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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단상

비둘기 성령님과의 동행, 아가 5:2~8

작성자강명호 목사|작성시간26.06.17|조회수20 목록 댓글 0

비둘기 성령님과의 동행

아가 5:2~8

찬송가 191(내가 매일 기쁘게)

 

오늘 본문 말씀은 아가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아가는 솔로몬 왕과 그가 사랑하는 술람미 처녀과의 사랑의 교제를 근간으로 삼아서 주님과 성도들의 사랑의 교제를 노래한 악극이나 작은 오페라와 같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노래와 고백들은 솔로몬과 여인과 예루살렘의 여인들로 구성된 파트가 서로 교차하면서 대답하고 남자와 여자 그리고 합창대가 교차적으로 노래하고 말로 대사를 읊조리는 것입니다.

그 중에 오늘 우리가 읽은 대목은 술람미 처녀가 솔로몬 왕의 갑작스러운 한밤중 방문을 받고서 그의 방문을 알았으나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뒤늦게 문을 열었을 때에 이미 그 남자는 문앞에 없고 사라진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인은 뒤늦게 마음이 조급하고 애가 타서 시내에 나가 열렬히 사랑하는 남자의 자취를 찾으려 했으나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순찰자들을 만나 순찰자들에게 몰매를 맞고 옷도 빼앗기는 수난을 겪습니다.

이 아가에서 그 솔로몬 왕이 우리 구주 예수님을 대변하는 것이요 예수님의 영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술람미 여인은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으로 대변되는 교회와 성도가 구원받은 후에 갑작스러운 주님의 방문 곧 성령의 임재와 교제의 부르심을 접했을 때에, 여인 곧 주의 성도가 피곤하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인하여 영적으로 둔감해져서 주님과의 은밀하고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갖는 것을 미루고 게으름을 필 때에 성령의 감동과 감화는 사라져버림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뒤늦게 성령의 감동과 감화를 사모하여 열렬히 사모한다 해도, 잠시 떠나간 성령의 임재는 그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그가 정한 때에 다시 찾아오시는 것이요 우리의 바람대로 되지만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은 참 민감한 분입니다. 성령님은 어떤 의미에서 상처받기 쉬운 존재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님을 힘입어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행하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 각성을 하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적잖은 바리새인들은 더 악해져서 예수님의 영적 사역을 보면서 예수님이 귀신들렸다”,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라고 비방하였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셨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그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10 이하의 말씀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고 이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대한 모독은 사람이 회개하면 얼마든지 자기가 용서해주실 의향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모독하면서 귀신의 능력이라고 험담하는 것, 악담하는 것은 사함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성령님께서 민감하신 성격을 가지신 영이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인 아가 5장 말씀에서 술람미 여인이 게으르고 안일하게 신랑 되시는 분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마뜩지 않게 여기고 반기지 않음으로써 그의 방문으로 인하여 얻게 될 신랑과의 깊은 교제는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신랑이 떠나감으로 곧 성령의 감동이 사라짐으로써 그녀의 내면에 감정의 근심, 기쁨의 고갈, 영적인 공허로 인한 갈급한 등 많은 영적 손해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기록된 성령님에 대한 비유 중 하나가 비둘기입니다. 마태복음 3:16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일어나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께 내려 임하신 것을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영안이 열려 보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비둘기처럼 순결합니다. 그래서 부정한 것을 싫어합니다. 노아 방주 후에 노아는 까마귀를 먼저 방주 밖으로 내놓았는데 까마귀가 물 위에 떠 있는 죽은 짐승과 사람들의 시체를 파 먹으면서 지내는 것이 좋으니까 다시 방주로 안 돌아옵니다. 그러나 노아가 비둘기를 보내었더니 비둘기는 발을 델 곳이 없음을 봅니다. 방주 밖 사방이 여전히 진창이요 썩은 냄새 나는 죽은 동물의 사체들 뿐입니다. 그러니까 비둘기는 발을 디딜 곳을 못 찾고 교회를 상징하는 노아의 방주로 돌아와 내민 노아의 손에서 안식합니다. 비둘기 성령님을 모신 성도는 이처럼 세상에 나가 지낼 때에 내면의 평화를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더러움, 세상의 뾰족함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마음이 지치고 힘이 듭니다. 고단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교회 방주에 와서 자기들을 돌보는 노아 곧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구주 예수님 손에 앉아 그 품에 안겨서 비로소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비둘기는 조심성이 엄청 있습니다. 겁이 많습니다. 조그마한 소리만 크게 들려도 깜짝 놀라 후두둑 달아납니다. 곁에 까치라도 얼씬거리면 의식하며 조심합니다. 우리 교회 건물 삼층 옥상 입구 자리에서 제가 책을 읽곤 합니다. 여름이면 거기가 시원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제가 책을 읽고 있으면 비둘기 2마리가 저를 찾아오곤 합니다. 작년부터 그렇게 찾아와서 제가 모이를 주었더니 제가 삼층에 올라와서 책상에 앉아 있으면 무조건 찾아와 제가 쪼르르 다가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가 손을 내밀면 슬쩍 도망가곤 합니다. 비둘기는 부끄러움도 많고 조심성이 많아서 쉽게 마음을 안 줍니다.

그래서 비둘기 성령님은 구원받은 성도의 몸을 성전 삼고 거하시고 주님 나라 들어갈 때까지도 떠나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함께하시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내면의 타락의 본성과 세상의 유혹과 세속성과 마귀의 압박으로 인하여 우리 마음이 흔들리고 지저분해지고 근심과 미움과 같이 거칠어지고 누군가에 대한 미움의 깨진 유리 조각 등으로 마음이 뾰족뾰족해짐으로 인하여 비둘기 성령님이 거하기가 힘이 들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몸과 마음의 성전에 비둘기 성령께서 놀라거나 상처를 받거나 더러움 때문에 질색을 하거나 죄와 세속적인 모습 때문에 고통을 겪지 않도록 늘 심령 성전과 생활 과정을 잘 간수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늘 성령님의 감동 감화를 늘 주의하여 깨달을 수 있도록 영적으로 늘 깨어 있도록 합시다. 이를 위하여 생활을 단순하게 하고 생각도 단순하게 가지도록 합시다. 마음에 늘 성령님을 나의 인도자로 인정합시다.

성령님도 인격을 가진 분이시기에, 그가 주권적으로 우리를 강권적으로 인도해가시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우리와 교제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태도에 따라 상응하여 일하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늘 간절히 찾고 구할 때에 성령님께서도 우리에게 자기를 드러내주십니다.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이사야 55:6 말씀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9:13 말씀에서도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님을 늘 사모하며 그가 내 심령과 삶 가운데 늘 함께하시어 우리를 다스려주시고 인도해주시고 깨우쳐주시기를 늘 간구합시다. 우리의 범사에 그를 인정합시다. 그리고 성령님과 우리의 삶의 모든 과정을 기도로써 함께 나눕시다. 그리할 때에 성령님은 우리에게 더욱 자신을 드러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자세를 보시고 마음을 평안히 가지시고 놀라시거나 답답해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기쁘고 뜨겁게 자유롭게 우리를 일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감동을 주실 때에 처음에는 잘 깨닫지 못하기에 실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인도함의 손길이 있을 때, 잘 분별하여 그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성령과의 동행하는 삶에서 놀라운 기쁨과 진보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신랑이 술람미 여인에게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아가 5:2)

라고 불러주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님을 닮아 비둘기처럼 사랑스러운 성도로 성숙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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