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했던 하나님의 사람들
누가복음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안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찬송가 338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성경에 보면 물질적으로 부자였으나 늘 그 심령이 하나님을 향하였던 분들이 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 시대에 동방 지역에 살던 욥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 일대에서 가장 큰 거부였습니다. 아들 일곱과 딸 셋에다가 양이 칠천, 낙타가 삼천 마리, 소가 오백 겨리, 암나귀가 오백 마리였고 종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심히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니 그의 자녀의 생일이 자녀들이 즐거운 잔치를 벌인 후에는 혹시라도 그들이 술취한 중에 하나님께 마음으로 범죄했을까 염려하여 그 다음날에는 반드시 자식들을 다시 모이게 하여 그 자녀의 명수대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려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런 욥에게 실제로 큰 위기가 닥쳤으니, 그의 자식들이 하룻만에 다 죽고 그의 재산들이 하룻만에 다 잃어지게 되는 대 참사를 만나게 됩니다. 사람이 그렇게 큰 일을 겪으면 이성을 잃고 깊은 실의에 빠지고 나아가 신앙의 근본을 저버릴 수 있으나 욥은 끝까지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며 고백하기를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고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기 2:21)
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시험 중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을 지킨 욥에게 또 한번의 무서운 시련이 닥쳤습니다. 그의 몸 전체에 욕창이 나고 뼈가 타들어가는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는 재 가운데 엎드려 깨진 기왓장으로 자기 몸을 긁어도 견딜 수 없는 가려움과 통증이 계속됩니다. 그런 중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의 친구들까지 찾아와서 그에게 숨은 죄악이 비난 있다면서 회개하라고 압박합니다. 욥은 억울한 중에 자기의 무고함을 변증하며 친구들과 논쟁하지만,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함과 충성스럽게 계속 섬기고자 하는 신앙심은 여전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욥을 인정하시고 그에게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시며 잃었던 것들을 두배나 되찾도록 복을 내려주십니다. 엄청난 거부였었을 때에도 욥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으며,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고 사랑하던 자들이 다 대적과 비방자로 돌아설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놓치 않았습니다. 심지어 욥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실지라도 신실하게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다는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욥기 13:15 난하주). 욥은 참으로 큰 부자였으나 그 모든 재산보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을 갈망한 사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로 예수님 당시 사람들을 예로 들자면,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를 들 수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뵐 때에 오랫동안 몸을 담고 있던 산헤드린 공회 의원의 동료들과 달리 예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였습니다. 그러나 차마 동료들을 등지지 못해서 믿음을 고백하지 못하다가 동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자 마침내 결단하고 예수님의 시신을 묘지에 안장하고자 직접 나섰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골고다 언덕 주변에 준비한 새 돌무덤을 예수님의 묘지로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 역시 급히 종들을 시켜 시신을 수습하여 돌무덤에 넣을 때 쓰는 향품과 몰약을 백 리트라, 곧 32킬로그램 정도를 가져와서 장례를 치르었습니다. 아마도 향품 가액만 계산한다면 몇 천 만원이 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동료들의 비난과 정치적 부담과 경제적인 비용 부담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죽으신 예수님의 엄중한 장례를 헌신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 명예, 재물, 안전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사랑했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극히 소중히 여기고 그 십자가를 함께 지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귀중히 사랑하여 그 이름을 성경에 이렇게 아름답게 뚜렷이 기록해놓아 그들이 큰 일을 행했고 하나님 나라에 아름다운 이름이 기록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진할 때에 사십 년간이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때를 따라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 기둥으로 덮어주시고 인도하셔서 감사할 것이 차고 넘쳤지만 그들은 기회만 생기면 원망 불평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물질이 많고 적음이 아니요 중요한 것은 사람의 심령 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와 갈망이 있는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였던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있으면서도 불평과 원망이 전혀 없었고, 도리어 자족하며 감사하며 자유하며 기뻐하고 기뻐하며 살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환경의 좋고 나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심령의 은혜 여부임을 유념하면서, 주님 만나 뵈는 그 날까지 성령의 감동을 늘 새롭게 받아서 심령의 가난함의 은총이 더욱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욥처럼 큰 부자의 환경에 처하든지 간에,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길바닥에 내앉던지 간에,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동료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하며 사회적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주님을 끝까지 따라가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