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중요성
사도행전 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사도 바울이 산헤드린 앞에서 연설하기 전에 첫마디가 자기는 양심을 따라 살아왔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긴 양심은 그의 진실성을 담보하는 말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왔음을 말해줍니다.
양심은 헬라어로 ‘데에시스’라고 하는데, 양심은 무엇일까요? 양심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심어놓은 작은 재판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과 마음에 심어놓은 하나님의 심판대입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가 믿음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 양심도 중요합니다.
이 양심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 로마서 2:14~16 말씀에 나옵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양심이 우리 속에서 재판관이 되어서 생각을 통하여 잘못은 고발하고, 거기에 대하여 변명하여 잘잘못을 가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지 않은 불신자들은 율법을 모르지만, 율법을 모르는 그들에게 마음의 율법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양심인 것입니다. 이 훗날 종말 심판 때에 양심에 따라 살았는가 아닌가로 심판이 주어진다는 것이니, 양심의 기능을 알 수 있습니다.
훗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을 때에, 심판의 기준 중 중요한 것이 양심을 따라 살았는가 아닌가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자기가 양심을 따라 사는 이유도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러움 없기를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사도행전 24:15,16)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기 양심의 지시와 교훈과 선악 판단에 민감해야 합니다. 양심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양심에 따라 죄가 되기도 하고, 죄가 안되기도 하기도 합니다.
고린도전서 10:27, 28 말씀에, “불신자 중에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 한 말씀이 한 예입니다.
이처럼 양심이 중요하지만, 양심 자체가 항상 고정적으로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양심이 상황에 따라 변질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약해진 양심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7 말씀에,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꾸만 양심대로 살지 아니하고 양심을 범하는 일이 잦아지면, 양심이 약해집니다.
또한 양심이 더러워지기도 합니다. 크레타 섬 교인 중에 거짓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이름은 기독교인인데, 실천적으로는 무신론자들과 같이 행동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양심이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1:15,16 말씀에,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는 말씀이 그 뜻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아예 양심 자체가 죽어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이른바 ‘화인맞은 양심’인 경우입니다. 디모데후서 4:1,2 말씀에,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그 마음이 아예 변질되어서 입만 열만 거짓말을 하는 마귀와 닮아버리게 됩니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양심 자체가 완전히 망가져 버린 사람입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 때에도 이렇게 양심이 타락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초대 교회를 어지럽히던 자들을 비난하면서 심판을 선고하였는데, 그들의 잘못된 믿음과 잘못된 지식을 지적할 뿐더러 특별히 그들의 양심이 파탄된 점을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19~20 말씀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렇듯 양심 자체가 언제나 강하고 청결하고 선량하며 정직한 모습을 유지하지 않습니다. 양심은 그 사람이 양심을 잘 지켜주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양심의 책망을 소중히 여기고, 양심에 따라 살려고 몸부림칠 때 양심은 살아나고 힘이 있고 그 사람을 진정한 사람으로, 진정한 인격자로, 진정한 신앙인으로 세워갑니다. 하지만 양심을 외면하고 양심을 자꾸만 억누르면 양심은 마치 죽은 것처럼 아무 역할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양심을 잘 써야 합니다. 자꾸만 양심을 써야 합니다. 부지런히 양심이 우리를 주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양심을 잘 지켜야 합니다. 양심이 주변 환경과 주변 사람과 우리 자신 안에 더러운 탐욕에 의하여 약해지거나 더러워지거나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양심이 내 안에서 어떤 경우에도 잘 활동할 수 있도록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순종하고 잘 따라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의 양심이 세상에 살면서 변질될 수 있고, 우리 안에 있는 부패성 때문에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양심의 회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방편들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양심이 각성되어 무엇이 죄인가, 무엇이 악인가, 무엇이 비양심적인가를 깨닫게 해줍니다. 디모데전서 1:5 말씀에,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고 하셨으니, 하나님 말씀의 교훈을 묵상하면 그것이 우리 속에 양심을 깨워서 회복되게 해줍니다.
또 양심을 살리는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입니다. 예수님께서 흘린 피를 마음에 새기면서 그 십자가의 은혜를 자꾸만 생각하면, 우리 양심이 다시 살아나게 되고 용기를 얻게 되고 깨끗이 씻어져서 양심이 활발해집니다.
히브리서 9:13,14 말씀에,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는 말씀이 그 뜻입니다.
히브리서 10:22 말씀에도,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갖고 깨끗한 양심을 갖고,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양심을 따라 살면 어떻게 될까요?
먼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날을 부끄러움 없이 설 담대함을 갖고 살아갑니다. 또한 예배 드릴 때나 기도드릴 때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담대하게 나아가 간구하게 됩니다. 또한 착한 일을 하려고 늘 마음에 열망이 일어나게 됩니다. 히브리서 13:18 말씀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라고 한 말씀이 그 뜻입니다. 또한 선한 양심을 가진 자는 그를 보는 모든 이들에게 양심의 각성을 일깨웁니다. 베드로전서 3:16 말씀에,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선한 양심을 따라 살아가면 비양심적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양심대로 살아가는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양심의 중요성을 다시금 깊이 생각합시다. 우리 속에 있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잘 기울입시다. 양심이 약해지거나 둔해지거나 잠들어버리거나 더러워지거나 화인맞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늘 깨어 있읍시다. 우리 양심이 진실하고 선하고 깨끗하고 강해지고 더 민감해지도록 합시다. 그러할 때 우리 믿음도 힘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도 마음껏 일하실 것입니다. 자칫 믿음만을 강조하면서 양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지 않을 때 자칫 균형을 잃을 수 있습니다. 각성된 양심, 청결한 양심이 우리 속에서 힘있게 주장할 때 우리는 믿음도 삶도 새로워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세상을 바꾸는 영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양심을 중요하게 여기고 양심의 소리에 언제나 귀 기울여 살아가는 삶을 살아갑시다.
기도합시다.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하였는데,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