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삼릉의 초여름
26, 06, 13
원당 종마목장과 입구를 이웃하고 있는 서삼릉.
서쪽에 있는 3기의 능이란 뜻으로
조선 11대 중종의 두번 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조선 12대 인종과 인성왕후의 효릉,
그리고 조선 25대 철종과 철인왕후의 예릉이 있다.
이외에도 세자의 묘인 3기의 원(소현세자의 소경원,
의소세손의 의령원, 문효세자의 효창원)이 있다.
일본 강점기 때
전국의 왕실가족 태실과 왕자 왕녀 후궁들의 무덤을
서삼릉 경내로 옮겨와 집단 태실과 분묘군을 조성했다.
의령원 등 일부는 광복 후에 이장한 묘다.
서삼릉은
예약 없이 관람할 수 있는 지역 (희릉, 예릉, 효창원, 의령원)과
예약해야 관람할 수 있는 지역(효릉, 태실, 왕자와 왕녀묘, 후궁 묘, 회묘)
그리고 비공개지역인 소경원이 있다.
개방하는 것이 추세인데 왜 그럴까???
희릉(조선 11대 중종의 두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능)
예릉(조선 25대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
서삼릉 입구 광개토왕비가 있는 너른마당
광개토왕비 (廣開土王碑)
中國 吉林省 集安市에 있는 비석.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의 훈적(勳績)을 기리고
그의 사후 왕릉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왕이 죽은 지 2년째 되는 해인 414년 9월 29일에
아들인 장수왕(長壽王)이 세웠으며,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걸쳐 고구려의 영역확장 과정과
그 사회상 및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를
보여주는 내용들이 담겨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비는 각력응회암(角礫凝灰岩)의 석질로,
높이, 너비가 6.34×1.3~2.0m 가량 되며
무게가 37 ton에 이르는 거대한 4면(面)에 글자가 새겨진 비다.
(자료; 한국고고학 사전 2001 참조)
언젠가 선교회에서 중국 연변으로 비전트립 하던 중
압록강에서 멀지 않은
길림성 집안의 광개토왕비를 찾아갔다.
일행과 같이 프랑카드를 앞세우고
단체로 기념사진을 촬영했더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공안들이 와서 프랑카드를 압수하고
현지 가이드가 불려가 조사받는 적이 있다.
단순한 방문기념 사진일 뿐인데
그만큼 중국이 한국인들에게 민감했다.
여기 음식점 주인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나 보이는 실물 크기의 복제본이다.
저 크고 무거운 비석을 현지에서 만들어 운송해 왔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