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자를 떠나는 것이 지혜의 길이다
잠언 14:7,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도에 대하여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이 본문 말씀은 해석상의 문제가 있어서 성경 밑에 주석이 달린 것을 보면 이렇게 써 있습니다.
“너는 미련한 자 앞으로 가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하리라”
원문 해석상 두 가지 다 큰 차이는 없습니다. 결국 미련한 자와 만나 대화를 해보면, 그 입술에서 지식이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는 창구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깊은 곳에 담겨 있는 본심, 욕망, 계획들이 말로서 나타나게 됩니다. 미련한 자는 그 입술을 통하여 결국 지식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식이라는 것은 세상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식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지식이요 하나님께 순종하는 지식을 가리킵니다. 이 지식은 단지 하나님을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요 가슴으로 사랑하는 지식이요 마음과 말과 행실이 일체가 된 지식입니다.
미련한 자는 이러한 지식이 없습니다. 그의 입술에서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김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섭리하심을 믿지 아니하는 불신앙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감정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나아가 미련한 자는 공공연하게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훼방합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 생활을 방해하고 신앙을 파괴합니다. 그래서 신앙과 삶에 크나큰 짐을 안겨줍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비웃고 조롱합니다. 거짓말을 함부로 합니다. 분수에 넘치는 말, 호언장담하는 말, 거역하는 말을 함부로 내뱉습니다. 미련한 자는 성경 말씀을 인간의 지식과 자기의 경험으로 판단합니다.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삼습니다. 종교를 이기적인 목적과 도구로 생각합니다. 부도덕한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교제한다면, 영적으로 큰 손해가 납니다. 도덕적으로 좋지 않게 물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 전에 살펴본 잠언 13장 20절 말씀처럼,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는 말씀 그대로, 반드시 해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미련한 자 앞에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미련한 자에게는 달콤한 마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악의 달콤함이 미련한 자에게서 나옵니다. 그의 입술에는 남을 흉보는 달콤함이 있습니다. 그럴듯한 속임수가 진짜보다 더 끌리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미련한 자의 말이 더 성공과 지혜와 만족을 가져다 줄 것 같습니다. 마치 옛뱀의 말이 하나님의 경고 말씀보다 아담과 하와에게 더 그럴듯하여 선악과 실과를 따먹게 된 것과 비슷합니다. 노인들에게 조잡하게 만든 건강 식품을 만병 통치약처럼 속여서 수백만원으로 팔아먹는 사기꾼 약장사들이 외로운 노인들을 달콤한 말로써 호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미련한 자 앞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해악만 얻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종종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너무 엄격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단호하게 교제를 근절하라는 가르침이 종종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5:13 말씀에,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 부도덕한 일을 행하고도 부끄러움 없는 자들은 단호하게 꾸짖고 내쫓으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14~17 말씀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하였습니다. 믿는 성도들은 믿지 않는 자들과 깊은 연합을 상징하는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리적으로 오염된 자들에게 대하여 단호하게 멀리하라고 경고한 말씀도 자주 나옵니다.
디도서 3:10 말씀에,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고 하였습니다. 유다서 23절 말씀에 이르기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불은 여기서 교리적 타락과 윤리적 타락을 가리킵니다. 불 가운데 빠진 사람을 건지다 보면, 불에 데일 수 있습니다. 옷이 불탄 냄새가 배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교리적, 도덕적 오염에 빠질 수 있으므로 극도의 혐오감을 가지고 이러한 자들의 죄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의 더럽혀진 옷까지도 접촉할까 죄를 미워하고 한편 두려워하면서 그들의 영혼을 긍휼히 여겨 구원의 길로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조심을 극도로 시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게 교제를 엄격히 단속하도록 경고할까요? 이는 악한 자와 교제할 때 그 동일한 죄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부패한 본성을 하나님께서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지도하다가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었던 모압 광야에서 마지막 설교할 때 자주 썼던 말이 ‘삼가라,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신명기 4장 한 장만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한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신 4:9)
“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신 4:15,16)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3)
이렇게 스스로 부패할까 염려한다면서 조심하기를 반복해서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신명기 7장에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곳에 살던 일곱 족속들을 반드시 진멸할 것이며, 그들과 어떤 언약도 맺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딸을 주고 아들을 주면 그들이 유혹하여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순식간에 멸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그들을 다 남김없이 죽이고 언약도 맺지 말고 불쌍히도 여기지 말라고 하신 엄격한 명령을 내린 까닭은 인간의 부패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불신앙적이고 부정한 것과 접촉하게 될 때 반드시 동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단호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나 살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을 아예 떠나 신자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신자들만의 공동체를 이룬다 해도, 우리 마음속의 타락의 본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세상 속에서 소금이 되어야 하고, 세상 속에서 빛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와 참 생명을 우리는 세상 속에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세상 속에 살면서도 소금의 짠 맛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세상과 함께 멍에를 매면 안됩니다. 세속에 물든 사람과 깊은 연합 관계를 맺어서는 안됩니다. 부도덕한 사람, 교리적으로 부패한 사이비 신자들과 만나서는 안됩니다. 그들과 교제하며 사귀면서 깨끗한 영혼과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교제의 엄격함이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 남을 공연히 헐뜯고 없는 이야기 지어내는 사람, 술과 담배에 물들고 세상에 깊이 물든 사람, 기도원이나 쫓아다니면서 신앙의 균형을 잃은 사람, 사이비 교리에 물든 사람들은 우리가 엄격하게 끊어내야 합니다. 공연히 그런 사람과 사귀면 영혼과 삶에 해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람 좋다’는 말을 들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6:26 말씀에,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부정직하고 불의하고 위선적이고 부패한 미련한 자들과는 단호하게 교제를 끊어내는 단호함이 지혜로운 자이지, 교활한 사람이나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까지, 세속적인 사람들에게까지 참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미련한 자라는 증거입니다. 신앙 생활 열심히 하면서 자기 생활에도 충실한 사람에게 정직하고 올곧다는 칭찬을 받아야지, 믿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나에게 교회 가자는 말 하지 않으니까 참 좋다’라든지, ‘직장에서 그렇게 적당하게 술도 마셔주고 함께 세상적인 나쁜 짓도 함께 해주니까 참 좋다’라든지 하는 칭찬을 받아서는 곤란합니다. 잠언 29:27 말씀에,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만약 의인이 불의한 자에게도 칭찬받으려고 하면 그들의 행동에 동조하거나 묵인해야 합니다. 그러면 악인이 좋아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악을 악하다 하고 선을 선하다고 해야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책망하고 동조하지 않고 멀리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악인들로부터는 배척을 받고 미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 사이비 이단에 속한 사람들에게까지 너그러운 자가 되어서 사람 좋다는 말을 들으면 하나님에게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해를 당하게 됩니다. 여호사밧 왕이 그렇게 행하다가 크게 손해를 보았던 사람입니다. 늘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사람들에까지도 호의를 베풀고 함께 어울렸다가 큰 손해를 보곤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을 기억합시다.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단호하게 끊을 사람은 끊고 떠날 사람은 단호하게 떠나고 멀리할 사람은 멀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자신이 언제나 넘어질 수 있다는 겸손한 자기 인식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미련한 자의 앞에서 떠나라는 이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셔서, 사람에게 호감을 사려다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미련함을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미련한 자와 멍에 맨 것이 있다면 단호하게 그것을 끊어내게 하옵소서. 한평생 자신이 미련함에 물들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알고 늘 사람을 깨어 주의하여 사귀는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