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에게 향한 박넝쿨의 교훈
요나 4:1~11
선지자 요나는 북 이스라엘의 전성기인 여로보암 2세 때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그 당시에 나라의 북쪽에 앗수르라는 강력한 나라가 일어나서 아람 나라 및 북 이스라엘을 압박하였고 괴롭혔습니다. 앗수르 나라는 가장 포악하고 악랄하게 상대방 나라와 포로들을 다루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런 앗수르 나라에 대하여 북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정은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고, 선지자 요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처지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에게 니느웨 성읍에 가서 심판의 경고를 외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읍이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당할 것을 알고는, 그곳에 가서 심판을 경고하는 대신 멀리 다시스로 도망쳐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으려고 작정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침 욥바 항구에서 지중해 서편 다시스로 항해하는 배를 만나 그 배에 올라탄 요나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배가 바다 가운데 들어섰을 대 큰 폭풍을 일으켜 그 배를 집어삼킬 듯 뒤흔들었습니다. 결국 그 배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어떻게 배의 전복을 피할 도리가 없자, 그들은 이렇게 신을 노엽게 한 자가 누구인지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 결과 요나가 뽑혔고 요나는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여 도망 중에 있음을 고백하면서 자기를 바다에 던지면 바다가 잔잔해지리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해도 물결이 잠잠해지지 않자, 그들은 결국 요나를 바다에 던지자 놀랍게도 바다가 즉시 뛰노는 것을 그쳤습니다. 이에 그들은 놀라서 요나가 증거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에게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다 속에 큰 물고기를 준비시켰다가 요나를 삼켜 그 뱃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고집쟁이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바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사흘 동안이나 고생을 하다가 결국은 견디지 못하자 드디어 하나님께 간절히 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그 때서야 요나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원수 나라의 크나큰 성읍 니느웨에 도착하여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요나를 통하여 증거된 심판의 경고 말씀은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요나의 말을 듣고서 니느웨의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성읍 백성들과 소떼 양 떼까지 아무 것도 입에 대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으면서 굵은 베옷을 입고 재 가운데서 회개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애초에 내리려고 작정하였던 심판을 거두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이제 선지자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을 내면서 하나님께 불만을 토하였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다시스로 도망치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결과가 나타날 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애가 크시기 때문에,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실 줄 알았기 때문에, 자기가 그렇게 불순종하면서까지 이곳에 오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자기 생명을 거둬달라고 떼를 씁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자기에게 낫다고 하나님 앞에서 심술을 부렸습니다. 그러면서 니느웨 성읍 바깥에 동쪽에 앉아 초막 하나를 짓고서 혹시나 성읍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나 하고 기다리면서 지켜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잡으시려고 한 가지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요나의 초막 옆에 박넝쿨을 예비하셔서 허술한 요나의 초막을 휘어감아 올라서 그늘을 잘 만들어놓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없던 박넝쿨이 올라와서 초막을 서늘하게 해주고 그늘까지 만들어주니까 속이 상하고 부아가 치밀어서 마음과 몸이 열이 많이 생겼던 요나가 얼마나 마음이 상쾌하고 몸도 시원한지 박넝쿨을 바라보고 만져보면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벌레 하나를 예비하여 다음날 새벽에 그 박넝쿨의 줄기를 갉아먹어 잘라버리니 박넝쿨이 완전히 시들어버리고 말라버렸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해가 떠서 햇살까지 따가운데, 마르고 뜨거운 동풍 곧 열풍까지 불어오게 하니, 요나는 마음도 답답하고 화가 난 데다가 뜨거운 햇살과 숨이 탁탁 막히는 바람 가운데 몸과 정신이 혼미하여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말하기를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라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요나를 불러 책망하였습니다.
“요나야,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그러자 요나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성질을 부리면서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밑도 끝도 없는 성내는 태도에 대하여 진노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렇게 타일러 말씀해주셨습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까지 아니하겠느냐”
요나는 하나님의 이 말씀으로 그의 이 선지서를 끝마치는 것을 보면, 그가 하나님의 이 말씀 앞에 부끄러워 아무런 항변을 하지 못하고 받아들인 것을 말해줍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따지지 않고 다시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박넝쿨의 교훈을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남은 생애를 순종하며 사역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원망하며 불평하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하룻밤새에 박넝쿨을 주시기도 하시고 다시 그것을 시들게도 하심으로써 요나에게 가르쳐주시고자 한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 다른 이들의 불행과 고통에 대하여 공감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요나는 민족주의적 편견이 있었고, 종교적인 편견이 있었습니다. 앗수르 백성 니느웨 성 사람들은 분명 이방인이요 우상 숭배자들이요 더욱이 이스라엘을 해롭게 한 원수 나라, 원수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멸망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피를 흘려 죽는다면 오히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들을 것만 같았습니다. 요나의 이런 마음은 각종 편견들 때문에 마음이 둔해지고 거칠어져 있고 비뚤어져 있고 인간성이 상실해감을 보여줍니다.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사라지고 만 것이 요나의 불행이었습니다. 최근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이 그러한 편견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다른 이들의 불행과 고통에 대하여 냉정하게 굳은 요나를 일깨워 깨닫게 하려고 박넝쿨을 통하여 그에게 기쁨과 만족 후에 고통과 슬픔과 불행을 맛보게 하신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의 쓰라림을 맛본 자만이 비로소 다른 사람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넝쿨을 보내시고 거두어가신 하나님의 뜻은 편견과 아집으로 고통을 당하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요나 같은 편협한 종교인, 이념적 정치적 편견에 사로잡힌 자들, 자기만의 세계 속에 갇혀서 보편적 정서를 함께 느끼지 못하는 냉정한 이기주의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요나처럼 냉정한 자가 되지 말고, 우리는 이 시대에 고통과 불행을 겪는 이들에 대하여 공감하는 마음을 넓힙시다.
둘째, 모든 생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를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요나는 수많은 니느웨 백성들의 죽는 것을 조금도 안타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다 심판받아 소돔과 고모라 성읍처럼 순식간에 유황불로 다 타죽었으면 차라리 기뻐 춤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나의 그 비뚤어진 마음을 돌이키려고 지극하 사소한 작은 생명인 박넝쿨을 주어 기쁘게 하였다가 거두어감으로써 슬픔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한 미천한 생명의 소중함을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이로써 니느웨 성읍의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 좌우 분별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린아이들인데 아이들만 십이 만 명이라면 전체 인구는 100만 명 정도나 되는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가축들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느냐는 것을 생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이 생명 존중의 사상을 귀하게 여깁시다. 하도 사람이 많고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 사건 사고로 죽으니, 생명을 경시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처럼 사람의 생명과 건강과 행복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을 깊이 명심합시다. 우리도 하나님을 닮아 생명 존중의 사상을 마음에 새기고 미천한 짐승의 생명까지도 소중히 지켜주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셋째, 하나님은 모든 사람(그리스도인의 원수까지도 포함하여)이 다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는 점을 알기 위함입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우상 숭배자들이었습니다. 남의 나라를 잔혹하게 짓밟아 뭉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죄가 심각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심판하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선지자 요나를 보내시어 최후에 경고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 후에 심판을 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요나가 그렇게 가지 않으려고 하니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추적하여 큰 물고기까지 동원하시고 물고기 뱃속에서 억지로 회개까지 시켜서 그를 다시 니느웨에 보내어 끝까지 메시지를 전하여 회개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멸망치 않고 용서를 받게 하셨습니다. 요나가 이러하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니까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의 사건을 통하여 그 니느웨 백성들의 생명을 아끼심을 분명히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악인과 죄인이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시는가를 깊이 명심합시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하신 말씀도 그러한 뜻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사랑하지만, 죄인 역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악인이 회개함으로 다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그 간절한 죄인 사랑의 마음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까지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 일본 백성들을 요나의 마음이 아니라 주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보고 기도합시다.
이처럼 박넝쿨을 요나에게 나게 하시고 시들게 하신 것은 요나의 편견과 아집, 요나의 냉담한 마음을 깨뜨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교육의 일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심판과 미움으로 가득찬 요나에게 멸망당할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는 아픈 마음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데, 하나님의 마음이 지금 얼마나 애가 타고 아파하는가를 깨닫고 함께 아파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전도자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이 하나님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여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살려내고자 느니웨를 향하여 내려가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순종하는 사명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