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술로 취하라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늘 함께 읽은 에베소서 5:18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쓴 옥중 서신의 일부입니다. 사도는 성도들에게 때가 악하니 세월을 아끼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를 위하여 술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봅니다. 술 취하지 말고 대신에 성령의 술로 취하라는 이 대조적인 명령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한 신앙 생활의 지침입니다.
그렇다면 술 취하지 말라는 명령은 과연 성경에서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도대체 술에 취하게 된 경우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술 취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세상 술 대신에 성령의 새 술에 취하면 어떤 은혜가 임할까요? 이러한 내용에 대하여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경에서 술 취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에베소서 5:8 말씀 말고도 성경의 여러 곳에 술 취하지 말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잠언 20장 1절 말씀에 이르기를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잠언 23:20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씀들만 보아도 술 취하는 자들과 어울리는 것은 지혜 없는 행동이요 술을 즐기는 자의 친구로 지내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11 말씀에서는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여기서 사도는 성도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은 당연히 피해야 하지만, 더더욱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술에 취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런 사람과 술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으며, 그렇게 술 취하는 습관을 갖고 있는 신자는 아예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신자가 술 취함의 행동을 하는 것은 음행이나 우상 숭배나 남의 것을 빼앗는 악질적인 행동이나 심한 욕설을 함부로 내뱉는 죄악과 다를 바 없는 악한 행동이라고 사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경은 성도들에게 술 취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술 취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일까요?
잠언 23장 29절 이하에 음주의 위험과 폐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그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잠언 23:29~35)
이 말씀에 보면 많은 해악들이 음주에 뒤따라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재앙과 근심과 분쟁이 찾아올 것이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점점 무감각해지고 헛 것이 보이고 쓸데 없는 말, 구부러진 말이 입에서 나오고 알콜 중독에 걸려 계속하여 아침부터 술을 찾게 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술은 정신적인 면에서 좋지 않습니다. 흔히 술을 마시게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풀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보면 술에 있는 알콜은 그 사람의 신경을 억압하는 기능을 한다고 합니다. 술 속에 섞인 메틸알코올은 음주 후 두통을 일으키며 블랙아웃 ‘필름단절’현상을 일으킨다고 의사들은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는 중추신경계 마비, 자율신경기관을 억압하므로 일시적인 기억활동의 정지, 뇌신경세포사이의 메시지 전달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이 활동하는 것을 중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시면 기억이 아예 하나도 안 나는 필름이 끊기는 기억 공백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문제를 야기할 뿐 아니라 술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다양하고 위험합니다. 구강과 식도와 위장에 자극을 주어 구강 및 식도암 발생률이 높아지고, 또한 위염을 유발하고 악화, 궤양, 출혈을 일으킵니다. 또 췌장에는 염증을 일으켜 췌장염, 췌장암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췌장이 약화되니까 인슐린 분비기능이 감퇴되어 당뇨병이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알코올을 분해, 해독하는 장기인 간이 알코올 때문에 손상을 받아 지방간이 나타납니다. 소주 반병 기준 매일 일주일간만 마셔도 90% 이상에서 급성 알코올성 지방간이 발병한다고 합니다. 만약 치료 없이 계속 음주할 경우에는 간경변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대다수랍니다.
또한 혈관 분야가 급속히 나빠집니다. 심장 질환, 관상동맥질환, 부정맥 등이 생깁니다. 알코올 자체가 심장박동을 불규칙하게 만들고, 상습적인 장기 음주자의 경우에는 고혈압의 발생률이 높아집니다. 술은 호르몬 변화도 일으켜서 여성음주자는 배란 이상, 조기 폐경, 자연유산확률이 증가됩니다. 술은 사람의 면역계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백혈구가 감소하고 항체 생성량이 감소되어 면역력이 떨어지고 신체 건강지수가 계속 떨어집니다. 소량의 음주라도 뇌피질이 억제되고 억압된 감정이 표출되어 수다스러워지거나 반대로 아주 우울해지는 정신 증상이 나타납니다. 과도한 음주나, 장기간 음주는 결국 사고력이 저하되고 기억력의 장애를 일으키게 됩니다. 술에 의한 정신적, 신체적 해악성은 수도 없이 여기서 다 나열할 수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술을 창조하지는 않았습니다. 맛있는 포도를 만들었고 곡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가 꾀를 내어 이렇게 해로운 술을 만들어서 잠시 쾌락을 즐기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하는 것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래서 술은 사람을 망가뜨리고 삶을 파괴하기 위하여 마귀가 즐겨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프랑스 속담에 이르기를,
“악마가 바쁠 때에는 대신 술을 보낸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술은 사람의 몸과 정신과 삶을 파괴하는 악마의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직분자들을 세울 때 반드시 그 사람의 음주에 대한 태도에 대하여 살펴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3 말씀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감독은...)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라고 하였고, 디모데전서 3:8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도서 2장 3절에서도 이르기를
“늙은 여자로는 이와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고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직분자들은 술에 대하여 인박이거나 술 취하거나 술을 좋아하는 자가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고 거듭 경고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 레위기 10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장으로 세움받았던 아론의 큰 아들과 둘째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7일 동안의 거룩한 위임식을 마친 직후에 예배를 집례한 직후에 성소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불에 의하여 급사하는 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급사 이유가 그들이 다른 불을 드린 일로 하나님의 진노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한 배경에는 그 두 사람이 분향하러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포도주나 독주를 마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치신 것임을 말해줍니다. 레위기 10:9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제사장 아론에게 이르기를
“너와 제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며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백성들은 술을 가까이 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자 하는 자는 술을 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술은 사람을 정신적으로 억압하고 정서적으로 들뜨게 하거나 급 우울감에 사로잡히게 하고 육체적으로 모든 질병을 불러들이고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영적으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에 최대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술은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그런데 술은 술 마시는 그 사람뿐 아니라 그의 자손들에게까지 큰 재앙들을 불러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를 먼저 살펴보면 참 많이 나옵니다.
술에 의하여 가장 먼저 문제가 일어난 것은 의인 노아의 집안입니다. 대홍수 때에 방주를 만들어 죽음을 면하고 물이 빠진 후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농사를 잘 짓고 행복하게 지내던 노아네 가정은 술로 인하여 평지풍파가 일어났습니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어 그것을 수확하여 포도주를 담갔는데, 그 포도주를 마시고 취한 나머지 자기의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눕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둘째 아들 함과 함의 아들 가나안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두 형제에게 이 사실을 고하였습니다. 평소 경건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실수를 보고서 함도 실망하고 손자 가나안도 실망했는지, 신나서 떠벌이며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정신없이 벌거벗은 채 대자로 누워 있노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큰 아들 셈과 둘째 야벳은 겉옷을 들고 뒷걸음질을 쳐서 아버지를 덮어주고 아버지 장막을 막았습니다. 노아가 깨고 난 후에 자기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초지종을 자식들에게 묻고 둘째 아들 함과 손자 가나안이 범한 무례함을 듣고는 화가 났습니다. 그리하여 큰 아들 셈과 둘째 야벳은 축복하고, 둘째 아들 함과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였습니다. 그 축복과 저주는 그대로 이루어졌고, 훗날 가나안 족속들은 셈 족속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에 의하여 정복되고 대다수 가나안 족속들은 죽게 되고 그 땅을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함과 가나안이 잘못했지만, 그러나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은 노아의 음주 때문이었습니다. 노아가 술만 마시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이후에 성경의 여러 기록들은 술에 취한 자들이 당하는 재앙들의 기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 바아사의 아들 엘라 왕이 낮에 왕궁대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자고 있는 중에 자기 부하 장군이 그를 쳐 죽였습니다. 또한 느부갓네살의 후손인 벨사살 왕은 저 바사 왕 고레스의 군대가 바벨론 성을 에워싸고 공격하고 있는데 안일하게 자기 신하들과 함께 거대한 술 잔치를 벌이다가 그 날 밤에 성이 함락되고 나라도 망하고 말았습니다. 신약 시대 헤롯 안디바는 자기 생일날에 춤과 술에 취한 나머지 의인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는 이붓 딸 살로메의 청을 못 이긴 체 의인이라 믿고 따르던 세례 요한의 목을 소반에 담아 넘기는 악을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양심의 가책을 통하여 회개의 길을 스스로 끊어내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사에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적인 죽음도 결국은 안기부 안가 내에서 술자리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세상을 뜬 제 초등학교 친구의 죽음도 술 때문이었습니다. 자수성가하여 백 억 대의 사업가가 되었지만 초등친구들 중에서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게 것도 두주불사하던 그의 술 버릇 때문에 몸의 췌장이 못 견뎌서 탈이 나고 끝내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술을 이길 장사는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술을 가까이 하면 그 사람의 인생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큰 손해를 보고 그 자신만이 아니라 자기의 가정과 자녀들의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뉴스에서 세상에서 들려오는 많은 유명인들의 추락과 세간의 비난들이 쏟아지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술자리와 연관된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정치지도자들이 종종 욕을 먹는 이유가 백성들은 산불로 고생 중이고, 고물가로 하루 하루 어려운데, 백성의 지도자가 골프나 치고 조폭 패거리들처럼 한 군데 모여 횟집에서 함께 술을 마셔대는 것이 서민들이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유명인들이 하루 아침에 추락하여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이면에는 술자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노벨 문학상 후보 만년 단골이던 우리나라의 시인 고은도 술자리의 말버릇, 손버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추락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음주는 패가망신과 불행과 슬픔과 후회로 이어지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술 권하는 이 세상에서 유혹이 많은 이 세상에서, 술 취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습니까?
먼저 술 말고 좋은 음식이 많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씀 드립니다. 굳이 몸에도 좋지 않고 정신에도 좋지 않고 영적으로 해가 되고 가정과 자녀들에게도 화가 되는 술을 마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대신 다른 좋은 음식들이 많이 있고 맛있는 음료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술 자리의 친교 말고도 운동 시간을 가짐으로 즐거움을 얻고 친구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 동산은 수많은 맛있는 과실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 맛 있고 영향좋고 건강에 유익한 과실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물들도 많이 있고 그 곁에 자기 짝 하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간교한 뱀과 친구로 지낼 필요가 없었고, 다른 과일들 많이 있는데 굳이 먹지 말라 금하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굳이 뱀을 가까이 오도록 허용하고 그에게 귀를 기울였고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 말을 듣고 다른 과일들은 먹지 않고 그 과일을 따 먹고 자기 남편 아담에게까지 먹이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다 망가지고 다 잃어버리고 모든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날 주신 수많은 좋은 음식, 좋은 음료들은 놔두고 굳이 마귀가 좋아하여 자기 대신 곁에 두어 정신을 마비시키고 감정을 들뜨게 만들고 삶을 파괴시키고 모든 악에 대하여 문을 열어놓게 만드는 술을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술 대신에 다른 좋은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술 친구 말고도 운동 친구, 음악 친구, 문학 친구도 있으니 술 친구는 아예 곁에 두지를 말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여부를 생각해보면 음주에 대하여 바른 판단을 할 것입니다. 로마서 14:6 이하에 이르기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산은 자가 없고 자길들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0:31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술을 마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교회의 덕이 될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안 마시는 것이 영광이 되고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술 마시는 것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또한 술을 마심으로 친구, 이웃, 동료들에게 전도가 되는가 여부를 살펴보면 술을 마실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이 쉬울 것입니다. 종종 세상 친구들을 전도하려고 그들과 함께 술 자리를 할 수밖에 없노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술을 함께 마셔줌으로써 그 친구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도리어 단호하게 신앙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줄 때 그 친구도 믿으려면 술 마시지 않는 단호한 친구를 따라 자기도 예수님을 믿고 술을 끊겠다고 결심하고 예수님께 돌아올 결심을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신자가 술을 함께 마셔줌으로써 교회 나오고 참 신자 되는 경우란 없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술을 마실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음주가 경건 생활에 손해라는 점을 생각하면 술 마실 이유가 없어집니다. 성경은 하나님 백성의 몸은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피로써 값을 주고 사신 성령의 성전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몸에다가 술을 부어댄다면, 담배를 피워 연기가 가득하게 한다면, 마약을 넣는다면, 그것은 성전을 무너뜨리고 성전을 더럽히는 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아론의 두 아들이 포도주를 마시고 성전에 들어가서 집례하다가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죽였지 않습니까? 술을 마신 사람은 차분하게 경건 생활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평소에 잠 자기 전에 성경을 잠시 읽고 기도하고서 잠을 드는 습관을 든 사람이 만약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와서 그 경건 시간을 가진다고 해서 샤워도 하고 정신을 잘 차려서 그 시간을 가진다고 해서 묵상이 잘 될 수 있을까요? 그것 잘 안 됩니다. 정신은 들떠 있고 집중 안됩니다. 기도하려고 눈을 감고 주님의 이름 불러봐도 주님께 진실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는 것은 경건 생활을 지속할 수도 없습니다. 음주하는 것은 신앙 생활에 절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절대로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하는 주의 백성들인데, 음주가 하나님의 영광이 절대로 되지 못하니 술은 결코 마셔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또한 다음 세대에게 어떤 모습이 복이 될까 생각해보면 술을 마시지 않는 금주가 답입니다. 제 기억으로 우리 아버님은 평생에 술을 마셨습니다. 술 마시지 않으면 조용하십니다. 그러나 술을 드시면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그런데 같은 말씀을 자주하십니다. 술에 취해서 들어오신 아버님은 부엌에서 저녁 준비하시는 어머님을 들어오시라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어머님께 가서 아버지가 들어오시래요 라고 대답하면 어머니는 지금 밥하는 중이라고 대답하라고 말씀하시면 와서 어머님이 밥하고 계시다고 안된대요라고 말씀 드리면, 또 제가 누우셔서 어머니 들어오라고 해라고 말씀합니다. 또 가서 부엌 쪽문을 열고 또 말씀드리면 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아버님께 다시 가서 말씀 드리면 아버님은 또 다시 어머니 들어오시라고 해라고 또 내게 말씀합니다. 그렇게 삼십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심부름하는 것이 제 저녁 일과 중에 반복된 일상이었습니다. 그것이 중학교 가기 전까지 몇 년 계속된 제 저녁 루틴(routine)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지는 않았지만, 답답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평소에 말씀이 없으시니 부자 간에 대화도 많지 않았던 것도 아쉽기도 합니다. 나중에 저희 천안 집에 올라오셔서 함께 신앙 생활하시면서 그렇게 좋아하시던 술도 끊고 술로 얻는 당뇨병, 허리 굽은 병들도 고쳐지고 날마다 동네 한바퀴를 오전 오후 도시면서 완전히 건강 찾으시고 믿음 생활 잘하시다가 평안하게 소천하여 천국에 들어가셨으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렇듯 술을 좋아하면 많은 것이 손해가 생깁니다. 자녀에게도, 가정에게도 손해가 생깁니다. 술을 마시지 않고 자녀들과 자상하게 함께 놀아주며 함께 운동도 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부모가 될진대, 그런 모습이 자녀들에게 장래 가정의 모델이 되어줄 것입니다.
예레미야 35장을 보면, 레갑 자손의 오랜 좌우명이 나옵니다. 레갑 족속들은 조상 요나답의 명을 받들어 결코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요나답이 그 자손들을 불러놓고 아예 영원히 포도주는 마시지 말며 포도원도 소유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명령을 받들어 그 후손들이 술은 일체 멀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 후손들을 복을 주시되 북 이스라엘 왕국이 망했을 때에도 보존해주셨고 남 유다가 바벨론에 망할 때에도 지켜주셨고 그 후손들이 하나님 앞에서 섬길 자가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축복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켜주시고 그 후손들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로마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질 그 때까지도 레갑 족속의 기록이 유세비우스 교회사에 기록될 정도였습니다. 순결한 몸과 마음을 지켜가며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던 레갑 족속들을 주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가까이 하나님을 섬기는 귀한 직분을 주시고 그 자손을 복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어떻게 하면 술 취함을 피하고 술을 마시지 않고도 즐겁고 행복하고 인간의 교제의 행복감을 누리면서 지낼 수 있는가 하면 바로 성령의 새 술로 취하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르기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고 하였습니다. 세상 술은 많이 마시고 취할수록 반드시 몸이 망가지고 정신과 정서에 문제가 생기고 병이 생기고 삶에 갖가지 재앙들이 찾아오고 부끄러운 일을 많이 겪게 됩니다. 하지만 거룩한 술인 성령은 많이 마실수록 더욱 기쁨이 있고 평안이 생기고 문제들이 해결되고 복이 임합니다. 오순절날에 성령이 강림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뜨겁게 방언으로 기도할 때에 유대인들이 놀라서 찾아와 말하기를,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
고 조롱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도 베드로가 해명하기를 아침 아홉시이기 때문에 술에 취한 것이 아니고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바 말세에 부어질 성령이 오셔서 이와 같이 뜨겁게 기도하며 마음에 뜨거운 비전이 생기고 예언이 임하고 환상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지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마음이 즐겁습니다.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게 됩니다. 가장 고상하고 긍휼과 사랑이 많고 지혜롭고 우리를 진정 사랑하는 완전한 친구가 자기 곁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영원한 친구임을 알게 되어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에 파묻혀 지내는 것이 그립지 않습니다. 조용한 시간이 되면, 오히려 차분하게 성경을 가까이 읽고 경건 서적을 읽고 기도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 됩니다.
애즈베리 대학에 얼마전에 성령님이 찾아오자 그들이 모두 들떠 있지 않고 떠들썩하여 소란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성전에 자주 모여 기도하며 찬양하며 서로 우애를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내면에 치유와 회복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허물을 깨닫게 하고 자기의 죄를 주님 앞에 털어놓고 회개하게 하며, 다른 이들의 죄도 기꺼이 용서해줄 마음을 갖게 해줍니다. 그리하여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고 모든 이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도 사라지게 해줍니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괴로움이 찾아오거나 외로울 때에, 지칠 때에 술을 의지하며 술 친구를 찾고 술 자리를 마련하고 혼자 술을 마시곤 하는데, 주님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성령 충만의 새 술을 마련해주시어서 하늘의 새 술을 마시어 참된 평안과 사랑과 행복을 누리게 해줍니다. 성령 안에서 내적인 새 힘도 얻게 해줍니다.
우리들은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말씀에서 권면해준 말씀처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이 말씀을 꼭 붙들고 실천에 옮기는 자가 됩시다. 할렐루야!
점점 세상은 자극적이고 불안하고 두렵고 가족이나 공동체가 해체되고 잘못된 사회 분위기가 개인들을 압도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사람들은 무엇인가 도피처를 찾고자 합니다. 인위적인 즐거움을 찾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 모든 불안 요소들을 더 증폭시키는 백해무익한 덫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하여 살펴본 대로 한 방울의 술조차도 도움이 되지 않고 반드시 해가 된다는 점을 기억하고, 일체의 술을 멀리하는 자가 됩시다. 가장 완벽하고 가장 유익하고 가장 내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주고 돕는 친구가 바로 우리 주님이심을 명심합시다. 세상 술 친구는 다 떠나가나 우리 주님은 항상 우리 곁을 영원히 지켜주는 완전한 친구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술을 일체 입에 대지 않고 성경 말씀대로 술은 아예 눈으로 보지도 맙시다. 그 대신에 주님이 보내주신 하늘에서 부어주신 성령의 새 술을 매일 충만히 마십시다.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구하여서 행복하고 평안하고 차분한 내면 세계를 가꾸어가고 다른 이들 곧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까지도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행복한 삶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