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마음
마태복음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찬송가 455장(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실 때에 예수님께 수많은 무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심각한 죄인도 있고 연약한 병자도 있고 칼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연습을 하는 강도단의 일원도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심히 교만하여 예수님을 판단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모두가 예수님께 나아올 때 예수님은 그들을 거절한 적이 없습니다. 다들 가까이 오게 하시고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시고 필요를 채워주시고 곁을 내주셨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어 복음을 전했을 때에 어떤 성읍에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금 그런 성읍 사람들에게 경고하면서 머잖아 심판의 날이 찾아올텐데 어서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라고 권면하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전도하고 돌아온 제자들 앞에서 여전히 예수님이 죄인들을 향하여 부르시는 그 간절함을 담아서 초대하는 말씀을 외친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예수님께서 그들 모두에게 자기에게 와서 평안히 쉬라고 초대하는 이유에 대하여 예수님 자신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예수님의 그 부드럽고 따뜻하고 거절하지 않으시는 그 겸손하고 넓은 마음 안에서 저절로 힘을 얻고 용기를 얻고 치유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탁월하고 대단한 철학자나 도인이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품고 그들을 살려내시는 너그럽고 따뜻하신 마음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 오라고 예수님은 초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중에 한 사람 마귀에게 속한 간교한 가룟 유다도 끝까지 품고 지내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친구요 함께 밥을 먹고 마시는 자였습니다. 그와 같은 자도 끝까지 품고 인내하며 마지막 잡히시는 그 배신의 밤까지도 예수님은 끝까지 품으셨습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도 끝까지 품으시고 부활 직후에도 그에게 찾아오셔서 용기를 부어 주셨고, 다른 제자들 앞에서 베드로를 향하여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심으로써 베드로를 공적으로 다시 세워주셨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심히 약한 자들을 주님은 끝까지 품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예수님에 대하여 구약 성경에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한 바 있습니다. 이사야 42:1 이하의 말씀에 예언되기를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긍휼이 가득차서 상한 갈대조차 꺾지 않습니다. 꺼져가는 등불도 훅 하니 불어 끄지 아니하고 그것들을 다시 살려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온 모든 자들이 그렇게 소생되어 힘을 얻고 그 품 안에서 스스로 깨닫고 마음을 바로잡고 회복되는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많이 닮은 분 중에 한 분이 다윗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미움을 받아 살기 위하여 도망쳐서 아둘람 굴에 숨어 있을 때에 그를 찾아온 젊은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모여든 자들이 당시 4백 명이었다가 나중에는 6백 명까지 불어납니다. 그런데 그들의 면면을 보면, 거칠고 상처를 많이 입은 자들입니다. 사무엘상 22:2 말씀에 이르기를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에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울 왕의 치하에서 살면서 자기 집안이 빚을 져서 망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 세상이 뒤집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 한을 품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거칠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에게 모여들었지만, 다윗의 공명정대함과 사울 왕의 그릇된 태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부어 새 나라를 세워가시려는 뜻을 철저히 이해하고 따르는 이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에 다윗의 인품과 신앙을 깊이 존경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겠다는 비전을 품은 자들은 적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 그들의 상처 입은 마음으로부터 쓰디쓴 독물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다윗이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터에서 나와 그들의 임시 거주지인 시글락에 도착했을 때 보니 시글락이 다 불타버렸습니다. 그들의 가족들, 곧 아내와 아이들이 습격한 아말렉 사람들에게 붙잡혀 가고 가축들도 다 끌려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윗도 그의 두 아내가 끌려갔습니다. 그러자 6백 명의 부하들 중에 마음이 거친 불량배들이 일어나 선동하기를
“다윗을 돌로 치자”
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슬픔 속에서 이런 일까지 겪으니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즉시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를 내어 의연한 자세를 가졌습니다. 그 선동자들을 가려내어 칼로 쳐 죽이라고 명할 수 있었지만, 다윗은 그들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가 하고 이해하며 제사장에게 에봇을 가져오라고 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아말렉을 추격하여 결국 완전히 그들을 쳐서 물리치고 그 빼앗겼던 사람들과 물건들을 다 되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중에 그의 부하들 중에 또 다른 분열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추격 도중에 브솔 시내쯤 갔을 때에 이백 명이 너무 지쳐 더 이상 못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인원 한 사람이 급한 중인에 함께 못 가겠다고 하는 부하들이 이백명이나 있으니 다윗도 마음이 힘들었을 것이지만, 너그럽게 그들에게 쉬면서 여러 물품들을 지키라고 남겨두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에 많은 노략물을 가지고 돌아와서 브솔 시내에 도착하자 함께 간 4백 명 중에서 일부 이기적인 부하들이 뒤에 남았던 그 2백 명은 아내와 자식들만 주고 노략물을 주지 말자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때에 이런 말을 하면서 그 사람들의 냉정하고 이기적인 말을 거절합니다.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겼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학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사무엘상 23,24)
다윗은 이번 승리가 사람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확실하게 선언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들만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함께 나누게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 부하들에게 온유하고 품어주면서도 확실한 마음의 중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항상 중심에 모시고 그에게 묻고 행하였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너그러운 인품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분명한 믿음 안에서 거칠고 이기적인 부하들도 변화되어 감으로써 훗날 다윗 왕국의 기둥들로 변화되어 갔던 것입니다.
다윗의 모습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예표적인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항상 마음 중심에 모시고 그를 신뢰하며 행합시다. 또한 품이 너그럽고 따뜻하여 연약하고 부족한 이들까지도 품어서 결국 주님의 성숙한 제자들로 만들어가는 통로가 됩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고 말씀하신 주님의 초대의 말씀과 같이 우리도 점점 주님을 닮아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져서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귀한 통로로 쓰임받는 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