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근본
잠언 1:7~19
진정한 지혜란 무엇일까요? 지혜의 왕 솔로몬은 7절 초반절에서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여호와를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두려워하며 받드는 것이 지식 곧 참된 앎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지존자’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호칭은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시하신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택하시고 구속한 자기 백성들에게 능력을 베푸시며 끝까지 책임을 지시고 버리지 아니하시며 인도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일반화된 신이라든지, 막연한 어떤 유일자 신이 아닙니다. 택한 백성들의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함께 환난을 겪으시며 그들을 위하여 신음하며 아파하며 함께 고락을 나누신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여호와’라는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신앙의 대상이 어떤 구만리 장천에 계신 철학적 개념의 신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피 흘려 죽게 하시고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를 일깨어 주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되 우리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시며 우리의 허물과 죄를 아시며 책망하시며 긍휼을 베푸시며 오래 참으시며 끝까지 동행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선하고 착한 어떤 분과 교제하는 수준이 되면 안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며 두려워할 줄 알아야 올바른 태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다면 아무리 종교 생활을 오래 했고 많이 했고 많은 봉사를 했고 공적을 쌓았다고 해도 그것은 균형을 잃은 신앙 생활을 한 것입니다. 잎사귀만 있고 좋은 열매는 맺지 못한 나무와 같습니다. 우리 심령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바로 이러한 거룩한 경외함이 참 지식, 참 지혜의 근본입니다. ‘근본’이라는 단어는 ‘시작’이라는 뜻이 있고, ‘가장 좋은 것,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 있고, ‘밑바탕, 기초’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전제 조건’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 출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전제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모든 지식, 모든 지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지혜는 이 시금석에 달아보면 됩니다. 우리의 모든 결정과 선택이 여호와를 경외함을 향한 것인가, 그리고 여호와의 경외함 중에서 나오는 것인가를 살펴보면 그것이 참된 지혜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의 열매가 없는 것은 인본주의적인 육신적 지혜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인가, 신적 지혜인가를 가늠하는 기준점이 바로 이 점에 있음을 기억하시고,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지혜자와 반대로, 미련한 자는 어떠한 사람인가요? 미련한 자는 근본이 없습니다. 기초가 약합니다. 중요한 것과 가치 없는 것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바 욕심과 이익을 따라 달려갑니다.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세우신 ‘지혜와 훈계’를 멸시합니다. 멸시한다는 것은 비웃고 업신여기고 무가치하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여기서 7절에서 ‘지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하는 지혜입니다. 헬라 사람들처럼 형이상학적인 관념적 지식이 아닙ㄴ다. 이 지혜는 매우 실제적이고 활동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가리킵니다. 또한 ‘훈계’라는 것은 징계하고 책망하여 바로잡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녀들을 기르는 부모가 교육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꾸짖고 바로잡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훈련하여 연단하여 바로잡는 것은 교육받는 어린아이들에게는 힘이 들지만 그것은 평생의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지혜와 훈계를 세워주심으로써 이것을 잘 배우고 따르는 자들로 하여금 인생에서 바른 길을 가며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솔로몬 왕은 그의 가르침을 받는 회중들 특히 젊은이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마치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들을 사랑하여 훈계하듯이 훈계와 법을 잘 듣고 지키라고 순종을 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 제자들과 회중들에게 ‘얘들아’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따뜻한 사랑으로 스승은 제자들에게 지혜를 가르치되, 그 가르침이 비록 엄하고 까다로울지라도, 마치 부모가 자식을 훈계할 때 따뜻한 사랑을 품고 하듯이 사랑의 훈계요 사랑의 채찍이요 사랑의 꾸지람이요 사랑의 잔소리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영적인 스승의 가르침도 그렇게 받아야 하고, 가정에서 부모의 꾸지람과 훈계와 교훈도 우리는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분들의 훈계임을 알고 잘 받아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지혜와 훈계에 잘 순종하는 자의 결과는 어떠합니까?
9절 말씀에,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은 명예와 영광을 가리킵니다. 목의 금사슬은 부요함과 은총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지극히 훈련하고 연단하였는데, 그 모든 연단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변함없이 신뢰하고 경외하였던 바 그 훈련 마쳤을 때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애굽 바로를 통하여 요셉의 손가락에 바로의 인장반지가 끼워지고 세마포 옷이 입혀지고 금사슬이 목에 걸려지고 버금 수레에 태워져서 사람들이 그 앞에 엎드려 찬사하는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과 법도와 훈계, 우리 삶 속에 허락하신 고난과 연단의 과정 속에서도 순종과 겸손과 인내과 기도를 하며 변함없이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존귀케 하실 것이요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중심이 바로 선 자, 근본이 굳게 선 자들은 시험이 다가오고 꾀는 자가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며 지혜와 훈계를 굳게 붙드는 신앙으로 버팁니다. 더욱 악인들과의 교제와 세상의 유혹을 멀리하며 여호와 경외하는 편에 머물러 흔들리지 않습니다.
반면에 중심이 약한 자 근본이 없는 자는 악인들이 꾀며 악의 길, 죄의 길, 육신의 길, 세상 길로 가자고 흔들면 결국 따라가고 맙니다. 결국 망하고 그 생명을 잃어버리는 비참한 말로를 맞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스승은 그 회중들에게 이르기를 10절에서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15절에서도 이르기를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을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10절 이하에서는 폭력을 휘둘러 물질을 빼앗는 강도질과 같은 것을 예로 들면서 그런 자들과 함께 나쁜 짓에 참여하지 말 뿐 아니라 그들과 아예 가까이 함께 교제하는 것도 금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들과 어울리기만 하여도 영혼과 삶에 화가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강도짓과 같은 포악한 일뿐이겠습니까? 도박하는 사람,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 마약하는 사람, 음행을 행하는 사람, 사기 치고 거짓말을 좋아하는 사람,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싫어하고 늘 세상 일락을 좋아해서 놀러다니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제하며 사귀며 길을 함께 걷는다면 그 결과는 뻔하고 그들과 결국 닮아가게 되고 그 결과 주님의 심판도 함께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의 지혜를 가까이 듣는 자가 됩시다. 그 훈계의 책망을 싫어하지 말고 즐거이 순종합시다. 진리의 학당인 교회에 자주 나와 지혜와 훈계를 자주 들읍시다.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주의 지혜와 훈계를 가르치십시오. 악한 자들이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꾀려 할 때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중심을 길러갑시다. 근본의 기초가 튼튼한 신앙인들이 됩시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와 가정의 자녀들이 여호와를 경외함을 인하여 머리에 아름다운 관과 목에 금사슬로 장식되는 복된 영광과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