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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가나의 두 번째 기적의 영적 교훈, 요한복음 4:43~54

작성자강명호 목사|작성시간26.01.11|조회수67 목록 댓글 0

가나의 두 번째 기적의 영적 교훈

요한복음 4:43~54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제 갈릴리 지방의 선교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출발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기록한 내용 속에 담긴 교훈들을 차례대로 읽으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먼저 4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전에 살펴본 대로 이 본문 말씀 이전에 기록된 바 사마리아 수가 성에서 전도하신 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가 성 우물 가에서 한 사연 많고 상처 많고 쌀쌀맞았던 중년 여인을 만나서 따뜻하고 진실하고 끈기있게 인격적으로 대하시며 그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차분하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써 그 영혼이 거듭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그 심령이 거듭나서 물 긷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들어가 동네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감동하여 예수님께 강청하여 그 동네에서 이틀 동안이나 말씀을 계속 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이 온 세상의 구주라는 놀라운 신앙 고백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동네에서 오직 말씀만 가르쳤고 아무런 기적과 이적을 행한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도, 그 이방 사람들은 놀랍게도 예수님을 정확히 알고 정확히 믿고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붙잡았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놀랍고 기쁘셨음이 분명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그 동네에 계속 머물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하고 기뻐하며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쏙쏙 받아들이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틀이 지나자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본래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가서 복음 전도 사역을 하는 것이 그의 선교 사역의 작정된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가는 갈릴리 사역이 편하고 아무런 반대 없는 환영 일색의 지역이었을까요? 44절을 보면 예수님은 무엇인가 자기 사역의 저항이 만만치 아니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함께 4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예수님이 지금 가려 하는 지역인 갈릴리 지방은 사실 예수님이 자라나신 나사렛 동네가 속한 지방입니다. 한집 건너 두 집은 친척이고 친구지간입니다. 바로 나사렛 동네에서 가나 동네는 14킬로미터니까 두 시간이면 가는 곳이고 나사렛에서 가버나움도 34킬로미터니까 5시간 6시간 걸어가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금새 다 파악들 합니다. 나사렛 목수요 배운 것 별로 없고 율법 학교 다닌 적 없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요셉을 따라 문 고치고 상점 간판 달고 구들장 고치는 등을 해오신 것을 다 보았던 사람들이 즐비한 곳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곳에 들어가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진리의 말씀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엄위하신 뜻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들 앞에서 성경을 펴고 그 뜻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들을 때 좋아하겠습니까? 더욱이 예수님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원자라는 말씀을 증거할 때에 그들이 이 말을 듣겠습니까? 이전에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나서자 그 동네 아나돗 사람들은 그를 죽이려 들었습니다. 친구들은 그를 타락시켜 사람들 앞에 멍석말이감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면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들, 야고보 요한 요셉 유다 여동생들이 예수님을 도우러 찾아오고 열렬한 예수님의 추종자가 되어줄까요? 예수님은 안 보고도 그들이 자기를 부끄러워하고 싫어하고 방해할 것을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 동네, 고향 지방인 갈릴리 선교는 참으로 힘이 들 수밖에 없음을 예수님 직감하는 것입니다. 가장 힘든 것이 바로 남편 전도요 부모님 전도요 자식 전도 친척 형제 전도입니다. 주님께서도 너희 원수가 너희 집안 식구리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 성에 그냥 있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힘이 들 것 알고 박해가 닥칠 것 알면서도 수가 성을 떠나 사명지인 갈릴리 지방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하는 자가 됩시다. 가족 구원, 친척 구원, 직장 동료 구원, 학교 친구 구원, 이웃 구원을 위하여 묵묵히 참고 인내하며 기도하며 기다립시다. 주님께서조차 힘든 것을 뻔히 알면서 그 길을 가셨으니, 우리가 힘든 것 누구보다 더 잘 아심을 생각하고 용기와 인내를 가집시다. 우리가 주님께 우리 상황을 아뢰면서 인내하며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기이하고 놀랍게 사랑하는 가족들, 동료들, 친구들, 이웃들을 주님 품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열매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단단히 준비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여서 제자들도 긴장하고 사마리아 지방을 벗어나 갈릴리 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반응이 어떠했을까요?

4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들어갔을 때에 사람들이 그를 영접했다고 말합니다. 영접했다는 단어 데코마이는 환영했다는 뜻입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제자들은 좀 얼떨떨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 말씀과 좀 다르니까요. 하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조금 길을 비껴 가신 것일 수 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은 당장 가지 아니하시고 그 곁의 마을들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나인 성이라든지 가나 성으로 예수님께서 가신 것입니다. 고향 나사렛은 나중에 가십니다.

여하튼 예수님께서 그 성읍들의 회당에 가서 말씀을 증거하실 때에 사람들이 반응이 좋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고 서로 연락해서 예수님이 계신 회당이 북새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확고하고 진정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과 기적을 보고서 예수님이 능력을 행하는 자로 알고서 흥분하여 모여든 것입니다. 그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저번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명절을 지키다가 예수님께서 성전의 바깥 뜰에서 장사하던 자들을 내쫓는 일을 해서 속이 다 시원하게 하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 성전에서 몰려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도 가르치시며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는 많은 일들을 행한 것도 자기 눈으로 보았거나 본 사람들을 통하여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예수님을 몇 개월만에 갈릴리 땅 자기 성읍에서 뵈니까 흥분하여 이렇게 예수님을 환영하며 반가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은 그러한 믿음의 반응에 대만족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표적과 이적을 베풀어주지도 않으셨습니다. 오직 차분하게 하나님의 말씀만 가르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 성에 가서야 표적을 하나 베풀어주셨다고 오늘 본문 말씀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게 표적과 기사를 보고서 믿는 신앙은 작은 믿음이요 구원을 얻을 만큼 큰 믿음이 결코 아니라고 주님은 선언하십니다.

 

4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나중에도 주님은 이적과 표적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무섭게 책망하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다음날 예수님을 다시 열렬하게 찾아서 배 타고 이리 저리 몰려다니다가 예수님을 찾아뵈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반갑게 맞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책망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라”(요한복음 6:27)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일관된 가르침은 믿음의 본질이 단지 외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의 인격에 주목하고 그를 온전히 신뢰하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표적과 기적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과 표적만을 추구하면서 정작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예수님을 기적 행하는 자 정도로만 알고 만다면 결국 표적의 최종적인 목적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표적을 향하여 날아가는 화살이 중간에 떨어지거나 표적 밖에 날아가 박히는 꼴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갈릴리에 오셨을 때에 흥분한 사람들이 자기를 환영하였지만 그들의 환영 속에 진정하고 온전한 믿음이 없음을 아시고 그들에게 차분하게 말씀을 가르침으로써 진정한 믿음으로 이끄시려고 애썼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그저 훌륭한 분으로만 아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영적 지도자로서 좋은 말씀을 가르쳐주는 자로만 알아서도 안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수많은 선지자들 중에 가장 탁월하신 분이요 많은 기적을 행하였던 엘리야, 엘리사와 같은 대단한 능력 행사자 정도로만 알아서도 안됩니다. 예수님은 그들보다 더 크신 자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으로 태어나신 구원자십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를 친히 그 십자가에서 대속하여 흘린 피로써 완벽하게 씻어내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영원히 사셔서 우리를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저 영원한 천국 집으로 인도해들이시는 유일한 길이 되신 분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나타나 기적과 표적을 일으키고, 귀신들을 내쫓고 병도 고치고 사람들을 그냥 손을 내밀어 쓰러뜨립니다. 그런다 할지라도 그 능력 행하는 자가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지 않고 자기를 높이고 자기 자신의 아성을 쌓고 다른 교회들을 비웃고 평범한 다른 목회자들을 형편없는 사람들이라고 비방하고 자기를 따르도록 선동한다면, 이 사람은 분명 예수님의 진실한 제자가 아닙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을 슬쩍 슬쩍 도용하는 거짓 선지자일 뿐입니다. 진정한 성도, 진정한 목회자는 오직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요 자기를 죽기까지 내어주어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요 자기에게 가진 은사도 다 주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처럼 내가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뿐입니다라고 주님의 은혜만 자랑할 따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덕분에 무엇인가 대단한 사람으로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을 때에 이것을 넙죽 넙죽 받아들인다면, 이 사람은 가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우리는 표적과 기적을 따라 이리 저리 현혹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굳게 붙들고 놓치지 아니하며 결코 흔들리지 않는 성도들이 됩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손해가 생기고 모욕과 멸시가 닥치고 고생과 수고가 닥친다 해도 예수님을 끝까지 붙드는 자가 진정한 주님의 사람이요 이 사람이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깊이까지 우리의 믿음이 뿌리 박혀진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46절 전반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우리는 가나라는 동네를 들어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께서 공생애 초창기에 제자들을 불렀을 때에 가나 사람 나다나엘을 제자로 삼은 직후에 가나에서 한 혼인잔치에 초대받아 가셔서 그곳에서 물을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베푸신 바 있습니다. 이제 그곳에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신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라는 말은 이 단락의 끝에서도 다시 나옵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안나오는데, 원문 54절에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다시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라는 단어 헬라어 팔린은 처음 이 강조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한번만 은혜 주시고 끝나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다시 찾아와주시고 다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입니다. 한번의 기적만 베풀어주시고 다시는 안 주시는 분이 아니요 다시 재차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가나에 한번만 들러서 다시 안 찾으시는 분이 아니라 다시 찾아와서 그의 백성들을 만나 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은혜를 더해주시는 분이 우리 구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 1907년 평양대부흥의 은혜를 한번 베풀어주시고 다시는 이 민족 교회를 찾지 아니하시는 분이 아니라 다시 백년이 지난 우리 민족 교회에 주님은 다시금 놀라운 은혜를 얼마든지 베풀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주님께서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실 날이 꼭 다시 올 줄 믿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활의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신 기억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리고는 그 후에 사막과 광야의 길을 계속하여 외롭게 걷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닫아 놓으신 것 같은 오랜 기간을 보내셨습니까? 주님은 놋으로 막아놓은 것 같은 하늘을 활짝 열어놓으시고 하늘 창을 열어서 은혜와 축복을 홍수처럼 부어주시는 기적을 다시 베풀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마 주님께서 가나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실 때인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중인에 한 사람이 회당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그는 존귀한 궁중의 예복을 입어 사람들 눈에 확 띄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달려나와 엎드려 자기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46절부터 54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여기서 왕의 신하라는 단어 바실리코스는 왕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원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족일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왕의 최측근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지체가 높은 사람이 지금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에 계신다는 말을 듣자 32킬로미터가 떨어진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걸어서 예수님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 낮은 곳에 있고 가나는 높은 구릉 지대 성읍인지라 여기까지 올 때까지 정말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달려와서 예수님께 엎드렸으니 이는 겸손한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가 그렇게 간절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는 그의 아들이 지금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큰 부자요 대단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본인과 자기 집안에 걱정 근심이 전혀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들 이런 저런 걱정 근심이 다 있습니다. 돈으로도 걱정을 없앨 수 없고 권력을 가지고도 걱정 근심을 없앨 수 없습니다. 그가 권력 가지고 근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면 결코 예수님께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근심과 걱정꺼리를 주셔서 자기에게 찾아오게 하십니다. 주님 앞에 엎드리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근심과 걱정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불러오시는 손길이기도 합니다.

, 그러면 이 왕족이 한낱 나사렛 촌 동네의 목수 출신인 예수님을 왜 찾아와서 이렇게 간절히 매달리겠습니까? 그에게 돈으로도 안되고 권력으로 안 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난받는 것이 우리에게 종종 이렇게 유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고 이를 통하여 우리를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은 이것이 하나님께 가까이 하게 하시는 손짓인 줄 알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찾으며 주님의 이름을 의지합시다.

또한 지금 문제는 그 아버지보다 아들이 먼저 죽게 될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그 아들은 아직 아이입니다. 소년입니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소년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같이 약해져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버지보다 아들을 먼저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게 나옵니다. 야곱의 아들 유다도 큰 아들, 둘째 아들을 먼저 보냈습니다. 다윗도 자기 앞에 아들들을 셋이나 먼저 보냈습니다. 큰 아들 암논, 셋째 압살롬, 또한 밧세바를 통하여 얻은 첫 아들, 셋이나 먼저 보냈습니다. 종종 보다 보면 팔팔하고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먼저 훌쩍 떠나고 아프고 약한 사람인데 오래 살아 남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현재 건강하다고, 아직 나이가 젊다고 해서 안일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지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주님 만날 것을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기회를 미루지 말고 항상 미리 준비하고 있어서 주님께서 언제든지 부르실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을 가지고 주님을 기쁨으로 뵐 수 있는 우리들 됩시다.

이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대한 진정한 믿음이 아직 없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는 말씀을 먼저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왕의 신하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이르기를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명하였습니다. 이는 그 아이가 죽어가고 있는 중인데 이제부터 생기가 돋고 활력을 되찾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

그런데 이 신하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기이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와 함께 가버나움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 말씀이 그대로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말씀을 믿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믿은 것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날이 저물어 다음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종들이 집에서 주인을 맞으러 달려오다가 그를 만나 그 아이가 살아났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생하게 된 때를 확인하니,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시각 곧 전날 일곱시부터 낫기 시작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그 신하는 자기의 온 집안 식구들이 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제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서 단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능력을 행사하는 자가 아니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말씀하신 대로 천지 만물을 다스리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이요 구원자라는 것을 전적으로 믿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제 표적과 기적이 없어도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그대로 믿는 진정한 신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정녕 가장 큰 기적의 주인공, 단지 아들만 고침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온 가족까지 구원을 얻는 믿음의 은혜를 입은 자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도 요한은 이 왕의 신하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누구인지 짐작할 만한 분은 두 분 정도 있습니다. 하나는 누가복음 8:3 말씀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여 제자 중 한 사람이 된 헌신된 여인 요안나의 남편이 헤롯 안디바의 청지기 구사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이 아이의 아버지 왕의 측근이었던 사람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 죽은 아들을 살리신 은혜에 감복하여 그의 아내 요안나는 예수님을 돌보는 일에 그렇게 헌신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 한 사람은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을 들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31절에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고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기서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이 바로 왕의 신하로 생각되어집니다. 왕의 신하가 원어적으로 볼 때 왕족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그 단어에 부합하는 사람이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당시 헤롯 왕가에 권력에 기대어 평안하고 안일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찾아온 어떤 계기를 통하여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되고 단지 어떤 이익을 얻고 도움을 받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의 전 존재를 다 걸고 주 예수를 자기의 구주로 생명의 주인으로 믿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본인만 아니라 온 가족이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단지 어떤 표적과 기적 때문에 믿는 분이 아니라 이제는 당장 어떤 현상적인 역사가 일어나지 아니한다 하여도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그 말씀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오늘 갈릴리 가나에 두 번째 찾아오셔서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서 보여주신 이 표적에 담긴 교훈이 우리에게도 확실히 와닿는 교훈이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더라도 그의 말씀만 가지고 간다면 그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점을 믿습니까? 이제 당장 표적과 기적이 없이도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 한 말씀만 가지고도 우리는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이 험한 세상을 끝까지 말씀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칠십 오세에 하셨던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25년 후에 그대로 그의 삶에 성취해주셨지 않습니까? 아브라함과 사라가 조금은 흔들렸지만 그 말씀 그대로 믿었기에 훗날 그의 나이 백세, 그 아내 사라 나이 구십세에 이삭을 얻었고 그 후손들이 그 땅에서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었고 그 땅을 지금까지 차지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그대로 믿읍시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그가 하신 말씀 그대로 장차 세상을 심판하시러 오시며 우리를 구원하여 영광의 나라에 들이시기 위하여 영광 중에 오신다는 그 말씀을 그대로 믿읍시다. 그리하여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이 말씀 한 마디 가지고 믿음으로 이 험한 세상을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고난 중에도 담대하게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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