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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까미노이야기

(57) 까미노 뽀르뚜게스, 산따렝 에 복귀

작성자늙은山나그네|작성시간26.06.12|조회수57 목록 댓글 0

파띠마를 떠나는 것이 선(善)이 되다니?

 

나는 안시앙(Ansião)을 떠날 때, 비록 잠시지만  뻬레그리노 신분을 내려놓았다.

까미노는 안시앙 ~ 알바이아제레(alvaiazere) ~ 또마르(Tomar) ~ 골레가(Golega) ~ 산따렝(Santarem)

으로 이어지지만 성지 파띠마를 경유하기 위해  까미노를 이탈한 나는 현재 파띠마에 머물고 있다.

20c 초반(1917년)의 성모 마리아 발현으로 새 성지가 되었으며 가톨릭 순례자들이 몰려오고 있는 곳이다.

 

단지, 까미노를 걷는 뻬레그리노일 뿐 신심 깊은 가톨릭 신도가 아닌 까닭일까.

깊은 신심의 작동에 의한 방문(Fatima)이 아니기 때문인지 수일간의 까미노 이탈이라는 변칙으로 이 곳을

경유하고 있는 몸이기 때문일까.

터무니없는 과장 홍보와 개발 난맥상에 크게 실망하고 까미노에의 복귀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안시앙의 까미노를 떠나 걸어서 파띠마에 온 것 처럼  파띠마를 떠나 걸어서 까미노의 산따렝에 다시 진입,

뻬레그리노로 복귀하는 것이 당연하며 당초의 바람(계획)이 그랬다.

그러나, 3박하는 동안에 이 충격적인 실망을 희석하기 위해 애쓴 나름의 노력이 무위로 끝남으로서 걸어서

떠나기는 난망이 된 아침을 맞았다.

마지막 밤과 아침까지도 특별한 반전을 기대하고 노력하였으나 실패했기 때문이다.

 

결국, 파띠마의 마지막 밤은 지금껏 이베리아 반도에서 보낸 밤 중에서는 가장 우울한 밤이 되고 말았다.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루거늘"(신약성서 로마서 8:28), 아무리 애써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정녕, 내 노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인가.

필시 그 분의 뜻에 위배되기 때문일까.

반전이 없는 밤이었기 때문에 우울한 밤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까미노가 아닌 게 천만 다행이라 할까.

 

7월 1일 아침 9시 반.(내 시계는 summer time 중이기 때문에 뽀르뚜갈 시간은 8시 반)

파띠마의 알베르게를 나왔다.

백팩을 메면 쏜살처럼 까미노로 직행하던 여느때와 달리,  어떤 결행이 망설여져서 머뭇거리듯 길 위에 선

채로 한참을 있었다.

버스 터미널과 산따렝(Santarem)으로 가는 외곽 길을 두고 여전히 망설이고 있음이 아닌가.

파띠마 ~ 산따렝 간의 웨이 마크(way mark)가 왕복 양쪽 길 모두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파따마에서 산따

렝으로, 산따렝에서 파띠마로 걸어서 가고 온 사람이 희소하다는 뜻임을 이미 확인했는데도 무슨 미련이?

 

이같은 과정을 거쳐서 도착한 파띠마의 버스 터미널.

우선의 과제는 파띠마를 떠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산따렝으로 가는 도중이며 파띠마와는 인접 지자체인

알까네나(Alcanena) 행 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파띠마에 도착한 날,  오스삐딸레라가 권했으며  그저께에 먹거리를 산 대형 슈퍼가 있는 프레게지아 민데

(Minde)가 속해 있는 지자체다.

 

그러나, 하루에 단 1번뿐이며 낮 12시 30분(이하 뽀르뚜갈 시간)에 있다는 알까네나 행 버스를  기다린다?.

걸어서 가도 10시 전에 도착할(현재9시) 곳에 가기 위해 3시간 반을 기다린다면 우행중 우행 아닌가.

걸어가면 30분 이내에 당도할 일터에 가기 위해  버스를 1시간 이상 기다리는 우리나라의 시골 아낙네들을

비판하고 있는 내가 그네(그녀들)를 닮아가려 하고 있는가.

게다가, 그곳(Alcanena)의 교통(bus) 사정은 이 곳(Fatima) 보다 더 열악하다잖은가.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선택한 것이 10시 55분 발 산따렝 행 버스였다.

어제는 충격이었으나 면역이 생겼는지 신용카드 사절의 버스표 구입에도 충격이 일지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도 파띠마를 떠난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 있으므로 그랬을 것이다.

까마노를 이탈하는 변칙으로 온 파띠마인데도 떠나는 것만이 선(best)이 되는 꼴이 되었는가.

어쩌다가 성지(Fatima)의 이미지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또한, 걷기로 한다면(뻬레그리노스라면) 또마르(Tomar)로 가는 것이 단연코 선(善)이다.

왜냐하면, 뻬레그리노스가 파띠마에 가기 위해 이탈하는 까미노 뽀르뚜게스의 지리적 최적지는 내가 단행

한 안시(Ansião)이 아니고 까미노 뽀르뚜게스의 또마르가 파띠마와 최단 거리에 위치해 있으니까.

또마르는 이같은 지리적 당위뿐이 아니다.

인구 2만여명(전체 지자체의 인구는  2011년 현재 40.677명)에 불과작은 지자체지만 뽀르뚜 길 까미노

에서 꼭 방문해야 할 만한 가치를 충분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12c 후반, 뽀르뚜갈 템플 기사단(Knights Templar)의 4대 대사령관(the fourth Grand Master)인 괄딩

지 빠이스(Gualdim de Pais)의 명령으로 건설된 크리스토 수도원(Convento de Cristo)의 성벽 안에 조

성된 마을 또마르.

최후의 템플 기사단 마을이며 뽀르뚜갈의 역사적 보물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해외 확장기인 15c에는 이 작은 마을이 뽀르뚜갈의 중심지가 되었단다.

 

나는 1차 까미노 종주 때(2011년) 뽀르뚜(Porto)를 기점으로 하여 마쳤으며,  지금은 산띠아고 데 꼼뽀스

뗄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 리스본까지 역 코스로 진행하여 대장정의 완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뽀르뚜갈의 수도(Lisboa/Lisbon)를 최종 목적지로 한 것은 새로 등장한 성지 파띠마(Fatima)의 방문 때

문인데, 유감스럽게도 파띠마가 되레 화근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산따렝!, 까미노에 복귀

 

2015년 7월 1일(수) 정오쯤에 산따렝에 당도했다.

6월 27일 낮에 떠난 까미노에 4박 5일만인 7월 1일 낮에 복귀한 것이다.

늘 하던대로 첫 방문지는 관광안내사무소였다.

다행히도 버스 터미널에서 지호지간의 위치라 방문이 단번에 쉽게 이뤄졌다.

 

정오(正午)에 도착했기 때문에 1시간쯤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친절하게 맞는 여직원이 고마웠다.

까미노에 복귀했음을 확인해 주는 친절이다.

이처럼 원활하게 돌아가는 까미노 생활을 떠나  막히고 다반사인 반칙에 속이 상하는 데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짓들에 4박 5일을 시달리다가 제 자리로 돌아온 것이니 아니 그러겠는가.

까미노에서도 간혹 의외(예외)의 불편과 낙망적인 일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산따렝은 동명(同名/ Santarem) 현(縣/ Distrito de Santarém)의  21개 지자체(Municípios) 중 하나로

같은 이름(Santarém)의 지자체다.

면적 552.54㎢에 인구 62.200명(2011년)으로 인구밀도는 112.6명/㎢이다.

(2021년의 인구조사에는 58.662명으로 10년 사이에 3538명이 감소했으며 인구밀도 역시 106.2명/㎢으로

낮아졌단다)              

간단한 브리핑을 한 후 팸플릿과 함께 안내해 준 알베르게도 어렵지 않게 찾았다.

 

산따렝의 '산따 까자 다 미세리꼬르디아'(Santa Casa da Misericórdia de Santarém / Largo Cândido

dos Reis, 1)가 운영자인 알베르게다.

SCMS(위 조직의 略字)는 건강 및 사회지원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1500년에 설립된 비정부 조직(NGO/

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이란다.

타원형 대형 로터리의 남서 변에 있으며 서비스용 대형 종합 건물의 1층 일부를 알베르게(albergue)로 제

공하고 있는데, 5€에  2인 1실(single bed 2개)의 안락한 잠자리다.

 

주변의 지역 사회를 목표로 사람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고, 사회 및 보건분야에서 인구의 필요에 맞는 서비

스를 제공, 창출 및 개발하며 연대, 삶의 질 및 인간의 존엄성을 증진해 왔다는 SCMS.

자비의 성소(Santa Casa da Misericórdia)라는 이름답게  500년 넘게 공헌하고 있는  이 조직의 효시(창

시자)는 1495년에 사망한 뽀르뚜갈의 왕 주앙 2세(João II)의 미망인(왕비) 레오노르(Leonor)란다.

1498년에  병자와 장애인,  버려진 신생아를 돌보는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산따 까자 다 미세리꼬르디아 다

리스보아(Santa Casa da Misericórdia de Lisboa)를 설립했다는 것.

 

당시에 이 NGO(SCM/자비의 성소)가 수행한 자비는 14항이이었다.

영적인 성격을 지닌 7가지와 육체적인 성격의 7가지로 나뉘었으며 아래와 같다.

 

(전자는)

  • to teach the humble,(겸손한 자를 가르치고)
  • to give good advice,(좋은 조언을 하고)
  • to correct through charity those who do wrong,(잘못한 자를 자선으로 바로잡고)
  • to console those who suffer,(고통받는 자를 위로하고)
  • to pardon those who offend us,(우리를 화나게 한 자를 용서하고)
  • to suffer patiently,(인내심을 가지고 고통을 이겨내고)
  • to pray for the living and for the deceased;(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고)

(후자는)

  • to free the enslaved (captive) and to visit the imprisoned,(노예(포로)를 해방하고                                                                                                                                                     같힌자를 방문하고) 
  • to heal and assist the ill,(병자를 치료하고 돕고)
  • to clothe the naked,(벌거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고)
  • to give food to the hungry,(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주고)
  • to give drink to the thirsty,(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 to shelter travelers (pilgrims),(여행자(순례자)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 to bury the dead.(죽은자를 묻어준다)

이 NGO는 1500년의 산따렝 설립에 이어 뽀르뚜갈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유사한 조직이 브라질, 마카오,

본의 나가사키(長崎) 등 뽀르뚜갈과 구 뽀르뚜갈 제국의 많은 도시와 마을에 설립되었단다.

1495년에  주앙 2세를 이어 즉위한 국왕 마누엘 1세(Manuel I /1469년생으로 1458년생인 太后 레오노르

와 남매)의 격려와 왕실의 전폭적 후원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마누엘 1세는 즉위 이전, 출생 및 성장기부터 일생에 많은 행운이 따랐다 하여 '행운왕'(O Venturoso)이라

는 별명이 붙은 왕이다.

1498년에는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가 인도 신항로를 개척했다.

SCMS를 설립한 1500년은 남미의 브라질(Brazil)을 발견한 해다.

이어서 유럽~인도를 잇는 해상무역에 확고한 입지를 구축함으로서  15c 말~16c에 이르는 100여년에 걸친

뽀르뚜갈의 황금기를 연 왕이므로 누님(姉)인 태후가 하는 선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왔으리라.

 

모순의 반복(유비무환과 무비유환)

 

오늘 들어서 아직 아무 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비치되어 있는 자료들에 심취되어 배고픈 것을 잊고 있었다.

며칠이나마 이탈해 있던 뻬레그리노 생활에 걸리는 것 없이, 쉬이 녹아들었음을 의미한다.

파띠마에서 백팩을 완전히 비웠기 때문에 먹거리와 음료를 사왔다.

뽀르뚜갈의 까미노에 들어선 이래 구매할 때 마다 빼놓지 않은 것은 '수뻬르 벅'(Super Bock/ 뽀르뚜갈 産

세계적인 맥주)인데 우선 시원한 그 것(Super Bock)으로 갈증부터 풀었다.

 

아침 겸 점심 식사를 마친 후 까미노 웨이 마크를 찾으러 알베르게를 나왔다.

프랑스 길의 둘째 날, 론쎄스바예스(Roncesvalles)에서 시작한 현지(숙박지) 답사가 습관으로 굳어졌다.

종일 걸었기 때문에 지친 몸이지만 다음 날 새벽(未明)에 당황하거나 방황하지 않고 하루의 시작을 순조

게 하려고 미리 답사하는 것일 뿐이다.

한데, 이 굳어진 습관은 적은 고생으로 많은 이익을 얻는 결과를 닣았다.

하루 걸은 거리의 10%~15%쯤 더 걷지만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 가외 소득은 지대했으니까.

 

이 시간도 그 연장이었지만 남서쪽으로 난 길들이 나를 놀라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유심히 살폈으나 애로(arrow) 또는 다른 어떤 류의 웨이 마크도 눈에 띄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파띠마에 까미노 웨이 마크가 없는 것은 그 곳이 까미노와 무관한 지역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할 수 있

나 까미노 뽀르뚜게스의 주요 도시인 산따렝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 않은가.

순 방향(Lisboa 發 Santiago de Compostela 行) 까미노에서는 노랑 애로가 쉬이 발견되므로  역 방향의

까미노 걷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헛다리품만 팔다가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느지막이 들어온, 뽀르뚜게스로 보이는 청년 2명에게 길 사정을 물었으나 까미노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뻬레그리노스가 무슨 뜻이냐고 내게 되묻는 사람들과 무슨 말을 나눌 수 있겠는가.

이 숙박소가 순례자여권을 소지한 뻬레그리노스 전용 알베르게가 아님을 의미한다.

자비의 성소 14개 수행사항 중에 "여행자에게 거처를 제공한다"(육체적 성격의 제6항)가 있는데 그 항목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스삐딸레로스(Hospitaleros/전담 관리자)가 없는 길손의 숙박소라 무얼 물을 수도 없고, 낮에

방문하였던 관광안내소는 이미 퇴근시간이 지났고.

 

나는 늘 전혀 준비 되지 않은 채로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여러 루트인 모든 까미노는 물론 일본의 불교 순례지인 1200km 시코쿠 헨로(四國遍路) 등 해외와 국내의

무수한 산과 길을 망라해서 언제 완벽하게 준비한 후 떠났으며 걸은 적이 있는가.

필수(절대적)와 선택(상대적)의 품목, 양(量)의 다와 소, 완급의 차 등등이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필요한 일체를 짊어진다면 백팩의 중량 때문에 걸을 수도 없을 것이다.

 

.무비유환(無備有患)이기 때문에 유비(有備)해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 같으나 이 또한 상대적이다.

겨누거나 견줄(比較) 상대를 전제로 하는데 언제나, 어디에서너 늘 홀로인 내게는 막연한 개념이며 불요한

주의환기일 뿐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도 완벽이란 있을 수 없는 상대적 개념이며 "망건 쓰다 장 파한다"는 속담

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기독교 성서를 빌어서 말하면 '준비'라는 것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 만으로 족하다"

우리가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완벽하게 한 준비다.

"그러면 필요한 모든 것도 곁들여서 받게 될 것인데"(신약성서 마태오복음 6:31~34) 별도의 준비라는 것이

왜 필요한가.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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