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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단상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긴다, 잠언 14:9

작성자강명호 목사|작성시간13.12.31|조회수555 목록 댓글 0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긴다

잠언 14: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서 지혜자는 미련한 자가 죄를 심상히 여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심상’(尋常)히 여긴다는 말씀은 ‘항상 심’자와 ‘늘 상’가 합쳐져서 ‘평범하다’, ‘늘 그러하다’, ‘대수롭지 않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자는 죄를 보고도 놀라지도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원문에, 나오는 단어 ‘얄리쯔’라는 단어는 ‘조롱한다, 우습게 여긴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자는 ‘죄를 가지고 장난친다’라고 해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죄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 염려하는 마음, 멀리하여 경계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 미련한 자입니다. 그는 죄를 범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하여 크게 우려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 큰 일 나겠다, 저 사람 저러다가 벌 받겠다, 저러면 안되는데 걱정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사람을 보면, “다들 저렇게들 사는데, 나도 저래볼까?”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을 멀리하는 마음도 없고, 그런 사람과 친하게 지냅니다.

이 미련한 사람은 죄가 가져오는 장차의 심판에 대하여 하등의 두려움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와 성령의 경고를 우습게 여깁니다. 마치 롯의 사위가 소돔성이 오늘밤에 멸망당할 것이라는 롯의 말을 듣고도 농담으로 알았던 것과 같습니다. 노아 시대에 노아가 방주를 지으면서 120년 동안 대홍수의 경고를 알리면서 회개할 것을 외쳤으나 사람들이 전혀 동조하지 않과 같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들이 아버지의 염려 어린 말을 들어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악행을 멈추지 않았던 마음과 같습니다.

잠언 19:28 말씀에, “망령된 증인은 정의를 업신여기고”라고 하였습니다. 정의란 히브리어 원문에 ‘미쉬파트’인데, 사법적 심판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악한 자는 법의 심판을 조롱합니다. 우습게 여깁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조롱합니다. 시편 119:51 말씀에, “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자들의 삶을 조롱합니다. 우습게 여깁니다. 죄에 대하여 조금도 양심에 가책도 없고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죄성에 대하여 조심성이 전혀 없습니다. 자기가 넘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죄가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고, 죄에 가까이 가면서도 자기는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만합니다. 자기는 죄를 범할지라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당할 것이라고 전혀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는 죄를 범하고도 회개할 줄 모릅니다.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에, 죄를 쉽게 범합니다. 그렇게 죄를 범하고도 죄의식이 없으니, 회개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를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큰 죄이든지 작은 죄이든지 하나님은 죄를 심히 미워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엄하게 심판하십니다.

지혜로운 자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정함을 잘 알기에, 미련한 자의 태도와 정반대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심각하게 여긴다는 것을 명심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죄를 무서워합니다. 죄를 범하는 자를 보면 깜짝 놀라해 합니다. 다른 사람이 죄를 범하는 것을 보면 가만 있지 못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심지어 가슴 아파서 눈물을 흘립니다.

시편 119:53,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로 말미암아 내가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혔나이다.

시편 119:136,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같이 흐르나이다

시편 119:139, 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예수님께서 성전 청결 사건은 죄를 대한 주님이 강경한 반응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성전에 들어가보니, 그 안에까지 장사꾼들이 들어와서 소란스럽게 장사하면서 물질의 욕심만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만 거룩한 분노에 사로잡혀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장사치들을 다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마 21: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에 대한 거룩한 분노심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열심히 채찍을 휘드르게 하신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합니다. 잠언 28:26 말씀에,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 안에 부패성이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늘 넘어질까 조심합니다. 그래서 악은 모양이라도 싫어합니다. 죄는 가까이 가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인간인지라 넘어집니다. 죄를 범합니다. 그럴 때는 통렬하게 회개합니다.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더욱 절실히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합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더욱 깨어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자와 지혜로운 자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고 하였으니, 미련한 자는 그 죄로 인하여 결국 하나님의 미움을 사고 심판을 받습니다. 반면에 죄를 두려워한 자 곧 정직한 자는 은혜가 임합니다. 여기서 은혜라는 ‘라쫀’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사랑하시고 기쁨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용서를 받고 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죄에 대한 태도가 그 사람의 신앙과 양심의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가 죄를 가볍게 여기는가, 아니면 자그만 죄라도 겁을 내고 싫어하는가? 혹시 죄를 범하고도 곧장 회개할 마음이 없는가, 아니면 혹시 죄를 범하면 하나님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부끄러워하고 곧 회개하며 용서를 간절히 청하는가? 혹시 자기 자신을 과신하면서 나 정도만 해도 깨끗한 사람이라고 자만하는가 아니면 자기를 믿지 못하고 자기도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음을 알고 항상 경계심을 갖고 살고 있는가? 이런 점을 깊이 돌아봅시다. 우리 모두 죄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항상 이를 멀리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과 축복을 늘 받아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주여, 2013년 한 해 동안 주님의 은총 가운데 새벽을 깨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더욱 주님 말씀 사랑하며 기도로 새벽을 깨우는 복된 영혼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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