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생애와 명언
공자의 생애 (BC 552 ~ BC 479)
"나이 열다섯에 학문의 길로 가기를 마음 먹었고, 서른에 이르러 세상에 나의 존재를 알렸으며, 마흔에는 어떤 일에도 미혹됨이 없었고, 쉰에 이르러서는 하늘의 뜻을 모두 알았으며, 예순에는 모든 일에 대해 순리를 알 수 있었고, 일흔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고 하였다.
----------------------------------
성이 공(孔)이고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이다. 노(魯)나라 즉 현재의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노나라의 대부(大夫)로 무용(武勇)을 떨친 바 있는 숙량흘(叔梁紇)이며 어머니는 안징재(顔徵在)라고 했다. 공자는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무사의 피를 받아 체구가 당당했고 보통사람보다 훨씬 컸다고 한다. 20세경에 결혼한 공자는 장자 이(鯉, 자는 伯魚)를 낳았으나 공자보다 일찍 죽었다. 기타 상세한 가정사정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공자는 회계 출납직인 위리(委吏)를 거쳐 목장 경영직인 사직(司直) 등으로 관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공자는 30세에 이르러 관리로서의 지위도 얻고, 학문적으로도 많은 진전을 보였다. 그의 명망은 차츰 천하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에 따라 그에게 배움을 청하는 제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그 수가 훗날 3천명을 넘어섰다. 36세 때 노왕 소공이 신하인 계씨에게 쫓겨나 제나라로 도망치는 일이 벌어졌다. 공자도 그의 뒤를 따라 피난하여 제(齊)나라에 갔다.
공자는 제나라의 왕 경공(景公)과 신하들에게 여러 모로 진리를 가르쳤다. 그는 그 곳에서 음악을 논하고 경공에게 정명주의(正名主義)에 입각한 정치 이상을 말하였다. 공자의 박학다식함과 고매한 인품에 매료돼 그를 흠모하게 된 경공은 그를 자신의 정치적 고문으로 기용하려 했으나, 공자의 높은 학식과 덕망으로 인해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꺼린 제나라 재상 안영(晏嬰)의 적극적인 반대로 좌절되었다. 46세 무렵 노나라의 중도(中都)의 재(宰)라는 벼슬에 올랐다. 결코 높은 벼슬은 아니었다. 52세 무렵에는 최고 재판관의 자리인 대사구(大司寇)로 지위가 올랐다.
공자는 나이 56세(B.C 497)에 모국인 노를 떠나 약 14년간을 두고 다른 나라를 방랑했다. 그간에 세차례 노에 돌아오기도 했으나 그의 방랑의 여정은 <상가(喪家)의 개>같이 불행하고 초라한 것이었다. 뿐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그는 수난까지 당했던 것이다. 송나라에서는 환태로부터 생명의 위협까지 느낄만한 박해를 받았다. 또 광(匡)이라는 지방에서는 양호(陽虎)로 오인되어 욕을 본 일도 있었다. 또 진(陳)과 채(蔡)에서는 먹을 양식이 떨어져 고생하기도 했다.
공자는 그의 이상인 인(仁)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하여 누구보다도 가장 덕있는 임금을 만나 그를 도와 천하를 바로잡고자 했다. 즉 바른 의미에서의 정치참여를 갈망했다. 그러나 끝내 그의 정치적 포부는 달성되지 못했고 현실개혁의 의도는 좌절되고 말았다. 이에 공자는 젊은이들의 교육, 미래를 짊어질 엘리트 즉 지식인들의 양성과 아울러 저술(著述)에 뜻을 굳히고 그의 나이 69세(B.C 484)에 다시 노(魯)로 돌아왔다. 현실참여와 정치개혁에 실패한 공자였으나 교육과 학문에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수천명의 제자들이 운집했고 학문과 덕행에 뛰어난 인재들이 속출했다.
공자는 참다운 인식(知)와 인류애(仁)와 불굴의 실천(勇)을 군자의 삼달덕(三達德)으로 가르쳤다. 특히 그는 하(夏), 은(殷), 주(周)의 문화전통의 집대성이라 할 시(詩), 서(書), 예(禮), 악(樂)및 역(易)을 재정리 재평가하여 정식 커리큘럼으로 채택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전통문화의 계승과 신문화의 창조를 이룩했던 것이다. 심술(心術)에 의한 내외일치(內外一致)를 달성한 성인이었다. 공자는 전통 위에서 새로운 창조를 주장했다.(온고지신 ; 溫故知新)했다. 그는 인간사회를 사랑(仁)으로 <한 집안(大同世界)>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어디까지나 <덕치교화(德治敎化)>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자는 노 애공(哀公) 16년(B.C 479) 74세로 서거했다. 따라서 그가 학문과 교육에 전적으로 몰두한 시기는 길지 못했다. 그러나 평생을 학문적 이상의 구현을 실천적으로 추구해 온 공자는 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는 학문의 개조(開祖)이고 도덕 윤리의 계발자이고 덕치, 교화의 선각자이고 또 학교 교육의 창시자이며 문화전통의 계승과 신문화 창조의 표본이기도 했다.
공자의 명언
‣ 자기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게 하지 말라. (기소불욕물시어인 ; 己所不欲勿施於人)
‣ 나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라. (극기복례 ; 克己復禮)
‣ 나를 죽이고라도 인을 이룩한다. (살신성인 ; 殺身成仁)
‣ 설혹 남이 알아주지 못한다 해도 노여워하지 않아야 군자라 한다.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 효도와 우애는 인을 이룩하는 기본이다. (효제야자 위인지본 ; 孝悌也者 爲仁之本)
• 때때로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 ;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오면 기쁘지 아니한가.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 有朋自遠方來 不亦 樂乎)
•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조문도 석사가이 ; 朝聞道 夕死可矣)
------------------------------------
▶ 현명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고,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것을 타인들 속에서 찾는다.
▶ 효자의 어버이 섬김은 살아서는 공경을 다하고, 봉양함에는 즐거움을 다하고, 병드신 때에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신 때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 지낼 때엔 엄숙함을 다해야 한다.
▶ 학문을 좋아하는 자와 함께 가면 마치 안개 속을 가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은 젖지 않더라도 때때로 물기가 배어든다. 무식한 자와 함께 가면 마치 뒷간에 앉은 것 같아서, 비록 옷은 더럽혀지지 않지만 그 냄새가 맡아진다.
▶ 학문을 아는 자는 이를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자는 이를 즐기는 자만 못하다.
▶ 총명하고 생각이 뛰어나도 어리석은 듯함으로 지켜야 하고, 공덕이 천하를 덮더라도 겸양하는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
용맹이 세상을 진동하더라도 겁내는 듯함으로 지켜 나가며, 부유함이 사해(四海)를 차지했다 하더라도 겸손함으로써 지켜야 한다.
▶ 친절하게 행동하라. 그러나 절대로 감사는 기대하지 말라.
▶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고, 제후가 참으면 큰일을 이루고, 관리가 참으면 승진하고, 형제가 참으면 집안이 부귀하고, 부부가 참으면 일생을 해로하고, 친구끼리 참으면 이름이 깎이지 않고, 자신이 참으면 재앙이 없어진다.
▶ 첫째, 젊을 때에는 혈기가 안정되니 못한 지라 색(色)을 경계해야 한다.
둘째, 장년에 이르면 바야흐로 혈기가 강한 지라 투쟁을 경계해야 한다.
셋째, 노년에 이르면 혈기가 이미 쇠한 지라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경계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손쉽고 성공적인 처세의 지름길이다.
▶ 진짜 결점은 자신의 결점을 알면서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 자신의 가난함을 부끄럽게 여기는 일이야말로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다. 오직 부끄러워 할 일은 가난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일이다.
▶ 젊은 시절은 일년으로 치면 봄이요, 하루로 치면 아침이다. 그러나 봄엔 꽃이 만발하고, 눈과 귀에 유혹이 많다. 눈과 귀가 향락을 쫓아가느냐, 부지런히 땅을 가느냐에 따라 그 해의 운명이 결정된다.
▶ 즐거워하되 즐거움에 빠지지 않고, 슬퍼하되 상심하진 말라.
▶ 자기반성을 엄중히 하고, 다른 사람을 꾸짖는 일을 가볍게 하면 남의 원망이 멀어진다.
▶ 일생의 계획은 어린 시절에 달려 있고,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달려 있다.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 할 일이 없게 된다.
▶ 이로운 친구는 직언을 꺼리지 않고, 언행에 거짓이 없으며, 지식을 앞세우지 않는 벗이니라. 해로운 친구는 허식이 많고, 속이 비었으며, 외모치레만 하고, 마음이 컴컴하며, 말이 많은 자이니라.
▶ 이익을 놓고 의리를 생각하고, 위급한 시기에 목숨을 내놓고, 오랜 약속을 평생토록 잊지 않고 지킨다면 완성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 엄격하고 모질게 자기 자신을 나무라면 나무랄수록 더욱 올바르고 너그럽게 남을 비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 여성은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한을 사기 때문에 다루기 힘들다.
▶ 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그 중 두 사람은 나의 스승으로 삼을 수 있다. 한 사람이 좋은 말과 행동을 한다면 그것을 배울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옳지 못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거울로 삼을 것이다.
▶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 사는 것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 벼슬자리가 없는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을 만한 능력을 근심하라. 자기가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알려질 수 있는 실력을 갖게 되기를 바라라.
▶ 보석은 마찰이 없이는 가공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시련이 없이는 완벽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 모욕(배신)은 잊어라. 그러나 친절은 절대로 잊지 말라.
▶ 무례한 사람의 행위는 내 행실을 바로 잡게 해주는 스승이다.
▶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벗이 없다.
▶ 군자는 스스로 재능이 없음을 근심하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않는다.
▶ 군자는 타인의 좋은 점을 말하고 악한 점을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소인은 타인의 좋은 점은 말하지 않고 악한 점만 말한다.
▶ 군자는 행위로써 말하고 소인은 혀로써 말한다.
▶ 나는 하루에 세 번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남을 위해 충을 다했는가, 친구와 사귀어 신(信)을 지켰는가, 배운 것을 남에게 전했는가 하고.
▶ 나라의 질서가 바로잡혀 있을 때에는 돈이나 지위가 없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된다. 그러나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돈이 있고 지위가 높다는 것이 수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