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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볼 스파게티 38 - 두더지

작성자잇빨중사|작성시간23.09.20|조회수275 목록 댓글 2

 

 

 

 

 

 ‘갑자기 참.’

 ‘고병 향기가 은은해. 아니면 상급 교육을 받았든가.’

 ‘상급...’

 ‘깡통 아니면 밥풀.’

 ‘긴데, 고병이 정확히 뭡니까?’

 ‘니들이 내 얼굴이 늙어 착각하는데, 나 동난 출신 아니야. 내가 인민군이랑 싸운 군번으로 보여? 그랬으면 내가 대대 아랫동네 있겠냐? 내가 사고 치고 강등당한 동난이라고 구라 푼다며! 나는 동난 출신들에게 기리빠시 당하고 산 사람일 뿐.’

 무엇으로 기미를 보았을까.

 '고병! 오래될 古 병졸 兵. 고참이란 뜻이다. 인민군하고 싸운 늙은 깡통들한테 못 들어봤쓰? 육니오 때 썼던 말이야. 그 당시 고병은 살아남은 고참이란 뜻도 된다이가. 기 때는 첫 전투에서만 살아남아도 고병 시작이야. 동트면 다 죽었거덩. 전쟁 때 고참이란 살아 있는 사람 아이가? 신병이 죽은 고참 얼굴을 아니? 보니? 누가 설명해주니? 난 다른 뜻의 고병이 되었지. 사고. 전장터도 아닌데 총알이 난무하는 사고. 사람 하나 총 맞는 거 눈 깜빡 안 한다. 나도 쐈으니까. 대충 간이 되냐?'

 '넵.'

 '니 사수가 찾는다. 무전기 졸면 총살이다. 간다.'

 

 다가오는 구렁이 냄새가 누군지 안 봐도 안다.

 '봐라. 전사한 사람을 앞으로 누가 말 꺼내는지. 금기다. 아무도 안 말해서 신병은 최근 전사한 사람 모른다. 너, 가까운 전우가 전사한 사람은 원래 요 시찰 대상이거든? 대가리 삔또 나갈까 봐... 아쎄이들은 무서운 거 보면 눈깔이 눈깔사탕만 해지는데, 어제부터 유심히 보니 넌 변화가 없어. 집이 백정이니? 푸줏간 해? 혹시 그래?'

 '아닙니다.'

 '고병이 그렇거든. 포탄 낙하해서 엎드려 헉헉대지만 놀라진 않아. 고병은 자기가 죽을 때만 놀란다. 닝기리 씨빠빠 좆까는 소리는 여기서 접고 준비, 대충 쎄밀히 해라. 이젠 너도 책임이 생겼다. 군대가 시팔 아는 만큼만 아는 것이라지만, 난 아직도 니가 어떤 놈인지 모르겠어. 그래도 니가 뭣 짓을 벌이면 내가 가만 안 둔다는 거 보이나?'

 '......네.'

 '넌 지금 책임은 가졌는데 위도 아래도 없다. 이제 책임이란 놈을 알게 될 거다. 책임이라 함은 잠잘 시간이 사라졌단 뜻이야. 눈 감고 누워도 영화는 계속 상영되고 생각의 조명이 안 꺼진다. 그게 소대장 중대장 선임하사들이다. 넌 어제와 오늘이 달라. 조심해. 이 몸이, 이 녹슨 깡통들이 우스워 보여도 혼~또니 야마 돌면 뒷끝 풀 칼라 기레이로 아리가또 해드린다. 월남이 아니라도 군대에서 사람 하나 파리 목숨이다. 군부대가 얼마나 좋아냐. 묻을 데가 많아서. 내가 여기 없어도, 여기서 사라져도 월남 내내 괴롭히는 거 일도 아니다. 어떤 씨부랄 탱탱 콩이 널 조준하면 땡이야. 기껏 살아도 연본에서 너 귀국 박스 잘근잘근 씹어줄 거다. 귀국선 승선 전에 홀딱 벗겨서 네다바이 턴다. 집 나간 정신 있으면 원대 복귀시켜. 깡통 같은 새끼.'

 

 

[깡통 계급장 : 부사관의 과거 명칭은 하사관, 하사관은 원사가 없고 상사가 최고 계급이었다. 상사 계급 위에 별을 달면 주임상사로 하사관 최고 계급이라 하겠다. 박정희 정권이 하사관 계급장을 개편하기 전에는 노란색 금속 계급장이었는데, 오지나 전방에 근무하는 하사관들이 계급장을 분실하거나 진급 명령이 떨어졌는데도 계급장을 못 구할 경우, 통조림 깡통을 오려서 노란색 안감을 계급장으로 임시방편 만들어서 생긴 별명, 혹은 머리가 비었다는 하사관 비하 슬랭. V-자 모양 하사관 계급장을 빗대어 ‘갈매기’ 같은 비속어도 있었다. 깡통이나 갈매기나 결론은 좋게 부르는 것이 아닌 ‘그런 놈들’. 월남전 당시 미군도 장기 부사관을 ‘종신형’으로 부르는 슬랭이 있었다.]

 

 

 “너 뭐야. 다마네기 깠냐? 눈가 촉촉해지냐?”

 

 30분 전과는 다른 가늠자 가늠쇠.

 초점을 풀어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를 찾는다.

 대체 작전 나와서 움직이는 검은 걸 쏘지도 못하고,

 보지도, 볼 수조차도 없다.

 고국 대폿집에선 콩, 콩, 떠드는데 뵈긴 뭐가 보여.

 

 “소댐, 섬하삼, 저 산을 꼭짓점으로 이삼백 메다 부채꼴 정찰 통보. 더는 절대로 넘어가지 말고 복귀해서 보고하랍니다!”

 “작전은. 작전은.”

 “말은 없는데, 계속 가고 변경 사항 없어 보입니다.”

 

 진동하던 콥다가 날아가자

 푸른 하늘의 고요가 지배한다.

 

 “1분대! 아니, 아니, 3분대!”

 “저도 가겠습니다.”

 “찌그러져!”

 

 무엇이 표류한다

 자기 마음을 다 안 하면 누가 인간인가

 아무리 똑똑한 놈도 적당히 모르기에 인간이다

 똑똑한 학자도 주둥이와 좆으로 실수 좀 해야 인간이지

 뭐가 세다. 뭐가...

 모든 고민은 타인에게서 유발되어 자기 자신으로 맴돈다

 

 너른 들. 심심하면 걸었다. 내가 모르는 곳이 나오는 신기함으로. 지금에서야 이렇게 말하지, 그냥 아무 할 것도 없어 그랬을 수 있다.

 갈대숲도 있고, 농가도 있고 소도 키우고, 배고프면 산딸기 가지도 있고 무도 파서 먹었다. 물이 없으면 앞니로 무 껍질을 벗기면서 차갑고 달콤한 무를 먹었다. 그냥 먹기 좀 그런 가지도 먹다 보면 그럭저럭 맛이 든다. 상큼한 특유의 생 맛이 있다. 가지는 다 자란 것이 아닌 적당히 어린 것을 먹어야 좀 달다. 딸기는 손댈 수 없었다. 그건 상품처럼 보였다. 그런 느낌을 서리했다가는 정말로 두들겨 맞는다.

 친구들과 콩밭에서 긁어다가 구워 먹기도 했지만, 단체로 하는 서리는 좀 양심의 가책이 있었다. 그리고 혼자 가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냥 집을 나서서 가는 거다. 중간에 들개를 만나기도 하고, 종종 죽은 동물도 본다. 갈대밭을 가는데 뭐가 움푹 패여서 보니 털 무더기. 살이 없고 거죽과 뼈만 남았다. 무슨 동물인지도 모른다. 뱀이야 자주 봤다. 동무들은 그걸 또 잡아서 나무에 묶어 말려 죽이고 그랬는데, 나도 손으로 잡고 했어도 시작부터 뱀은 징그러웠다.

 어제 요만큼 갔다면, 다음에는 더 간다. 더 멀리 간다. 그것이 도전인지는 모르나, 그저 갔다. 물가도 건너고, 도랑도 지나고, 야산도 넘고. 늦게 와서 해가 져도 아무도 뭐라지 않았다. 그 시간이 나에게 유일한 평화였던 것도 모친은 알았지.

 가도 가도 새로운 것. 새로운 곳.

 누가 보고, 저 애는 뭐야, 어디 애야... 눈빛을 봐도, 행색이 그러하니 저 어디 농가에서 왔구나? 뭘 훔치러 온 놈 같지는 않아. (사실 그런 지역 동네에서 훔칠 것도 없다. 배를 채우는 정도.)

 걸었다. 한산하고 조용하고 때론 적막하고, 그러면서 터득한 것은, 나중에 도시도 가봤으나 시골에서 터득한 것은, 뭔가 알 수 없는 느낌이 있다는 것. 혼자 있기에 마음이 깊어져서 그런 건지, 어떤 동물이 나를 봐서인지, 조용해서인지, 바람에도 의미가 있어 보이고, 풀에도 나무에도 의미가 있어 보였다.

 하여간 묘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던 것 같아. 기분이 묘~~~해.

 그건 날씨하고도 연관이 있어 보여. 너른 들에 혼자 가는데 날씨가 크지.

 가장 좋을 때는 말끔한 잔디가 깔린 산소에서 한동안 앉거나 누워서 푸른 하늘을 보고.

 여름에는 이런 행보가 힘들었다. 가고는 싶으나 해가 너무 뜨거워서 가다가 가다가 그늘을 찾아 헤맨 게 된다. 중간에 물을 먹지 않으면 힘들다. 논이 가까운 냇가는 농약 때문에 먹질 못했고, 산이 좀 있어야 남에게 얻지 않고 마실 수 있다.

 걷다가 비가 내리면 난감하다. 소나기면 다행인데, 진짜 비를 만나서 두어 시간을 비 맞으며 걸어온 적도 있다. 친구들과 같이 가기도 했지만, 기억의 다수는 나 혼자였다. 난 혼자가 무섭지 않았다.

 집 근처 사람들은 내가 멀리 들로 가도 관심 없었다.

 마을을 떠나면 마을이 얼마나 안전하고 평안한 곳인 줄 느낀다. 내가 모르는 곳을 가면 모든 것이 변화무쌍하고 시시각각 변하며, 혹시... 자연도 생각하는 존재가 아닌가? 날 낯선 이방인으로 버려두기도 하고 반가워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마을의 언저리와 길을 벗어나는 것이 무서웠다. 남의 땅을 침범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점차 그만두게 된 계기가 있다.

 나는, 전쟁의 증거들을 보았다.

 굳이 입으로 말해 떠올리고 싶지 않다.

 전쟁의 증거는 집 안에도 있고 집 밖에도 있었다. 마을에도 있었다. 특히 다리나 뒤꿈치에 총알을 맞아서 절며 걸어가는 나이 많은 아저씨, 할아버지.

 내가 마을 밖 대지를 가볍게 볼 수 없었던 건,

 어쩌면 그 자연도 화약과 폭탄의 슬픔이 아니었는지.

 자연도 생명체라면 어느 동종의 생명체끼리 서로 죽이겠다고 자연을 마구 파헤치고 상처를 주었다. 아주 뒤집어엎었다. 자연 자신은 살상이 없었다. 그런 생각 의도가 없었을 거다. 나무가 태어나고 죽는 건 ‘자연스럽고‘, 벼락을 맞아서 나무가 명이 끝나도 ‘죽었다’ ‘죽였다’ 말할 수 없다. 태어나고 죽는 건 자연에서 그야말로 자연스럽다. 그 안의 동물도 어쩌면 마찬가지다.

 

 간다고 하지 마오

 간다고 하지 마오

 나를 두고 간다면

 내 마음은 아프다오

 

 쓸쓸한 밤하늘에

 홀로 섰는 달같이

 나만이 남아서

 외로워만 지네

 

 사람이 얼마나 주어진 상황에 녹아버리는지, 누구나, 여기 누구나 원래 군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군인으로 생각하고 군인으로 움직이고 군인 외의 생각을 잊었다. 군인 외의 생각은 생활에 안 좋다. 그러면서 자신이 진정 군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다. 그러나 이 무리는 군인이며, 무리별로 명칭이 있고, 너와 나는 그 소속이다. 그 소속이 무엇을 하면 철저하게 따른다. 따르지 않는 것이 군법에 저촉되기 때문만이 아니다.

 열에 들어갔고, 그 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흔히들 탈영. 그건 굉장히 어긋나는 행위. 불법 행위. 내가 나를 버리는 행위 같다. 누구나 똑같은 말을 했다. 조금만 참아라. 곧 고참 된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고 편해진다... 탈영하는 사람은 속으로 모자란 사람이거나 참지 못하는 사람, 열을 벗어난 좋지 않은 사람으로 본다.

 우린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날 생각도 못 한다. 길을 간다. 하라면 한다. 결정은 내가 아니라 위에서 한다. 위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렸으리란 생각 따위 없다. 위의 결정은 명령이다. 그것은 당연처럼 내려오는 것이고, 안 하면 어긋나는 것.

 가끔, 제대하는 사람이 애써 허탈함을 감추는 걸 봤다.

 이 열이, 이 무리와 소속감이 없어지는 거다. 이렇게 사람을 조련해놓고는 갑자기 나가라는 것 같다. 병사들은 물론 제대 명령을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러나 막상 닥치면 이상하다. 제대가 가까운 고참들은 밥도 잘 안 먹고 내무반에 누워서 한숨 푹푹 쉬고 담배만 피운다. 난 그게 사회 나가서 먹고 살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그냥, 그냥 허한 것이다. 저 들에서 더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것처럼, 그런 가벼운 두려움처럼, 나를 둘러싼 변화가 생소하고 이질적인 것. 사람을 세뇌해 놓고 갑자기 나가라. 그렇다. ‘갑자기’ 같다. 제대 날짜 전역 날짜를 기다렸지만, 막상 닥치면 이질적이다. 아직 군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지. 그때야 비로소 자기가 군인이었음을 실감하는 건 아닐까? 다수는 민간인이었으며 곧 민간인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난 이 시대의 평균이다. 6.25 세대의 자식 평균. 물론 잘사는 쪽 평균은 아니다. 그건 서울 이야기고. 지방 적당한 곳의 평균. 선대와 삼촌 외삼촌들은 무척 죽었다. 삼촌 외삼촌들이 결혼도 안 하고 많이 죽어서 우린 사촌이 적다. 군에 나가서 죽은 사람도 있고 소식이 끊긴 사람도 있다. 소식이 끊겼다는 건 죽었다는 거다. 전란 속에 사라져 영원히 나타나지 않는다.

 암울함. 난 내가 비극적이지 않다. 난 고통받는 사람이 아니다. 그럭저럭 먹고 살았다. 난 어두운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전쟁 여파의 암울함으로 ‘사람들’이 그늘져 있었다. 이 집도 비극, 저 집도 비극, 새마을운동은 밤새 고통스러웠으니 일찍 일어나 단체로 비빌 하면서 노가리라도 까라는 거다.

 난 이 시대 평균이다.

 

 “야. 야. 쫑알쫑알 무전 뜬다.”

 “정지. 정지. 대기. 대기.”

 “통사, 빨리 키 잡아.”

 통사는 송수화기를 오른쪽 귀에 밀착하고 왼쪽 검지로 왼쪽 귓구멍을 막는다.

 “미나리. 미나리.”

 호출부호가 바뀌었나? 

 아니지. 주파수와 호출부호가 모두 바뀌지. 정말로 북괴군이 듣나?

 

 [감도 하나둘 하나둘. 당소 미나리 하나.]

 “야! 안테나 펴!”

 [후. 후! 하나둘 둘둘 셋둘 넷둘, 미나리 미나리 여기는 야채상. 오버.]

 [여기는 미나리 하나, 감도 둘. 송신하기 바람.]

 [야채상 송신. 태극기. 어머니. 노랑새. 어머니. 라이타. 이해 갔나?]

 [재송.]

 [태극기, 어머니, 노랑새, 어머니, 라이타. 이상.]

 [태극기(ㅌ) 어머니(ㅓ) 노랑새(ㄴ) 어머니](ㅓ) 라이타(ㄹ), 라는 소리인가? 접수.]

 [꼭 맞음. 꼭 맞음. 송충이 넷 김. 셋 소대 지휘조 앞으로. 복창.]

 “선임하사님. 피바다 병장을 부르는데요?”

 “줘 봐.”

 [야 이 새끼야 정신이 있어 없어!]

 [뭐야. 누구야. 이상...]

 [미나리 하나 깡통(계급장) 김.]

 [누구?]

 [갈매기 두 개. 죽고 싶냐? 없는 사람을 불러 이 새끼야.]

 [아...... 죄송. 깜빡.]

 [정신 있어 없어!]

 [죄송. 죄송.]

 

 [두더지라고?]

 [정확함. 두더지조 호출.]

 

 "넌더리 나네 씨발. 뵈는 건 없고 사람만 죽고." 

 

 

 

 

 

 

 

https://www.youtube.com/watch?v=EVcpKjXYa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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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롤랜드 | 작성시간 23.09.20 터널을 저런식으로 표현하니..
    통사 아무나 못하겠네요.
    나같으면 으더터지기 일쑤였겠는데..
  • 작성자한군 | 작성시간 23.09.20 인생사 같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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