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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난 이야기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그게 있으면 늙지 않아

작성자난지|작성시간26.06.09|조회수10 목록 댓글 1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그게 있으면 늙지 않아                                   

 

 

삼십년 가까이 법조 선배 몇 명과 한달에 한 번씩 만나 밥을 먹고 지혜를 나누는 모임이 있다. 선배들한테서 얻은 깨달음을 수첩에 메모해 두곤 했다. 오늘은 이십년전 만났던 모임에서 박경재변호사가 한 말을 쓴 메모장을 반추하며 그 의미를 찾아본다. 그가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지금 나이가 칠십이예요. 예전에 검찰청 풍경을 단편소설로 쓴 게 있는데 청계천에서 공구상을 하는 남편이 구속됐을 때 그 과정에서 보고 느낀 걸 쓴 거예요. 그때 내가 검사였죠. 그 소설을 보고 많은 걸 느꼈어요. 박완서씨는 자기 주변의 일을 소설로 쓰는 분이었어요. 아들을 잃었을 때 병원에서 다른 사람의 자식이 식물인간이 된 걸 보고 그렇게라도 살아있었으면 하는 심정을 글로 쓴 걸 봤어요. 그렇게 아프고 힘들어야 예술이 나오는 모양이예요. 박완서씨는 나이 칠십이 넘은 지금도 출판사가 서너개 쯤은 대기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그 남자네 집’이라는 연애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할 일이 있으면 늙지 않는 것 같아요.”

그가 잠시 쉬었다가 방향을 말을 계속했다.

“미국의 홈스판사는 나이 육십에 대법원 판사가 됐어요. 그리고 나이가 구십까지 삼십년간 온갖 판결문을 다 썼어요. 내가 하버드에 유학할 때 보니까 미국의 판례 공부란 홈스판사를 공부하는 거예요. 그가 아흔살때 의회에 출석했을 때 의원들한테서 너무 나이를 먹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아마 구십 삼세에 물러났을 거예요.”


죽을 때까지 자기가 하는 일이 삶의 소재가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말하는 박경재 변호사는 팔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방송을 보면서 영어 공부를 놓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특허법률 사무실도 계속하고 있었다. 그는 시사토론 사회의 선구자였다. 이번에는 그 모임의 한사람이던 선배인 김평우 변호사가 말했다.

“금년에 제 나이가 만 육십입니다. 아들이 어리니까 난 늙을 수가 없어요.”

그는 소설 속 주인공 같은 특이한 인물이었다. 판사가 되어 재벌가의 사위가 됐었다. 그러다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재벌가의 분노가 대단했던 것 같다. 간통죄가 있던 그 당시 판사에서 피고인이 됐다. 전 재산을 위자료로 내놓게 됐다. 그는 모든 걸 버리고 사랑을 선택했다. 그렇게 이혼을 하고 새출발했다. 그는 내게 환갑노인이 여덟살 아들하고 노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아느냐고 말했다. 그 귀여운 아들을 키울 일을 생각하면 늙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선배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때 헌법재판소에서 활발한 변론을 했다. 군중이 모인 덕수궁 앞에서 정치연설을 했다. 일을 만들어 하는 그는 늙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언제나 청년으로 자유롭게 사는 인생이었다. 세월이 흐르니까 그 모임의 막내인 내가 칠십대가 됐다. 선배들은 아직도 탐구력과 지적 호기심과 미의식이 왕성하다. 깨어있는 영혼에는 세월이 스며들지 못하는 것인가. 대형 로펌 화우의 대표변호사를 내려놓은 양삼승 선배는 주민센터에 가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마 최고령 수강생이었을 것이다.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입시생처럼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다. 사법고시 수석의 노력하는 근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팔십을 향하는 고령에도 그가 전국정보검색대회에서 일등을 했다. 그가 받은 상금으로 우리는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그는 지금도 독일어 원서를 번역하고 법관 체험을 재료로 소설을 쓰고 있다.

나는 뛰어난 선배들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배운 게 있다. 사람마다 타고난 그릇의 크기와 담을 수 있는 용량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내 주제를 알고 거기에 맞는 나의 일을 찾기로 했다. 박쥐가 타조가 되려는 꿈을 꿀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일거리는 삶의 소재다. 싫증을 내지 않을 내 일을 찾아 내 자신의 속도로 인생의 밤이 올 때까지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매일 야금야금 그러나 쉬지는 말고. 자신의 속도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아름다운 것을 수없이 만나지 않을까. 삶의 여백에서 의미도 찾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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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호기심 천국 | 작성시간 26.06.11 변호사님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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