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마지막 다리 7-2 욕망자에게 세상은 링이다

작성자잇빨중사|작성시간24.11.20|조회수137 목록 댓글 0

 

 

 

 아, 훈련도 열심히 했어.

 치고 빠지고 도는 게 좌우로 균등하다. 어느 쪽으로 돌지 감추고 있다.

 아, 알았다!

 지난 게임!

 그거 봤구나!

 저 코치가 나를 두고, 얘 지금 과거 그 애가 아니다. 조심해라. 이거 한 방으로 완전히 갔다. 그거?

 그런 일 종종 있다. 동양이나 세계 챔프를 도전하는 사람이 실 게임 좀 쉬었을 때, 적당한 사람 불러다 챔프 도전 인사처럼 평가전이란 경기를 열었다. 한국에선 수준 균등한 선수를 부를 수도 없고, 불렀다가 ’내가 이 새끼를 잡고 (동양/세계) 랭킹 잡아 먹자!‘ 큰일 날 수도 있다. 선수 레벨 서로서로 다 알기에 너무 낮은 선수를 부를 수도 없으니 주로 동남아를 불렀다. 누가 평가전에 동남아 선수를 알아보고 분석하나. 그저 그 나라 랭킹만 (낮은 거 확실히) 보고 부르는 것인데, 가끔, 자기가 왜 팔려왔는지 알면서도 한국 선수에게 질 수 없다고 눈깔 뒤집고 나오는 애들, 그러다 정말 걸려서 개 피 보는 경우 있었다. 무명을 불렀는데 크린히트 맞아서 다운되거나 심하면 관계자 모두 경악케 하는 KO 패.

 

 지난번 내 카운터 조심하는구나?

 퍽.

 ‘아, 씨, 맞았다. 똑같은 거 맞았다. 연타 조심. 가드 틈을 내서 정확히 봐. 호흡. 호흡. 똑바로 봐.’

 

 ”30초! 30초!!!“

 

 이거 진짜 왜 이러지?

 이 자식도 겁이 나긴 났나보다. 그게 컸구나. 녀석은 내가 무섭지 않은데 코치가 하도 강요를 한 거다. 이건 오늘의 메인 이벤트. 체육관에서 하는 경기도 아니고 프로모터가 붙은 체육관 경기. 랭킹 한참 낮은 나. KO는 상상도 안 하겠지만 내 카운터에 가벼운 다운이라도 하나 당하면 개쪽인 거다! 오! 알았어!

 

 헉. 또 하나 들어왔다.

 

 쓰러질 기대는 안 하지만,

 두세 대 먹였는데,

 생각보다 대가리가 묵직하진 않다.

 

 ”스탑. 스탑. 브레익. 브레이크.“

 공을 못 들었다.

 심판의 벌어지는 양팔을 보고 알았다.

 근데 공이 울렸고 심판 수기가 끝났는데 한 방 더 맞았다.

 마우스피스 문 입이 웅얼거린다.

 ”아, 씨...“

 녀석이 눈을 거두지 않는다.

 ”뭐...“

 뭐. 뭐. 어쩌라고. 화가 나면 실력으로 해봐. 펀치로 해봐. 성격 좋다고 공인된 프로야구 선수가 삼진 같은 거 먹고 들어와서 헬멧 던지고 때려 부수는 거. 심하면 야구 배트로 때려부수는 거. 그런 기분이 이런 거다. 뭐 어쩌라고 하지만 방법이 내가 때리는 수밖에 없다. 근데 안 된다. 불쑥 불쑥 이게 글러브가 없고 맨주먹이면! 생각이 들지만 길거리 싸움도 아니고 방법이 없다. 이 새끼를 때려죽이고 싶어도 못 때려죽인다. 가장 허망한 게임이 상대 펀치가 세지도 않지만 정말 많이 맞고 그로기로 못 느끼고 판정으로 질 때다. 그렇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로 지면 아무도 말을 않는다. 언급 안 되는 게 가장 비참하다.

 ”뱉어. 뱉어.“

 ”아.... 씨...“

 ”삼키지 마. 입만 행궈. 야, 왜 안 돌아. 왜... 좌우로 섞으라고. 몸 안 풀렸어? 봐. 봐. 지금 니 라이트가 이렇게 머리 옆으로 빗겨 맞아. 알았어? 각을 아래로 줄여. 잽부터 약간 하향으로 다 조정해. 키 차이가 없는데 왜 각이 죽어. 쟤가 숙이면서 들어붙는 거 알면서 왜 허공으로 빗겨 맞냐고! 몸 안 풀려? 몸이 굳었어?“

 진심.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끝은 보인다. 반복되기에 비극이다. 반복되지 않는다면 나에게 안 좋은 사건일 뿐 비극이란 단어는 없었다.

 아무 정보도 안 흘렸지만 운동 열심히 했다. 딴딴하다. 지난번에 비교해 더 묵직하다. 맞을 때마다 살짝 살짝 아프다. 아니, 내가 지한테 쓰러졌는데 내가 뭐라고. 원래 도전자가 변경되어 열받아서 나한테 화풀이 하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내가 쓰러질 게 자명하다. 녀석 눈은 변함없다.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린 한국의 그런 레벨 선수, 1라운드 후반이라도 살짝 숨이 짙어진다. 1라운드는 긴장해서 힘이 든다. 그게 풀리면 오히려 원래 체력이 올라온다. 심한 애들은 경기 전에 이미 체력을 쓰고 올라온다. 며칠 전부터 잠도 못 자고 먹히지도 않는 약한 멘탈. 나 그 정도는 아니다. 컨디션 나쁘지 않다. 근데 뭐가 몸을 묶은 듯 찌뿌드하다.

 ”봐. 보라고. 이 새끼야.“

 ”네.“

 ”너 지금 모르지?“

 ”네?“

 ”너 정타 세 번 맞았어. 갈 줄 알았어. 안 갔어. 오늘 왜 그러냐? 지금 내가 농담하는 거 아니다! 맞고도 버텼어. 니가 목살 키운 효과냐? 그런 펀치 맞은 애들 다 쓰러졌거든. 너 버텼어. 저쪽 코치 얼굴 보니까 난감해. 이거 이상한 거야. 넌 그 서너 대 약간 걸렸다 생각했지? 제대로 걸린 거야. 너 버텼어. 봐. 멍했어?“

 ”아니오.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상하네? 은하수 안 보였지?“

 ”아니라니까 진짜.“

 ”묵직하긴 해?“

 ”지난번보다 더 무거운 거 같은데요.“

 ”근데 은하수는 안 보여?“

 ”아. 니. 라. 고. 요.“

 ”그래? 그럼 좀 까볼래?“

 ”휴......“

 ”안 가면 까야지.“

 ”정말 맞받으라고요?“

 ”다는 하지 말고. 이번 라운드 마지막 30초만. 할래?“

 ”예.“

 ”시계 보여?“

 ”잘 안 들어와요.“

 ”그럼 내가 전에 작전대로 원! 투! 쓰리! 이걸로 알려줄게.‘

 “예.”

 “원. 투. 쓰리. 반복하면 30초 남은 거다?!”

 “알겠습니다.”

 “일단 이번 라운드 초반에 맞아보고 1라운드와 똑같으면 날 봐. 알았지?”

 “네. 알아쓰.”

 “이 새끼 오늘...”

 고장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고?

 “하여간 보자. 바디는 어때?”

 “바디는 안 쳤는데 대가리가 그리 안 무거워요. 바디도 비슷할 거 같은데. 이번 초반에 몇 대 쳐볼게요. 아까 한번 리버에서 살짝 헉, 정도 그랬습니다. 바디는 전보다 강하지는 않아요.”

 “물렁한 정도는 아니고?”

 “모르겠어요. 하여간 대가리는 가벼워요.”

 “니가 맞은 바디는?”

 “묵직한데 죽을 정도는 아닙니다.”

 “아려?”

 “살짝.”

 “살짝? 쟤가 오늘 컨디션 별론가?”

 “아니 씨. 나한테 할 말이오?”

 

 “이거 잘못하면 시간 싸움으로 갈 거 같아서 말이야.”

 

 경기가 파워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보니 시간 싸움이다? 이대로 가면 그물에 운신의 폭은 줄어들고 코너에 몰릴 것이며, 그건가?... 글쎄. 아닐 수도 있는데?

 얘가 더 강한 건 맞다.

 ‘하지만.’

 처음 붙었을 때와 비교는 안 된다. 모르겠다. 시간도 흘렀고 나도 빤찌 내성이 생겼나 모르겠다. 이 녀석과 처음은 전에 없이 아프고 아리기까지 했다. 짱돌을 쥐고 때리는 거 같았다.  지금은 모르겠다.

 정확히 말해 아니다.

 지금 이 생각이 가능한 건 지난번 경기 때문이다. 쓰러질 것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버티고 있다? 버티자 질 것은 당연해도 두 번째 다운은 안 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다. 녀석은 100%는 아니라도 날 밀었다. 2/3 정도 끝장 볼 푸쉬를 했다. 다만 1라운드에서 완전해 보내려다가 힘 빼는 거 경계하는 수준? 어쩌면 저쪽 코치가 1라운드 너무 힘쓰지 말라고 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폭우는 폭우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버틴다기보다 막상 알았다. 묵직하고 강하고 아프지만, 정신없이 쓰러질 정도는 아니다. 전에 느꼈던 녀석 손에 쥔 짱돌은 안 느낀다. 쓰러져도 정신이 나갈 정도는 아니다. 지난번에 버텨서 그런가? 이게 정신적 맷집인가? 이 경기 안에서도 시간이 흐르며 적응되나? 이렇게 맞는 것이 내 몸, 내 머리, 내 뇌에 안 좋을 거 분명하다. 이렇게 맞는 건 문제 있다. 물론 나도 때리고 있다. 내 빤찌를 녀석이 어떻게 느낄진 모른다. 몇 번 정타가 들어갔을 때 숨이 탁! 헉! 끊기는 반응이 없었다.

 

 “세컨 아웃, 라운~~~~~~~투! Box!!!”

 

 “셋에한번은돌때중앙으로나가. 빠질때중앙으로너무안나가면결국코너에몰려!!!”

 

 빨리 걸어 나온다.

 돌진한다.

 2라운드부터 걸라고 전술을 정했나 보다.

 

 파고든다.

 힘들다. 힘들 거 같다.

 예전에 가장 어이없이 졌던 때가 나보다 기술도 빤찌도 모르랐던 초보였다. 나이도 어렸다. 하지만 기세. 한두 게임 경력의 애는 무조건 이기겠다는 마음이 눈에 번들번들했다. 난 웃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웃지 못했다. 링에서 on time 내내 마구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기분에 5초도 안 쉬고 밀고 들어왔다. 실력은 엉성했다. 그러나 내가 판정으로 졌었다. 기세가 무시무시했다. 코치가 다른 건 몰라도 밀리면 죽여버린다고 한 거다. 그리고 펀치보다 무서웠던 게 그 녀석의 생각 없는 버팅. 고의가 아니었다.

 기세. 2라운드부터 시작이었구나.

 “어딩! 어딩!” 

 나도 모르게 심판을 본다.

 “버팅 조심! 한 번 더 하면 경고 간다!”

 녀석이 끄떡끄떡.

 지금 30초 지났나?

 내 눈이 돌아가 찾는다.

 ‘관장님. 내 상태가?’

 관장은 나와 응시를 못 한다. 입은 벌어지고 오른손을 목에 두른 타월을 움켜쥐고 있다. 날 보긴 하지만 눈을 맞추는 게 아니라 전체 그림을 보고 있다. 관장들은 자기 선수가 때리고 있으면 양손이 타월 끝을 잡고 쉐도우복싱을 하고 – 맞고 있으면 몸을 멈추고 소리를 지른다.

 ‘조금 더 쥐고 있어야 할 건데?’

 

 퍽. 퍼퍽. 퍽. 좌우로 계속 들어온다.

 “잽 주지 마. 잽 주지 마! 아이 씨... 왼손 잽으로 밀어서 막어!”

 허리가 안 펴진다. 허리가 굳은 상태에선 때려도 큰 힘을 면상에 전달 못 한다.

 가드를 피해서 쑤시고 들어온다. 가드 빈 곳을 정확히 보면서 쑤신다.

 상당하다. 이렇게 맞고 머리가 정상일 수 있나? 불안하다. 그러나 부상 후유증 생각하면 어떤 운동이라고 할 게 있나? 못 한다, 못 해.

 ‘먹통은 아냐. 지난번보다는 정신이 있어! 똑바로 보고는 있어!’

 어깨 목 승모근을 강화했다고 몸의 맷집이 늘었나? 역시 모르지만 내가 뭘 판단하나. 생각할 틈 없다. 하지만 지난번 경험은 분명 작용하고 있다. 그렇게 맞다가 내가 순간 보냈다. 이러다 내가?...

 ”헉...“

 빠디. 빠디. 계속해서 들어오지만 숨이 끊기지 않는다. 효력 없다.

 눈. 너도 이제 아는구나.

 바디는 안 통해. 하나도 안 아파.

 ‘이게 끝이 아니잖아. 버티려고 경기하는 거 아니잖아. 가능해?’

 몸이 오그라들고 점점 받아치는 회수가 줄어든다.

 ”받아! 받아! 받고 돌아!!!“

 앞 경기를 이렇게 맞다가 내가 이겼으니까. 이 바닥에서 나름 유명해진 역전 KO였으니까. 내용이 좋게 끝나서 그런지 일종의 자신감? 하여간 죽을 정도는 아니다.

 ”돌아! 돌아! 크린치! 크린치!“

 아, 이제 알겠다. 질 때도 매달리지 않고 쪽팔리게 지지 않는 게 중요하구나. 관장 말이 맞아. 졌어도 미소 짓고 상대 코너에 가서 세컨드들에게 인사도 깍듯이 하고, 그게 다음 캐리어를 위해서 정말 필요한 거였구나. 이미지. 그 이미지는 KO 됐더라도 얼마나 빨리 회복하는가도 중요했구나. 동영상으로 다 찍히는 세상. 심판이 승자 손을 들어줄 때 멀쩡해야 한다. ‘아 재수 없어.’ 침뱉는 인상은 다음 경기에 중요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심판 손을 잡고 당당하게 서야 하고, 내 손이 안 올라가도 멀쩡한 상태여야 한다. 아니면 난 영원히 씹힌다. 은퇴할 때까지 좆밥으로 보고 달려든다. 그 마음가짐이 자신감으로 둔갑해서 내가 이길 놈한테도 기 빨로 눌린다. 그래서 충격적인 TKO 한 번으로 선수가 은퇴하기도 하는 거지.

 알겠어.

 넌 조심하고 있구나.

 지금 너에겐 지난번 게임 내 이미지가 있어.

 

 ”실력도 뻥카드와 운이 필요한 거야. 그렇게 맞아도 버티고, 그렇게 툭 건드렸는데 KO가 나면 넌 그렇게 되는 거야. 그렇게 믿으면 정신이 나가지 않는 이상 버티고 이겨. 그 뻥카 이미지가 너에게도 세뇌가 되는 거야. 그래서 프로모터가 선수 키울 때는 계속해서 KO시켜버리도록 만들어주는 거야. 다만, 진짜 센 놈한테는 안 통하는 뻥카지.“

 

 ‘분명, 버틸 수 있다. 기절할 정도 아니다.’

 져도 몸과 머리만 아프고 멀쩡한 정신으로 진다!

 ‘이기고 싶다. 내 빠따로 가능할까? 그 정도는 아닌가?’

 그렇다고 지난번처럼 럭키 펀치는 희망이다. 관장 말대로 내가 KO를 내려면 완벽한 clean hit가 필요하다. 크린히트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필요하다. 이 단발머리는 쓰러진 적이 없다. 맷집이 어느 정도 공인된 핵빠따다.

 내가 정신을 잃을 정도가 아니라면?

 내가 안 쓰러지면?

 인생에 한 번은 기회가 오고 인생에 한 번은 슈퍼맨이 된다?

 시간의 싸움?

 링 밖에서 보면 너무 빠른 시간, 안에선 영원처럼 긴 시간. 그로키 상태거나 체력이 썰물처럼 빠진 선수한테는 1분이 10분 같다.

 관중의 환호가 들린다.

 누구한테 지르는 소리인가.

 잘 패는 선수한테인가 잘 버티는 나한테인가.

 

 ‘어 씨발.’

 정신은 멀쩡한데 모르던 것이 온다.

 뼈가 아프다. 광대뼈와 귓속이 아프다.

 ‘찡그리면 안 돼. 아파도 참아!’

 아프다.

 정말 아프다.

 이건 정확히 어디가 나간 거 아냐?

 고막 아냐?

 나중에 불치병 되는 거 아냐?

 

 ”돌아! 돌고 라이트! 돌면서 라이트!!!“

 

 ‘지금 이대로 기다려도 되나?’

 아무리 생각해도 참아야 한다. 링 밖에서 보면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참는가 하겠지만, 아주 미묘한 것들이 등장하고 흘러간다. 기다려볼까? 그런 순간이 나올까?

 찰나처럼 스쳐 나오는 것.

 때리다 지치는 기색이 나오는 순간,

 맞으며 참다가 한계를 넘어선 순간,

 같은 곳을 계속 맞으며 참다가 헉! 하는 순간,

 이거 안 되네? KO는 안 된다고 느끼는 상대 눈빛,

 니가 생각보다 뭐 있네!

 내가 생각보다 지치네!

 니가 생각보다 강하네!

 제대로 먹혔는데 왜 안 넘어가지?

 그리고 맨 마지막,

 [뭔진 모르겠는데 얘가 좀 달라지네. 달라졌어. 뭐지?]

 그럴 때 눈이 말한다.

 눈이 문장 서너 개를 말한다.

 그러다가 눈이 위장도 시작한다.

 눈빛과 호흡이 분명 달라지는 순간.

 링 위에서는 숨기는 것도 보인다.

 

 ‘쓰러지진 않아. 하지만 기회가 있어?’

 너도 좀 그걸 보여주면 안 되겠니, 단발머리?

 오늘 한 번만 보여주면 안 되겠니?

 나 죽이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운동했냐?

 

 하, 죽은 놈 자지 만지나, 들린다.

 ”맞받아. 그냥 맞받아버려!“

 관장님 뜻이 보인다. (이럴 거면) 맞받아쳐라. 물러서지 마라. 왼손 가드만 왼 턱에 붙이고  맞받아쳐!

 왜 저런 소리 하지?

 지금 녀석 펀치가 나에게 안 결정적이라고 느끼나?

 내가 데미지 안 먹는 걸 관장이 확실히 보고 있다. 관장이 가장 잘 안다. 저 자식 저거 맞고 왜 별을 안 보지? 오늘 왜 이러지? 진짜 맷집이 강화된 건가?

 내가 아냐 씨발.

 ‘맞받어! 받어!’

 

 어, 이 새끼가 잡네.

 심판이 양쪽을 밀어 떨어트린다. 이게 왠일이냐.

 ‘그러고도 지겠지. KO 당하는 놈이 균등하게 치고받는 거 1초도 경험 안 하고 지냐.’

 그 균형이 빨리 무너지냐 늦게 무너지냐 차이.

 모든 KO패 도전자도 1라운드 처음에 첫 방 맞았을 때는 버틸 수 있을 거 같지.

 ”떨어져!“

 

 ”시계! 시계!“

 관장!

 아, 마지막 30초!

 돌려~~~~~~~~~~!!!!!!!!

 

 약정한 건 3라운드.

 짜긴 짰는데 타이슨의 명언도 떠오르고.

 맞받아서 쳤는데 꿈쩍도 흔들리는 기미도 없다.

 멍하다. 점차 멍해진다.

 지금 누적되고 있나?

 모르겠다. 멀쩡한 것도 같고.

 ‘패턴 봐라. 패턴 봐라. 맞더라도 일단 봐라!’

 눈만 보지 말고 어깨 봐라. 자세히 주목해서 보면 그냥 뻗는 잽도 어깨가 작게 움찔한다. 내가 보는 패턴 타이밍과 어깨가 결합하면 진짜가 하나 나올 수도 있다. 그 진짜가 정확히 들어갔는데 이 녀석 발이 뜬 상태라면 크다. 크게 줄 수 있다. 호흡 끊기고 전환하는 때, 동작이 이동하다 한쪽 발이 떠 있을 때, 카운터도 그때 때려야 풍선이 뜬다. 그게 역방향까지 맞는다면 금상첨화. 그게 인생에 한 번 안 오는 놈 많다. 인생이 아니라 본인이 링에 올라 치른 경기 중이겠지? 스파링에는 되고 경기에 안 되는 게 문제.

 관장은 항상 그랬지. 우리나라는 스파링이 너무 신사적이라고. 관장은 겨울에 경기가 있어 태국 가서 훈련한 적이 꽤 있다. 이름난 체육관에는 서양인들도 많이 찾아오는데, 대표적으로 뜨거운 날씨에 땀도 잘 나서 부상이 방지된다. 그래서 백인도 동구권과 발칸반도 애들이 많이 왔다고. 그런 애들이랑 스파링하면 죽을 듯이 달려든다고. 본인이 느낀 것이 [스파링 때 많이 맞아봐야 경기에서 잘한다]. 우린 자존심 건 체육관끼리 스파링도 너무 신사적이라고. 서양 애들이 잘하는 이유는 스파링을 진심 KO 시키려고 한다는 거. 그래서 세계 챔피언의 스파링 파트너 중에 챔피언 된 사람도 많단다. ‘왜냐 세계 최강의 펀치를 매일 맞고 또 때리던 놈이니까. 뭐가 무섭겠어!’

 했다. 목도 강화하고 관장이 부른 애들과 살벌한 스파링 했다. 그게 도움 된 거 분명하다. 나는 이 새끼들이 나 대신 경기 나가도 될 정도인 거다. 낯선 상대와 스파링 몇 번 하고 알았다. 파트너로 부른 애들에게 주문한 거. ‘야, 내가 협회 사람들 부를 테니까 깨 봐. 봐주지 마. 죽여.’ 그렇게 날 곤죽으로 만들었다. 애들은 최선을 다해 날 뉘려고 사력을 다했고 – 난 단지 스파링이라고 생각했다가 후반으로 가면서 최선을 다해 싸웠다. 관장도 IQ가 꽤 높은 사람으로 단발머리 비슷한 스타일만 불렀다. 단발머리들만 아니었지. 심지어 단발머리 영상 틀어주고 비슷하게 하라고 했단다.

 왜 이렇게 이번에 나에게 걸지?

 내가 모르는 내가 있나?

 

 ”센터! 센터! 계속 들어가! 왜 그래!“

 씨발, 관중 다 듣는다! 에이...

 ”몰린다고! 그러면 몰린다고!“

 단발머리도 듣고 저쪽 코치도 듣는다! 씨발 진짜...

 지금 저 큰 목소리로 내가 모르모트처럼 잘 수행하나 보는 실험장이냐?

 ”그렇지! 그렇지! 주고 빠져!“

 아 좀 조용히 해! 정신 사나워!

 중년 래퍼 프로그램 없나. 팔아버리게!

 

 ”오펜 디펜!“

 오펜스에 이은 디펜스.

 복싱 기본. 오펜 디펜 = 치고 빠지고. 디펜 오펜 = 빠지다 치고.

 오펜 디펜이라고 공격한 다음 무작정 빠지진 않는다. 뒤로 빠지면서 바로 스텝 밟아서 칠 준비를 하는 것도 디펜스 오펜스다. 언제든지 전환되는 것. 연결해 패턴을 만들면, 오펜스, 오펜스, 디펜스, 오펜스, 디펜스, 디펜, 디펜스~~~~ 오펜!!! 치고 - 치고 - 빠지면서 막고 - 전진스텝으로 다시 치고 – 빠지면서 막고 – 또 막다가......큰 거 하나!

 오펜이건 디펜이건 중요한 건 발이 순간 이동해서 바닥에 딱 붙은 상태로 때리고 막아야 한다는 거. 발이 뜨면 결국 상대에게 밀린다. 정말로 뒤로 밀린다.

 단발머리 분석해서 맞춰주셨다. 그게 안 된다. 지금.

 일단 발과 다리가 느껴진다. 이거 무거운 거다. 컨디션이 좋고 잘 풀릴 때는 다리와 발이 신경 쓰지 않아도 날렵하게 전환되고 들어갔다 나온다. 주먹과 발이 안 느껴질 정도가 되면 ‘생각’이 곧 행동이 된다. 그러면 몸은 알아서 놔두고 생각으로 상대 틈을 봐 들어간다. 생각하면 몸이 곧바로 되는 거. 세계 급이지.

 내가 벌써 지쳤나?

 발이 무거운 건 아닌데 자꾸 느껴진다.

 ”바로 안 빠지니까 맞잖아!“

 이젠 별소리를 다 하네. 귀 막고 싶다.

 

 ‘내가 저거 하날 못 넘기나?!’

 

 사람이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누구나 한계가 있는가?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선수

 선수 대 선수

 동일 체급과 다른 체급

 

 여기선 막막해도 사바세계에선 대략 다 넘긴다.

 선수 세계에선 근 물빠따지만, 평민 빠따는 또 나에게 물이다. 185보다 길고 100이 넘게 굵은 애가 가오 잡고 도발했고, 헬스 철질 좀 했는지 쳐보라고 했다. 물살이 아니라 땡땡하고 이두가 어린애 머리 굵기다. 논 몸이 결코 아니다.

 딴에 어려서 무슨 운동 했는지 가만히 서는 건 아니고 가드 대고 피해 볼 테니 맘껏 쳐보라 했다. 구라가 아닌 진짜 그 거리 완 빠따라고 했다. ‘차량 주차 없지?’ CCTV 안 보이는 골목, 사람들도 빙 둘러서 구경하며 해보라고 재촉까지, 그나마 옅은 미소는 같이 있던 관원들. 항상 하는 말이지만 텔레비전이나 모니터로 보지 말고 체육관에 와서 샌드백 치는 걸 옆에서 보면 생각 달라진다. 와보고도 자기가 보고 있다고 지금 죽어라 때리는 거냐 그러지. 우린 아니라고, 원래 이 정도 친다고. 이렇게 3분을 기본으로 친다고.

 모르면 ‘니가 운동했다며?’ 개긴다.

 결론은 니가 운동하는 건 아는데 작다 이거였지.

 실제 싸움 확률보다 벌크의 세상 아닌가.

 ‘해봐. 어여 해보드라고.’

 ‘그럼, 가드 잡고 막아 보던지. 니 책임이다?!’

 가드. 무슨 가드? 저게 가드?

 텅텅 빈 공간.

 1.5초에 석 대 광대뼈에 빠바박 꽂았다.

 당연히 넘어갔지.

 그런데 링에선 쓱빡 맞추기 힘들다. 대가리가 같은 자리에 1초도 없다. 죄다 빠르다. 크린히트 힘들다. 항상 돌고 위빙하고, 때려도 턱으로 흘려버린다. 안 맞는 고수들. 나조차도 날 의심했던 그 덩어리보다 작은데 빨라서 잡을 수가 없다. 똑같은 펀치를 꽂아도 안 넘어간다. 기술적으로 맞아서 파워를 경감시킨다. 턱을 맞아본 경험이 많다. 턱 맞아도 어리둥절한 게 없다. 그게 서민과 차이.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며 안 맞고 대미지 완화하면서 정확히 내 턱을 치니 도는 거다.

 ‘얼굴은 반반한데 실력이 왜 그러니. 연습용이냐?’

 자고로 얼굴 뺀질뺀질한 사람을 수상하게 여기는 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날 수상하게 본다. 내 전적이 쌓일수록 난 얼굴만 깨끗한 사람이 되었다.

 얼굴이 깨끗하면 안 맞고 때렸단 소리. 정말 잘하는 사람은 얼굴이 깨끗하다. 잘생기지도 못 생기지도 않은 무난한 인상, 그 이미지 믿었다간 좆된다. 턱, 입술, 눈탱이 붓지 않고 매번 경기 끝내는 선수들이 있다. 말해 뭐하나.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지. 복싱은 안 맞고 잘 때리는 놈이 챔피언이다. 제대로 맞으면 누구나 넘어갈 수 있지만, 선수가 유명해져서 치르는 게임은 생각보다 적다. 그 게임에서만 피하고 안 맞으면 유리턱도 모르고 선수 생활 끝난다. 한 번 맞고 쓰러지면 들통, 그때부터 동네 밥 된다. 내 얘기다.

 운동의 목적이 선수 대 인간? 그건 원래 없는 거다.

 사람 팰 목적으로 나오는 사람은 곧 사라진다. 우린 사람 패는 게 아니라 경기에 이기고 싶은 거다. 똑같은 놈들과 싸워서 이기고 싶은 거다. 사람 팰 목적으로 오는 사람 적다고 할 수 없지만, 남은 사람들은 운동 자체가 좋아진 사람들. 운동 끝나고 샤워하면 세상 후련하고 자신감도 생긴다. 땀을 쥐어짜면 번뇌도 주춤한다. 그러나 시합에 도전하면서 선수가 된다. 그러다 아마와 프로의 기로에 서면 갈 데까지 간 것.

 관원들 모아서 조직 만들었으면 중타 이상은 간다. 하지만 다수가 충돌하면 뒤엉키고 잡힌다. 깡패 중에도 고수는 상대의 운동 종목을 알고서 대처한다. 몇 대 맞을 생각하고 바로 붙어서 잡는다. 이겨도 맨주먹에 이빨 나가면 돈 잔치다. 체육관 가서 글러브 끼고 하자고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깬값과 합의서 국가.

 가끔은 운동이 날 이도저도 아닌 날 만든 거 아닌가 의문한다.

 

 ‘언젠가 한 번, 끝날 때까지라도 기다려야 할 때가 있어. 기미가 보여. 분명히 올 것 같아. 틈이 보여. 그런데 못 기다려. 기다린 놈이 판정으로 질 때도 있지만, 끝까지 기다린 놈이 딱 한 방으로 그림을 완성하기도 해. 럭키 펀치가 아니라 정말 계획한 게 마지막 라운드 공 울리기 전에도 일어나. 그런 경기가 원래 KO 날 때까지 존나 재미 없지. 기다리는 거야. 안 휩쓸리고 자기 (준비한) 것만 하는 놈 상대하면 정말 힘들어. 이러다 걸릴 거 같지. 하지만 치고받다가 흥분해. 욕심, 화, 본능에 지는 나, 상상 이상으로 넘어서려는 욕심, 그거 넘어서면 사람에게도 좋지. 참고 참다가 조용히 해결하는 놈이 없는 자들 사이에 갑이야. 세상과 사람은 차분히 해결하는 걸 방해해. 그거 넘어서 봐.’

 

 눈.

 날 툭툭 치면서 코너로 녀석 어깨.

 종이 파쇄기처럼 거친 호흡을 무는 마우스피스.

 칙칙 뱉는 호흡과 함께 상하좌우로 날아오는 글러브.

 상대 글러브가 스폰지처럼 느끼면 기본은 되는 날,

 고구마나 감자로 맞는 느낌이 들면 위험한 날,

 고구마 감자가 돌덩이가 되면 정말로 위험한 날.

 오늘은 또 새롭다.

 이게 강한지 약한지 모르겠는데, 결론은 강하다.

 맞아본 것 중에서 처음, 지금까지 가장 강한 것!

 

 점점 소리가 사라진다.

 내가 데미지를 먹었나.

 

 ‘엇......’

 

 사물이 왜곡된다.

 어...... 걸렸다.

 정확히 뭐였는지 모를 정도로 세다. 맞은 순간이 증발하였다. 시각이 굴절 왜곡으로 어지럽다. 모든 게 정확히 안 보인다. 걸렸다.

 다리. 다리! 발바닥 다리 허리 느껴! 쓰러지지 마! 가드 턱에 꽉 대! 버텨. 다리로 버티면서 몸을 흔들고 정신이, 왜곡된 시각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공이 울릴 때까지 버텨!

 등에 닿는다. 로프다. 로프가 내 높이, 그 높이를 다리에 힘을 주어 다리를 펴서 솟구쳐 버틴다. 안 쓰러진다. 난 안 쓰러질 거다.

 가드 완전히 박고 웅크려 버텨라.

 눈. 봐라. 봐야 펀치를 맞아도 흘릴 수 있다. 날아오는 펀치 반대 방향으로 흘려라. 맞으면서 돌려서 흘려라. 배는 안 아프다. 리버샷 정확히 세 번 맞았는데 아무 징후 없다. 몸은 괜찮다. 스트레이트였는지 훅인지 기억이 안 난다. 잠깐, 지금 2라운드야?

 

 ”... 쓰리! ... 포! ....파입!,,,“

 

 현실과 모두 반대인 몽상을 꿈꾼다. 내가 바라는 여자들을 마주쳐서 그날 나에게 넘어오고, 선수로써 강력한 빠따가 생겨서 모두 날 무서워하고 쓰러지고, 어디 산에 묻어 있을 사람들에게 잊힌 돈다발이 나에게 날아오고, 바라는 물건들을 무리하지 않게 모두 사고, 근사하고 적당한 집을 사고, 음... 그다음 뭐 없나? 뭐 없어?

 ...... 없어.

 이게 문제야.

 나는 나 이상의 뭔가가 없어.

 먹고 싸는 거 이상의 꿈이 없어.

 내가 신이라도 뭘 배팅할 만한 놈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 하나에게 또 뭘 더 바라나.

 

 ”......쎄븐 ..... 에잇! 오케? 오케?“

 

 대체 내가 정말 바라서 꿈꾸는 건 뭘까.

 내가 바란다는 게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거 빼고 사실 있어?

 

 ”내 눈 보라고!“

 

 이름도 내 게 아니야.

 

 

 

 

 8편으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