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중에 찾은 중보자
욥 16:19,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느니라
욥의 고난
욥은 극심한 고난을 당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하룻만에 가진 전 재산을 다 잃어버렸다. 열명의 자녀를 하룻만에 잃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사회적 신분도 다 잃었다. 그의 건강마저 완전히 잃었다. 그의 피부는 검게 변했고 악창으로 인한 가려움 때문에 깨진 기왓장 조각으로 긁어댈 만큼 고통에 사로잡혔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심도 사라졌다. 그를 비웃고 조롱했다. 그의 친척들도 그를 떠났고 그의 아내마저 조롱하며 떠나갔다. 그의 절친한 친구들은 찾아와 그의 죄를 추궁하며 그의 마음을 들쑤셨다.
욥의 고난당한 이유
그러면 동방의 의인이라고 칭송받고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욥이 극심한 고난을 당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욥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사단과 내기해서 이기려는 것일까? 그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면 그의 시련의 목적은 무엇인가? 먼저, 욥도 역시 상대적 의인이기 때문에 고난을 통하여 순결하게 되어서 더 온전한 신앙 인격의 사람으로 빚으시고자 하는 뜻이 있다.
또 어떤 목적이 있을까?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스런 존재를 계시하시므로 하나님을 더 알게 하시고자 함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고난 중에 욥은 더 깊은 계시의 은혜를 입는다.
그러면 또 다른 이유는 없을까? 욥의 고난의 또 다른 목적 중 하나는 그에게 중보자의 필요를 알고 그를 찾게 하기 위함이다.
고난 중에 찾은 중보자
욥의 고난받은 이유 중 하나를 그가 중보자를 찾게 하려 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욥은 그 동안 그의 신실한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렸다. 욥기 29:4 말씀에 이르기를, “그 때는 하나님의 우정이 내 장막 위에 있었다”고 하였다. 이 말씀대로 신실한 욥에게 하나님은 늘 친밀한 사랑을 나누며 함께해주셨다. 또한 가족과 친척과 이웃과 친구들은 그를 존경하고 따르고 그의 말을 따라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아무런 장애도 없고 불화도 없고 간격도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다가온 극심한 시련은 이 모든 평화와 안정을 뒤흔들어버렸다. 하나님은 그에게 멀리 떠나셨다. 그를 향하여 무섭게 핍박하는 자처럼 돌변하셨다. 그가 아무리 외쳐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가 아무리 애원해도 귀를 닫은 것처럼 묵묵 부답이셨다. 아무리 하나님을 찾아 헤매도 보이지 않으셨다. 오히려 단 한순간도 그의 고통을 막아주지 아니하시고 꿈을 꿀지라도 두려움이 그를 압도하도록 내버려두셨다. 친밀한 하나님 대신에 이제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고 두렵고 크고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느끼는 반면에 자신은 너무 비천하고 죄악으로 더러워졌고 너무 유한한 한 줌 먼지와 같은 존재임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그가 하나님 앞에 감히 자기 스스로 설 수 없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비로소 욥은 극한 고난 중에 자기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서서 변호해주실 중보자를 찾기 시작한다. 이것이 욥기 9장 32절 이하의 고백이다.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욥 9:32,33)
그는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 곧 중보자를 간절히 찾으면서 그런 중보자 없음을 인하여 안타까워한다. 만약 욥에게 이 극심한 고난이 없었다면 과연 이런 중보자를 그렇게 찾을 수 있었을까? 극심한 고난이 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중보해줄 중보자를 그토록 간절히 찾게 해준 것이다.
또한 그의 세 명의 절친했던 친구들이 찾아와 그에게 위로해주고 함께 해주고 격려해주고 그의 억울함을 변호해주고 알아주고 함께해주었다면 그가 그토록 절실하게 자신을 변호해줄 중보자를 찾았을까? 그의 세 명의 친구들이 그를 그토록 오해하고 신앙의 진실함을 믿어주지 않고 비난하고 정죄함을 인하여 그는 이렇게 하늘의 중보자를 간절히 찾았던 것이다.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느니라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욥 16:19~21)
욥은 세상의 중보자에 만족할 수 없었기에 하늘의 중보자가 자기에게 있기를 소원하며 구하였다. 인생의 고난이 중보자를 찾게 만드는 것이다.
중보자 예수
어찌 욥만이랴. 우리 모든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나 인생 사이에서 중보자가 필요한 존재다. 구약의 욥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고난 중에 중보자를 갈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필요를 채워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가 누구신가? 바로 우리 중보자 예수님이시다.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시기에 우리의 중보자로 완전하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고난받는 인생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예수님은 완전한 중보자시다. 이 예수님은 지금도 하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항상 중보하신다(롬 8:34).
또한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 하나님 역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중보자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두렵고 불안하고 외로운 사람이 있는가? 고난의 인생길에서 무거운 짐지고 힘들어하는 인생이 있는가? 고난자 욥이 그토록 찾고 구하던 중보자가 이미 우리에게 있음을 알고 중보자 예수, 중보자 성령님을 굳게 의지하고 안심하자. 우리는 홀로 있지 않다. 고난당하신 주님이 우리의 모든 고난 중에 함께해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주심을 믿자.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16)
지혜자가 말하기를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욥기 5:7)고 하였는데, 이 고난 가득한 인생 중에 우리는 외롭지 않다. 담대할 이유가 있다. 고난자 욥이 그토록 찾던 하늘의 중보자가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임마누엘 우리 주님을 찬양하자.
2011.6.10. 금. 고난 중에 찾은 중보자, 욥 16장 1.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