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학 :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통청 87주, 2011.7.13)

작성자이태호|작성시간11.07.13|조회수716 목록 댓글 0

 

첨부파일 통청 87주 Leibniz Monadology.hwp

통청 아카데미 87주 강의

라이프니츠의 단자론         


한국과정사상연구원   윤성학


1. 라이프니츠 소개

  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서양 수학사와 철학사에서 우뚝 솟은 존재이다. 그는 동시대를 살았던 Isaac Newton과는 별도로 미적분학을 개발했으며  적분기호와 미분기호를 포함하여 그가 만든 수학 기호법들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최초로 대량생산된 계산기를 발명했으며 2진법을 다듬어 모든 디지털 컴퓨터의 기초를 놓았다.

  철학자로서 그는 데카르트, 스피노자와 더불어 17세기의 위대한 합리주의 철학자였다. 논리적 분석적 철학을 견지하여 경험적 증거보다는 이성을 적용하여 선험적인 원리, 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유명한 그의 단자론은 그의 철학의 결론이며 모나드론은 그의 논리학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먼저 그의 논리학을 보는데, 그 자료로 현재 on-line 철학 아카데미의 원장으로 활동하는 이 정우 교수의 해설을 요약한 것을 제시한다.


2. 라이프니츠의 논리학

(monadology #31) 우리가 행하는 추론들은 두 근본적인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는 모순율로서 이 원리에 입각해 우리는 모순을 포함할 경우 위(僞)로서 그리고 僞에 대립하거나 모순될 경우 眞으로서 판단할수 있다

.

  “A는 A이다”는 즉자적 긍정인 동일율과 달리 “A는 非A가 아니다”라는 논리이며 A가 자신이 아닌 타자로 갔다가 되돌아와서 자신의 동일성을 다시 확인한다. 이것은 라이프니츠가 주로 분석을 통해 하나의 명제가 모순을 포함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논리적 필연성에 입각해 분석한 결과 “모순을 포함할 경우 僞로서 결정된다.” 그리고 眞은 거꾸로 僞에 대립하거나 모순될 경우 성립한다. 결국 모순이 진위 판별에 핵심적으로 기능한다.

 

monadology #32 또 하나는 충족이유율이다. 우리는 어떤 사실도, 그것이 왜 달리가 아니라 바로 그렇게 존재하는가를 설명해주는 이 원리가 없이는, 참인 것으로 또는 실존하는 것으로 판명될수 없으며 또 어떤 언표행위도 참될수 없다는 것을 알수 있다. 비록 우리가 이 이유들을 인식할수 없다 하더라도.

  

  충족이유율은 라이프니츠적 세계관, 형이상학을 압축하고 있는 중요 개념이다. 세계에는 과학적 의미에 있어 원인은 있을지라도 아무런 이유없이 그대로 존재한다는 입장과는 달리 라이프니츠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모든 일의 이유는 그 일을 겪는 monad속에 내속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충분한”이라는 수식어의 함축적 의미이며 “모나드는 자족적이다”말의 의미이다. H가 자살한 것은 그의 monad속에 주름잡혀 있었던 정보가 하나씩 풀려 직장의 갈등,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부족 등의 양상으로 펼쳐지다가 결국 우울증이라는 의학적 진단을 받고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 비극 속에는 과학적 인과를 훨씬 넘어서는 존재론적 이유가 있었다. 이 이유를 끝없이 분석해가면 결국 무한에 부딪치게 된다. “자연은 왜 DNA속에 그 개체의 압축정보를 저장하고 있어야 하는가?” 이 문제를 누가 답할 수 있는가?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와 “한 실체/주어의 모든 술어들은 그 실체/주어안에 있다” 라이프니츠의 “모든 참된 명제는 분석적이다”라는 표현은 참된 명제는 경험을 통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monad안에 함축되어 있던 것들을 풀어내는 것이다.

  이제 monad가 무엇인지 Leibniz의 Monadology 앞쪽으로 돌아갑니다 역시 이 정우 교수의 해설을 따라가 보자.


Monadology 1  여기에서 우리가 논할 모나드란 복합체들을 구성하는 단순실체 이외의 것이 아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부분들을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3. 모나드는 무엇인가?

  서구 철학에서 실체/실제는 “무엇”의 성격이 강하고 동북아 사유에선 道의 성격이 강하다. 이런 근원적인 물음에 라이프니츠의 답은 모나드이다. 현대어의 unity에 해당하며 그리스어에선 monas에서 유래한다. .monad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보다는 형상에 더 가깝다. 현대과학은 data와 법칙(가설 또는 이론)이라는 2원 구도로 되어 있는데 질료-형상 구도와 데이터-법칙 구도 사이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적인 어떤 측면이 데이터로 나타나고 데이터들을 일정한 형식으로 정돈한 것이 법칙이라고 보면 거시적 상응관계가 이해된다. 데이터와 법칙은 물질공간이 아닌 논리공간에 존재한다면 monad는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란 라이프니쯔의 표현이 이해가 된다. monadology #7에는 “모나드는 타자가 출입할 수 있는 창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실체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고 또 그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다”고 한다.   

 

Monadology 5    마찬가지로 단순실체를 자연적으로 탄생시킬 방도 또한 없다. 단순실체는 조합을 통해서는 형성될수 없기 때문이다


  모나드는 자연적으로는 탄생하지 않는다는 말은 신만이 모나드를 창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데모크리투스의 원자론 즉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연계의 원자(atom)와는 달리 창조주 신만이 창조하고 소멸시킬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영원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합리주의자나 영원한 것은 인간의 오성으로는 알 수 없다는 Emanuel Kant와 다르다. 모든 존재들은 어떤 하나 또는 몇 개의 것으로 환원된다는 환원주의도 거부한다.

  라이프니츠의 세계는 모나드들이 내적인 변화들을 하며 거대한 오캐스트라의 일원으로 자기 위치에서 지휘자인 창조주 신의 지휘에 맞추어 조화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중 가장 고급의 모나드인 인간의 영혼도 물론 불멸이다. 인간 영혼의 창조와 소멸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불교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행간의 의미를 놓칠 수 없는 점은, 신에 의한 창조나 소멸이 아닌 모든 창조나 소멸은 조합이나 해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Monadology 8∼13

Still monads need to have some qualities, otherwise they would not even be existences.

---I assume it as admitted that every created being, and consequently the created monad, is subject to change, and indeed that this change is continuous in each.

---It follows from what has just been said, that the natural changes of the monad come from an internal principle, because an external cause have no influence on its inner being.

---Now besides this principle of change there must also be in the monad a variety which changes. This variety constitutes, so to speak, the specific nature and the variety of the simple substances.

---This variety must involve a multiplicity in the unity or in that which is simple.


  질(quality)이란 물질성으로 나타나는 질들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논리적인 규정성이다. 개체는 이 규정성이 구현될 때 나타난다. 모나드는 물질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논리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정우 교수는 접힘과 펼쳐짐이라는 키워드로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를 설명하며 여전히 모나드론을 형이상학의 범주에 넣는다. 필자는 좀더 구체적으로 모나드를 컴퓨터 공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data와 논리회로의 설계가 그것이다. 이를 더 확장시키면 영화 매트릭스에 전개되는 a universe as a matrix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노 미세공정의 발전이 한계에 부딪쳐서 양자컴퓨터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고 있다. 전번 통청발표에서 보았던 BBC 임사체험 비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인간의 뇌를 동시에 여러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로 설명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시사점은 “자연은 왜 DNA속에 압축된 유전정보를 보존하는가?”, “왜 인간의 뇌는 3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어야 하는가?”이다.

  창조된 monad는 변화되는 완성체(entelechy: It denotes realization as opposed to potentiality. In some philosophical systems, it may denote a force propelling one to self-fulfillment.)이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이다. a multiplicity in the unity는 “내적 복수성”이며 분석적 사유의 한계를 넘어 동양의 주역에서의 주요개념이라고 알고 있다. 예컨대 음양의 교차적 중층구조, 분석으로는 알 수 없는 생명이라는 실체를 설명한다.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현상으로 나타나는 monad는 라이프니츠가 철학에서 기계론, 주체 개념이 형성되던 시대에서 놀랍도록 탈근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까지 오면 monad론에서 지각(perception), 의식(consciousness), 느낌(feeling), 영혼(soul), 생명(life)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Monadology 14; 순수한 하나 즉 단순실체 내에 여럿을 내포 표상하고 있는 일시적인 상태가 바로 우리가 지각 작용(perception)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각작용은 통각 작용(apperception)이나 의식(consciousness)과는 구분되어야한다. 바로 이 점에서 데카르트 주의자들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즉 그들은 우리가 통각하지 못하는 지각작용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이들은 오직 정신들만이 모나드라는 것,동물들이나 다른 완성태들의 영혼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들은 潛存과 절대적 죽음을 구분하지 못했으며 또한 전적으로 분리된 영혼들이라고 하는 스콜라적 편견에 빠졌을 뿐 아니라 영혼들의 소멸 가능성을 긍정하는 의견으로 기울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라이프니츠에서 모든 모나드들은 상호적으로 지각한다. 인간이라는 주체와 인간이외의 대상이라는 이분법이 아니고 지각하는 두 모나드 사이에 능동/수동 관계가 있을 뿐이다. 꽃밭에서 장미꽃을 보고 있는 사람과 그 장미꽃 사이에는 이런 상호적, 능동/수동의 관계가 있다. 인간이 자기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각이 통각(apperception)이다. 꽃이란 모나드의 지각은 낮은 단계의 지각을 가지고 인간이란 모나드는 통각을 하는 고급의 모나드이다. 무생물이라고 부르는 나무, 물, 돌 등은  미세지각을 하며 절대적 죽음의 상태는 아니다. 라이프니츠의 미세지각은 의식이 떠오르기 전의 무한한 지각들, 지각의 무한소들이 있고 그래서 무의식적 지각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무의식이라는 개념은 라이프니츠에 기원을 두고 있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물질은 애초에 죽은 것으로 보고 삶과 죽음이 흑과 백처럼 대립한다. 반면 라이프니츠의 세계는 충만한 인간의 삶과 제로에 가까운 삶 사이에 무수한 위계가 있습니다.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이 이식받기 이전의 자기와는 전혀 다른 꿈을 꾸거나 이질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사례는 체세포에도 유전 정보가 들어있음을 말해주며 물질이 데카르트가 생각한 것처럼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사실이 제가 화장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화장은 인간 신체의 신비에 대한 모독입니다 아름답지도 않고요. 물의 육각 결정체가 인간의 감정에 반응하는 놀라운 사진들도 그 좋은 예가 된다.

 

Monadology 15;  The action of the internal principle which brings about the change or the passing from one perception to another may be called appetition. It is true that the desire is not always able to attain to the whole of the perception which it strives for, but it always attain a portion of it and reaches new perceptions.


  구조에 관련해서 지각이 있다면 생성에 관련해서 욕동(欲動 appetition)이 있다. 현대에선 욕구, 욕망이라는 표현이 낫다. 근대철학이 거의 관념을 둘러싸고 진행되었다면 라이프니츠는 욕동을 제시하고 스피노자는 정동(情動)을 제시한다. 욕동은 모나드가 계속 자신을 펼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확충한다. 모나드란 비물질의 자동기계이다. 기계란 오늘날의 유기체를 말한다. 욕동은 능동적인 형상의 힘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인간을 생물 화학적 컴퓨터라고 하고 있다. 의식있는 컴퓨터, 의식을 갖춘 로봇을 실현시키려고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Monadology 19 : 지각들과 욕동들을 가진 모든 것을 영혼이라 부른다면 모든 창조된 모나드들은 영혼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정은 단순한 지각 이상의 것이기에 나는 지각만을 가진 단순 실체들에게는 모나드 및 완성태라는 이름으로 충분하며 영혼이라는 말은 보다 분명한 지각을 가지는 동시에 기억을 동반하는 존재들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Monadology27 : 동물들을 촉발시키고 감동시키는 강한 상상작용은 이전 지각작용들의 크기에서 오거나 수(數)에서 온다.


  무생물은 미세지각을 가지며 병원에서 사용하는 심전도 그래프, 뇌파 그래프가 직선으로 나타나며 이는 죽음의 판정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직선처럼 보이는 것이 미세진동을 나타내는 미세지각으로 본 것이다.

  영혼 수준에서의 모나드에게 일어나는 지각은 “느낌‘의 수준이다. 의식적 지각에다가 기억까지 동반되면 그런 지각은 늘 일정한 느낌으로 발생한다. 가장 완벽한 기억을 가진 존재가 신이라면 물질로부터 신까지 존재의 등급을 매길 때 중요한 기준이 기억이다.

  monad는 논리공간에 존재하는 압축된 data의 측면이 있고 통각을 하며 기억장치를 가진 비물질적인 생명체라고 라이프니츠는 말한다. Hegel은 라이프니츠의 monad를 “상상할수 있는 가장 해괴한 실체”라고 비판한다. monad가 해괴한 존재가 아닌 현대과학에서 의미 있는 실체가 될 수 없을까요? 천재적인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Leibniz가 논리적 근거가 박약한 실체/존재자를 제시했을 리가 없다. 필자는 감히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Erwin Schrodinger가 그의 저서인 What is Life?에서 말한 비진동결정체(aperiodic crystal) 

  둘째, 신플라톤주의가 주장하는 astral body입니다.


4. aperiodic crystal

  슈뢰딩거는 유전물질이 분자라고 믿는다. 이 분자는 자신을 반복하지 않는데 이것을 비진동(주기)적 결정체라고 하며 이 때문에 적은 수의 원자로 무한히 많은 정보를 암호화할 수 있고 안정성을 유지한다. 그는 이 비진동결정체를 the material carrier of life, the most essential part of a living cell라고 보고 있다. periodic crystal만 다루어온 물리학자들에게 이 사실은 큰 흥미를 불러 일으켰고 그가 이책을 써서 결과적으로 분자생물학을 열었다. 이 비진동결정체는 Leibniz monad의 압축정보의 운반체이다.

  슈레딩거가 이 책에서 지적한 생명의 신비를 소개하면, “---living matter, while not eluding the laws of physics as established up to date, is likely to involve ‘other laws of physics’ hitherto unknown, which however, once they have been revealed, will form just as integral a part of science as the former. The main principle involved with ‘order-from-disorder’ is 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 according to which entrophy only increases. Schrodinger explains that living matter evades the decay to thermodynamic equilibrium by feeding on negative entrophy.”

“---life is not a closed system. The increase of order inside the organism is more than paid for by an increase in disorder outside this organism. By this mechanism, the second law is disobeyed. and life maintains a high order state.”


5. Astral Body

  The astral body is basically spiritual in nature which means that though it is referred to as a body it does not have any physical aspect to it. It is ether like substance that acts as a counterpart for our flesh body from which it separates. It is said to be composed of astral material and is in a way an exact duplication in terms of energy of the physical body that it represents.


  This body of energy is attached to our flesh body usually at the navel level through a silver cord. This astral body that is powered by the mind and thoughts contained within it is capable of travel to far and distant places and planes and this happens usually when we sleep.


  According to theosophy, an astral bond denotes a bond between the cosmic reservoir and the nervous system. Theosophy basically refers to religious speculations or speculation about the nature and characteristics of the soul based on a mystical insight into the nature of god. The astral being refers to or is basically an instrument of emotions, desires and passion and since it is basically an extension of the physical body and stretches beyond it; it becomes the medium through which these feelings are communicated.


  When people actually go to sleep or when they are under medications or under the influence of drugs or in case of accidents, the astral body is separated from the flesh body and this separation also separates the process of sensation to our gross body. Only on its return does our body feel any form of sensation including smell, pain etc.


  During the time the astral self is disjoint from the flesh body, though it is an exact copy or replica of the latter, it is more sensitive to thoughts, emotions, aspirations of the dead etc. It is basically experiencing feelings or sensations at a whole new level or plane that is not possible during the time the body is awake and connected to the astral being. That is why our dreams often seem unreal because we do not experience the occurrences in our dreams in the real life.


  Clairvoyants are said to be having the ability to attain the astral world and also can view the appropriate body. The astral being is basically in the form of different shapes representing the quality of thought and each of these thoughts cause vibrations which is seen in the form of colors. Thus clairvoyants are able to judge the state and extent of a man's development based on the appearance of his astral being.


  An astral body therefore is of high spiritual value and a topic many people are interested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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