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뜻이면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야고보서 4:13~16
요절:“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야고보서 4:15)
찬송가 401장(주의 곁에 있을 때)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는 하나님 없이 인간적인 경험과 합리적인 계산만을 통하여 미래의 자기 일을 계획하고 그 일을 추진하는 불신앙적인 사람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장거리를 여행하면서 장사하는 장삿꾼의 경우를 13절 말씀에서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고 하는 장삿꾼이 나옵니다. 그들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장차 일년 간 장사하여 많은 이윤을 얻게 될 것을 예상하고 그 일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야고보 선생은 그들이 섣부르고 교만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인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우리의 생명은 유한하고 허약하기 그지 없는 연약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이 그러한 뜻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인간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도 못하고 주관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있게 미래의 일을 계획하고 추진해나가곤 합니다. 삶은 수많은 불확실성이 있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참으로 연약하여 갑자기 치명적인 병에 걸리기도 하고 가정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혀 예상하지 않은 일들이 발생하여 꼼짝 못하게 그 일에 묶여버리기도 합니다. 갑작스러운 재난들이 우리의 삶 속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진, 화재, 수해, 경기 침체, 이자율 급등, 집값 폭등이나 집값 폭락, 교통사고, 질병 등의 문제들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지만 그런 일들이 우리 삶에 갑자기 다가올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한 일들이 발생하면 우리가 그런 일들을 다 완전히 통제하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미래는 우리의 통제 아래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미래의 삶은 하나님의 통제 아래 놓여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요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장래 일들을 다 알고 계시고 그 장래의 시간 속에서 일어날 일들도 하나님께서 친히 일들을 일어나게도 하시고 잠잠하게도 하십니다. 일의 순서도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착착 시간차별로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인간은 그러한 미래의 일들을 알지도 못하고 일어날 일들을 통제하거나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들도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지만,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지만 그 계획대로 우리 삶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적이 거의 없음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혜자 솔로몬이 그의 잠언에서 이렇게 말씀한 것은 우리가 충분히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잠언 16:9 말씀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잠언 19:21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자기의 미래에 대하여 계획을 세우고 치밀하게 준비한다 해도 그대로 이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전혀 엉뚱한 데로 우리 발걸음이 나아가게 되고, 우리가 준비하던 일들이 전혀 예상하지 아니한 일들을 처리하는 데로 우리의 재물이나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나 시간 에너지가 다 소비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언제나 기도할 때나 생각할 때나 미래를 계획할 때에 우리 자신의 한계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미래가 우리 자신의 지성과 경험과 직관으로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에 의하여 완전히 좌우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허약한 갈대와 같고 우리의 판단력이 얼마나 부정확하고 우리의 지상의 삶이 얼마나 순식간에 지나게 되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돈이 있으면 집도 낡아지면 새 것으로 다 바꿀 수 있습니다. 화장실 변기도 바꾸고 바닥도 바꾸고 냉장고도 바꾸고 조명시설도 바꾸고 텔레비전도 큰 것으로 바꾸고 차도 멋지고 소음도 없고 연비도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몸은 아무리 약한 관절도 바꾸고 얼굴도 성형을 하기도 하여도 결국 눈도 어두워지고 귀도 잘 안들려지고 근육도 점점 빠지게 되고 주름살이 이마와 목에 늘어나게 되고 활동력이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은 바꾼다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 육체의 장막 집이 낡고 누렇게 뜨고 여기 저기 구멍이 나고 때가 되면 폭삭 무너질 날이 머잖아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생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 지혜로운 결정입니다.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전능하시고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모든 미래를 다 주관하시고 그 뜻대로 운행하시는 대주재자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다윗이 그의 시편에서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시편 31:15)
라고 고백한 대로, 우리 운명과 미래를 주님의 손에 전적으로 놓여져 있음을 깨닫고 겸손과 순종과 감사함으로 우리의 미래를 주님께 맡겨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주의 형제 야고보 선생이 제안한 대로 자주 이 말씀을 합시다.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주의 뜻이면 이렇게 저렇게 하리라”는 생각과 말을 항상 하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야고보 선생이 한 말을 실제로 자주 구사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8:21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잠깐 들렀던 에베소 회당에서 그곳의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작별할 때 이른 말이 이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그 후 사도 바울은 배를 타고 가이사랴에 도착한 후에 안디옥 모교회에 도착한 후에 다시 삼차 전도 여행을 떠난 후에 그곳 에베소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삼년을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을 가르침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뜻이면 돌아오리라는 말이 실현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가 에베소에 돌아와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주님의 뜻이었음이 입증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중에 바다 건너 있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쓴 편지의 말미에서 다시 한번 이 문구를 사용하는데, 만약 그가 고린도교회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상당 기간을 머물다가 가려고 한다는 희망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고린도전서 16:7)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이 문구는 사도가 자기의 미래의 일정에 대하여 항상 마음에 두었고 입술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윗과 같이, 사도 바울과 같이, 야고보 선생의 권면과 같이 살아갑시다. “만일 주의 뜻이면 이것 저것을 하리라, 만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앞으로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리라” 하고 생각과 말을 하면서 우리 삶 전체를 주님의 뜻 안에서 맡기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복된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