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은 성당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적인 사회로서, 거기에는 보편적으로 ‘절대적 진리’로 인정받는 ‘교회’와 ‘성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로 시작하여 근세로 넘어오면서 성경을 대신할 새로운 진리로서 ‘인간의 이성(理性)’이 주장되었습니다. 계몽주의 사상은 인간을 선하게 보고(성선설) 바르게 교육하면 인류의 미래가 밝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1, 2 양차 세계 대전을 경험하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신뢰와 미래에 대한 희망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근세 이후의 시대(post-modern)에는 ‘상대주의’가 또 다른 진리로 등장했습니다. 절대적인 진리는 없으며, 각 개인이 진리라고 믿는 것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는 그것은 그렇게 믿는 개인에만 진리이지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을 진리로 믿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대주의는 결국 진리가 없다는 주장의 다른 면일 뿐이며, 사사기가 지적하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그런데 상대주의의 영향은 매우 강력해서 많은 사람들이 상대주의의 영향 속에 빠져 있고, 심지어 교회와 신학도 이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도’나 ‘선교’가 아닌 ‘대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기서 나온 생각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점점 ‘상대주의’와 ‘절대주의’ 양 극단으로 나뉘어져 다투고 반목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이라는 절대적인 진리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실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진리가 절대성과 상대성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적인 진리가 있는가 하면 상대적인 진리도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하지만 각각의 사람의 어떤 성향과 특성을 지니느냐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조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긋한 사람이 있습니다. ‘빨리’ 하는 것은 진리이고 ‘느긋한’ 것은 비진리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절대성과 상대성을 혼동합니다. ‘예수 외에는 구원 얻을 방법이 없다!’는 것은 결코 타협하거나 버릴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느냐는 획일시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거꾸로 적용합니다. 양보하고 배려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고집을 부리고, 복음을 전해야 할 때는 주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 태도와 행동에 분별과 자유를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