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의 생명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12: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찬송가 79장(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이 항의했을 때에 그들에게 반대 논증을 펴기 위하여 말씀하신 내용이 오늘 우리가 읽은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렇듯 가축 한 마리의 생명도 소중하기에 엄격하기 그지 없을 만큼 빡빡한 안식일 지침을 지키라 명하는 바리새인들조차 양을 구덩이에서 건져내도록 했거늘, 안식일이라고 해서 어찌 양보다 훨씬 더 귀한 사람의 생명, 사람의 건강을 내버려둘 수 있겠느냐고 반박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만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양을 예로 들으셨는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그 생명을 살리고 지키시는 뜻을 자주 말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시내산 언약 때에 제 4계명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에서도 그 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애굽기 20:8~10)
여기에 안식일에 일을 쉬고 안식을 누릴 대상으로 사람만이 아니라 가축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나 말이나 노새도 안식일에 더 이상 밭 갈거나 짐을 나르지 않고 쉬면서 충분히 여물을 먹고 채찍질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하루 동안은 스트레스 받지 않고 뭉친 근육도 풀면서 쉴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짐 나르는 짐승의 그 고투와 헐떡거림과 신음 소리조차 듣고 마음 아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한 숨 돌리고 여물을 먹고 마굿간에서 실컷 하루는 뒹글거리게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하신 여러 규례들 속에는 짐승과 가축을 위한 배려가 담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명기 22:4 말씀에 이르기를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형제를 돕는 의도도 있지만 길에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나귀와 소를 불쌍히 여기시어 이 말씀을 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신명기 22:6,7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길을 가다가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의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보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되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새에게도 종족 보존의 본능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사람이 만약 어미 새와 새끼를 함께 잡아버리면 그 세대가 끊어지기에 이는 잔인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낱 날짐승일지라도 그 새끼를 길러 자라게 하는 어미와 아비 짐승의 마음을 기억하여 알이나 새끼만 취하는 것이 복이 있고 장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규정도 있습니다. 신명기 22:10 말씀에 보면 이르기를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라고 하였습니다. 소와 나귀는 체형이 다릅니다. 그 두 짐승을 한 겨리에 메어서 밭을 갈게 하면 서로 무게 중심이 다르기 때문에 맞지 아니하여 서로 고통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매우 잔인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짐승일지라도 불편함이 있고 괴로움이 있는데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잔인한 것이 되기에, 하나님은 법으로 그런 일을 막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니느웨 도성의 죄악이 가득찼을 때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자 할 때에도 선지자 요나를 보내어 먼저 회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는데, 그렇게 하나님께서 심판 전에 인내하시고 요나를 보내 경고하여 회개하도록 한 이유가 그 성읍에 좌우를 분간 못하는 아이들도 많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성에 가축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나님께서 불평하는 요나에게 대답해주셨습니다. 그 성에는 성을 건설하기 위하여 끌어온 수많은 말, 소, 노새, 낙타 등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축들의 생명까지 불쌍하셨기에 그렇게 요나의 등을 떠밀어 심판의 경고의 나팔을 불게 하여 회개하여 화를 면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 율법에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전쟁 중에도 전쟁 도구를 위하여 나무를 잘라 사용해도 좋지만 과일수는 자르지 말라고 금하셨습니다. 시편에서는 하나님께서는 배고파 우는 까마귀 새끼를 위하여서도 귀를 그 소리를 들으시고 먹을 것을 그 어미가 찾아 갖다 주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게 하실 만큼 미물의 생명에 깊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가축이나 새나 나무의 생명과 그 복지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갖고 보살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실진대, 하물며 그의 자녀 된 우리들의 생명과 건강과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관심과 애정과 수고를 갖고 계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그렇게 미물까지 사랑하여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믿고서 우리 모두 날마다 담대함과 평안을 누립시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의 이 넓은 사랑과 배려와 헌신을 본받아 더 넓고 깊은 사랑을 실천합시다. 작은 생명들, 꺼져가는 등불과 상한 갈대 같은 생명들을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아 돌아보아 주는 사람이 됩시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 생명을 지켜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