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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인간의 고난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히브리서 12:1~2, 2012.3.21.수.

작성자강명호 목사|작성시간12.03.21|조회수599 목록 댓글 0

인간의 고난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히브리서 12:1~2

 

인간은 모두 고난을 피할 수 없다. 인생에는 수많은 고난으로 가득차 있다. 우리의 삶에 질병, 사고, 실직, 빈곤, 사별, 불행한 만남과 갈등, 이별, 의기 소침, 갈등, 마음의 상처, 고독, 불안 등이 있다. 수많은 고난은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그러할 때 사람들은 왜 내게 이런 고난이 다가오느냐고 고통스럽게 울부짖는다. 사람과 하나님께 원망하기도 한다. 분노하기도 한다. 그로 인하여 때로 신앙이 흔들리기도 하고 깊은 침체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떠나기도 한다. 고난의 문제는 이처럼 신앙의 깊은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문제이다.

고난의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여러 의견과 근거를 생각해보자.

1.성경에 따르면 고난은 악으로부터 온다. 어둠의 세력인 사탄으로부터 온다.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여인은 오랫동안 허리를 펴지 못하고 손을 펴지도 못한 채 고생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 고생하는 사도 바울은 그 육신의 고통을 사단의 사자라고 표현하였으니, 고난을 가져다 준 것이 사탄이라고 말하였다. 저 천국에는 더 이상 악이 없고 고난도 없다. 이런 측면이 분명 있다.

2.고난은 종종 죄로부터 온다. 질병, 사망, 저주가 첫 사람 아담의 죄로부터 왔다. 오늘날 수많은 죄가 그 이후 자범죄로부터 온다. 본인의 죄로 인하여 오지만 죄로 가득한 세상의 모든 환경으로부터 온다. 전쟁의 잔인함 때문에 수많은 전쟁 고아가 생긴다. 젊은 미망인에게 깊은 슬픔이 찾아온다. 탐욕 때문에 내전이 일어난 저 아프리카에는 수많은 소년병들이 방황하며 죽어간다. 음주 운전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불구자가 되게 하고 그의 가족들에게까지 깊은 상처를 남긴다.

3.때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도 있다. 예수님 당시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묻기를, “주여 이 사람이 이렇게 된 것이 이 사람의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이 사람의 죄도 아니요 그 부모의 죄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고난은 원인이 있고 그 뜻이 다 있는데,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인간의 고난과의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고난 중에 어떤 은혜를 입을 수 있을까?

첫째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고난 중에 참을성 있는 인내를 갖게 해준다.

죄로 말미암아 받는 고난은 우리가 그 고난을 당연히 참고 견뎌야 한다. 이로 인하여 특별한 칭찬을 받을 수 없다. 자기가 범한 죄를 거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을 행하는데도 고난을 받고 참는다면 어떠할 것인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벧전 2: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히 12:1~3,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그리스도께서 죄가 전혀 없는 자로서 부당하게 십자가의 모진 고난을 당하셨을 때 이를 참으셨다. 그가 무고하고 모진 고난 중에 오래 참으신 것을 본받아 우리도 인내해야 할 것이다. 무고한 중에 참으면 하나님께 아름답게 여기신다.

둘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성숙한 거룩함으로 이끄신다.

히브리서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히 2: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 5:8,9,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되었다고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다. 물론 고난 자체가 온전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난은 신앙과 인격의 성숙과 온전함을 이루는 기회를 준다.

약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인느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라 함이라

고난은 은혜의 수단이다.

시편 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은 죄를 그치게 하는 하나님의 수단이다.

벧전 4:1,2,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인생의 수많은 고난을 만날 때 그 고난 자체가 사람을 성숙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나 그 고난을 선용하는 자는 놀라운 성숙과 거룩함의 온전함과 깊은 인격과 창조적 발전을 이룬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들에게 죄가 없는데도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이유를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의 성숙을 위한 축복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을 통하여 섬기는 것을 가르쳐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을 섬기셨다. 그는 매 맞고 수염을 뽑히고, 얼굴에 손바닥으로 맞았고 등어리가 찢겼고 십자가에 매달려 목마르셨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고통을 겪으셨다. 이 모든 고난의 수고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자기 백성들을 살리고자 함이다. 영혼의 열매를 많이 맺고자 함이다.

요한복음 12:23~2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목적은 고난을 통하여 영혼의 열매를 많이 맺고자 함이다. 고난은 많은 결실을 맺는다. 고난을 통하여 섬기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섬김이 고난이 가득했는데, 그 고난은 영혼의 열매로 이어진다고 고백하고 있다.

엡 3: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골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딤후 2:8~10,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택함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고난없는 섬김도 없고 핍박과 시련 없는 영혼 구원이 없다. 씨는 번식하려면 죽어야 하듯이, 우리의 열매도 우리의 고난을 통하여 맺어져 간다.

넷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궁극적인 영광의 소망을 일깨워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결과는 그의 부활의 영광이었다. 동일하게 그를 믿는 성도들의 면류관도 그의 고난에 동참함이 없이는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신앙 때문에 고난이 다가온다면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낯설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거하는 증거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로마서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고후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려 함이니

그리스도의 신앙 안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인내하라. 나아가 모든 환난 중에 신앙을 가지고 즐거워하라.

롬 5: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삶에 다가오는 모든 시련 속에서 믿음을 견지하라. 신앙적 고난은 반드시 영광스러운 면류관으로 돌아온다.

다섯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 중에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지켜주는 확실한 보루가 된다.

욥의 시련은 극렬하였다. 이에 대하여 욥은 고난을 당하자, 자기 연민에 빠졌고 자기 주장으로 하나님께 맞섰다. 욥의 친구들은 찾아와 그를 고발하며 그의 죄를 인정할 것을 종용했다. 죄 없는 고난은 있을 수 없으니 그의 고난은 죄의 결과라는 것이다. 세 친구와 함께 찾아온 엘리후라는 사람은 욥에게 하나님께서 연단을 위하여 그렇게 고난을 주셨다라고 주장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폭풍 가운데 나타나셔서 당신의 위엄을 드러내시고 하나님과 인간의 무한한 지혜와 영광과 능력의 차이를 말씀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말 것을 명령하셨다. 고난을 겪는 믿음의 사람 욥에게 하나님은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는 누구냐”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이 말씀들 속에서 하나님은 인간 욥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의 불평을 책망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권적인 주권을 드러내셨다.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고난을 허락하셨다면 거기에 대하여 불평하지 말고 잘 견디며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욥은 하나님을 만나 뵙고 회개한다. 욥의 사건에서 까닭없이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신앙으로 임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주셨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에게 그 어떤 고난일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게 해준 사건이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드리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고난이 우리를 압도할지라도 우리가 그 고난의 의미를 다 알 수 없을지 몰라도 결코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올바르심과 합당한 섭리를 끝까지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다가왔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라.

여섯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 중에 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아픔을 보여준다.

내가 고난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라고 울부짖는다. 그토록 고통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조용한 침묵과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우슈비치 현장에서 사람이 죽어갈 때 유대인들은 그러한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우리들 역시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나의 고난을 돌아보지 않으시고 나의 한숨과 눈물과 기도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는가 낙심하고 분노하고 괴로워할 수 있다.

과연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에 대하여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시고 멀리 서서 냉정하게 바라만 보시고 계신 하나님이신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와 함께 고난을 당하신 하나님을 보여준다. 우리의 죄와 저주와 질병과 죽음과 모든 고난에 직접 동참하시며 신음하시며 견디시며 피 흘리시며 저주를 담당하시며 죽음까지 당하시는 고통 중에 계신 하나님을 보여주신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고난에 대하여 얼마나 깊은 감정과 아픔과 격동하심을 갖고 계신가를 여러 차례 보여주지 아니하는가?

“홍수 전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다. 마음에 근심하셨다.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하였다.” 이런 표현이 많다.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 중에 계신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고통이다. 지금도 세상에 가득찬 모든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이 보이나, 하나님은 그러한 고난 가운데 함께 계신다. 저 북한에도 함께 계신다. 저 중국의 탈북자들의 긴 도망 행렬 가운데도 함께 계신다. 여러분이 고난 가운데 계실 때에 하나님은 깊은 동정과 사랑 가운데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

괴로울 때 외로울 때 고난 중에 힘겨울 때 골고다의 십자가를 바라보라. 주님께서 함께 아파하시고 동정하심을 굳게 믿으라.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 중에 인내하는 본보기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이 성숙함에 이르게 하는 길임을 제시해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섬기는 고난이 열매를 맺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 뒤의 영광의 소망이 있음을 확신케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 중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결코 놓치 아니하심을 일깨워준다.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 중에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함께 아파하시면서 고난에 동참하심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있을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라. 주님의 위대한 격려와 치유와 소망과 사랑이 너끈히 우리로 하여금 고난을 이겨내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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