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실래의 충성됨
삼하 19:31~39
다윗 시대 바르실래라는 사람은 신약 성경에 예수님을 도와주었던 두 사람의 큰 부자,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같은 사람입니다. 다윗 왕이 압살롬에게 쫓겨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났을 때, 자기의 재산을 다 털어서 다윗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그의 부하들을 거두어 물질로 섬겼던 로글림 사람입니다. 그는 다윗과 처음부터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위에 있는 다윗에게 여러 차례 교제하면서 다윗의 인격과 신앙에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이 지금 일생 일대의 큰 위기에 빠졌을 때 그 의리를 지켜서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준 사람입니다.
물론 바르실래가 다윗을 돕기 위하여 그렇게 나서야 할 아무런 책임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더욱이 절대 위기에 빠진 다윗을 돕는 것은 자신과 자기 가족 모두와 자기 전 재산을 완전히 내거는 가장 위험성이 많은 도박입니다. 그가 다윗을 돕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는 것이 기정 사실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바르실래는 큰 부자인데다가 고령이었습니다. 나이 팔십세라면 세상 일에 대하여 초연할 나이입니다. 모험을 걸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은 시기입니다. 그러한 나이에 그러한 정치적 도박을 감행하는 것은 무모한 결정입니다.
그런데도 바르실래가 가만히 있지 아니한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섭리적 손길이 있어서 일 것입니다. 둘째로 바르실래는 다윗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과거에 이스라엘 나라를 반석 위에 세운 공로를 기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윗이 비록 밧세바 일로 인하여 백성들로부터 도덕적인 존경심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가정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고 자식들간에 충돌이 생겨서 슬픈 일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번 변란도 자식인 압살롬이 아버지를 왕위에서 쫓아내고자 일으킨 일이니, 엄격히 말하면 집안에 망신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열 지파와 심지어 유다 지파의 일부 사람들마저 다윗에게 등을 돌린 일은 인간적의 판단으로 유혹을 받을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바르실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이 여전히 다윗에게서 떠나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이 비록 허물을 범했으나 그가 하나님 앞에 가지고 있는 충정과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 쓰라린 슬픈 변란을 겪고 이스라엘 변방인 마나하임까지 빈손으로 피난을 나왔지만, 그는 여전히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마땅한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왕임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수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함께 압살롬 편에 서서 군대에 입대하는 그 때에, 그는 자기 아들들과 자기 휘하의 인근 사람들을 격려하며 모든 재산을 다 털어서 다윗과 가족들과 군대를 먹이는 데 드렸습니다.
그 결과 전쟁은 하나님의 손길로 다윗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가장 큰 공훈을 세운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바르실래임이 틀림없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바르실래의 그 예상하지 못한 가장 절실한 시기에 무조건적 후원을 인하여 크게 감명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바르실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가장 가까이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어려울 때 이렇게 잘 섬긴 바르실래를 왕궁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보답하며 섬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르실래는 그러한 다윗의 청을 이러한 말로 거절합니다.
“바르실래가 왕께 아로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내 나이가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와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내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삼하 19:34~37)
바르실래의 이 대답에서 그의 겸손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와 전 가족의 목숨과 전 재산을 건 헌신에 대한 현세적인 일체의 보상을 받으려 하지 않는 희생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에 중앙 정치 무대에서 허영과 화려함 중에 지내기보다, 자기 고향에서 하나님 앞에 남은 인생을 은혜 중에 고요하고 단정하게 마무리하려는 아름다운 신앙 정신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한계를 알고 인생의 때와 시기를 아는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의리를 지키고 자신의 신앙적 확신에 모든 것을 내 걸었던 용기의 사람인 바르실래는 또한 전쟁이 끝나고 왕의 모든 사랑과 호의를 한몸에 받을 환궁의 시기에 남은 여생을 하나님 앞에 고요하게 정리하려고 조용히 자기 고향 땅에 물러갈 줄 알았던 것입니다. 지혜자는 이처럼 나서야 할 때와 물러갈 때를 아는 것입니다.
반면에 곧장 나오는 북 이스라엘 열 지파의 장로들과 그 백성들은 바르실래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행동하였습니다. 성경 기록자는 바르실래의 충성됨과 북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충한 태도를 의도적으로 대조하여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북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은 압살롬이 대세일 때는 거기에 편승하다가 압살롬이 패하고 죽게 되자 이제 다윗을 모시러 옵니다. 그러나 다윗의 환궁 시에 환영하러 나왔다가 다윗을 모셔오는 일에 유다 지파에 주도권을 빼앗기자, 자존심을 몹시 상합니다. 그리하여 유다 지파와 다툼을 일으키고 세바의 선동을 받자 거기에 흔들려서 다시 감정적으로 변해서 다들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의리가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이익의 편에 줄을 서기만 합니다. 자기들의 기분과 자존심에 매달리는 지극히 가벼운 사람들입니다.
신앙 생활, 교회 생활을 사소한 감정, 사소한 이익 때문에 의리를 저버리고 기분과 자존심을 내세워서 이리 저리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과 같습니다. 바르실래는 다윗이 왕궁에 있을 때에는 멀리서 조용히 머물면서도 늘 다윗을 존경하고 조용히 돕더니, 이제 다윗이 가장 어려울 때가 되어 아무도 나서지 않자 그 때에 모든 것을 다 내걸고 다윗을 돕고자 발벗고 나섰습니다. 이제 다윗이 압살롬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다시 예루살렘에 영광스럽게 환궁할 때는 바르실래는 다시 조용히 고향에 남긴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이익을 따른 것이 아니라, 의리와 신앙을 목숨보다 더 귀히 여긴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바르실래는 충성됨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장로들과 열 지파의 절개 없음과 변덕스러움은 불충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 생애가 바르실래와 같은 충성됨을 본받아 주님을 향한 변함없는 절개와 의리와 헌신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나설 때와 물러갈 때를 아는 지혜, 자기의 한계를 아는 지혜, 사람보다 하나님과의 본질적 관계를 조용히 준비하고자 뒤로 물러갈 줄 아는 귀한 지혜를 배워서 장차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에 칭찬받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에게도 세월이 갈수록 더욱 충성스럽고 겸손하고 지혜스러운 신앙과 인격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