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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단상

다윗의 인구 조사 사건 속에 담긴 교훈, 사무엘하 24:1~25

작성자강명호 목사|작성시간14.09.30|조회수678 목록 댓글 0

다윗의 인구 조사 사건 속에 담긴 교훈

사무엘하 24:1~25

다윗의 인구 조사 사건은 다윗 말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다윗은 그 말년에 군대에 나갈 만한 장정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를 알려고 전국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남자의 수를 세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모세를 통하여 실시했던 인구 조사 후에 처음으로 실시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스스로 자기의 치적을 확인하고 스스로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고자 한 행위였습니다. 정신적 반역이 그 명령 속에 스며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인하여 진노하시고 그와 그의 나라에 대하여 징벌하셨습니다. 이 사무엘하 24장에 나온 말씀을 통하여 다음 몇 가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인구 조사 사건을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백성의 죄를 묵과하지 않으시고 그 지도자로 하여금 미련한 일을 행하게 허용하신다는 점입니다.

다윗의 중년 이후 다윗의 밧세바 일로 인하여 다윗 가문은 쓰라린 징계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징계를 받는 중에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다윗을 까닭없이 배신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름부은 자에 대한 반역이었기 때문에, 곧 하나님에 대한 불충이요 반역이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에 가담한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은 하나님 앞에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 후에 또 다시 세바의 반란에 이스라엘 열 지파 중 일부가 동조한 것 역시 또 다시 범한 죄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묵과하지 않았습니다.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지도자인 다윗의 넘어짐의 숨겨진 원인은 백성들의 죄악이었던 것입니다. 백성들의 죄가 차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려고 지도자인 다윗을 넘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자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합시다. 지도자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선다면, 백성들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지도자 덕분에 복을 받는다고만 생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백성들이 교만하고 아집이 가득차고 줏대가 없고 불신앙으로 행하면,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시려고 지도자로 하여금 미련하게 하시고, 잘못된 정책을 선택하게 하시어, 백성들로 하여금 낮아지고 그 대가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만 탓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지도자가 우매하고 뻔히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다 아는데도 그리로 가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 탓이 아닌가, 내 죄가 아닌가, 나의 교만과 아집과 독선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닌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할 것을 찾아 볼 일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회개한 자의 죄는 분명코 용서하시지만, 그 죄 값까지 깡그리 묻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했습니다.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장정 인구가 80만명이요 유다의 장정 수가 50만 명이었습니다. 출애굽 시절에 2차 인구조사한 총 숫자가 601,730명이었으니, 두배가 더 늘어난 숫자입니다. 다윗은 그 숫자를 보고 받고 너무 즐겁고 자기 백성들의 많아진 것을 인하여 뿌듯하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그는 성령의 책망을 양심에 깨닫고 자기가 지금 한 일이 곧 하나님의 소관을 허락없이 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한 일은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회개하였습니다. 자기의 미련함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간절하게 자기의 죄를 사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갓 선지자가 그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습니다. “왕은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 택하여 그것을 하나님께서 행하시게 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세 가지는 칠년 기근, 다른 하나는 왕이 석 달 동안 또 사람들에게 쫓겨 도망치는 일, 또 하나는 사흘 동안 전염병이 나라를 휩쓰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전염병으로 백성 중에 7만 명이 순식간에 죽는 무서운 재앙이 임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자기 지은 죄를 진실하게 자백하였기 때문에 그의 죄는 사해주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죄를 사함받았으나, 그가 범한 죄, 백성이 범한 죄에 대한 값을 지불하는 것까지 다 사해주시지는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값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셨지만, 징계로서의 재앙을 그들에게 거두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시편 99:8 말씀에 이런 말씀이 그 뜻입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광야에서 출애굽한 백성들이 죄를 범하였을 때 그들을 용서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한 대로 갚으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거두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시편 103:10,11 말씀에 이르기를,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쓴 이 시편의 내용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는 그들이 회개할 때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처벌을 면하지는 아니하셨습니다. 물론 그 처벌은 행한 대로 갚지 아니하시고 감해주신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자하심 때문에 그 처벌을 감하셨지만, 죄를 지은 것에 대하여 응분의 처벌을 그들에게 내리신 것을 다윗은 본인 자신의 삶에서 늘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죄를 범하고 회개하여 용서받으면 끝난다는 값싼 은혜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율법 시대요 신약시대에는 은혜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범하더라도 죄만 자복하면 아무런 징계와 심판 없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사랑은 무분별하고 값싼 사랑이 아니요 분별있는 사랑이요 공의로운 사랑입니다. 죄를 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쓰라린 대가를 지불한 후에야 죄를 범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이 점을 명심하고 죄는 모양이라도 두려워하여 저 멀리 달아나고 흉내조차 내지 않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징계하시는 중에도 은혜의 계시를 베풀어주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점은 우리의 죄와 허물이 중대하여 무섭게 진노하시는 중에도 긍휼을 베풀어주신다는 점입니다. 하룻만에 7만 명을 전염병으로 내리 치신 하나님은 하루가 가지도 전에 심판하는 천사에게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고 명하십니다. 진노하시다가도 후회하시고, 때리시다가도 싸매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큰 죄악에 대한 심판하시는 중에 갓 선지자를 보내어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계시를 주십니다. 그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은 바로 이전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하여 올랐다가 대신 수양을 바친 산입니다. 역대하 3:1 말씀에,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놀랍게 다윗이 인구 조사의 죄를 범하여 하나님께 속죄의 제단을 쌓으려고 천사가 선 곳인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제단을 쌓는데, 그곳이 바로 솔로몬 성전의 터가 된 곳이요 과거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 했던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구조사 후의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계획하신 기이하고 놀라운 구원사적 계시가 깊은 비밀 밖으로 걸어나오는 역사적 순간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도 우리가 범죄하고 넘어지고 쓰러질 때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가 드러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혹독하게 다루시는 때에, 하나님은 또 한편으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시를 드러내시고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들을 새롭게 이루어가신다는 점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5:20 말씀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는 말씀대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완악함이 이방인의 긍휼로 이어져서 하나님의 구원이 온 세상에 흘러 넘치는 계기가 된 것 역시 하나님의 놀라운 역설적 구원 역사 아닙니까? 우리의 넘어짐을 하나님은 도리어 우리에게 더 크고 놀라운 은혜를 베푸실 기회로 삼으시기도 하시니,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을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에게 그러한 자비와 축복을 한량없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와 허물로 징계의 채찍을 맞을 때, 그럴수록 하나님께 회개하며, 그럴수록 하나님의 옷자락을 믿음으로 붙잡으며, 그럴수록 더 주님 가까이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우리가 알아갈수록 더욱 종잡기가 어렵기만 합니다. 그러므로 한없이 겸손하고 또 겸손할 따름입니다. 로마서 11:33~36 말씀에 바울이 이렇게 고백한 바를 공감할 따름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을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엇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그러므로 세월이 갈수록 내 자신의 교만과 안일과 허영을 조심하며, 남의 넘어짐을 보고 그의 넘어짐과 징계받음이 혹 나의 허물로 인한 것은 아닌지 자기를 돌아보고 더 낮아지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죄를 범한다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손해를 가져오는가를 뼈저리게 알고 죄는 모양이라도 멀리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월이 가고 신앙이 깊어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죄인 된 우리 자신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넘어짐 가운데 더 넘치는 은혜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를 더욱 깊이 깨닫고 감격하는, 정녕 은혜 속에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주여, 하나님의 뒷모습과 그 손길의 흔적들을 내 삶의 자리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아가는 영적인 지각들이 밝아져가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교제 속에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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