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도 로시(Aldo Rossi)는 1931년 밀라노에서 출생하여 밀라노공대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수생활을 하였고 1960년대 대학투쟁에
관여되었다. 1971년에 밀라노를 떠나 취리히로 옮겨 수년간 스위스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1975년부터는 베네치아 건축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유럽 건축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신합리주의의 대표적인 건축가로 1968년 이후 그의 이론과 여러 프로젝트들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건축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로시와 오스발트 마티아스 웅거스(Oswald Matis Ungers)로부터
시작된 오늘날 신합리주의 경향은 기능주의에 대한 해답이라고
할 수 있다.유럽의 합리주의 건축가들은 구조와 미학의 기능적 진부성과 일상적 경험에 대하여 반기를 들고, 건물 형태를 위한 새로운 의미를 되찾으려고 애를 썼다. 이 새로운 의미는 지난날의
독재주의, 전체주의적 건축과 관련지어 불합리한 평을 듣기도 했다.
로시는 건물 형태의 원형탐구에서 건축의 공상적 내용을 찾았다. 그는 '건물(집)이 무엇인가'라는 원래의 착상으로 되돌아감으로써 그가 설계한 건물 형태를 정립하였다.
로시는 근원적 구성방법으로 향하는 관념에 접근하였다.
기능주의자가 전문화된 목적에 적응을 시도한다면, 합리주의자는 대부분 그 상응성의 결과를 중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특별한
경우에 정확한 적응성과 규범을 원할 것이다.
전자는 적응성, 관련성, 혼동에 의한 비율규정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역시 자발성, 자각, 연출, 형태에 관한 것이다. 기능주의의 진부함에서 빠져나와 거장으로 향하는 길은 점점 더 고전적 근대주의에서 멀어져갔다. 즉, 로시의 합리주의는 점차로 독자적이고, 또 새로운 스타일이 된 것이다.
로시는 1923년에 발행된 아돌프베네(Adolf
Behne)의 책 <기능적인 현대건물(Dermoderne zweckbau, the Function
Modern Building>을 소개했으며 1973년 제15회 밀라노 건축제에 로시는 <Architettura
Razionale>라고 하는 건축과를 설립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로니학교(1960∼1970)>, <세그라테 시청사 광장과 분수(1965)>, <성 사바지역의 트리에스테 중학교(1968∼69)>, <성 카타르도의 묘지· 모델(1976)>,
<보르고의 산장과 파빌리온(1973)>,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정문(1980)> 등이 있다.
로시의 건축은 유추적이다.
한 인간의 침전된 기억, 역사의 단편, 서지학적인 지각, 연극의 무대, 실상과 허상 및
이미지와 현실세계 등이 혼합되고 그것이 로시가 갖고 있는 유추의 회로를 거쳐서 건축으로 형상화된다.
기억의 회로를 거친 건축, 그것이 생의 공간이든 죽음의 공간이든 간에 그의 건축은
영원의 부재가 주제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