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주일설교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 요한복음 10:16

작성자강명호 목사|작성시간19.07.17|조회수65 목록 댓글 0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

요한복음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한 맹인을 안식일에 고쳐주신 후에 바리새인들의 강력한 반발과 맞서서 그들에게 양들을 도적질하고 죽이는 자들과 이리가 다가오면 도망치는 삯꾼 목자와 선한 목자인 자신과 비교하여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선한 목자이며 그 선한 목자의 가장 중요한 사역의 특징이 바로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신 바 있습니다. 이어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 예수님은 양들을 위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자신이 베푸는 사랑에 대하여 계속하여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어지는 이 구절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양이신 우리들을 향한 선한 목자 예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선한 목자 예수님에게는 우리 밖에 있는 또 다른 양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1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여기서 ‘이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양들’은 바로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선민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으로서 구약 교회의 주 구성원인 이스라엘 백성, 유다 백성을 일컫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양무리로 인식하고 다른 이방인들, 다른 민족들은 결코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고 확고하게 믿었고, 이방인들은 태어나지 않음이 낫고 이방인들은 지옥의 땔감에 불과하다고 비천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과 달리 여기서 하나님의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 곧 이방인들도 주님의 양이어서 그가 인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은 이미 로마의 백부장이 그 집에 중풍병이 들었던 젊은 종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했을 때 그 순수한 사랑과 믿음에 감동하여 그 종을 고쳐주시면서 하신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마태복음 8:11,12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르기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고 하셨습니다. 동서로부터 온 많은 사람은 천국에서 잔칫 자리에 누워 먹거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 곧 유대인들은 도리어 잔칫 집이 열린 천국 바깥에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면서 애통해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사역 초기로부터 많은 이방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 가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방 민족들도 주 예수를 통하여 구원받은 주의 백성이 될 것에 대하여 구약 시대에도 선지자를 통하여 예고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49:6 말씀에 보면, 장차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된 바 있습니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사야 56장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시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이사야 56:6~8)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본 천국의 모습에 대한 계시록 7:9,10 말씀을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서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는 유대인들만 그의 양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에 속한 이스라엘 사람, 유대인들만이 그의 양들이 아니라, 유대인의 양무리 밖에 있는 온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들과 방언들 가운데도 예수님의 양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들까지도 자기 양으로 알고 그들도 인도하시고자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그의 사도들을 불러서 이방인들에게 보내사 택한 자기 백성들을 불러내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선한 목자 예수님의 양들은 만세전에 택하심을 입은 그의 양들입니다.

16절 전반절에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말씀하실 때에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앞으로 내게 있을 것이며 내가 장차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도 나타나 있고, 원문을 보면 더 선명하게 나타난 시제는 ‘현재형 시제’로서,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내가 현재 소유하고 있고, 내가 현재 인도하고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분명 이 양우리 밖에 있는 이방 백성들 중에 택하심을 입은 주의 양무리들은 당시 주님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세상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미 선한 목자 예수님은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현재 자기의 양들로 소유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우리 밖의 양들은 자기의 목자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고 이리 저리 사방 팔방으로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지만, 그들의 선한 목자 예수님은 이미 그들을 다 알고 계시고 자기의 백성으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런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방 지역에 일차 선교 여행을 떠난 바나바와 바울이 지금의 터어키 지방인 비시디아 안디옥에 가서 설교했을 때 그들의 반응에 대하여 누가는 사도행전 13:48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이라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차 선교 여행 때에 고린도 시에 가서 선교 사역을 펼칠 때에 그곳에 박해의 기운이 거세질 때에 예수께서 어느날 밤에 바울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 이렇게 응답해주셨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니라 하시더라”(사도행전 18:10)

바울이 박해자들 때문에 두려움이 생겨서 설교할 용기를 잃어버릴 위험에 빠지자 주님께서 친히 환상 중에 바울에게 나타나 격려하면서 두려워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라면서 함께해주시고 그를 해칠 자 없도록 보호해주시겠다면서 그 성중에 주님의 백성이 많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는 그 고린도 성에 주님이 이미 택하신 백성들이 많이 있으니, 염려 말고 전도하여 그들을 건져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믿지 않는 상태라 해도 우리 주님은 이미 그들을 아시며 그들을 이미 자기 양으로 소유하고 계시다는 오늘 읽은 본문 말씀과 같이,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예수님을 알기 전부터 우리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를 알고 계셨고 자기 양으로 이미 소유하고 계셨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그를 모르고 있고 교회에 대하여 전혀 관심도 없고 세상 일에만 관심이 있고 또 복음 전도하는 사람을 보면 미쳤다고 생각하거나 쓸데 없는 짓을 한다고 핀잔을 주고 미워하고 핍박할 때에도 예수님은 우리들을 자기의 양으로 소유하여 붙들고 계셨던 것입니다.

로마서 5:8 말씀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로마서 5:10 말씀에서는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에 예수님을 믿고 전도하는 친구들과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말씨름을 하면서 논쟁했을 때에도 주님은 이미 자기 양으로 아시고 여전히 사랑하셨고 그런 나를 위하여 이미 피 흘려 놓고 죄를 다 용서해놓으시고 돌아오기만 기다려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선한 목자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영원 전부터 시작된 사랑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거나 악한 일을 행하기도 전에, 이미 자기 양으로 예정하신 조건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변함이 없으며, 이 사랑은 우리의 모습에 좌우되지 않는 불멸의 사랑인 것입니다. 마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아무 이유가 없듯이, 주님의 사랑은 영원전부터 예정하신 이유가 없는 사랑, 끝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으로부터 이 사랑을 우리가 믿기 이전부터 아니 영원 전부터 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각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우리 모두 어떤 형편에 처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기 바랍니다.

셋째로, 선한 목자의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16절 말씀 전반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이 말씀의 뒷 부분에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인데”라는 말씀을 원문을 살펴보면 “내가 반드시 인도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원문에 ‘데이’라는 동사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마땅히’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우리 밖의 양들을 인도하여 반드시 구원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유대 나라의 우리의 양들만 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요 우리 밖의 다른 양들도 주님께서 소유하고 있는데, 그들도 역시 반드시 끝까지 인도해서 건져내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이 택한 양들을 구원하시려는 그 계획은 단순히 예수님의 바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 밖의 양들도 구원의 길로 인도하면 좋겠다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자기의 택한 양을 반드시, 필연적으로, 끝까지 건져내어 인도해내고야 말겠다고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한 목자 예수님의 자기 양들에 대한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요 끝까지 싸워 쟁취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0:27,28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친히 이렇게 담대히 선언하시기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한번 택한 자기 양을 어떤 경우에도 잃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것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없습니다. 로마서 8:35 이하에 이 사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감격에 찬 목소리로 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이렇듯 우리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이 끈질긴 열심, 이 포기함 없는 사랑을 베푸시니, 우리는 결코 잃어버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떤 시련과 환란과 역경과 시험도 우리를 결코 주님의 이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기이하고 놀라운 사랑의 포로가 되었으니, 우리는 두려움없이 길 잃어버릴 염려 없이 구원의 감격 가지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이 세상 순례 길을 힘차게 걸어가기 바랍니다.

넷째로, 선한 목자 예수님은 자기 양들을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16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선한 목자 예수님은 여기서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라고 하였습니다. 목자가 자기 양들을 우리에서 이름을 불러 우리 밖으로 인도한 후에 음성을 들려주면서 양들 앞에서 이끌고 가면 양들이 따라오듯이, 선한 목자 예수님께서도 자기의 택한 양들을 인도하실 때 그의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이방 지역 출신의 주의 백성인 양들도 역시 선한 목자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서 그를 따라나서서 천국 길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택한 양들은 유대인 출신의 양무리나 이방인 출신의 양무리나 동일하게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양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목자인 줄 알고 따를 때 그것이 주님의 양인 증거인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깨닫지도 못하고 도리어 분노가 치밀어서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 귀신 들렸다고 반박하곤 하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한복음 8:46,47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당시 그와 논쟁을 벌이던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너희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요한복음 10:26,27 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우리 밖에 있는 주의 양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믿고 따름으로써 주님의 양이라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8:28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서 그곳의 유대인 동족에게 복음을 증거했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자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복음은 곧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전하라고 명하신 복음이요 곧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진리요 부활의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사도들이 증거할 때에 이방인 가운데 택한 백성들은 듣고 믿음으로 반응할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택하신 주의 양들은 선한 목자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면 그들이 그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함으로써 주님의 백성이라는 증거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주의 택하신 양을 찾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주님이 맡기신 주의 말씀, 진리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10:16 말씀에 보면, 주님이 칠십인 전도대를 파송하시면서 이르시기를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맡기신 진리의 복음을 있는 그대로 증거한다면, 그 말씀을 듣는 무리 중에 주님의 택한 양일진대 반드시 때가 되면 그 말씀을 잘 듣고 영접하여 주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주의 택한 양이 아닌 경우에는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싫어하고 거부하고 조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택한 주의 양일진대 처음에는 싫어하고 거부하고 조롱할지라도 나중에는 그 말씀이 그 마음 속에 남아서 그 심령을 점점 파고들어가서 끝내는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야 맙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주의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 명령을 기억합시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믿고 안 믿고는 어떤 의미에서는 전도를 받는 사람의 몫이지만, 복음 전파하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주님의 양일진대 우리를 통하여 들려지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요 주님을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양이 아닐진대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증거되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싫어하고 미워하고 박해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자, 대제사장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시기심이 가득하여 사도들을 체포하여 예루살렘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에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고 함으로, 그들이 명령에 순종하여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성전에 가서 담대하게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어떤 핍박과 시련이 닥쳐도 초대 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생명의 말씀인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주의 택하신 양들을 주님께서 이끌어낸 것처럼, 우리들도 이 시대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간에 주님이 맡기신 이 생명의 말씀을 우리 입술로 뜨겁게 부지런히 전합시다. 그리할 때 분명히 주의 택한 양들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요 주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로, 주님의 양들은 다 한 무리요 다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입니다.

16절 하반절에 보면,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은 결코 자기들과 하나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차별 있는 존재이지 결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다 해도 이방인 출신 신자들은 이등 신자요 비주류요 변방에 있는 신자들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초창기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이방인 성도들을 전도하려는 것을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목자이신 하나님, 선한 목자 우리 구주의 생각은 처음부터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방인들도 차별없이 자기의 초장에서 유대인들과 함께 아무런 차별없이 사랑받으며 지내는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일밤에 이미 이사야서 강해를 하면서 살펴본 대로 이사야 19장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날에 곧 메시야의 날에는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날에는 애굽 땅 중앙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이사야 19:24,25에 이르기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고 하였습니다. 애굽과 앗수르는 타락하고 포악한 세상 나라로 정평이 나 있는 대표적인 나라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이제 메시야의 날, 우리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는 온 세상이 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고 그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은 아무런 구별없이, 차별없이 동일한 자격으로 주님의 양무리에 속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여러 비유로써 구원받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하나가 되고 결코 우열이나 차등이 없다고 강력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13 이하에서 이르기를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에베소서 2:13~22)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보면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은 이제 담장이 허물어져서 한 마당을 쓰는 식구들입니다. 처음에는 둘이었는데 이제 예수님 때문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두 개의 몸이었는데, 이제 한 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방인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외국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유대인 성도들과 동일한 천국의 동료 시민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동일한 식구입니다. 그리고 이방인 성도들은 예수님이 모퉁잇돌이 되어서 하나님이 거하시기 위하여 유대인 성도들과 함께 지어져가는 동일한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한 가지를 여기에 덧붙이고 있으니, 곧 그 동일한 양무리의 목자 역시 오직 한 분 예수님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양무리도 아무런 차별없이 한 무리지만, 그들을 다스리며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 역시 오직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양무리들을 한 목자에게 맡겨주셨으니, 그는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에스겔 34:23 말씀의 예언에 보면,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서 37:22,4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나라에 수많은 목자들을 줘보았지만 그들은 다 실패한 목자요 양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수탈하기도 하는 못된 목자, 삯꾼 목자들뿐이었기에 친히 자기 아들을 그들의 목자로 보내시어 이제 다시는 그들이 고통을 겪지 않고 영원히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평안히 쉬게 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선한 목자, 약속의 목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이 목자가 장차 천국에서 그의 양들을 천국의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영원한 평안과 쉼과 생명을 누리게 해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16,17 말씀에 보면 바로 그러한 모습이 이렇게 목가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다른 목자가 아니라 오직 이 예수님만이 그렇게 해주실 것입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참 목자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이것이 선한 목자 우리 예수님의 양무리가 된 주의 백성들이 누리는 기이하고 놀라운 행복입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께서 우리 밖에 길 잃고 방황하던 이방인 출신인 우리들을 그 마음에 영원 전부터 두시고 자기 양으로 소유하셨다 하십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이미 그러하셨고, 우리가 주님의 원수 노릇할 때도 이미 주님은 자기 양으로 우리를 인치시고 기다리시고 계속하여 우리를 자기 양이 되도록 계속하여 일하시며 인도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맡은 자를 보내시어 우리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셨고, 우리 심령에 교만과 아집과 죄성을 하나씩 벗겨내시며 우리 마음을 두드리고 깨뜨리셨습니다. 마침내 우리 마음을 굴복시키고 자기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주님의 양무리 가운데 들어오게 하사 주님의 백성의 행복과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영원한 목자가 되사 이 땅에서도 우리를 인도하시며 저 예비하신 하나님 나라에 우리가 들어가서 우리 눈물을 씻기시고 뜨거운 폭양을 피하게 하시고 생명수 샘에서 흘러나온 물을 마시며 그의 그늘에서 쉬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다 씻어주실 것입니다. 그의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며, 그의 택하심과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그의 끈질긴 사랑, 그의 다함없는 사랑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향하신 선한 목자의 사랑을 누가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끝까지 우리를 붙들어주실 것이요 지키실 것이요 살리시고 끝내 그의 기이한 사랑을 더 알아가고 그가 예비하신 놀랍도록 풍성한 은혜를 우리로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그의 세미한 음성을 날마다 듣기를 사모하며 날마다 그의 인도하심을 늘 간구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선한 목자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들이 됩시다. 또한 선한 목자 예수님께서 만세 전에 예정하신 또 다른 양들을 찾는 일에 우리도 쓰임받기 위하여 늘 생명의 말씀의 부지런한 전달자들이 됩시다. 주님께서 자기 양무리의 수가 다 차게 될 그 때에는 앞서간 양무리를 데리고 이 지상에 다시금 영광 중에 천사들과 함께 강림하사 온 세상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 날까지 선한 목자 예수님의 음성을 날마다 들으며 오직 그만 가까이 따라가기 힘쓰는 주의 양떼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