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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단상

신앙적 사색, 히브리서 11:19, 2011.11.9.수.

작성자강명호 목사|작성시간11.11.09|조회수100 목록 댓글 3

신앙적 사색-계시와 이성, 신앙과 유추-

히브리서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보여준 신앙의 최고봉은 그가 모리아 산에 올라 자기의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친 사건입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듣고 순종하여 삼일 길을 걸은 후에 그 장소에 도착하여 아들을 묶고 펴놓은 장작단 위에 눕히고 칼을 빼어 아들을 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막아 살리시는 이 대목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아브라함의 그 위대한 믿음과 순종을 마음 깊게 새기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자기 아들을 바치게 된 마음의 배경을 한번 살펴볼 때 아브라함의 신앙의 중요한 특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단지 하나님 말씀에 맹목적으로 복종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그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언제나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그에게 하신 말씀을 되새겨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의 육신의 자녀가 이삭 말고도 이스마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약속의 후손들은 이삭의 후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아브라함은 기억해낸 것입니다(창세기 21:12).

바로 이 지점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적 특징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은 그 언약을 붙들고 생각하고 추론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의 유추를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를 받은 것을 가만히 붙들고만 있지 않고 그 계시를 바탕으로 지금의 상황에 대하여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 이삭을 이렇게 번제로 바치라고 하였으니, 아브라함은 자기가 이삭을 죽여 바친다 하여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반드시 아들을 태워 드린 번제의 잿더미 한가운데서라도 다시 살려내서 자기 품에 그 아들을 다시 안겨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신앙만 가진 것이 아니라 신앙적 사색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틀림없는 계시를 의존하여 이성을 가지고 자기의 상황에 적용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께서 한번도 그에게 계시해준 바 없는 죽은 자의 부활의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라도 다시 살려내셔서 첫 번에 약속하신 언약을 기필코 이루시리라는 것을 믿고 발전적 신앙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적 추론을 통하여 담대한 믿음을 가졌기에 아브라함은 담대히 모리아 산에 올라 아들 이삭에 목에 칼을 겨누고 찌르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적 사색의 예를 또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서도 천막 생활을 줄곧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하나님이 지상적인 기업을 주셨지만, 좋으신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의 소원은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며 살아가는 곳이야말로 참된 기업의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은 지상적 기업이 아니라 영원한 천상의 기업에서 누릴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이 창조적 믿음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서 살 때 그 땅에서 나그네처럼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물질이 있었지만 크고 화려한 성채를 그곳에서 짓지 않고 오히려 한평생 나그네처럼 천막 생활만을 계속했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과 야곱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더 가까이 살아가는 하늘 본향을 간절히 사모했기 때문입니다(히 11:8~1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의 품’(눅 16:22)이라고 불리우는 낙원을 그를 위하여 예비해주셨고, 그 결과 우리도 훗날 그 품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 계시를 바탕으로 신앙적 사색을 통하여 더 복된 은혜를 얻는 귀한 본보기입니다.

신앙은 이렇듯 계시와 이성이 서로 충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진리를 근본 바탕으로 삼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이성을 가지고 유추하여 더 큰 믿음으로 응답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우리의 이성이 더 분명하고 더욱 담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당시 사람들에게 도전하였습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마 6:28)

자연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다스림과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먹고 마시고 입고 자는 삶의 문제에 대하여 염려와 근심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도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어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돌보지 않으시겠는가 생각하며 묵상하면 우리는 평안과 담대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물과 사건들을 해석하고 믿음으로 깊이 생각하면 우리는 거기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 설명을 하지 않고 비유로 던져놓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생각을 게을리 말고 이성을 통하여 유추하여 더 깊고 분명한 진리에 이르기를 격려하신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대체로 실패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가시다가 뜬금없이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던지신 적이 있습니다.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그러자 제자들은 깊이 생각하고 뜻을 헤아려보려고 하지 않고 지레 짐작하고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면서 먹을 밥을 챙겨오지 않은 것을 염려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모습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일곱이니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꾸짖듯이 말씀하시고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이러한 말씀을 하신 뜻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고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면서 추론하면 ‘누룩을 주의하라’는 말씀이 단지 빵이나 밥을 가져오라는 뜻이 아님을 알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 빵이 없어서 굶주려서 곤란을 겪을 분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금방 전에도 빵 몇 조각 가지고 수천 명을 다 먹이고 남는 기적을 일으키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일을 떠올리기만 했다면 예수님이 식사 걱정하실 분이 아님을 깨닫고 누룩을 달리 생각해내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누룩이란 ‘부패한 교훈’, ‘바른 경건을 왜곡하는 잘못된 가르침’을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제자들은 신앙적으로 생각하는 일을 게을러서 그만 그렇게 오해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제자들의 생각의 게으름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범사에 계시 의존적 사색을 합시다.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시고 그 뜻대로 운행하신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우리가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과 일들을 깊이 묵상하고 믿음으로 적용합시다. 그리하면 우리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더 큰 믿음을 얻게 되고 더 귀한 신앙적 체험을 얻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범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성경의 진리를 잣대로 삼아 사색하고 묵상합시다.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를 확고히 믿고 그 믿음으로 모든 일들을 해석하고 적용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의 생각, 우리의 사색, 우리의 묵상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풍성하고 확고하게 만들어 아브라함과 같은 성숙한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기도:주여, 계시를 의존하여 깊이 사색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과 지혜로우신 인도하심과 주권적 통치를 굳게 믿고, 그 신앙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추론하고 적용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이전보다 더욱 확신에 차고 더욱 담대하고 더욱 즐거이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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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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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킴이[박종욱] | 작성시간 11.11.09 그동안 너무 바쁘게 하는일도 없이 움직였던것 같내요..
    차분하게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사색하는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목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강명호 목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11.10 별 말씀입니다. 늘 부지런히 일하셨는걸요^^ 시간 내서 성경 묵상하는 시간도 내셔서 더욱 영적으로 깊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저도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오늘도 복된 하루 보내세요 샬롬^^
  • 작성자지킴이[박종욱] | 작성시간 11.11.11 목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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