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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단상

자기의 죽음, 룻기 1:15~18

작성자강명호 목사|작성시간26.06.09|조회수25 목록 댓글 0

자기의 죽음

룻기 1:15~18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룻기 1:16,17)

찬송가 288(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우리는 룻기가 매우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로 이해합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에 대한 헌신과 베들레헴 들판에서 보리 이삭을 줍는 장면과 보아스가 그녀를 위하여 베푸는 친절과 배려의 모습, 타작마당의 룻의 청혼과 보아스가 룻을 위하여 기꺼이 기업을 무르는 일을 서둘러 행하는 일들, 그리고 아이를 낳게 되어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 아이를 품에 안고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마음 따뜻해지고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한편의 아름다운 단편 소설을 읽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룻기를 이렇게 마음이 흐뭇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만든 이면에는 이제 막 20살이나 될까 말까한 한 소녀의 자기를 죽이는 가슴 먹먹한 결단이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고향 땅 이스라엘의 베들레헴 동네로 돌아갈 때에 도중에 두 명의 며느리에게 자기를 따라오지 말고 그들의 고국과 고향과 친정 부모님과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 돌아가라고 강권하였습니다. 그 때에 시어머니의 강권을 받고서 동서 오르바는 울면서 어머니와 이별의 입맞춤을 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룻은 이미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출발하면서 굳게 결심한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는 이제 시어머니 나오미와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각오였습니다. 자기는 남편 한 사람을 잃었지만, 시어머니 나오미는 자기 남편과 목숨같이 사랑하는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그 어머니의 남은 생애는 마치 이미 죽어버린 삶을 사는 것과 같음을 룻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룻은 살아갈 날이 많지만 자기는 젊고 어머니는 나이가 들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남편도, 두 아들도 없고, 살아갈 재산도 없고 오직 며느리들과의 인연뿐인데, 이제 자기들마저 떠나면 어머니는 아무런 낙이 없다는 것을 룻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룻은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자기의 남은 생애는 시어머니를 위하여 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자기의 꿈, 미래, 자기의 친정 부모님, 자기의 친구, 자기의 조국 모든 것을 다 내려놓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저 죽어가고 있는 시어머니, 아니 이미 거의 죽은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진 시어머니의 생명을 지키고 함께 기대어 살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자기의 생애가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룻은 결단한 것입니다.

그렇게 깊게 깊게 생각하고 룻은 자기를 완전히 포기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자기 대신에 어머니가 살고, 자기의 꿈을 포기하는 대신에 어머니의 남은 생애를 소망을 주고, 자기의 친정 부모님과 친구와 고국 모압 대신에 어머니의 고향, 어머니의 친척,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의 신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의 것으로 삼기로 각오하였습니다. 룻은 자기를 완전히 죽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베들레헴으로 가는 도중에 어머니의 강권함을 받아 동서 나오미가 어머니와 작별의 입맞춤을 하고 떠났으나 룻은 그 곁에 남았습니다. 나오미가 룻에게도 다시 강권합니다.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그러나 룻은 이미 굳게 마음에 결심하고 다짐한 대로 어머니 나오미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룻의 이 단고하고 결연한 고백 속에 룻은 확실히 자기를 죽였음을 보여줍니다. 이 죽음의 결단이 있었기에 룻은 낯설고 말도 잘 통하지 베들레헴에 시어머니를 따라 홀로 왔고 어머니를 먹여 살리려고 홀로 들판에 이삭을 주우러 나왔습니다. 어머니가 그에게 딴 데 가지 말고 오직 보아스의 밭에만 가서 이삭을 주우라는 말에 군말없이 순종하였고, 보리 추수와 밀추수 곧 사월 말부터 6월 초까지 5주간 정도 한결같이 이삭을 주워 어머니를 공궤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추수가 끝나갈 지음에 시어머니가 보아스가 가족을 다시 회복시키는 가까운 친척으로서 기업을 무를 권리가 있으니, 보아스에게 청혼하라고 말했을 때에 다른 말 없이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룻기 3:5)

라고 말하고 그대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당시 보아스의 나이가 적어도 40살이 넘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룻을 내 딸아라고 두 번이나 부른 호칭을 생각해보면, 나이 차이도 20살이 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오직 어머니 한분만을 위하여 자기를 이미 죽인 룻으로서는 어머니가 생각하는 모든 것, 어머니가 자기를 위하여 말씀하신 모든 것을 순종하여 어머니를 기쁘게 하고 가문을 살리는 것만 생각하고 족하게 여겼기에, 그러한 결정을 기쁘게 받아들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룻이 자기를 죽이고 시어머니와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로 작정한 결과는 어떠할까요? 그 결과 그녀는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었고, 우리 구주 예수님의 거룩한 족보에 그녀의 복된 이름이 기록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 구주께서도 그의 제자들에게도 자기를 따라오기 위해서 바로 이처럼 자기를 죽이는 자기 죽음이 필수적이라고 가르치신 바 있습니다. 마태복음 16:24,25 말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복음 16:24,25)

사도 바울이 왜 그렇게 주님께 귀하게 마음껏 크게 쓰임받았는가도 철저한 항복,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자기 죽음의 결단과 깊이 관련이 있다 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자기에 대하여 죽은 자를 하나님은 쓰십니다. 20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수많은 병자들을 성령으로 치유한 캐더린 쿨만 목사님은 성령의 인격성을 깊이 인식하고 성령과 깊이 연합하여 사역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성령께 깊이 붙들려 쓰임받았는가에 대한 비결에 대하여 종종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내게 대하여 완전히 죽은 날이 있었습니다. 그 날, 그 장소를 지금도 뚜렷이 기억합니다. 그 날 그 장소에서 나는 이전의 캐더린 쿨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주님께 완전한 항복을 했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주님께 완전히 항복한 때가 있었습니까? 자기에 대한 완전한 죽음을 죽은 순간이 있습니까? 자기에 대하여 완전히 죽음을 경험한 자만이 주님께서 완전한 그의 주인이 되시고, 성령께서 그를 자유롭게 그를 인도하시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삶에 있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생애 속에 결정적인 자기의 죽음과 계속적인 전적 항복의 결단이 있음으로써 주님의 영께서 우리를 계속적으로 붙들어 쓰시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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