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시는 하나님
시편 139편
요절 :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24)
이 시는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이 시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자세히 아신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이것에 대한 놀라움을 거듭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만리 장천에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를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자기를 알고 계시냐면, 다윗 자신의 앉고 일어서는 것도 다 알고 계십니다. 자기 안의 생각도 멀리서 분별하십니다. 다윗 자신의 길과 눕는 것까지도 알고 계시고 자기 모든 행위에 익숙하게 잘 알고 계십니다. 심지어 자기 말의 내용도, 자기의 말의 습관도 다 잘 알고 계십니다. 심지어 자기의 전후 좌우에 함께 계시며 자기에게 손을 얹고 계실 만큼 가까이 동행하고 계십니다. 다윗에게 이러한 새로운 계시적 지식, 하나님의 전지하심, 자기에 대하여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고 계시는 이 지식은 이전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일이기에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제 하나님을 떠나 어디에도 숨을 수 있는 곳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하늘에 올라가도, 저 지옥 밑자리에도, 새벽 날개를 치고 먼 바닥 끝에 가더라도, 흑암 깊은 곳에 숨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지 못할 곳은 없음을 깨닫습니다.
더욱이 다윗이 깨닫고 놀라는 것은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의 기이한 손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머니 태속에서부터 하나 하나 기이한 지혜와 생명의 손길로 만드셨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지어져가는 모든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기를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이미 영원하신 작정 속에서 자기를 향한 계획을 정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일들이 다 계획되어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수많은 생각들이 전해져 오는 데, 그 생각들이 참으로 귀해서 보배와 같이 느껴집니다. 그 생각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아무리 세려고 해도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가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귀합니다. 그래서 깨든지 자든지 하나님의 생각을 아는 일에 몰두합니다.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라는 뜻이 그러한 뜻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가는 것처럼 복된 것이 없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지식이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경멸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악하게 생각하고 악담합니다. 그들은 주의 원수가 되고 주를 미워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주를 치러 일어나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러한 자들에 대한 거룩한 분노감에 사로잡힙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을 향하여 다윗은 자기의 원수로 삼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속속들이 안다는 사실 때문에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더 알아가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그렇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이 나의 내장까지 친히 다 만드셨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 모든 일들에 대하여 이미 주의 책에 다 기록해놓으셨고 내 가는 곳마다 다 함께 계시며 나의 생각, 나의 말, 나의 행동, 나의 앉고 일어섬과 눕는 것까지 속속들이 알고 계실진대, 이제 우리가 무엇을 주님의 눈길로부터 숨길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분께 내 모든 삶과 내 모든 길과 내 모든 생각과 계획과 미래까지 다 맡기는 것이 더 지혜롭고 더 안전하고 더 평안하지 않겠습니까? 다윗처럼 우리도 그렇게 기도합시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기도처럼 “하나님 내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아시옵소서. 내 마음의 숨은 방이 하나도 없이 다 마음의 방문이 열어놓사오니 다 검사하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마음 곧 의롭고 거룩하고 착하고 진실한 마음과 생각으로만 가득차 있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며 내 마음을 하나님께 활짝 개방합시다. 내 마음에 주의 영을 온전히 환영해들입시다.
또한 “하나님이여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시험하다’는 단어 히브리어 ‘바한’은 ‘조사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고, ‘뜻’이라는 단어는 ‘샤라아프’라는 단어는 ‘불안한 생각, 번거로운 생각’이라는 단어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시편 94:19 말씀에,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나이다”라고 했는데, 이 때 ‘생각’은 ‘불안하고 걱정과 근심이 많은 생각’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를 조사하시고 내 모든 근심, 걱정, 불안을 속속들이 아시고 내 모든 불안과 근심과 두려움, 번거로운 생각들을 다 풀어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 모든 생각을 다 아시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여, 나를 조사하소서. 나를 살피소서. 내 근심과 불안과 두려움과 나뉘인 마음을 헤아리시고 도와주소서.”라고 전지하신 주님께 기도하는 것은 복이 있습니다.
또한 다윗은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기보다도 자기를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판단하시기를 청합니다. 자기의 모든 길과 행실과 모든 습관들을 하나님께서 깊이 익숙하게 잘 아시기 때문에 혹시라도 자기에게 악한 행위나 악한 마음의 욕심이 숨어 자라고 있을 수 있음을 염려하여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보다 더 지혜롭고 바르게 판단하시기에, 다윗은 자기의 선택보다 더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길을 영원한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지금 자기는 바른 길, 생명 길로 간다고 하고 있지만, 혹시라도 자기 뜻대로, 자기 계획대로 행하여, 결국 하나님께서 작장하시고 계획하신 사명의 길이 아닌 자신의 야망의 길로 가지 않는가, 혹시라도 멸망의 길로 가지는 않는가 조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 어디에나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이렇게 기도한다면 반드시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고 안심이 되었기에,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우리 개인과의 관계도 다윗이 성령으로 깨달은 이 놀라운 계시적 지식과 조금도 틀림없이 완전히 동일함을 믿습니다. 다윗의 일거수일투족, 그의 앉고 일어섬과 눕는 것과 말과 생각까지 다 알고 계시고 그가 어디 가나 함께 하시며 그의 전후좌우를 두르시고 손을 얹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바로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나를 신묘막측하게 만드셨고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고 지금도 그 작정 가운데 우리를 이끌어 오시고 앞으로도 함께하시며 동행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놀라운 계시를 액면 그대로 믿고 날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를 살피시고 내 마음을 속속들이 더 아시도록 온전히 하나님께 마음을 내어드립시다. 또 전지하신 하나님께 나를 더 조사하시어서 내 속의 모든 근심 걱정 근심은 다 잘 아시고 도와주심을 간청합시다. 또한 나도 모르는 악한 행위가 혹시 있는가, 악한 습관이 있나 보아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기를 청합시다. 또한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정해놓으신 하나님께 내 선택한 길, 나의 가고 있는 길을 점검하사 오직 영원한 길, 천성 길, 상급과 영광의 길에서 벗어난 길로 향하게 하시도록 간청하는 자가 됩시다.
기도합시다.
다윗의 시편을 통하여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긴밀한 관심과 사랑과 도우심을 다시 깊이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계시적 비밀을 온전히 믿고 날마다 더 하나님 가까이 나아가 나를 온전히 개방하여 하나님께 드러내고 맡기고 내 속에 악을 버리고 만세전에 나를 향하여 작정하신 완전한 소명의 길로 흔들림없이 나아가게 하옵소서. 또한, 주의 보배로운 생각을 날마다 더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