고의, 가장 탁월한’ 등의 뜻이지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부를 때 쓰인 칭호입니다. 이 말은 사도행전에서 로마 총독에게 3번 사용되었는데(행 23:26; 24:3; 26:25), 동일한 단어를 데오빌로에게 썼다는 것은 그가 아주 중요한 지위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② 그러나 실제로 로마 총독들 가운데는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이 이름의 뜻이 ‘하나님의 친구(Qeovfilo")’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로마의 고관이지만 이 편지를 인하여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별명처럼 부른 호칭이라고 보는 두 번째 주장과, ③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 전체를 인격화해서 부르는 호칭이라고 보는 세 번째 주장이 있습니다.

 

3) 구원과 성숙을 위한 노력

우리는 ‘누가행전’이라는 이 첫 번째 단락에서 누가가 데오빌로라는 인물이 예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또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하기 위하여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동일한 인물을 향하여 24장으로 된 누가복음과 28장으로 된 사도행전을 기록해서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기꺼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다른 사람, 복음을 듣고 구원 얻어야 하는 사람이든지 이미 복음을 믿었지만 믿음이 굳세지 못해서 더 많이 말씀을 배워야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들의 구원과 또는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 얼마나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까?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구원과 신앙 성숙을 돕기 위한 노력을 그만 두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믿지 않는 가족, 친지, 친구, 동료, 이웃들을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자 합니까? 누가와 같은 끈질긴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각오하십시오! 결단하십시오! 그리고 그 일을 계속해서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2. 예수행전(1b)

 

1) 예수 행전

그러면 누가가 전편에서 기록한 내용은 무엇일까요? 1b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라고 되어 있습니다. 누가는 먼저 자신의 전편의 기록인 누가복음이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기록임을 지적합니다. 사도행전이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라면,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이름과 견주어 ‘예수행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행전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누가복음부터 살펴보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입니다. 사도들의 행적은 예수님의 행적의 연속선상에서 되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의 행적을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행적과 연결해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 두 가지 행적, 행하심과 가르치심

그런데 저는 1b을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두 가지의 시작에서부터”라고 번역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행적을 두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행하심과 가르치심’이라고만 말하지 않고 굳이 ‘행하시고 가르치신 두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두 가지’라고 강조해서 말하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행하신 모든 것을 이 두 가지로 요약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예!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행하심과 말씀하심(전도, 선포, 가르치심 등을 모두 포함한), 이 두 가지는 예수님의 지상 생애를 참으로 잘 요약해주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잠시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4장에서부터 7장까지 에서만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4장 15절입니다.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여기에는 가르치심이 나옵니다.

② 그 다음, 4장 31-32절입니다. “(31)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여기에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얼마나 권세가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③ 4장 35-36절, “(3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여기는 권세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보여주는데, 권세와 능력의 말씀으로 더러운 귀신도 명하여 나가게 했음을 보여줍니다.

④ 4장 39-41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40) 해 질 적에 각색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이번에는 병을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39절은 꾸짖어서 고치시고, 40절에서는 손을 얹으시어 고치십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장면도 41절에 나옵니다.

⑤ 4장 4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다시 복음 전파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⑥ 5장 32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복음 전파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고,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시며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신 것은 바로 그 일을 위한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⑦ 6장 17-18절, “(17)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은지라.” 여기에는 말씀과 병 고침, 귀신에게서 고침 받는 것이 함께 나옵니다.

⑧ 마지막으로 7장 21-22절입니다. “(21)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 (2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여기에도 여러 질병들에서의 치유와 귀신들림에서의 해방, 그리고 복음의 전파가 함께 제시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예수님 자신이 자신의 사역의 구체적인 부분들을 언급하신 것이기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역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등 이적을 행하시는 ‘행하심’과 복음을 전하시고 가르치시는 ‘가르치심’의 두 가지로 요약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에 나올 사도들의 행적도 그렇게 요약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또한 오늘날 우리들도 행함과 말씀의 두 가지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시작하심

그런데 저는 앞에서 누가복음의 4장에서 7장까지만 살펴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예수님의 행하시고 가르치시는 두 가지 행적이 여기까지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8장에서 10장에 나오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그 이후의 내용은 십자가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도적으로 4-7장의 내용과 8-10장의 내용을 구분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구절들을 살펴본 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① 먼저 8장 1-2절입니다. “(1)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여기에 두 가지가 정확히 나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반포하심과 복음을 전하시는 것, 그리고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치심이 그것입니다.

② 그 다음, 9장 1-2절입니다. “(1)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여기에도 귀신의 제어, 병 고침, 하나님 나라의 전파, 앓는 자의 고침 등이 나옵니다.

③ 마지막으로 10장 1, 9, 17, 19, 20절입니다. “(1)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7)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여기에도 병자들을 고침,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전파함, 귀신들의 항복, 뱀과 전갈을 밟음,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함 등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이 구절들을 보면서 앞에서 살펴보았던 4-7장의 내용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발견하셨습니까? 8장은 예수님의 두 가지 사역을 소개하면서 예수님이 그 일들을 행하실 때에 열두 제자가 함께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9장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적 행하심과 가르치심의 권세를 열두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음을 보여줍니다. 10장은 동일하게 그 능력과 권세 그리고 말씀을 70명의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심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누가가 말하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 이후에도 계속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계속됩니까? 예수님이 세우신 열두 제자와 70명의 제자들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들을 통해서 계속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의 권세와 능력은 예수님에게서 열두 제자로, 70명의 제자로, 그리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로 전해진 것이고... 그 사역에 대한 책임 또한 그대로 전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행전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계속됩니다. 어디서 계속됩니까? 사도행전에서 계속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예수행전의 속편에 불과하며, 사도행전의 흐지부지하는 종결은 오늘날 우리들에 의해서 그 사역이 계속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사도행전(2v) - 예수행전의 계속

 

그래서 사도행전은 예수행전의 계속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셨으며, 제자들에게 그 능력과 권세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도행전을 위한 준비과정이었습니다. 그것을 누가는 이렇게 요약하는 것입니다. “(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예수님이 어떻게, 무엇을 명하셨습니까? 이것은 누가복음의 마지막 부분, 특히 24장 45-53절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50)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52)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부터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음을 깨닫게 하셨고, 그들이 그 일을 전할 증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 능력을 주실 것임을 약속하시고, 그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축복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기록할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로 되어지는 또 다른 행전,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행하시는 행적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는지, 어떻게 초대 교회가 형성되었고 진행되었는지,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기 시작해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사도행전을 통해서 배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초대 교회의 역사만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사도들은 또 무엇을 했는지, 초대 교회는 어떤 교회였는지를 배우는 것이 우리의 중심적인 관심사는 아닙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사도행전을 함께 읽으며 묵상하고 교훈 받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이 어떻게 성령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넘기워졌는가 하는 것과, 또한 동일한 사도들의 행함과 가르침이 어떻게 성령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넘기워졌는가 하는 것,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리들의 행함과 가르침이 어떻게 성령을 통해서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우리는 특별히 두 가지, 즉 ① 우리가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해서 내려오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는 그 일을 위하여 행하고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할 사명을 전수받았다는 것과, ②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사도들이 그러했듯이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능력,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 또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와, 우리 진리와 자유의 교회가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출 수 있기를 바라고, 초대 교회와 그 성도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동일한 믿음 안에서, 동일한 성령 안에서 끝까지 동일한 보조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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