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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일낮설교]야곱을 편드시는 하나님(‘야곱’ 연속 설교 5)

작성자自由魂|작성시간07.02.26|조회수215 목록 댓글 0

2007. 2. 25 주일 낮 예배(‘야곱’ 연속 설교 5)

야곱을 편드시는 하나님

창세기 31장 23-29절(412장)

 

오늘은 야곱에 대한 연속 설교 5번째 시간입니다. 제가 야곱에 대해 모두 8번의 설교를 계획하고 있으니까 이제 반이 지난 셈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저는 야곱의 잉태에서 시작하여 장자의 권리를 사고 속임수로 장자의 축복을 받는 장면, 그리고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외삼촌 집에서 있었던 일들까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야곱이 태어날 때부터 얼마나 야심이 많은 ‘사기꾼’적인 인물인지를 말씀드리면서, 야곱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형인 에서의 경박함과 이삭의 탐욕, 그리고 리브가의 음모 등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보다 한술 더 뜨는 라반을 만나서 계속 당하기만 합니다. 속아서 일하고, 속아서 결혼합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를 보호하시고 도우셨고, 결국 야곱은 큰 부자가 되고야 맙니다.

 

어쩌면 야곱은 자기의 상태에 대해 불만족스러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만족하면서 안주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나님은 다시 몰아내듯 야곱을 쫓아내시고, 그러면서도 그가 라반에게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십니다. 과거에 야곱은 야곱다운 속임수로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차지하고는 결국 도망치듯 빈손으로 아버지 집을 떠나야 했고, 그 와중에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외삼촌 집에서의 야곱은 전혀 야곱답지 않은 모습으로 속아서 살지만 결국 큰 부자가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소유를 이끌고 도망치듯 라반의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것처럼 얍복 나루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들 속에서 야곱의 모든 술수에도 불구하고 가장 필요한 때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채찍과 당근을 사용하여 그를 밀었다 당겼다 하시면서 결국 원하는 모습으로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은 특별히 야곱이 어떻게 외삼촌 라반에게서 도망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게 되었는지를 31장 전체를 본문으로 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지난주처럼 본문이 길어서 다 읽지 못합니다. 해당하는 본문을 찾아서 눈으로 읽으시면서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1. 도망(1-22v)

 

1) 도망가야 했던 이유들(1-3v)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생각(30:25)과 현재의 풍부함(30:43)누리면서 거기 정착하려는 생각을 함께 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과거에 자기의 속임수 때문에 아버지의 집을 떠나왔던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와 상황 때문에 외삼촌의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 이유가 본문의 1, 2, 3절이 시작되는 세 개의 단어들로 요약되는데, 야곱은 들었고(1v) 보았으며(2v),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3v). 이러한 상황 전개는 야곱으로 하여금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의 결과입니다.

 

󰊱 야곱은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소유를 빼앗지* 않고 정당하게 체결한 계약에 따라 양이나 염소 중에서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그리고 검은 것(30:32)만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라반의 소유가 증가한 것이 비하여, 야곱의 소유가 급격하게 늘어서 ‘거부’**라고 불릴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면서 ‘빼앗겼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 그런데 그것이 다만 라반의 아들들만의 철없는 불평만이 아닌 것이, 야곱이 보기에도 자신을 대하는 라반의 안색이 전과 같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야곱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야곱이 라반의 집에 머무는 것은 거북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 그리고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꿈에 나타나셔서(11v) 이곳을 떠나 조상의 땅, 그의 족속에게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시고, 그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안 그래도 껄끄러운 입장에 있었던 야곱으로서는 라반의 집을 떠날 확실한 빌미를 잡은 셈이 된 것입니다.

* 1절에서 ‘빼앗고’라고 번역했지만, 히브리어‘라카흐’(jq'l;)의 가장 기본적인 뜻은 ‘취하다, 얻다, 소유하다’이다. 물론 ‘빼앗다, 탈취하다’라는 의미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야곱이 9절에서 사용한 ‘빼앗아’라는 단어, 즉 ‘나찰’(lx'n:)이 더 적합하다. 그 단어는 ‘움켜 빼앗다, 뜯다, 노략하다, 잡아채다, 약탈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반의 아들들은 분명 악한 의도로 이 말을 했을 것이다.

** ‘카보드’(d/bK;)는 ‘무거움, 장관, 풍부, 부함, 영화로운, 영광, 존귀, 명예’라는 뜻이다.

*** 이제까지 없었던 라반의 아들들에 대한 언급과 라반의 태도의 변화 등은 여러 가지를 추측하게 해준다.

a. 아마도 야곱이 처음 라반을 찾아갔을 때에 라반에게는 아들이 없이 딸들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딸인 라헬이 라반의 양을 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29:9). 라헬이 ‘목자’였다는 기록은 라반에게 아들이 없었음을 암시한다.

b. 이처럼 아들이 없을 때에는 신뢰하는 종(15:2)이나 사위가 상속자가 되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다. 그러므로 야곱이 라헬과의 결혼을 요청했을 때 라반이 다른 사람보다 야곱에게 딸을 주는 것 더 낫다고 한 것이나(29:19), 라헬뿐 아니라 레아까지도 야곱에게 준 것(29:23)은 야곱을 공으로 부려먹으려는 이기적인 의도 외에도, 라반이 은연중에 야곱을 자기 상속자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c. 야곱이 라반의 횡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이야기할 때에, 라헬과 레아는 라반에 대해 분개하면서 더 이상 라반에게서 ‘무슨 분깃이나 유업’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31:14). 이것은 그들이 아버지의 분깃과 유업 얻기를 기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면서, 또한 이제는 더 이상의 가능성이 없어졌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야곱이 온 이후로 라반이 아들들을 얻었기 때문에 자연히 상속권이 아들들에게 전가되었던 것이다.

d. 그럼에도 라헬이 라반의 드라빔을 훔친 것(31:19)은 당시 관습에 의해, 경우에 따라 야곱의 상속권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자세한 것은 19절에 대한 각주 참조). 라헬은 아직도 야곱이 자기 아버지 라반의 유업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본다면, 야곱의 아들들의 불평이나 라반의 안색이 변한 것의 배후에는 ‘재산 상속’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2) 도망을 결정함(4-13v)

머뭇거릴 이유가 없는 야곱은 곧바로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떼가 있는 들판으로 불러내 귀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4v). 야곱은 라반의 안색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것과 이제까지 자기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셨다고 말합니다(5v). 야곱은 하나님을 자기 자신의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의 약속을 지키시어 야곱과 함께 하시고 보호하셨던 것입니다. 야곱이 힘을 다해서 라반을 섬긴(6v) 반면, 라반은 야곱을 간사하게 속이면서**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했습니다(7v).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손해를**** 보지 않게 하셔서, 라반이 야곱이 제시한 조건을 일방적으로 바꾸어 점 있는***** 것이나 줄무늬* 있는 것 등으로 제한을 가하면 그가 제시한 조건에 맞는 새끼들만을 낳게 하셨던 것입니다(8v).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의 이러한 역사를 라반의 짐승을 빼앗아서** 자기에게 주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벧엘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을 때에도 자신을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28:13)이라고 소개하셨으며, 오늘 본문인 13절에서도 자신을 ‘벧엘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신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신 것은 출애굽기 3:6에서 모세에게 하신 것이 제일 처음이다. 한편 야곱은 말년에 하나님을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48:15, 16)라고 부르기는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야곱에게 하나님은 자기의 하나님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의 하나님’으로 부른다. 창세기의 기록자인 모세도 이 부분에서 ‘그 아비 이삭의 경외하는 이’라는 표현도 함께 쓰고 있기는 하지만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라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어서 야곱을 향하여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29v) 또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53v)르로부 부르지만, 그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러주지는 않는다.

** ‘속여’라고 번역된 ‘하탈’(lt'h;)은 ‘비웃다, 속이다, 간사하게 취급하다, 조롱하다’라는 뜻이다.

*** ‘변역하다’라고 번역된 ‘하라프’(#l'j;)는 원래 ‘미끄러지다, 서둘러 가버리다, 시간이 경과하다, 싹이 트다, 찌르다, 변하다, 폐지하다, 교대하다, 베어내다, 자라다, 새롭게 하다, 움트다, 꿰뚫다’라는 뜻이며, ‘통과하다, 뚫고 지나가다, 지나가다, 자라다, 변화하다, 출발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해치’라고 번역된 ‘라아’([['r;)는 원래 ‘상하게 하다, 산산조각으로 깨뜨리다, 쓸모없게 하다, 나쁜, 괴롭히다, 사귀다, 불쾌하게 하다’라는 뜻이며, ‘1)나쁘다, 악하다, 불쾌하다, 슬프다, 상처를 입히다 2)깨뜨리다, 박살내다, 조각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점 있는’으로 번역된 ‘나코드’(dqon:)는 ‘점찍힌, 얼룩진, 반점이 있는’이라는 뜻이다.

* ‘얼룩무늬 있는’으로 번역된 ‘아코드’(dqo[;)는 ‘(줄로) 무늬 진, 끈으로 둘러싸인, 줄무늬가 들어간, 줄무늬의’라는 뜻이다.

** ‘나찰’(lx'n:)은 원래 ‘움켜 빼앗다, 방어하다, 구원하다, 탈출하다, 나누다, 뜯다, 보존하다, 회복하다, 구출하다, 해방하다, 노략하다, 벗기다, 취하다’라는 뜻이며, ‘잡아채다, 구원하다, 구출하다, 구하다, 벗기다, 약탈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야곱을 악용했던 라반의 재산을 빼앗아 야곱에게 주신 이 사건은 마치, 이스라엘을 노예로 부렸던 애굽 사람의 재물을 노동의 값으로 빼앗아 주신 것에 비교된다. 출 3:21-22 “(21)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22)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 출 12:35-36 “(35)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36)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한편 야곱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10-12절에서 공개합니다. 야곱은 라반과 계약을 맺을 때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그리고 검은 것(30:32)을 요구한 것은 아무 생각이 없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해서 그렇게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서 양떼가 교미하는* 장면을 보여주셨는데, 수양들이 모두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 그리고 아롱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도 이것을 강조해주었고, 그래서 야곱은 이 세 가지 종류를 품삯으로 제시했던 것입니다. 라반이 야곱을 속이고 이용한 것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은 이런 종류의 양과 염소들로 야곱에게 보상해주실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 10, 12절의 “양떼를 탄 수양”에서 ‘탄’으로 번역된 ‘알라’(hl;[;)는 원래 ‘오르다, 높다, 올라가다, 일어나다, 즉시, 깨어나다, 가져오다, 기르다, 타다(타게 하다), 실어 올리다, 던져올리다’라는 뜻이며, ‘올라가다, 기어오르다, 만나다, 방문하다, 출발하다, 철수하다, 싹나다, 일어나다, 능가하다, 치워버리다, 높여지다, 주다, 건네다, 투입되다, 들어 올리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양들의 교미하는 장면을 묘사한 표현이다.

** ‘바로드’(droB;)는 ‘(마치 우박으로 된 것 같이) 점 있는, 얼룩진, 점 찍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벧엘에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서원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시면서 이제 하란을 떠나서 그의 출생지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13v). 야곱이 떠날 때 리브가는 자신이 사람을 보내어 기별하겠다고 했지만(27:45), 야곱이 라반과 함께 거하는 20년 동안 리브가는 죽고 말았고 결국 귀향의 소식은 리브가가 아닌 하나님께서 전해주신 것입니다.

* 11절에서는 ‘하나님의 사자’라고 했다가 여기에서는 ‘벧엘 하나님’이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한 사건 안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하나님’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구약에는 많이 나오는데 하갈의 경우(창 21장), 기드온의 경우(삿 6장), 마노아의 경우(삿 13장)가 대표적이다.

**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있었던 일을 지적하시면서도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지 않으시고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아마도 벧엘이 야곱의 귀향길에 자연스레 거쳐 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야곱이 에서와 만난 후 세겜에 정착해버리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직접적으로 명령하신다(25:1).

 

3) 라헬의 드라빔 도적질과 도망(14-22v)

야곱이 그동안의 일과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자 라헬과 레아는 야곱보다 더 적극적으로 귀향에 찬성합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집에 더 머물러 있어봤자 어떤 분깃*이나 유업**도 얻을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합니다(14v). 아들이 없었던 때에는 그들과 사위인 야곱이 상속자로 여겨졌지만, 이제 아들들이 생겼으니 그것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자기들을 팔고*** 그들의 돈****을 다 먹었으니 자기들을 외인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5v). 사실 결혼할 때에 지참금은 아버지가 받지만, 아버지는 시집가는 딸에게 한 밑천을 떼어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경우 노동력으로 지참금으로 대신했고 그 품삯도 여러 차례 바꾸어 가면서 라반이 이득을 챙겼으니 실제로 라헬과 레아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었으며 결국 딸들을 팔아먹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들로서는 라반이 자기들을 딸이나 가족이 아닌 낯선 사람이나 이방인, 심지어 매춘부*처럼 여기는** 것이라고 할만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빼앗아 주신 재물은 당연히 자기들과 자기 자식들에게 주어져야 할 몫이니,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행하면 된다고 대답합니다(16v).

* ‘헤레크’(ql,je)는 원래 ‘(혀의) 미끄러운, 할당, 호리는 말, 몫을 취하다, 받다, 분리하다, 매끄럽다(매끄럽게 하는 것)’는 뜻이고 ‘할당, 몫, 부분, 영역’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나하라’(hl;j}n")는 ‘상속된 어떤 것, 점유, 조상 전래의 가재, 토지, 세습 재산, 몫, 상속재산, 상속하다, 분배, 유산, 소유’라는 뜻이다.

*** ‘마카르’(rk'm;)는 ‘(상품으로서, 결혼에서 딸을, 노예로) 팔다, 항복하다, 자신을 팔다’라는 뜻이다.

**** ‘케세프’(#s,K,)는 ‘은(조각), 값, 돈’이라는 뜻이다.

***** 수 15:18-19 “(18)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19)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 ‘외인’으로 번역된 ‘노크리’(yrIk]n:)는 ‘낯선, 친척이 아닌, 간통의, 차이가 있는, 놀라운, 외국인, 이국풍의, 이방인 (여자), 매춘부’라는 뜻이다.

** ‘하솨브’(bv'j;)는 원래 ‘엮다, 서로 꿰뚫다, 짜다, 공작하다, 음모하다, 꾀하다, 생각하다, 고려하다, 평가하다, 계산하다, 설명하다’라는 뜻이며, ‘생각하다, 계획하다, 평가하다, 계산하다, 발명하다, 판단하다, 상상하다, 세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내들의 말에 힘을 얻은 야곱은 가족들을 모두 약대들에 태우고(17v) 모든 짐승과 소유를 다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합니다(18v). 그는 특별히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을 때를 택하여* 출발하는데, 유목민들에게 양털을 깎는 일은 여러 날 걸리는 큰 행사요 친구들을 초청해서 축제를 베푸는 행사였기 때문입니다(38:12; 삼상 25:4). 그래서 야곱은 상대적으로 자신들에 대한 감시의 눈길이 약해진 때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가 도망한다는 사실**을 라반***이 알지 못하도록,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서 가만히***** 떠나*(20v**)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서 길르앗 산으로 향합니다(21v). 하지만 야곱이 도망했다는 소식은 사흘 만에 라반의 귀에 들어가고 맙니다(22v). 라반이 양털을 깎는 곳이 야곱이 있는 곳과 사흘거리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30:36), 야곱이 비밀스러운 행동은 거의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 개역 성경은 ‘마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야곱이 떠나려고 하는 그 시기에 라반이 양털을 깎았다는 식으로 번역한다. 하지만 ‘때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단순한 접속사 ‘와우’(w)로서 보통 ‘and'로 번역된다.

** ‘거취’리고 번역된 ‘바라흐’(jr'B;)는 원래 ‘튀다, 도망가다, 쫓아 보내다, 가버리다, 서두르다, 도착하다, 달아나버리다’라는 뜻이며, ‘통과하다, 달아나다, 도망치다, 쫓다, 쫓아버리다, 패주시키다, 도착하다, 뻗다(도달하다), 급히 떠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한편 20절이 이 부분에서 라반을 특별히 ‘아람 사람’이라고 기록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당시에 아람, 즉 시리아 사람들이 매우 교활한 민족으로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에, 야곱이 라반을 피하기 위해서 이처럼 비밀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음을 정당화 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 ‘고하지’로 번역된 ‘나가드’(dg"n:)는 원래 ‘정면에 두다, 반대편에 담대하게 서다, 입증하다, 알리다, 보여주다, 예언하다, 설명하다, 칭찬하다, 누설하다, 선언하다, 고발하다’라는 뜻이며, ‘눈에 잘 띄다, 이야기 하다, 알리다, 선포하다, 설명하다, 전하다, 발표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20절에서 ‘가만히’로 번역된 것은 ‘레브’(ble)로서 원래 ‘마음, 정서, 중심, 편안하게, 동조하다, 용기(있는)’이라는 뜻이며, ‘속사람, 마음, 의지, 가슴, 이해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야곱이 이 모든 일을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순식간에 행동으로 옮겼음을 보여준다.

* ‘떠났더라’라고 번역된 ‘가나브’(bn"G:)는 원래 ‘훔치다, 속이다, 가버리다, 참으로, 비밀리에 가져가다, 도둑질하다, 살그머니 가지다’라는 뜻이며, ‘훔치다, 몰래 가져가다, 멀리 운반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다른 번역본들을 참고하라. [공동번역] 야곱은 아람 사람 라반을 감쪽같이 속여 도망칠 내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다가 [한글 킹제임스] 야곱은 그가 도주하는 것을 시리아인 라반에게 말하지 않고 그가 모르게 떠났더라. [표준새번역] 그뿐만 아니라, 야곱은 도망칠 낌새를 조금도 보이지 않은 채 아람 사람 라반을 속이고 있다가, [현대인의 성경] 게다가 야곱은 자기가 떠나는 것을 라반에게 알리지 않고 그를 속였다.

 

한편 라헬은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도적질합니다(19v). 드라빔*은 당시 가정에 복을 준다고 해서 널리 숭배되었던 가정 수호신입니다. 성경은 도적질의 이유를 소개하지 않지만, 고고학적인 연구에 의하면 이것이 상속자 결정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라반이 죽은 후 야곱에게 상속권이 있음을 증거하려고 그렇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라헬이 야곱과 마찬가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을 추구하는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 ‘테라핌’(!ypir;T])은 ‘가족의 우상, 우상들, 조상들, 형상들, 가족신’이라는 뜻인데, 그 어원에 대해서는 ‘치료하다’라는 뜻의 ‘라파’(ap;r;)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와, ‘편안히 살다’라는 뜻의 ‘타라프’(#r;T;)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드라빔은 구복(求福)과 점술 그리고 신탁 행위와 관련된(겔 21:21; 슥 10:2) 것으로서 인간의 형상을 닮은 반신상(半身像)이다. 이것은 나무나(삼상 19:13- 16) 은으로(삿 17:4) 만들어졌으며 작은 것(34절)에서부터 사람의 키와 맞먹는 큰 것(삼상 19:13)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 김희보, <구약 이스라엘사> pp.59-60을 참조하라. “야곱의 아내 라헬이 그 아버지의 집의 우상을 도둑한 것도(창 31:19-42), 그 우상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요, 또 그것이 고귀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아바도 라반의 가정의 기업을 상속받기 위함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것은 누지 서판(Nuzi tablets)에 의하여 설명되어진다고 본다. 누지 서판에 의하면 어떤 가정의 사위가 그 장인의 가산을 상속할 수 있다는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법정에 나타나서 그 가정의 우상 ‘드라빔’을 제시함으로 승리하였다는 사례가 있는데, 이것은 라헬의 행동에 배경이 되기에 아마도 충분하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한편,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여행 때 드라빔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라는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의거하여 위험한 여행에서 안전을 기원하기 위한 주술적인 목적도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을 위해서라면 굳이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적질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2. 보호(23-55v)

 

1) 추적 vs 현몽(23-29v)

야곱의 도망 소문을 들은 라반은 그의 집안사람들을 동원하여 야곱을 추적하여* 야곱이 도망한지 10일째 되는 날, 드디어 길르앗 산에서 야곱을 따라잡습니다(23v). 길르앗 산이 밧단 아람에서 약 480km나 떨어진 곳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라반은 7일 동안 매일 70km를 추격한 셈이고, 이것은 라반이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마도 드라빔까지 도적질했다는 사실이 라반을 더더욱 분노하게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라반이 야곱을 따라잡기 하루 전날 밤에 그의 꿈에 나타나시어서 야곱에게 선이든 악이든 간에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하십니다(24v).**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당시에 가장의 권한은 막강한 것이어서, 이러한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가 아니었다면 라반은 야곱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혔을 것이 분명합니다.

* ‘쫓아가’라고 번역된 ‘라다프’(#d'r;)는 ‘(악의를 가지고) ~을 뒤쫓다, 추적하다, 패주시키다, 사냥하다, 박해하다, 추적자’라는 뜻이다.

** [공동번역] 그 날 밤 아람 사람 라반의 꿈에 하느님께서 나타나시어 야곱과 시비를 따지지 말라고 이르셨다. [한글 킹제임스] 밤에 꿈 속에 하나님께서 시리아인 라반에게 오셔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선이든 악이든 간에 야곱에게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셨더라. [표준새번역] 그 날 밤에 아람 사람 라반이 꿈을 꾸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좋은 말이든지, 나쁜 말이든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하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그 날 밤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의 꿈에 나타나 "너는 어떤 방법으로도 야곱을 위협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라반은 야곱이 장막을 친 곳에 도착하자(25v) 야곱을 찾아가서 책망합니다. 어떻게 자기에게 알리지도 않고 가만히, 자기의 딸들과 손자들을 포로를 잡아가듯 끌고 갈 수 있느냐(26v), 즐거운 마음으로 흔쾌히*,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보냈을 텐데 어째서 속이고 가만히**** 도망했느냐(27v), 손자들과 딸들에게 작별의 인사도 하지 못하게 한 것은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28v)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31절에서의 야곱의 대답처럼 라반은 그렇게 흔쾌히 야곱을 떠나보낼 사람이 아닌 것은 이제까지의 행동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경고하신 내용을 전하면서도 여전히 야곱을 해할만한 능력이 자기 손에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29v).

* '즐거움‘이라고 번역된 ’심하‘(hj;m]ci)는 ‘유쾌함, 환희, 기쁨, 즐거움, 즐거운 결과, 행복한 결과’라는 뜻이다.

** ‘북’으로 번역된 ‘토프’(#To)는 ‘탬버린, 작은 북, 북’이고, ‘수금’으로 번역된 ‘키노르’(r/NKi)는 ‘하프, 수금’이다.

*** ‘노래’로 번역된 ‘쉬르’(ryvi )는 ‘노래, 노래함, 음악의, 곡, 수금에 맞춘 노래, 종교적인 노래, 레위인들의 찬양, 송가’라는 뜻이다.

**** 27절에서 ‘가만히’로 번역된 것은 ‘하바’(ab;j;)로서 ‘숨기다, 잡다, 빼다’라는 뜻이다. 한편 26절에서 ‘가만히’로 번역된 것은 20절에서 ‘떠났더라’로 번역된 ‘가나브’(bn"G:)로서, ‘훔치다, 속이다, 가버리다, 도둑질하다, 살그머니 가지다, 몰래 가져가다, 멀리 운반하다’라는 뜻이다.

***** ‘어리석도다’라고 번역된 ‘사칼’(lk's;)은 ‘어리석게 굴다, 미련하게 굴다, 바보처럼 놀다, 바보가 되다’라는 뜻이다.

 

2) 수색 vs 속임수(30-35v)

라반은, 아버지의 집을 사모하는 마음이 사무쳐서* 급하게 떠나간 것은 그냥 넘어가 주겠지만 자기의 신, 드라빔을 도적질한 것은 봐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30v). 야곱은 자기가 급하게, 몰래 도망치듯 떠나온 것은 라반이 자기 딸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억지로 빼앗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31v). 라반의 인물됨을 보면 그렇게 할 가능성이 충분한데, 뒤에서도(43v) 라반은 자기 딸들과 손자들에 대한 자기의 소유권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만약 야곱이 그렇게 몰래 도망쳐 나오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지 않으셨다면 라반은 야곱을 빈손으로 돌려보냈을 수도 있는(42v)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 개역성경은 단순히 ‘사모하여’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히브리 원문은 ‘니크소프 니크사프타’(hT;p]s'k]nI #sok]nI)라고 기록하여, ‘사모한다’라는 의미를 가진 ‘카사프’(#s'K;)를 두 번 반복해서 쓰고 있다. ‘카사프’는 ‘창백하게 되다, 사모하다, 두려워하다, 열망하다, 몹시 탐내다, 갈망하다, 아프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사모하고 사모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 ‘가잘’(lz'G:)은 원래 ‘뜯어내다, 가죽을 벗기다, 빼앗다, 잡다, 소비하다, 강탈하다, 찢어내다, 노략질하다, (힘으로, 강제로) 가져가다, 찢다’라는 뜻이며, ‘뜯어내다, 잡다, 약탈하다, 떼어내다, 힘으로 제거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라반의 드라빔에 대해서는 그것이 발견되면 훔친 사람을 죽여도 괜찮다고 말합니다(32v). 이 말이 좀 지나쳐 보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가장이 갖는 절대적인 권한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라반이 야곱을 해할 능력이 있다고 말한 것은 단순한 허세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의 장막과 레아의 장막, 그리고 두 여종의 장막까지 들어가서 찾았지만 드라빔은 나오지 않았습니다(33v). 마지막으로 라헬의 장막에 들어갈 때에 라헬은 이미 드라빔을 약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낙타 위에 앉도록 만든 안장은 불룩하게 생긴 바구니 모양이어서 그 안에 드라빔을 숨길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마침 경수가 나서(월경)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데(35v), ‘여자 야곱’이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모습입니다. 결국 라반은 수색*** 끝에도 드라빔을 찾지 못했습니다.

* 김희보, <구약 이스라엘사> p.65. “족장의 절대 권한은 그 가정의 죄를 다스리는 징벌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창 31:29에 드라빔을 훔친 것을 찾기 위해 야곱을 따라온 라반의 한 말이 ”너를 해할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한 것이나, 또 32절에서 ”외삼촌의 신을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라고 한 야곱의 말들은 족장시대의 가장(家長)이 갖는 절대적 권한과 결부시켜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이다.”

** ‘약대 안장’으로 번역된 ‘카르’(rK')는 ‘1)낙타의 등에 올려놓은 닫집형의 가마, 가마, 바구니형 안장 2)초원, 목초지 3)양, 어린양, 수양 4)성벽 공격, 파괴용 무기’라는 뜻이다.

*** ‘찾다가’라고 번역된 ‘하파스’(cp'j;)는 원래 ‘찾다, 변장하다, 찾게 두다, 가면을 쓰다, 바꾸다, 부지런히 찾다, 숨기다, 탐지하다’라는 뜻이며, ‘조사하다, 수색하다, 발견하다, 변장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3) 책망(36-42v)

상황이 이렇게 되지 이제까지 공손했던 야곱은 20년 동안 쌓아두었던 화*를 터뜨립니다. 외삼촌이 불같이 급히 쫓아왔는데** 도대체 자기가 무슨 죄***를 저질렀냐고 불평하고 다투기**** 시작합니다(36v). 직접 손으로 다 더듬어 만져가면서찾아보았으니*****  야곱의 물건 가운데 라반의 소유가 있으면 그것을 형제들 앞에 내놓고 재판*을 하라고 말합니다(37v).

* ‘하라’(hr;j;)는 원래 ‘빨갛게 되다, 더워지다, 화, 열성, 열망이 타오르다, 노하다, 타다, 불쾌하다, 애태우다, 뜨거워지다, 진노하다’라는 뜻이며, ‘뜨겁다, 격노하다, 불타오르다, 화가 나다, 점화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불같이 급히 쫓나이까’라고 번역된 ‘다라크’(ql'D;)는 ‘불붙다, 추적하다, 타오르게 하다, 노하다, 핍박하다, 열심히 추적하다’라는 뜻이다.

*** ‘허물’로 번역된 ‘페솨’([v'P,)는 ‘위반, 반역, 범죄’라는 뜻이고, ‘죄’라고 번역된 ‘하타아’(ha;F;j' 또는 하타트, taF;j')는 ‘범법, 습관적인 죄악, 형벌, 제사, 대속, 범법자, 죄인, 속죄제, 죄’라는 뜻이다.

**** ‘책망하다’라고 번역된 ‘리브’(byri 또는 루브, bWr)는 ‘뒤흔들다, 붙잡다, 말다툼하다, 논쟁하다, 방어하다, 대적자, 꾸짖다, 불평하다, 다투다, 변론하다, 책망하다, 항쟁하다, 싸우다’라는 뜻이다.

***** ‘뒤지다’라고 번역된 ‘마솨쉬’(vv'm;)는 ‘손으로 만져보다, 손으로 더듬어 찾다, 찾다, 더듬다’라는 뜻이다.

* ‘판단하게’라고 번역된 ‘야카흐’(jk'y:)는 원래 ‘올바르다, 바로잡다, 논증하다, 결정케 하다, 정당화하다, 확신시키다, 정하다, 응징하다, 확신하다, 바로잡다, 논쟁하다, 심판하다, 주장하다, 변론하다, 추론하다, 견책하다, 책망하다’라는 뜻이며, ‘증명하다, 결정하다, 재판하다, 질책하다, 책망하다, 교정하다, 옳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외삼촌과 함께 한 20년 동안 어떻게 일해 왔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라반의 암양들과 암염소들은 낙태하지 않았고 외삼촌 소유의 수양을 먹지 않았으며(38v), 짐승에게 물려서 찢긴* 것은 외삼촌에게 가져가 보이지 않고 스스로 보충해 놓았고 낮이든 밤이든 도적을 맞으면 외삼촌이 그것을 물어내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그것도 모두 자기가 물어냈으며**(39v***), 그렇게 20년을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먹어가면서**** 잠도 자지 못하면서 지내왔다는 것입니다(40v*****). 야곱의 이런 모습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야곱은 그동안 참으로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해 왔습니다. 어쩌면 자기보다 더한, 악질적인 라반 밑에서는 속임수도 눈가림도 통할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차라리 성실하게 일해 왔던 것입니다.

* ‘테레파’(hp;ref])는 ‘먹이, (동물들에 의해 물려) 찢긴 (것), 찢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 ‘물어내었으며’라고 번역된 ‘바카쉬’(vq'B;)는 원래 ‘찾아내다, 추구하다, 구하다, 청하다, 간청하다, 원하다, 얻다, 탄원하다, 요구하다, 요청하다, 찾다’라는 뜻이며, ‘찾다, 묻다, 갈망하다, 요구하다, 간청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공동번역] 양이 맹수에게 물려 죽어도 그것을 장인께 가져가지 않고 제가 물어냈습니다. 또한 밤에 도둑을 맞았는지 낮에 도둑을 맞았는지 장인께서는 그것을 저한테 물리셨습니다. [한글 킹제임스] 짐승들에게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내가 그 손실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둑을 맞았거나 밤에 도둑을 맞았거나 외삼촌께서는 내 손에서 그것을 요구하였나이다. [표준새번역] 들짐승에게 찢긴 놈은 제가 장인에게 가져가지 않고, 제 것으로 그것을 보충하여 드렸습니다. 낮에 도적을 맞든지 밤에 도적을 맞든지 하면, 장인께서는 저더러 물어내라고 하셨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사나운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은 외삼촌에게 가져가지 않고 내가 언제나 그 손실을 보충하였고 낮에 도둑을 맞았건 밤에 도둑을 맞았건 외삼촌의 요구에 따라 내가 그것을 물어내었습니다.

**** ‘무릅쓰고’라고 번역된 ‘아칼’(lk'a;)는 ‘먹다, 소비하다, 삼키다, 태우다, 먹이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 모두를 수식하는 단어이다. 직역하면 ‘낮에는 더위를 먹고 밤에는 추위를’이 된다.

***** [공동번역] 저로 말하면 낮에는 더위에 허덕였고 밤에는 추위에 떨면서 제대로 눈도 붙이지 못했습니다. [한글 킹제임스] 이와 같이 나는 낮에는 갈증으로 밤에는 서리로 지쳤으며 눈붙일 겨를도 없었나이다. [표준새번역] 낮에는 더위에 시달리고, 밤에는 추위에 떨면서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낸 것, 이것이 바로 저의 형편이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이와 같이 내가 낮에는 더위를 먹고 밤에는 추위에 시달리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외삼촌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성실하게 일하는 동안 라반은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면서 야곱을 괴롭히고 불공평한 대우를 해왔습니다(41v). 만약*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셨다면 라반은 결국 야곱을 빈손으로 돌려보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라반 밑에서 얼마나 고생***하고 수고****했는지를 보셨고 결국 라반이 잘못했다는 판결을 내리시고 라반을 책망하신***** 것입니다(42v). 야곱은 라반의 소유가 자기에게 온 것을 하나님이 빼앗아 주신 것이라고 본 것처럼, 야곱에게 선악 간에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라반에 대한 정죄와 책망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 ‘아니하셨더면’으로 번역된 ‘루레’(aleWl, yleWl)는 ‘~외에, 만일 …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다면, 제외하고’라는 뜻이다.

** 여기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라고 부른다. ‘경외’라고 번역된 단어는 ‘파하드’(dj'P')인데 ‘갑작스런 놀람, 공포, 두려움, 전율, 공포의 대상’(fear, dread, terror)이라는 뜻이다.

*** ‘고난’으로 번역된 ‘오니’(ynI[?)는 ‘억압, 비참함, 고난, 고통, 가난’이라는 뜻이다.

**** 예기아’(['ygIy_)는 ‘노고, 일, 생산, 소유, 수고, 노력, 생산물, 수확물, (노동의 결과로)얻은 재산’이라는 뜻이다.

***** 이것은 37절에서 ‘판단하게’라고 번여된 ‘야카흐’(jk'y:)이다.

 

4) 언약 & 증거(43-55v)

라반은 지난밤에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고 이제는 야곱의 강력한 반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물러갈 때는 물러가더라도 큰 소리를 칩니다. 그는 야곱의 아내들도 여전히 자기 딸들이고 그들이 낳은 자녀들도 자기 자식이라고 말합니다. 또, 야곱 소유의 양떼도 다 자기 것이고 야곱이 보는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칩니다. 그러면서 그것들을 해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양보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43v) 언약을 세울* 것을 제안합니다(44v). 야곱은 벧엘에서처럼 돌을 가지고 기둥(기념 비석)을 세웠고(45v), 다른 형제들은 돌들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만들었으며, 함께 그 곁에서 식사를 했습니다(46v). 라반은 그 무더기를 ‘여갈사하두다’**라고 했고, 야곱은 ‘갈르엣’**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47v). 그것은 라반이 그 무더기가 증거가 된다고 한 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48v).

* ‘세워’라고 번역된 ‘카라트’(tr'K;)는 원래 ‘자르다, 베어내다, 베어 넘기다, 베어 조각내다, 파괴하다, 소멸시키다, 언약을 맺다, 씹혀지다, 서로 연맹하다’라는 뜻이며, ‘자르다, 베어내다, 베어 넘기다, 몸통을 베어내다, 잘라내다, 제거하다, 죽이다, 언약을 맺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고대의 언약 방법에서 나온 표현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위하여 제물을 택하여 그 중간을 쪼갠 것(창 15:10)이 이 표현을 가장 잘 보여준다. 언약을 맺을 때에 그렇게 쪼개진 짐승 사이를 지나가는데, 그것은 그 언약을 어기는 사람이 그 짐승처럼 될 것(확실하게 죽어서 두 조각으로 나눠짐)을 의미한다.

** '예가르 사하두타'(at;Wdh}c' rg"y_)는 아람어로서 ‘증거의 더미’라는 뜻이다.

*** 개역 성경은‘갈르앗’으로 음역했지만, 원래의 발음은 ‘갈에드’(d[el]G")이다. 이것 역시 ‘증거의 무더기’라는 뜻인데, ‘갈’(lG")은 ‘큰 물결, 더미, 샘, 파도’라는 뜻이고, ‘에드’(d[e)는 ‘증언, 증거, 증인’이라는 뜻이다.

 

한편 이것을 ‘미스바’라고도 불렀는데, 그것은 두 사람이 서로 떨어져 있어도 하나님께서 두 사람 사이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둘 사이에서 지켜봐 주시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호칭입니다(49v).* 라반은 이 언약을 통하여 야곱이 자기 딸들을 박대하거나** 다른 아내를 취하지 말 것(50v)과 서로 간에 그 무더기를 넘어서 서로를 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요구합니다(52v). 라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고, 야곱은 ‘그 아비 이삭의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였습니다(53v). 그리고는 그 산에서 다시 제사를 드리고 함께 식사한 후에(54v) 다음 날 아침 일찍이 헤어집니다(55v).

* ‘미츠파’(hP;x]mi)라는 명칭은 ‘차파’(hp;x;)에서 파생되었는데, 원래 ‘굽히다, 먼 곳을 응시하다, 관찰하다, 기다리다, 바라보다, 자세히 보다, 망을 보다’라는 뜻이며, ‘보다, 둘러보다, 정탐하다, 감시하다, 관찰하다, 지켜보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아나’(hn:[;)는 원래 ‘누르다, 낮추다, 괴롭히다, 고통, 대답하다, 자책하다, 심하게 다루다, 모독하다, 훈련하다, 힘, 정중함, 겸손한(겸손), 고통을 주다, 강탈하다, 노래하다’라는 뜻이며, ‘1)점령되다, 바쁘다 2)괴롭히다, 압제하다, 낮추다, 괴롭다, 굴복하다, 낙심하다, 겸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무사히 라반의 손에서 풀려 나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라반이 얼마나 악질적인 인물이고, 라헬이 얼마나 아버지 라반과 남편 야곱에 버금가는 ‘사기꾼’같은 인물인지, 그리고 야곱은 점점 괜찮은 모습도 보여준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 나오는 인물들보다도 특별히 하나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기를 원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야곱을 편드시는 하나님’이라고 잡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야곱의 성실한 모습을 발견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곱이 완전히 변하여 새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는 자기보다 더 악질적인 인물인 라반을 만났기에 기를 못 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편들어 주십니다. 야곱을 큰 부자로 만들어 주셨을 뿐 아니라, 그가 무사히 고향을 돌아올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아브라함과 관련된 한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랄에 거하면서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여서 그랄 왕 아비멜렉이 그녀를 데려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사라를 돌려보내라고 경고하시고, 아비멜렉은 자기는 무죄하고 아브라함이 속였다고 항의합니다. 그런 아비멜렉에게 하나님은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데, 창세기 20:7에서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부른 것은 이곳이 유일한데, 그 상황이 참 절묘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에게 거짓말을 해서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하시면서, 그의 아내를 돌려보내고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줄 것을 부탁하지 않으면 모두 죽을 거라고 협박을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편드시는 하나님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이 잘한 것 하나도 없는데도 하나님은 그의 편을 드십니다. 마찬가지로 야곱이 잘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은 야곱을 편들어 주십니다. 이것을 보시며 하나님이 나도 이렇게 편들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실 겁니다. 나중에 정리하겠지만, 하나님은 야곱 생애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십니다. 부모의 집을 떠날 때에는 벧엘에서, 외삼촌의 보복 앞에서는 라반의 꿈에서, 에서의 보복 앞에서도 얍복 나루에서 나타나십니다. 이것을 편드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 자기 자녀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편을 들어가면서라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무조건 옳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보호해 주시고 공급도 해 주십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어떤 상황을 만들어서라도 움직이고 변화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당근과 채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우리를 자녀답게 만드시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손에 붙들렸기에 우리는 스스로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지금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결국은 하나님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해있을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야곱 자신 때문이 아니라,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때문에 야곱의 모습에서 이스라엘을 발견하듯이, 우리 자신의 모습에서도 거룩해진 성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능하면 그렇게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협력하십시오. 버틸수록 고달파집니다. 빨리 협력하고 빨리 변화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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