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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교훈의 목적, 디모데전서 1:1~7

작성자강명호 목사|작성시간26.06.11|조회수22 목록 댓글 0

교훈의 목적

디모데전서 1:1~7

 

오늘부터 수요 예배에 함께 살펴볼 성경은 디모데전서입니다. 디모데전서는 사도 바울이 그의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써 보낸 편지입니다. 개인에게 써 보낸 편지이므로, 어떻게 보면 사적인 편지로서 빌레몬서와 같은 사적인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디모데가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서 교회를 돌보는 사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개인적인 친분에 근거한 사사로운 편지를 쓴 것이 아니요 교회를 가르치고 바르게 지도하는 목회 지침을 담고 있는 공적인 교훈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 그리고 디도서를 일컬어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즉 교회의 목회의 지침을 자세히 담아 기록함으로써 초대 교회와 후대의 모든 교회에게 교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세워져가야 하는가에 반드시 근거를 제시하는 귀중한 문서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디모데에게 써 보내는 시기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2년 동안 갇혀 있다가 석방된 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가 로마에 약 주후 60년에 갇히게 되었으니, 2년 후인 주후 62년부터 다시 갇히게 되는 64년 경 중간 어느 때쯤이라 할 것입니다. 64년 에 네로는 로마 시내에 불을 지르고 그 비난을 받자 기독교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려 그들을 체포하여 잔인하게 죽이며 박해했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도 체포되어 다시 로마의 감옥에 이차로 투옥됩니다.

그래서 약 2년 정도 사도 바울이 1차 감옥에서 풀려나와 지중해 크레타나 튀르키예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나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야 지방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신앙을 격려하고 지도하였으리라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이 쓴 편지들이 바로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디모데전서를 디모데에게 써 보낸 신앙적인 시대적 배경은 3절과 4절에 그 배경이 나오고 있습니다. 3절과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여기서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소아시아의 중심 교회인 에베소에 함께 일정 기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곳에서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들 곧 그 교회 안에 일부 특정한 사람들이 다른 교훈을 가르치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근간을 허는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사도가 가보니,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다른 교훈 곧 사도적 교훈과 질적으로 다른 이상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신화, 족보들에 몰두하면서 그러한 것을 잘 알고 그런 분야에서 해박해야 영성이 깊은 사람인 줄 아는 이상판 풍조가 교회 안에 퍼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나중에 사도 바울은 편지 속에 실명을 밝힙니다. 20절에 보면,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그러한 거짓교사들 중에 일부일 것입니다. 그들의 특징에 대하여 디모데전서 1:19 말씀에서 이르기를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양심이 화인 맞았고 믿음의 깨어져 버린 상태였습니다. 이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4 이하의 말씀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그들은 매일 교회에서 사람들과 말로써 시끄럽게 언쟁을 일삼았습니다. 행실은 부패했습니다. 양심이 화인 맞으니까 경건의 지식을 말로만 이해하였고 그것들을 악용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사람들에 대하여 디모데후서에서도 계속하여 사도가 증언하는데, 그들은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2:16 이하의 말씀에 보면 이르기를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는 후메내오와 빌레도도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디모데후서 2:16~18)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5 이하의 말씀에서는 이러한 말씀도 나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게 돌아서라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난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디모데후서 3:5~9)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통하여 세워졌던 에베소 교회가 약 8~10년 지난 후에는 놀랍게도 이렇게 교회 내부에 거짓 교사들이 적지 않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들은 첫 사랑의 감격 시대가 사실 엊그제 같은데도 큰 교회가 되고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이고 사도는 감옥에 가서 몇 년 동안 에베소 교회에 오지 않는 공백기를 지내니까 그러한 공백기를 틈타서 자기 세력을 퍼뜨릴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견고하고 끈질기게 사도 바울과 맞서 자기의 영적 권위를 높이며 자기들을 추종하는 세력을 끌어모으려고 힘을 모았습니다. 이를 위하여 악성 교리를 퍼뜨리며 거짓과 술수로 사도 바울과 그 동역자들을 비방하면서 끈질기게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자 하여 에베소교회가 술렁술렁하고 사람들의 순수한 믿음이 오염되어가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후 62년 내지 63년 경에 석방된 사도 바울이 동료 사역자들인 디모데나 두기고나 여러 사역자들과 함께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를 경유하고 에베소 교회에 도착하여 그 교회에 머물면서 살펴보니까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그가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는 이전에 성령께서 그에게 미리 보여주셨던 일이 마침내 이루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주전 57년경에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에게해 해안 항구 도시 밀레도까지 불러내어서 그들에게 마음을 담아 고별 부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고별부탁이 사도행전 20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고별의 설교 말씀에는 이런 경고가 담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 하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년 동안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밑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사도행전 20:28~32)

사도는 여기서 이미 앞으로 에베소 교회에 외부에서 사나운 이리 곧 외부에서 거짓 교사, 양의 탈을 쓴 이리가 찾아올 것과 에베소 장로들 중에서도 성도들을 끌어서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이비한 자들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충분히 그들에게 미리 말씀하여서 사도 바울의 당부와 경고를 항상 기억하고 자신을 쳐서 복종하며 주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노력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일부는 결국은 사도의 경고한 바대로 어긋나 딴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사도가 걱정한 바가 그대로 이루어지고 만 것입니다.

이들은 오늘 본문 말씀 디모데전서 1:4 말씀대로 신화와 끝없는 족보를 만들어 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이야기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유대인들의 오랜 전통입니다. 그들의 그 오랜 전통의 결과가 때로 탈무드와 같은 그들의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창세기를 가지고 성경 외에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였으니, 외경으로 취급되는 희년서가 그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신화와 족보 이야기들은 결국은 변론만 일으킵니다. 4절 후반절에 변론이라는 단어 에그제테시스는 끝없이 없는 질문투성이의 쓸데없는 이야기를 가리킵니다. 아무 유익도 없는 의문투성이의 말씨름입니다. 결국 교회당에 모여 이들 거짓 교사들 때문에 성도들은 혼란과 말다툼만 커지고 불확실성만 커졌던 것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라고 사도는 밝힙니다. 4절 후반절에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말에서 경륜이라는 헬라어 오이코노미아라는 단어는 경영, , 계획, 직분, 청지기직이라는 의미를 담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 하나님의 사역의 작정하신 뜻이 바로 경륜인 것입니다. 이러한 신화와 족보 이야기를 가지고 교회에서 무턱대고 파면서 서로 말다툼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이루신 구원 사역을 이루신 그 영광스럽고 복스러운 복음을 오히려 가리워 버리고 말곤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구원 경륜에 방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교회의 교사가 힘써야 하며,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열심을 내어 몰두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는 5절에 나오는 바입니다.

5절로부터 7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기독교 신앙과 진리를 배움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입니다. 사랑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신앙의 최종 결실이요 증거가 사랑입니다. 사랑이 참 신앙의 시험지입니다. 얼마나 사랑하는가, 얼마만큼 사랑할 수 있는가, 그것이 우리 신앙의 깊이요 신앙의 강도요 순도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6 말씀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5:14,15 말씀에서도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마음, 사랑의 실천, 사랑의 수고가 없는 믿음은 헛것입니다. 아무리 말을 화려하게 기독교적 교리를 증거한다 할지라도 그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형제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 원수에 대한 긍휼이 없다면, 그의 믿음은 거짓입니다.

물론 그 사랑이 정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래서 지금 사도는 그 에베소 교회에서 율법의 선생 된 자들이 헛된 말에 빠져 말을 많이 하지만 그것은 무지한 말이요 무슨 말하는지도 모르고 있노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에베소 교회가 말 잘하는 말꾼 지도자들 때문에 지금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거짓 교사들은 양심도 화인맞고 믿음도 깨어졌습니다. 사도의 권위도 무시합니다. 주님이 아니라 자기 세력을 키우려 합니다. 돈에 눈이 멀고 정욕에 눈멀어버렸습니다. 그들은 한 가지만 잘합니다. 말만 잘합니다. 율법의 선생이 되어 남 위에 군림하려 듭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개척할 때에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신앙으로 그 교회가 진리 위에 서서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십여년이 지난 지금 그 교회 내부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를 지키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영혼이 거듭나서 믿음을 유지하는 것은 더 중요하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에베소 교회를 경계의 본보기로 삼아 우리 함께가는교회를 잘 세워가도록 합시다.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진실한 사랑으로 충만한 참 신앙으로 온 성도가 세워지도록 합시다. 영적으로 깨어 분별하여 거짓 교사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세월이 지날수록 온 성도들이 더욱 아름답고 순결하고 강한 신앙으로 무장하여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영혼들을 지키고 많은 영혼들을 건져내는 지극히 복된 교회로 함께 세워갑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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