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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단상

강청 기도의 능력, 마태복음 7:7~11

작성자강명호 목사|작성시간14.01.08|조회수189 목록 댓글 0

강청 기도의 능력

마태복음 7:7~11,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자주 보여주신 모습 중 하나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 자주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에서도 기록하기를,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 15절, 16절 말씀에 기록하기를,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퍼진다’, ‘모여온다’, ‘물러간다’, ‘기도한다’는 단어는 현재시상 동사입니다. 그 시상의 뜻은 습관적 반복적 행동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문이 계속하여 퍼져나가면서, 사람들은 계속하여 몰려들고 몰려드는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응은 어떠합니까? 그럴수록 더욱 예수님은 계속하여 물러가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단어는 ‘몰래 빠져나간다, 뒤로 후퇴한다’는 뜻인데, 사람들이 계속하여 몰려오고 또 몰려오는데, 예수님은 그럴수록 반대로 뒤로 몰래 빠져나가고 또 빠져나가서 계속하여 기도하시곤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기도를 중요하게 여겼는가를 보여주시는 대목입니다. 기도하기 위하여 다른 것들을 기꺼이 희생하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기도의 위대한 가치, 기도가 가지는 큰 유익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기도는 우리를 영원한 능력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통로입니다.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허영과 자만과 불신앙의 유혹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방부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나누는 가장 친밀한 교제의 수단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고하여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도우심을 얻는 수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리 바쁘다 해도, 기도를 더 자주, 더 열심히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일이 많을수록, 바쁠수록, 인기가 많을수록, 사람들이 여러분을 향하여 환호하며 몰려들수록,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더욱 더 기도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부지런히 더 열렬하게 나와 엎드리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생활 속에서 친히 보여주신 기도의 실천 외에, 직접 기도하는 태도를 가르쳐주신 여러 가르침이 복음서에 나옵니다. 그 중에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할 때 강청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 세 단어의 동사 역시 아까와 마찬가지로 현재 시상으로서 반복적 습관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한번 간구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끈덕지게 반복적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기도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끈질기게 강청할 수 있는 권세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됨의 권세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종이라면 주인에게 이렇게 떼를 쓰면서 강청할 수 없습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본분이기에 주인에게 계속하여 떼를 쓰면서 자기의 필요를 아뢸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녀된 자는 그 부모에게 자기의 필요를 강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세상의 부모들도 자식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이 원하는 소원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만족시켜주려고 애를 씁니다. 자식이 원하는 것을 얻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는 더 큰 기쁨을 얻습니다. 아무리 포악하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도 자기 자식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법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그 자녀된 우리들이 무엇을 구할 때 하나님의 아들 딸이기 때문에 늘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자식이 구한다고 해서 부모가 늘 무조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식이 간절하게 강청하면 자식된 신분 때문이 아니라, 그 강청함 때문에 주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구하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자식 됨의 신분 때문에 우리가 가볍게 구해도 하나님은 곧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알아서 챙겨 주시기도 하시지만, 그것보다는 정말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강청함 때문에 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자식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도 간절히 떼를 쓰며 매달리는 자녀에게 그 강청함 때문에 속히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던 과부와 재판장 비유에서도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눅 18:6~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이방 지역인 두로에 가셨을 때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제자들과 함께 잠깐 쉬시면서 제자 교육에 주안점을 두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귀신 들린 딸을 둔 헬라 수로보니게 지역 출신 여인이 찾아와서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들은 채도 안하고 앞으로만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제자들이 나서서 “그 여자가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라고 중재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시면서, 그 여자가 포기하는가를 떠보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이 달려와서 엎드려 절을 하면서,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그 여인을 시험하시려고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 말은 그 여인에게 매우 모욕적인 말입니다. 이방인을 개로 비유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이 여인은 그러한 모욕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물러서지 않는 그 간절함과 겸손함을 보시고 감동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기를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고 하시자, 그 여인이 돌아가 자기 딸을 보니 아이에게서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자기 딸을 고치려는 그 끈질긴 매달림이 결국 응답을 받아냈던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도 히스기야는 병이 들었을 때, 침상에 선지자 이사야가 찾아와서 그의 수한이 끝이 났으니 집을 정리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당시 나라가 앗수르의 위협으로 심히 위태로왔습니다. 그 아들 므낫세가 열두 살에 왕이 되었으니, 히스기야 왕이 십오년 동안 수명 연장 된 상태 중에 므낫세를 낳았습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 왕이 큰 병에 걸려 죽게 된 그 때에는 그 슬하에 왕위를 이을 아들도 없었던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이렇게 중년에 자식도 남기지 않은 채 훌쩍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 아쉬었기에 침상에서 돌아서서 벽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진실로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이 기도를 드릴 때 ‘심히 통곡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심히 통곡하며 매달리자 방금 죽을 것이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돌아가던 이사야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급히 불러 세워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십오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눈물의 강청 기도 한번으로 히스기야는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다 응답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죽을 병이 삼일 만에 완쾌 되며, 수명이 십오년이 연장되고, 유다를 괴롭히는 앗수르의 공격에서 건져주시고 예루살렘 성의 안전을 책임져주신다는 확고한 약속을 다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강청 기도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1장에서 늦은 밤에 친구가 찾아와서 옆집 친구에게 떡 세 덩이를 빌려달라고 늦게 와서 문을 계속적으로 두드린 친구에게 결국 떡을 빌려줄 수밖에 없다는 말씀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눅 11:8)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오늘 하나님 앞에 나온 우리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 구할 것을 당당히 아버지께 아룁시다. 우리가 자녀됨 때문에 하나님 앞에 구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강청함 때문에 응답 주시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만큼 간절함으로 매달립시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체면 불구하고 끈질기게 매달립시다. 밤중에 찾아온 친구처럼 하나님의 존전에서 응답될 때까지 쉬지말고 열릴 때까지 응답의 문을 두드립시다. 히스기야 왕처럼 이미 한번 내려진 하나님의 단호한 결정마저 뒤집을 수 있는 위력적인 눈물과 통곡의 기도로써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구할 바를 달라고 떼를 씁시다.

좋은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좋은 것을 강청합시다. 좋은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인 성령도 강청하여 구합시다. 개인의 여러 문제, 가정의 여러 문제, 가장님의 구원 문제, 부모님의 구원 문제, 자녀의 진로 문제, 자신과 가족의 건강의 문제, 인간 관계의 문제, 장막의 문제, 신앙 생활의 문제, 영적인 문제 등에 관하여 끈질기게 강청합시다. 반드시 그 기도 제목 위에 넘치도록 응답받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실 줄 믿습니다.

기도합시다. 주여, 오늘 우리에게 강청하는 기도의 능력에 대하여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 제목들을 놓고 물러섬없이 끈질기게 응답주실 때까지 매달리게 하사, 반드시 응답받는 성도들 다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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