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청 아카데미
인간의 경계에서. 포스트-휴먼과 인간에 대한 물음 1: 유전자 혁명
김재현(계명대)
들어가며
통청 아카데미에서 4주간 강의하게 된 것은 처음입니다. 4주간의 시리즈 강의를 구상하면서 포스트-휴먼과 인문학을 연결시키는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3주간은 오늘날의 변화하는 상황에 관해서 소개하고, 마지막 1주간에는 내 생각에 그러한 상황에 유의미한 철학인 하이데거 철학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4주차에는 하이데거의 <휴머니즘 서간>을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이 시리즈는 친구와의 사소한 대화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정보에 민감하고 빠른 한 친구는 “재현아 우리 앞으로 한 500년만 살자”고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그 말은 그저 농담이 아니고 내가 앞으로 3주간 소개할 상황을 미리 알고 했던 농담이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신학을 공부한 신학생이었는데, “만약 과학이 영생을 준다면 난 과학을 믿겠다”고 말해서 충격을 주었습니다. 고전적인 철학과 신학에 몰두했던 나는 이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프랑스의 미래학자 도미니크 바뱅의 『포스트휴먼과의 만남』과 만나고 말았습니다. 이 책은 “Post-Human 1세대를 위한 안내서”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변화된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상상력을 동원해서 재미있게 그려준 책입니다. 그 때부터 유전자학, 사이보그학, 나노학의 세 분야가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론 인문학을 연구하는 내가 이러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외에도 뇌과학과 인공지능에 대한 공부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유전자학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유전자학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교양 과학서는 『이기적 유전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서 과학적 교양에 조금이나마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이 책을 잘 보완해 줄 수 있는 책은 『이타적 유전자』라고 우리말로 번역된 책입니다. 『이타적 유전자』의 원제는 ‘덕의 탄생’입니다. 이 책은 『이기적 유전자』 2부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을 많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기적 유전자를 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앞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지구의 생물체는 그들 중의 하나가 진실을 이해하기 전까지 30억년 동안 자기가 왜 존재하는가를 모르고 살았다. 진실을 이해한 그의 이름은 찰스 다윈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도 어느 정도 진실을 느끼고 있었지만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일관성있고 조리 있는 설명을 한 사람은 다윈이었다....저명한 동물학자 심프슨(G. G. Simpson)은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문제(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답하고자 하는 1859년 이전의 모든 시도들은 가치 없는 것이며 오히려 그것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점이다.
과연 도킨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진화론만이 인간의 기원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체계일까? 이런 의문을 품은채 도킨스의 주장을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자.
이어 도킨스는 진화의 과정에 대해서 다른 학자들과 토론하는데, 진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개체의 이익이 아니라 종(또는 집단)의 이익이라는 모든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유전자에 의해서 창조된 기계라고 주장한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사람과 기타 모든 동물이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성공한 시카고의 갱단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유전자는 치열한 경쟁 세계에서 때로는 몇 백만 년이나 생을 계속해 왔다. 이 사실은 우리의 유전자에 특별한 성질이 있다는 것을 기대하게 한다. 이제부터 논의하려는 것은, 성공한 유전자에 기대되는 특질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의 이기성은 보통 이기적인 개체 행동의 원인이 될 것이다.
영상감상 - 지구의 형성
생물학자나 화학자는 30~40억 년 전에 해양을 구성하고 있는 원시 수프(primeval soup)가 있었고, 거기에서 생명이 창조되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있는 아미노산이나 유기물들은 아마도 해안 부근의 말라붙은 물거품이나 떠 있는 작은 물방울 속에 국부적으로 농축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다시 태양으로부터 자외선과 같은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결합하여 더 큰 분자가 되었다. 여기에 놀랄만한 분자가 <우연히> 생겼다. 도킨스는 그 분자를 “자기 복제자”라고 부른다. 자기 복제자는 원시 수프 속에 있는 여러 구성요소들을 자체의 순서에 의해서 결합할 수 있고 사슬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개체이다. 복제자가 태어나자마자복제자의 복제물들이 해양 속에 빠른 속도로 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복제 과정을 추론할 때 복제 과정이 완전하지 않아 오류가 생길 수 있다. 도킨스는 이러한 복제과정의 오류가 오히려 개량을 불러 일으켰고, 그것이 생명진화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최초의 자기 복제자의 자손인 DNA 분자는 인간의 가장 정확한 복제 기술에 비해 놀랄 정도로 정확하기는 하지만 그 DNA 분자까지도 때로는 오류를 범한다. 도킨스는 진화를 가능케 한 것은 결국 이와같은 잘못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며 아마도 최초의 자기 복제자는 더 많은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진화란 자기 복제자(오늘날의 유전자)가 오류를 막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네로 생긴 일이다”
또한 이 잘못은 누적된다. 그 결과 원시 수프에는 “선조”는 같으나 형태를 달리하는 몇 개의 “변종 자기 복제자”들의 개체군으로 가득 채워졌다. 도킨스는 이들이 <장수>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리고 같은 시공간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산성>으로 향하는 진화의 경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다음의 요소는 “경쟁”이다. 지구의 크기가 한정되어 있기도 했지만, 원시 지구에 자기 복제가 늘어나면서 구성요소 분자는 그것이 진귀하고 귀중한 자원이 될 정도의 속도로 사용되었을 것임에 틀림 없다. 이러한 상태에 이르자 그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발생했다.
자기 복제자의 변종 간에도 생존 경쟁이 있었다. 자기 복제자는 스스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고 그 때문에 고민하지도 않았다. 이 싸움은 아무런 악의도 없이 또한 아무런 감정도 없이 행해졌다. 그러나 그것들을 분명히 싸우고 있었다. 잘못된 복사나 경쟁 상대의 안정성을 감소시키거나 새롭고 더 높은 수준의 안정성을 갖게 하는 복제 오류는 모두 자동적으로 보존되고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량의 과정은 누적되는 양상을 보였고 자신의 안정성을 증가시키고 상대의 안정성을 감소시키는 방법은 점점 교묘해지고 효과적으로 되어 갔다. 그 중에 상대 변종의 분자를 화학적으로 파괴하는 방법을 <발견하여> 방출된 구성요소를 자기의 복사 제조에 이용하는 개체도 있었을 것이다. 이들 <원시 육식자들>은 먹이를 얻음과 동시에 경쟁상대를 배제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최초의 살아 있는 세포가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닐까?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용기, 즉 계속 존재하기 위해 운반체까지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는 자기가 사는 생존기계(survival machine)을 축조한 것들이다. 최초의 생존기계는 아마도 보호용의 외피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더 우수하고 효과적인 생존기계를 갖춘 새로운 경쟁 상대가 나타남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와같은 환경 속에서 생존기계는 더 커지고 더 정교해졌으며 이 과정은 누적되고 전진적이었다.
40억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속에서 고대의 자기 복제자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가? 도킨스는 “그것들은 절멸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과거 생존 기술의 명수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 바닷속을 떠다니는 자기 복제자를 찾는 것은 헛수고이다.
오늘날 자기 복제자는 외부로부터 차단된 로봇 속에 안전하게 거대한 집단으로 떼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 경로를 통하여 외계와 연락하고 원격 조정기로 외계를 조작하고 있다. 그것들은 당신 안에도 그리고 내 안에도 있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걸어 여기까지 걸어왔다. 이제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것들의 생존기계이다.
우리는 생존기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동식물, 박테리아, 그리고 바이러스를 포함한다. 지구의 생존기계의 총수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심지어 종의 총수마저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곤충만 하더라도 대략 300만종이다.
생존기계는 종류에 따라 외형이나 체내 기관이 매우 다양하다. 문어는 생쥐와 전혀 닮지 않았으며 이 둘은 참나무와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그것의 기본적인 화학적 조성은 오히려 균일하다. 특히 그들이 갖고 있는 자기 복제자 즉 유전자는 박테리아에서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모두 동일한 종류의 분자이다.
우리는 DNA의 생존기계이다. 그런데 자기 복제자는 다종 다양한 기계를 만들어 이용하고 있다. 원숭이는 나무 위에서 유전자를 유지하는 기계이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유전자를 유지하는 기계이다. 심지어 독일의 맥주잔 받침에도 유전자를 갖고 있는 보잘 것 없는 벌레가 있다. 이처럼 DNA는 매우 이상한 일을 하고 있다. 만약 최초의 자기 복제자 = DNA가 아니라면 생존 기계는 후기 생존단계에서 DNA에게 패배했으며 오늘날의 생존기계에는 최초의 자기 복제자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으므로 최초의 자기 복제자는 완전히 파괴되었을 것이다. 케언스-스미스(A. G. Cairns-Smith)는 우리의 선조인 자기 복제자가 유기분자가 아닌 금속이나 점토의 작은 조각 같은 무기 결정체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어찌되었든 오늘날 DNA는 생존 기계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
DNA = 뉴클레오티드(necleotide)라는 소형분자의 사슬이다. “이중나선”, “불멸의 코일”로 되어 있다. 큐클레오티드를 구성하는 단위는 단지 네 종류밖에 없다. A, T, C, G가 그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들이 연결되는 순서이다. 인간의 G 구성단위는 모든 점에서 달팽이의 G 구성단위와 같다. 그러나 한 인간의 구성단위의 서열은 달팽이의 서열과 다를 뿐 아니라 같은 사람 사이에도(차이가 큰 것이 아니나) 다르다.
DNA는 우리 몸 속에서 살고 있다. 그것은 몸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세포에 분포해 있다. 한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 수는 평균 약 10의 15승개이다. 그 세포 모두에는 그 사람의 신체의 완전한 DNA 사본이 포함되어 있다.
세포 - 빌딩
염색체 46개 속의 유전자
핵 - 책장 염
색
체
DNA는 중요한 두 가지 일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복제이다. 즉 DNA 분자는 스스로 사본을 만든다. 이 작용은 생명 탄생 이래 쉬지 않고 계속되어 왔으며 DNA 분자는 이 점에서 매우 우수하다. 성장한 인간은 1015개의 세포로 되어 있는데 처음 수정되었을 때에는 설계도의 원본 하나가 들어 있는 한 개의 세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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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당시 |
--------------복제-------------→ (1→2→4→8→16→32→…………→1015) |
성장한 인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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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세포 |
1015개의 세포 |
DNA는 단백질의 제조를 간접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단백질을 만드는 것은 몸을 만드는 것과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그 방향으로 가는 작은 첫걸음이다. 단백질은 몸의 구조를 구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포 내의 화학적 과정 전반에 예민한 제어 기능을 발휘하여 정확한 시간, 정확한 장소에서 화학적 과정의 스위치를 선택적으로 켰다 껐다 한다. 이와같은 과정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유아의 발육에 연결되는가 하는 문제는 해결되는데 몇 십년 아니 몇 백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유전자는 인체의 제조를 간접적으로 제어하는데, 그 방향은 엄밀히 일방통행이다. 이것은 획득 형질이 유전되지 않음을 뜻한다. 생애에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어도 자식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각 각 새로운 세대는 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몸은 유전자를 불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유전자가 이용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배 발생을 제어하는 사실은 진화론에서는 중요하다. 부분적으로는 유전자가 장래 자기의 생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의 자연 선택은 생존 기계를 잘 만드는 자기 복제자, 즉 배 발생의 제어 기술이 뛰어난 유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 점에 관하여 자기 복제자는 예전처럼 변함없이 의식적이거나 의도적이지 않다. 수명의 길이, 다산성, 복제의 정확도에 있어서는 옛날과 같이 맹목적으로, 그리고 불가항력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유전자는 선견지명이 없다. 그것들은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유전자는 다만 그저 있을 뿐이다.
최근 6억년 동안 자기 복제자는 근육, 심장, 눈 등과 같은 생존 기술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몇 번의 독립적인 진화가 있었다). 현대의 자기 복제자는 떼지어 사는 성질이 강하다는 것이다. 하나의 생존 기계는 하나만이 아닌 수십만이나 되는 유전자를 가진 하나의 운반체이다. 몸을 구성한다는 것은 엄청난 협동사업인 것이다.
이제 성(sex)을 생각해 보자. 유성생식에는 유전자를 섞어 붙이는 작용이 있다. 이것은 어떤 개체의 몸도 모두 유전자 하나의 단명한 조합을 위한 하나의 임시적 매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개체에 머물고 있는 유전자의 조합은 단명하지만 유전자 자체는 잠재적으로 수명이 매우 길다. 그것들이 밟는 길은 끊임 없이 교차하면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 한 개의 유전자는 세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개체의 몸을 통하여 살아가는 단위라고 생각해도 좋다. 유성생식을 하는 유전자는 자기를 분리해서 배우자의 유전자와 결합하면서 생존하고 있다. 나의 유전 단위의 하나는 6촌 단위에 있을 수도 있고, 영국의 수상에게 있을 수도 있고, 내가 키우는 개에게 있을 수도 있다.
유성생식은 자기 복제가 아니다. 개체군이 다른 개체군에 의해 오염되듯이 한 개체의 자손은 성적 파트너에 의해 오염된다. 당신의 자식은 당신의 절반 밖에 안되고, 당신의 손자는 당신의 1/4 밖에 안된다. 몇 세대가 지났을 때 당신은 당신의 아주 작은 부분, 몇 개의 유전자를 가진 다수의 자손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개체는 안정한 것이 아니다. 정처 없이 떠도는 존재이다. 염색체 또한 트럼프 놀이의 카드처럼 즉시 섞이고 곧바로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섞인 카드 자체는 살아남는다. 바로 이 카드가 유전자이다. 유전자는 교차에 의해서 파괴되지 않고 단지 파트너를 바꾸어 행진을 계속할 따름이다. 물론 유전자들은 계속 행진한다. 그것이 그들의 임무이다. 유전자들은 자기 복제자이고 우리는 유전자들의 생존기계인 것이다. 유전자들은 지질학적인 시간을 사는 거주자이다. 유전자는 영원하다.
유전자는 노쇠하지 않는다. 유전자가 100만년을 살았다고 해서 100년 쯤 산 유전자보다 쉽게 죽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는 자기의 목적에 따라 자기의 방법으로 몸을 조정하며 몸이 노쇠하거나 죽음에 이르기 전에 그들의 몸을 차례로 포기해 버림으로서 세대를 거치면서 몸으로 옮겨간다. 유전자는 불멸의 존재이다. 오히려 불멸의 존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유전 단위로서 정의된다. 세계에 존재하는 개개의 생존 기계인 인간은 앞으로 수십년의 수명 연장이 기대된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유전자의 예상 수명은 10년 단위가 아닌 100만년 단위로 측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유전자는 백만년을 살 수 있지만 많은 새로운 유전자는 최초의 한 세대 조차 넘기지 못한다. 소수의 유전자가 그 고비를 넘기는데 성공하는 것에는 운이 좋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생존기계를 만드는데 뛰어난 것이다. 도킨스는 생존하기에 우세한 것은 이기적이라고 보며, “유전자는 이기주의의 기본단위”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서 노화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노쇠는 개체의 생애 동안 일어나는 복제 과정의 유해한 잘못과 다른 유전자의 손상이 축적된 것이라는 이론이 있다. 또한 메더워(P. Medawar)는 “늙은 개체는 그 종의 나머지 개체에 대한 이타적인 행위로서 죽는다. 왜냐하면 번식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늙어서 공연히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개체가 너무 늙어 번식할 수 없음을 가정하는 하나의 순환논법이다.
도킨스는 유전자를 우수한 유전자와 치사 유전자로 나눈다. 우수한 유전자는 생존에 성공한 유전자이다. 그 특징은 이기성이다. 그러나 성공한 유전자의 일반적인 특징은 생존 기계의 죽음을 적어도 생식 활동의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개체를 죽이는 유전자를 치사 유전자라고 한다. 반치사 유전자도 있는데 이것은 어느정도 개체를 쇠약하게 한다. 어떤 유전자나 생애의 한 특정 단계에서 몸에 최대의 효과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치사유전자와 반치사 유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늙기 전에 치사유전자는 생식활동때까지 활동하지 않다가 다수의 자손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나서 늙고나면 치사유전자와 반치사 유전자는 활동하게 된다.
언뜻 보기에는 유성생식보다 무성생식이 더 편한 것 같다. 초록 진드기와 느릅나무는 유전자를 섞지 않는데 우리는 왜 아이를 만들려면 자기의 유전자와 다른 누군가의 유전자를 섞어 붙여야 하는 귀찮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왜 성은 있는 것일까? 도킨스는 성이 있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개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성은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유전자의 생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성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성은 “다른 개체속에서 개별적으로 일어난 유리한 돌연변이를 개체에 모으기 쉽게 한다”보드머(W. F. Bodmer).
이제 인간을 살펴보자. 인간은 “유전자 기계”이다. 개체는 세포의 군체이다. 동물 유전자가 진화시킨 기관은 근육이었다. 도킨스는 뉴런은 컴퓨터에 비유한다. 뉴런은 컴퓨터의 트랜지스터에 비해 정교한 데이터 처리장치이다. 뉴런은 트랜지스터보다 정보처리 속도는 느리지만 과거 20년간 전자 산업계가 추구해 온 소형화라는 점에서는 많이 앞서 있다. 이것은 인간의 뇌에는 수십억 개의 뉴런이 있는데 하나의 두개골에는 겨우 수백개의 트랜지스터 밖에 넣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뇌 기계는 근수축과 제어의 작업을 한다. 뇌와 근육은 운동신경이라는 캐이블로 연결되어 있다. 뇌의 감각신경이라는 캐이블은 감각기관과 연결되어 있다. 진화 중에 감각 기관이 뇌를 통하지 않고 근육과 연결되던 시기도 있었다. 말미잘은 현재에도 이 상태에서 별로 진화하지 않았다. 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근수축의 타이밍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뇌가 필요했다. 주목할만한 진보는 뇌에서 <기억>이라는 것이 진화론적으로 발명되었다는 점이다. 디지털 컴퓨터에도 메모리가 본질적인 부분이다. 현대의 생존기계는 의식이라는 것을 발달시켜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전자는 스스로가 직접 인형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의 프로그래밍 작성자처럼 간접적으로 자기의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 또한 유전자는 프로그래밍을 작성할 때 어느 정도는 예측을 하고, 어느 정도는 도박을 한다. 또한 시행착오와 심지어는 시뮬레이션까지 한다.
뇌가 펼치는 드라마는 참으로 놀랍다. 뇌의 존재는 생존 기계가 결국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될 때 진화 경향의 극치로 치닫는다. 뇌는 생존 기계의 일을 매일 관리할 뿐 아니라 미래를 예언하고 그것에 따라 행위하는 능력도 있다. 또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하는 힘까지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가급적 많은 아기 낳기를 거부하는 것이 그에 해당된다. 이것은 인간에게만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유전자는 일차 방침 결정자이고 뇌는 집행자이다. 그러나 뇌가 다시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실제의 방침 결정을 맡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결국 유전자가 생존 기계에게 단 하나의 종합적인 방침을 지령하게 될 것이다. 즉 우리를 살려두는데 가장 좋다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라고 말이다.
영상감상 - <유전자 혁명 축복인가? 재앙인가?> 다큐멘타리
영상의 내용은 현재의 이야기입니다. 먼 미래에는 인간이라는 종의 경계를 넘는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그리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겪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인간을 트랜스 휴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과도기 너머의 존재를 포스트 휴먼이라고 합니.
나가면서
유전자학과의 만남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2주간 동안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미래와 더 만난 후 한 명의 철학자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