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는 도마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
요한복음 20:24~31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성경 말씀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여섯 번째 현현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러 제자 중에 도마를 향하여 말씀하시고자 주님께서 찾아오셨는데, 이 내용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몇 가지의 영적 교훈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도마는 신앙적 교제의 모임에 참석하지 아니함으로 영적인 손해를 받았습니다.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디두모는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도마는 쌍둥이로 출생하였기에 제자들 가운데 이 별명으로 불리웠던 것 같습니다. 도마는 주님이 부활하신 날에 다른 제자들은 다 모여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들었는데, 도마는 다른 곳에 가서 제자들이 다 모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도마의 기질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는 요한복음 11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에게 올라가자고 하자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2~3km밖에 안 떨어진 베다니에 가서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집을 조문하러 간다는 것은 극히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도마는 주님께서 그 위험한 곳에 가신다고 하시니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했습니다. 이는 도마가 비관적인 성격의 사람이지만 주님께 헌신된 사람인 것을 말해줍니다. 매사에 비관적이고 우울질적인 성향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사람이 더 헌신적이고 더 충성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성격 때문에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을 겪으시고 죽으시고 장사지낸 것을 알고 있는 도마는 깊은 우울감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도마는 자기 마음을 추슬리지 못한 나머지 다른 제자들과 도저히 함께 있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신 그 날 저녁부터 은밀하게 예루살렘의 한 성도의 집 아마도 마가의 모친 마리아의 집으로 추정되는 집에서 모여 함께 슬픔을 나누면서 지냈을 것이 분명합니다. 삼일 후 주님이 부활하신 날에도 그렇게 모여 있다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과 시몬 베드로와 엠마오의 두 제자로부터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 듣고 의심 반, 믿음 반으로 설레면서 지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 밤 깊은 시각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 닫힌 문 한 가운데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하신 모습을 다시 한번 직접 보여주시는 것을 경험하고서는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과 갈릴리 여인들이 이처럼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놀라고 행복함과 소망으로 충만해진 가운데 있었으나 도마는 여전히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아니하고 딴 곳에서 방황하며 침울하고 낙심한 상태로 지냈던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계속 모였더라면 그래도 슬픈 마음이 위로를 얻었을 것이요 나아가 주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듣기도 하고 직접 부활하신 주님의 방문을 목격하는 은혜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큰 기쁨과 믿음과 행복이 충만한 시간을 보냈을 것인데,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후 일주일이 넘도록 도마는 여전히 침울함과 낙심과 의심 속에 보내는 영적인 손해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마처럼 행동하지 말고 다른 제자들처럼 성도의 교제를 위하여 모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홀로 있음으로써 주님으로부터 받는 은혜도 있지만 성도들이 함께 있음으로써 받는 은혜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4,25 말씀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도 친히 일러주시기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18:20)
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주님은 개인 기도도 들으시지만 두 세 사람이 함께 합심하여 간구하실 때 더 확실한 기도 응답을 주신다고도 약속하셨습니다(마태복음 18:9). 이렇게 주님은 개인적인 신앙 생활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공동체적인 신앙 생활에 더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시간을 내어서 더 열심히 교회에 모이기를 힘씁시다. 기회를 내어서 더 자주 모이려고 애쓰십시오. 그리하여 믿음의 공동체에 부어주시는 주님의 놀라운 각종 은혜와 축복과 영적인 깨달음과 인도하심의 은혜를 풍성히 받아누리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의심하는 도마에게 주님께서 친히 자신의 부활을 입증해 주셨습니다.
2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이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도마는 삼일 동안 방황하다가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침울한 표정으로 제자들이 모인 그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도마가 그들을 만났을 때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과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과 엠마오의 두 제자들이 도마를 반기면서 기쁨과 설레임이 가득한 얼굴로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에서 ‘이르다, 말하다’는 단어의 원문 동사형이 미완료동사 시제이기 때문에, 이 뜻은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말했다는 뜻입니다. 한두번 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찾아온 도마에게 여기 저기서 계속 주님을 우리가 보았다고, 주님이 부활하셨노라고, 우리 앞에서 생선도 드셨노라고, 이런 말씀도 해주셨노라고, 엠마오 고향으로 가는 길에 주님이 몇 시간이나 동행해주시고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는데, 저녁 식사 하실 때 기도하는 중에 주님이신 것을 알고 눈을 떠보니 주님이 사라지셨노라고 도마에게 계속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그 수많은 간증들을 들었으나 그는 딱 잘라 한 마디 대답을 하며 거절했습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도마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절대로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봐야 믿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증인이 얘기해줘도 자기가 안 보고 자기가 직접 체험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도마의 이런 기질은 요한복음 14:5에서도 나타난 바 있습니다. 주님께서 아버지께 가서 거처를 예비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자, 도마는 불쑥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빌립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은 절대로 아는 체 할 수 없고, 자기가 믿음이 없는데 절대로 믿는 체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손해를 많이 보긴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어느 틈엔가 자기가 보지 않지만 보는 것처럼 믿고 살아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말을 확인하지 않은 채 믿고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차가 많이 밀린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그런가 하고 다른 길로 가기도 하고, 내일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한다면, 그 기상 예보관의 말을 믿고 우산을 챙겨가기도 합니다. 우리의 역사 지식이나 수학적 지식이나 물리학적인 지식들도 이미 학문의 선배들이 정리해놓은 수많은 공리, 원리, 법칙들의 바탕 위에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미 검증되고 정리된 원칙과 공식을 받아들이고 그 바탕 위에 서서 학문적 발전을 도모하곤 하는 자는 수월하게 발전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만약 그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자기가 다 이해하고 자기 기준에 맞어야 믿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발전이 아주 더딜 것입니다. 그래서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느틈엔가 생활 전반에서 믿음의 터 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도마는 다른 사도들과 여인들과 엠마오의 두 제자가 직접 보았고 들었고 만졌고 체험했다 하였으나 절대로 자기가 직접 보고 만질 때까지는 어떤 증거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함으로써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을 완고하게 거절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신앙의 세계 속에서도 도마와 같이 의심이 가득한 사람들이 적지 않이 있어왔습니다. “천국이 어디 있고 지옥이 어디 있어. 내게 보여줘야 나는 믿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녀가 어떻게 남자 없이 아기를 낳을 수 있겠어. 말이 안된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완전히 죽었다가 부활해서 다시는 죽을 수 없는 영광의 몸을 가진 부활체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변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권해도 자기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절대로 믿을 수 없노라고 딱 잘라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얼마나 많은 경우에 자신이 보지 않고 직접 하나 하나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가운데서도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도마와 같은 이러한 완고한 태도를 자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좀 더 깊이 따지고 보면 도마는 게으른 고집쟁이와 같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다섯 번에 걸친 부활의 주님의 증거들이 주어졌습니다. 그 부활하신 주님을 본 사람이 한 둘도 아니고 다양한 환경 속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분명하고 명백하게 나타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들과 전해주신 메시지들이 확실합니다. 그 비어 있는 무덤과 세마포와 수건의 증거도 명백합니다. 열 명이나 있는 사도들이 전부 한꺼번에 부활의 주님을 보았다고 일치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마가 주님의 부활이 여전히 의심스럽다면 그러한 증거들을 하나씩 치밀하고 차분하게 검증해보고 무덤도 찾아가보고 증거를 수집하여 확인해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도마는 그런 노력, 그런 시도를 하나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믿지 않으려고 마음을 굳게 가졌고 모든 증거에 대하여 의심하면서 자기 마음을 꼭 닫아걸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마의 이런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요 비난받아야 하고 책망받아야 할 태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나 완고한 회의주의자, 실증주의자인 도마에게도 주님께서는 친절하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의 믿음의 요구 기준을 맞춰주셨습니다. 26절로부터 27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여드레가 지난 날짜는 첫 번째 부활하신 날부터 일주일이 지난 또 다시 안식후 첫날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그 날에 제자들이 모여 부활의 주님을 경배하도록 처음부터 그렇게 안식 후 첫날을 구별해놓으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도마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곳에 일주일 전 깊은 밤에 찾아오신 때와 동일하게 닫힌 문을 너머 방 한 가운데 서서 평강이 있으라고 인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서 얼어 붙어 있는 도마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이 말씀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은 도마가 며칠 전에 다른 제자들에게 했던 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갈릴리 여인들 앞에서 예수님 손의 못자국을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손가락을 내밀어 주님의 손에 넣어보고, 주님의 옆구리에 자기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자기는 절대로 그 말을 믿지 않겠다고 했던 도마의 말을 주님은 여기서 정확히 다시 언급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 자리에 도마와 함께 계시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 수 없는 말입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하는 모든 말들을 듣고 계시고 알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마태복음 17장에서도 성전세를 받으러 왔을 때에 문밖에서 베드로와 성전세 받으러 온 사람이 한 이야기를 집 안에 계신 주님은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그 말을 알려 드리려고 집에 들어왔을 때에 주님께서 먼저 그 말을 베드로에게 꺼내면서 갈릴리 바닷가에 나가 낚시를 던져 먼저 떠오르는 고기를 가져 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이 나올 것이라면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 자신과 베드로 몫의 성전세를 건네주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말들도 다 듣고 계시고 우리 생각까지도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심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항상 선하고 의롭고 거룩한 생각과 말을 항상 가짐으로써,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언어행실을 보실 때에 항상 사랑스럽고 칭찬할 만하며 복을 베푸실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도마는 자기가 내걸었던 믿음의 엄격한 조건에 대하여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시어서 바로 말씀하시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도마는 주님의 전지하신 그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깜짝 놀라워하면서, 자기가 지금 보고 있는 분이 유령도 아니요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께 다가가 그의 손에 손가락을 넣을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옆구리에 손을 넣을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손과 발에 나타난 뚜렷한 상흔을 자기 눈으로 보자 도마는 그의 모든 의심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주님의 부활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의심많고 영적인 일에 게으르고 둔한 도마 같은 사람일지라도 주님께서는 책망하지 않고 기꺼이 찾아와주시고 그의 기준을 다 맞춰주시면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기를 바라셨던 것처럼, 지금도 주님은 영적으로 게으르고 의심많고 이것 저것 따지면서 믿음을 갖기를 더디하는 이들에게 주님은 여전히 친절하십니다. 우리 기준에 맞춰 주시려고 주님 자신을 낮추고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시고 체험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지라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도마의 주님은 지금도 바로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어찌하든지 우리가 믿음 없는 자가 되지 않고 믿는 자가 되어서 구원받고 생명을 얻기를 누구보다 원하시는 것입니다. 연약한 믿음, 의심하는 믿음, 더디 믿는 믿음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끝까지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시는 우리 주님의 겸손하고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이 사랑을 거부하지 마시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은 다 믿음 없는 자로 남지 말고 어찌하든지 주님의 부활을 확실하게 믿고 다 구원받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도마는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하였습니다.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의심이 많고 반드시 증거가 있어야 믿는 회의주의자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의 분명한 현존 앞에서 깊은 감격과 확신 속에서 주님을 향하여 자기의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 고백은 참으로 유대인으로서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예수님을 자기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자기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고백을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리만큼 엄청난 고백입니다. 그러나 이 고백의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그의 고백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고백이라고 취소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고백이 맞다고 그 고백을 그대로 용납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의 고백처럼 우리 성도들의 주님이시며 동시에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 구주께서 인간의 구원자 그리스도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도들의 고백은 참 많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장 첫 부분부터 이 점을 선포하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한복음 1:1~18)
여기서 ‘말씀’은 헬라어로 ‘호 로고스’로서 예수님을 지칭하는 명칭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명백하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함으로 복음서 기록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9:5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이라고 하심으로, 유대인의 혈통을 따라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받으실 하나님이시라고 송축하고 있습니다.
디도서 2:13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원문을 보면 크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한 개의 정관사로 묶여져 있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크신 하나님이시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5:20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고 할 때의 “그”는 원문으로 보아도 바로 앞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문맥적인 흐름으로 보나, 원문상 위치로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라고 사도는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일컬어 하나님이 자기 피로써 값주고 사셨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피를 흘려 교회를 사셨다는 것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러한 일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고 사도는 분명하고 자연스럽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부활로써 본래적 신성을 확실히 입증해보이셨습니다. 그리하여 회의주의자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서 유대인으로서는 감히 발설할 수 없는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고백을 명백하게 드렸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와 동일하게 육신을 입으심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며 우리의 모든 시험을 담당하실 수 있으셨으며 또한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무서운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는 이 깊은 죄의 구렁텅이, 지옥의 영원한 불에서 결코 구출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완전한 사람이시며 완전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넷째로, 주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의 복됨을 일깨워주셨습니다.
도마는 그의 비관적이고 의심하는 기질 까닭에 부활의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일에 비록 더디었지만, 주님을 만난 직후에는 가장 견고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견고한 믿음에 굳게 선 도마는 이후에 사도로서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있어서 충성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서는 가장 먼 나라였던 인도 남부까지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우울증이 있고 비관적이고 매사에 꼬치꼬치 따지는 실증주의였던 도마는 한번 이렇게 굳게 믿고 난 후에 이처럼 온전히 헌신하여 주님의 귀중한 일꾼으로 끝까지 충성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런 도마를 용납하시고 크게 사용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들도 신앙의 세계에서 비관적이고 우울하고 의심이 많고 따지는 기질을 가진 연약한 믿음의 사람일지라도 주님처럼 너그럽게 용납해주고 기다려주고 격려해주는 격려자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그 때에 도마에게 이렇게 마지막 말씀을 주셨습니다. 2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도마는 주님을 직접 뵈니까 확실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사실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도 주님을 보고서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도들과 갈릴리 여인들처럼 주님의 모든 사역을 직접 보고 들었으나 믿지 아니하고 더 완악해진 유대인들도 많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보고 듣는다고 해서 다 믿음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직접 보고 듣고 손으로 만지지 않았으나 믿음을 가진다면 그것은 더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더 복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도들의 증언을 듣고서 그 전해준 복음을 받아들여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사실을 그대로 믿은 초대교회 이후의 모든 성도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보고 듣고 체험한 바를 기록으로 남긴 이 성경의 말씀을 전해 듣고 그대로 믿고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두고서 주님은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전서 1:8,9 말씀에서 이르기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 예수에 대한 믿음은 꼭 자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에 만져보아야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구원 얻기에 충분할 정도로 기록한 주님의 행적과 가르치신 말씀과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진실한 기록을 전해 듣고 읽고 전도자와 주의 종의 설교를 들음으로써만으로도 얼마든지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0:17 말씀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 사도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어떤 표적을 구하며, 특별한 어떤 기적을 구하며, 도마처럼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절대 믿지 못하고 자기의 기준만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기준에 맞춰줘야만 자기는 믿겠노라고는 사람들이 세상에 즐비합니다. 지옥과 천국을 자기에게 보여주면 믿겠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우리 주님께서 “나는 요나의 표적 외에 아무 표적도 보이지 않겠다”라고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해주신 부자와 죽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도, 음부의 불꽃 속에서 괴로워하는 부자가 간청하기를, 천국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세상에 다시 보내어 자기 형제들에게 전하여 이 괴로운 지옥에 오지 않도록 전해달라고 했을 때, 그 요청을 거절하면서 주님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을지어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모세와 선지자는 성경을 가리킵니다. 주의 종의 가르침을 가리칩니다. 오늘날도 성경의 기록과 주의 종들의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면 아무리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가 있더라도 지옥 천국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을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자주 읽으십시오. 강단에서 전해주는 주의 말씀을 귀기울여 들으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은혜를 달라고 간절하게 구하십시오. 그리할 때 주님께서는 견고한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사도들은 보고 듣고 만져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확실하게 믿었지만, 우리들은 주님이 주시는 믿음의 은혜를 통하여 동일한 확고한 믿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지금 여기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섯째로, 사도는 믿음의 결국은 영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30절과 3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이렇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분명한 목적을 사도 요한은 여기서 분명히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인하여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그 이름을 힘입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이것을 구원을 얻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는 바로 이것을 목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 역시 이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분명한 성경의 구속 역사와 인류의 역사 섭리를 통하여 우리가 믿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다가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시어 다시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읍시다. 이 진리를 믿고 의심치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진리 위에 굳게 서서 요동하지 말고, 우리가 사는 날 동안에 이 복음 진리를 힘써 증거합시다. 그리함으로써 도마처럼 완고한 자들도 마침내 구원의 주님을 만나고 주님 앞에 엎드려서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감격하며 고백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많이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