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기다리는 자의 복 1
이사야 30:18~22
우리가 지난 주일에 이사야 30장 18절 말씀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 요지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시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 대신에 헛된 것을 의지하는 것들을 다 내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늘로 삼지 않고 유다는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군사 동맹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을 신뢰하고 참 선지자의 입을 막았습니다. 그들은 위기가 닥치면 도망치기 좋은 수단인 빠른 말을 구입해서 도망칠 계획도 짜놓았습니다. 이러한 모든 불신앙적인 태도를 그치고, 모든 우상과 잡신 숭배와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신뢰를 내려놓고, 자신의 모든 계획과 도모도 내려놓고, 이제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통치와 그 능력과 그 섭리적 신비를 믿고 그가 일하실 것을 구하며 그가 도와주실 것을 기도하며 잠잠히 기다리는 것, 이것이 여호와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 앗수르 제국의 강압적인 침략을 앞두고서 바로 여호와를 잠잠히 기다리는 것만이 가장 복된 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처럼 하나님을 기다린다면 어떤 복이 임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가 받을 복 중에서 영적인 축복에 대하여 주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 축복은 일차적으로 당시 그 땅에 살아가는 유다 백성이 현실적으로 받게 될 영적 축복의 약속이지만,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에 신약 시대에 성도들이 받아 누리는 복도 여기에 약속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장차 주님과 함께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이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 나라, 천국의 축복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들이 받는 복은 어떤 것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째로, 다시는 통곡하지 않는 복입니다.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예루살렘과 유다는 잦은 전쟁으로 인하여 전쟁터에 나가 죽게 된 자식들을 인하여 통곡하는 어머니들의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앗수르가 쳐들어오면서 여러 유다 지역의 성읍들과 촌락들은 앗수르 병사들의 칼창으로 많이 죽어나갔습니다. 그리하여 애통과 슬픔이 늘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여호와를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그러한 슬픔을 막으시고 다시는 통곡하지 않게 해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전쟁의 위험에서 나라를 지키고 자녀를 지켜달라는 기도에 하나님께 응답해주셔서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로 다시는 통곡하지 않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전쟁의 위협이 끊이지 않습니다. 지금 저 중동 지역이 우리나라보다 좀 더 위험하게 보입니다. 이란과 미국과의 군사충돌 위험 수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적과 아군 간에 다 당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오직 그만이 전쟁을 막으시고 오직 그만이 참된 이 나라의 반석이요 산성과 방패임을 믿고 그에게 부르짖어 은혜를 받아 응답받아 이 나라가 안전하게 됨으로써 다시 통곡하는 일이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더 신뢰하면 이 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동맹국인 미국을 더 신뢰하거나 첨단 무기를 사들이고 핵을 개발하여 그것을 의지한다고 해서 안전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모두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그를 의지할 때 우리가 안전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슬픔과 통곡을 가슴아파하시며 그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장차 천국에 들어가면 다시는 슬픔이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사야 60:20 말씀에 이르기를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21:4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새 하늘과 새 땅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이 그 백성들과 함께 계시면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지나갔음이러라”
고 하였습니다. 천국 보좌 가운데 앉아 계신 어린 양이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시기에 장차 우리들은 다시는 눈물 흘릴 일이 없고 통곡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소망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중에 개인적으로 슬픈 일을 만나고 가슴 아픈 일을 만날지라도 장차 저 천국에서는 다시 이런 슬프고 통곡할 일이 없음을 기억합시다. 이 눈물 골짜기인 세상 나그네 길을 걸어갈 때에, 아무리 모질고 힘들고 낙심되고 슬픈 일을 만날지라도, 때가 되면 우리가 들어갈 저 천국의 영광과 위로와 소망을 가지고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 천성 문을 향하여 찬송하며 계속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영적 지도자와 스승을 주시는 복입니다.
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라는 말은 참 선지자 미가야를 감옥에 집어넣으면서 악한 왕 아합이 했던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신다는 말은 징계와 연단을 위한 시련은 허락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하여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1 말씀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가 될 때에도 이렇듯 복된 연단을 주심은 우리의 영적 성장과 복을 받을 그릇을 준비케 해주시는 일이나 감사합시다.
그런데 하나님을 기다릴 때 어떤 복을 주신다고 했느냐면, 우리의 스승을 숨기지 않겠다고 해주셨습니다. 스승이란 지도자, 인도자를 가리킵니다. 이사야 3:1,2에 보면, 하나님께서 범죄하는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치실 때 그들이 신뢰하며 의지하는 여러 지도자들, 용사들, 재판관들, 모사들, 선지자와 장로들을 제하여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지도자들을 대신하여 어리석고 미숙한 어린 아이들을 그들을 다스리는 자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는 자연스럽게 망하게 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영적인 지도자를 없애면 주의 백성들은 목자 없는 양처럼 뿔뿔히 흩어지고 이리떼에게 삼켜지게 될 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날 재앙입니다. 그러나 그 백성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스승을 다시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를 일으켜 그들로 하여금 신앙의 바른 길을 찾고, 나라의 갈 정책 방향을 깨닫고, 문제들을 해결할 지혜를 얻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이 좋은 지도자, 좋은 스승, 복된 영적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입니다. 목사님들이 만나 이야기할 때에 목사도 좋은 양을 만나는 것이 큰 복라는 말을 하는 것을 종종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이 좋은 목자를 만나는 것, 좋은 인도자를 만나는 것도 주님의 양인 우리들의 가장 큰 복입니다.
여기서 스승은 원문에는 단수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승들이 아닌 유일한 참 스승은 누구이겠습니까? 주님께서 친히 밝히신 대로, 오직 완전한 지도자는 한분 우리 그리스도 우리 주님뿐입니다. 목자는 우리 구주 예수님 단 한분뿐입니다. 스승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를 하나님은 숨기지 아니하시고 우리 눈에 보여주신다고 20절에 약속해주셨는데, 우리는 바로 이 약속을 그대로 누린 복 받은 자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헛되이 스승을 찾고 있으나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완전하고 영원한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의 제자가 되었으니, 이것처럼 큰 복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스승을 떠나지 말고 스승의 가르침을 목숨처럼 붙들고 그의 모든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는 충실한 제자가 됩시다.
요한복음 8:31 말씀에서 주님께서 자기를 따르던 유대인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헬라어 메노-끝까지 머물면, 끝까지 붙어 있으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
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진실한 제자가 되려면 그의 모든 가르침을 굳게 붙들고 그 말씀 안에 굳게 머물러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우리 자녀들도 그들의 인생에서 오직 그리스도 한분만을 완전하고 참된 스승으로 알고 그를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고 그의 모든 말씀을 굳게 붙들고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도록 가르치십시오. 또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그리할 그들의 인생은 참으로 복된 열매가 많이 맺히고 참 자유가 넘치는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셋째로, 바른 길로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당시 유대인들은 국난을 앞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이리 저리 당황하며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다 검토해보아도 믿을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그래서 이리 저리 갈팡 질팡하면서 부산스럽게 행동하기에 바빴습니다. 바로 그러할 때 바른 길을 알려주시는 성령님의 깨우쳐주시고 인도해주심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도 그러한 일들을 겪을 때가 얼마나 자주 있습니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밤새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는데, 묘안도 없고 불안과 근심만 더 쌓입니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한 대답을 얻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바로 이러한 축복을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이러한 음성은 우리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바른 길을 보여주시기를 끈질기게 간구할 때 성령께서 이 길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은혜가 임하는 역사가 있는 줄 믿습니다. 어떤 때는 꿈으로도 알려주시고, 어떤 때는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알려주시고, 어떤 때는 환경의 열린 문으로 알려주시고, 어떤 때는 마음의 간절한 소원과 평강의 마음으로 알려주십니다. 또한 실제로 성령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어느 길로 가야 할지 헤맬 때에, 하나님을 끈질기게 기다립시다. 그가 인도하시는 길을 보여주실 때까지 절대 함부로 내 생각, 내 판단대로 섣불리 움직이지 맙시다. 보여주시고 말씀해주시고 평안 주실 때까지 끝까지 주님 앞에서 기다립시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반드시 증거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확실한 답을 얻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넷째로, 우상들을 내던지게 될 것입니다.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유다 백성들은 그토록 우상을 많이 섬겼습니다. 예레미야 11:13 말씀에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대로 그 수치스러운 물건의 제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을 쌓았도다”
이렇게 그들이 세운 우상들은 그들이 정성껏 공을 들여서 많은 은과 금을 바쳐서 입힌 비싼 것들입니다. 그렇게 우상을 만들어 섬긴 이유는 세상적인 축복을 자기 욕심대로 받으려고 한 까닭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은혜가 임하니까 그들은 이제 하나님 한분 외에 다른 신이 없고 우상은 바로 자기들이 망하게 된 원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이제 그것들을 심히 가증히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비싸고 값진 은과 금을 덧입힌 것일지라도 그것들을 다 모아서 힌놈의 골짜기, 더러운 것들을 태우는 쓰레기 골짜기에 내던지면서 “나가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붙들고 살아가는 무익한 보이지 않은 무형의 우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이러한 것들이 눈에 보입니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복을 주고 행복을 주는 것인 줄 알았는데, 도리어 그것 때문에 화가 임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가로막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것들이 아무리 세상적으로 값비싸고 내 정성이 다 쏟은 것일지라도 그것들을 미련없이 내던지는 영적 개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모두 하나님을 진심으로 기다립시다. 그리할 때 성령께서 우리 눈을 열어주사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붙들고 있는 보이지 않는 우상들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가증하며 얼마나 우리 삶을 무너뜨리는 더러운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들을 저 멀리 내던지며 “나가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욥기 22:24~26 말씀에 이르기를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모든 우상들을 내던질 때 주님은 우리들의 보화가 되실 것입니다.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시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이사야 30:18)
참으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이러한 풍성한 복들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