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지 10년도 넘었지만 나도 부모님 세대도 아직도 국민학교 국민학교 한다. 어린애들 학교 운동장이 열려 있어도, 그 시간이면 동네 양아나 오토바이 타는 애들 아닌가. 집합 공고부터 난리구만. 누가 주동했지? 나에게 들은 바로는 사고자보다 나이 어린 동기 남자놈들 같다. 군대 말로 건수 잡았다. 그 녀석 중 하나가 압구정 근처 오피스텔 산다. 소굴에 모였다가 집합시키겠단 거지? 거기 모여서 시간 나면 밤에 헌팅 나가는 것도 안다. 모모 방송사 공채는 꽤나 먹힐 거다. 빛 좋은 개살구.
(나도 한번 했다. 오피스텔 구경 갔다가 저녁이나 먹자고 나가서 어린 동기가 옆 테이블 근사한 규수들 엮어서 합석했다. 쪼인 분명히 됐고 난 빠졌다. 초등학교 체육교사란 여성 몸매가 정말 근사했던 기억만 난다. 쪽수가 남아서 연로한 내가 빠졌다. 한 선배가 그랬다. 나이트에서 화려한 애들 찾지 말고 헌팅은 평범한 사람들이랑 하라고. 이 계통 오래 가려면 은행원 선생님 공무원 만나라고. 배우자에게 백수 옥바라지 뒤집어씌운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그러나 현실은 이 화류계 사람들도 화류계와 결혼한다고 생각하는 건 내 착각인가?
“내가 여자는 빼라고 했거든. 전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
“......”
“......”
지금 입을 열어서 토 달 수 없다는 거 안다. 이런 상황에서 사적인 마음 밝혔다가 그 말 돌면 더 문제란 거 아니까. 나도 비슷한 상황에 직감으로 깨달았었다. 군대나 학교나 편하게 말하라는 선배는 그 선배일 뿐이다. 한 명이 전체 선배들을 대변한다는 생각으로 말조심, 공통 생활의 특징이지. 어린 나이는 같아 보이는데 살짝 적응된 느낌? 연극영화과 출신인가?
“하이구 증말...”
“괜찮습니다, 선배님.”
“정확히 말해 봐. 진짜로 정확히 말해야 해. 기수 상견례 말고 이런 집합 몇 번 있었어? 숨김없이 말해봐. 비밀 누설 아니니까.”
눈치 본다. 뭐가 있었어도 안 가서 모른다. 얘들도 선배 기수에 나이 많은 부류를 안다. 나이 많은 부류가 젊은 부류에게 일정한 입김도 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거다.
눈동자가 똘망똘망.
“두, 번.”
아 나 이 새끼들이 진짜. 저희가 뭘 당했다고. 얘들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듣고 잊을게. 말해봐. 몽둥이 같은 건 안 들었지? 듣기 좋게 회초리라고 하자.”
눈동자 네 개가 더욱 똘망똘망.
“... 저희는 안 맞았어요. 손들고 있었어요.”
“(남자만 때리고 여자는) 무릎 꿇고?”
“네.”
여기서 내가 주동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안 된다. 동기 오메르타, 전체 기강이란 명목의 엿같은 미덕이다. 나도 안 지킬 수가 없다. 내가 후배들 앞에서 비판하면 내가 동기 애들을 무시하는 게 된다. 체계를 허무는 행동이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동기는 그렇게 다룰 수가 없다. 어린 애들도 명예가 있다. 군대 앞존법 비슷한 거다. 기수 전체로 말해 버릇해야 동기 어린애들도 명목이 선다. 후배 앞에서 내 동기 절대로 씹으면 안 된다. 동기 무시하는 최악이다. 그런 일 생기면 동기 형이라도 안 믿게 된다. 우리 반장은 그냥 놀러 다니고 관심도 없다. 기수방 나오면서 반장은 무슨 반장이냐고 짼다.
“알았어. 더는 안 물어볼게.”
어린 동기에게 화나도 후배 앞에서 표시하면 안 된다. 따로 만나서 말해야 한다. 대한민국 모든 계통이 이렇다. 어제 전화 받으면서 감은 잡았다. 주동자는 내가 안 친한 애들이다. 사람이 많다 보니 연수에서 처음 모이는 조가 친해지고, 그게 오래 간다. 학교도 OT 조가 평생 간다. K는 한 기수가 너무 많다.
‘이걸 어쩌지? 내가 강제로 취소시키면 애들이 가만있어? 말이나 들어?’
똘망똘망 눈동자. 아직 방송국 기대빨 안 빠진 눈.
오늘 현장에서 만난 기수방 기거자들.
“저, 근데요 선배님, 저 모르세요?”
“나? 내가?”
“선배님, 저 선배님 알아요.”
“전에?”
“네. 공연.”
“무슨 공연.”
“아가씨와 건달들. 극장-식구 오빠랑 같이 갔었는데.”
아이고 이런. 또 엮이네.
“같이 술 마셨어요. 사람은 많았지만.”
나 졸업하고 입학한 애구나. 그래서 말을 놓으라는 거였구나.
기억 안 난다. 술자리는 기억나는데 이 애는 본 것도 같으면서 모르겠다.
“내가 말 좀 편하게 할게. 이해해. 이번 집합은 나도 잘 모르겠어. 나도 어제 통화하다가 알았어. 내가 막는다고 편하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너희들 집합 이유는 알아?”
“네......”
“내가 할 말은 없고, 통화 다시 해보고 분위기 정말 아니면 내가 갈게. 하지만 이런 군기 너무 담아두진 마. 조금만 지나면 허례허식 쓸모없는 거 알게 된다. 우린 비슷한 입장이야. 하여간 군대처럼 나에게 너무 그러진 마. 어디 가서 번듯한 자식들인데 여기서 원래 그런다. 조금 참아. 우리 입장 금방 돼. 현장에서 잘 배워.”
“잘하시잖아요.”
호랑이 없는 산골에 도끼가 왕이냐.
“나 정도는 다 해. 하게 돼! 나 같은 사람 우러러보지 말고 관찰하고 배워. 기수, 집합, 그거 지나가는 거야. 알았지? 그런 거 한다고 눌려서 기죽으면 바보다.”
“네. 감사합니다.”
마치 드라마처럼 AD가 멀리서 나와 눈을 맞추고 온다.
”알았어. 파할 때 인사 안 해도 돼. 카메라 앞에서 사기 좀 치고 올게.“
피식피식. 참 예쁘구나. 나쁜 물 안 들길 바란다.
버스 차창에 머리 기울여 생각한다.
나는 이 길이 맞는 것인가.
배우는 신분 상승 욕구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런 욕망 없이 배우 못 한다고도 한다. 성공 확률 매우 낮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키 크고 잘생기고 예쁘고 대사도 제법 하면 배우로 성공할 걸로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으나 반짝하고 사라진 사람이 많다. 다른 면을 보여줘야 할 때가 문제다. 능력에 없는 걸 억지로 보여주려다 망한다. 똑똑한 사람은 자기가 가능한 걸 최대한 빼먹다 질릴 때까지 다른 시도 안 한다. 그것만도 이 계통 성공이고 돈 번다.
기획사에서 스타급으로 키우는 애 중에 외모 최고인 사람 말고 다른 형태는 없다. ‘공채도 한물갔어.’ 스타 시스템은 기획사에서 인물 보고 뽑아서 연기 연습과 굵직한 작품을 따내는 방법으로나 가능하다. 자력으로 크면 공채들은 최소 10년이다.
강남 대형 기획사들은 우리 공채에게도 다른 세상이다. 공채라고 받아주는 거 아니다. 그런 곳은 상품성/미래 무척 따진다. 어디서 어떻게 먹힐 얼굴인가 고민하고 받는다. 나이도 그렇다. 어린 애들 뽑는다. 그런 기획사는 우리 같은 20대 후반 30대 키우지 않는다. 프로필 들고 간다고 받아주지 않는다. 확실한 인맥 끼고 가야 받아도 받는다. 20대 중반 넘어가면 공채든 뭐든 자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20대 중반 넘으면 한물 간 거다.
”아무리 연기를 할 배우라도 우린 ‘그 사람’을 봅니다. 그것은 진실됩니다. 진까 그 사람이니까요. 그 진실이 카메라에 담길 사람을 뽑습니다. 인물만 보고 뽑은 지망자 대다수는 사라집니다. 개인적 진실, 매력과 렌즈가 매치가 안 되는 사람도 있고요. 한 사람 그 사람의 진실. 대중은 저것이 연기인지 인간극장인지 까먹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받아들여요. 카메라로 대중이 매력을 느낄 진실함을 필요로 합니다. 배우의 지명도가 높아지면 관객은 작품 배역과 상관없이 ‘그 사람’을 보러 갑니다. 그게 스타 시스템이죠. 연기를 배우는 사람들도 그런 꿈을 꾸겠죠? 그렇다면 카메라를 즐기세요. 카메라를 사랑하세요. 마음만 바꾸면 카메라에 잡힌 사람이 진실되게 빛이 납니다. 촬영 현장을 두려워하는 건 내가 스타 시스템에 안 맞는 사람이라고 자인하는 꼴입니다.“
사람 자체의 매력, 그것도 내 첫 관문이다.
잘된 연기는 대본과 상관없이 혹은 유사하게 나 자신을 표현하고 반응하는 것. 우리 사회의 교육과 잘 안 맞는다. 어쩌면 내가 그런 세대다. 어쩌면 연기의 문제점은 나 자신의 문제점이다. 철이 든다는 건 사회성이 나 자신을 매장하는 일도 되는 것이다. 특징이 사라지고 그저 먹고사는 사람. 난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맞는지 모르겠다.
나는 외모는 평균에서 약간 상향? 나는 ‘너 어디서 해봤니?’ 말 들었다. 카메라 앞에 세우자마자 벌벌 떨고 말도 못 하는 증상만 겪던 피디들이 그랬다. 내가 기수방에서 처음 한 건 술 내려놓는 웨이터였다. 동기가 잘 안돼서 ‘야, 니가 해 봐.’ 그냥 했다. ‘보라고, 얘는 되잖아. 이게 연기야 뭐야. 공채가 참.’ 고개 숙인 동기에게 미안했다.
광고에서 카메라 좀 배운 걸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손해다. 그냥 잘하는 사람, 타고난 사람, 맡기면 되는 사람으로 보여야 했다. 광고 15편 했고 그중 얼굴이 자세한 크기로 찍힌 건 다섯 편 정도다. ‘오빠, 내가 모를 줄 알아?!’ 동기 중에 알아본 애도 있다. 광고 해본 애들은 광고를 유심히 봐서 금방 알아본다. 나도 새로 방영되는 광고에 관심 두는 편이다.
‘와, 컷이 저렇게 많아? 뺑이 깠구나. 광고는 잘 나왔어.’
현장이 눈에 선해 재밌다. (광고 오디션 다니면서 세상 잘 빠지고 예쁜 여자들이 거기 모였다는 걸 알았다)
‘왜 비실비실 웃냐?’
‘광고 주인공 봐서. 흐흐흐. 어디 에이전시였어?’
광고 조연 여러 번, 진짜 브로마이드 주인공은 두 번 했다. 그러나 길거리를 돌아다녀서 그 광고 주인공과 날 동일시하는 사람 하나도 못 봤다.
그런 나도 앞길 막막하다. 1년 동안 유심히 관찰했다. 드라마 환경과 방송국 생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자신. 아까 그 녀석 말처럼 내가 너무 생각하고 하나?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성인 되고 제대로 배운 것도 이것뿐이다. 직업이 될까 봐 자꾸 의미 찾나?
그래도 날 위안하는 것/이 길 가는 것에 긍정적인 것 – 사람 많은 곳에 서는 게 좋다. 학생들 앞에서 오래 떠든 부모님 영향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무대는 좋다. 나를 바라보는 거 당연히 좋다.
헌데 연극은 절대로 내 인생의 해결 방법이 아니다. 나는 벌고 싶고 올라서고 싶다. 아버지의 꿈은 국회의원이었다. 내가 부유하다면 극단 만들어서 하고픈 작품만 취미처럼 하고 싶다. 재밌을 거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할 가진 게 없다. 알 파치노가 연기 시작했던 연극무대를 관심 두는 게 멋있다.
무대와 연극도 일종의 마약성이다. 가수도 그럴 거다. 무대는 두려우면서 쾌감이 있다. 서바이벌 게임도 2차대전 참전자들이 실제 전투의 아드레날린을 재현하고자 했다지 않은가. 무대는 안 들어오면 경험하기 힘든 마약이다. 종류는 달라도 연극과 방송국이 똑같은 쾌감이 있다. 나에게는 연출가와 트러블이 최고조일 때 쾌감도 극치다. 무대에 선 내가 결국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기본적으로 10년 이하는 선배, 이상은 선생님.’
앞서 말했듯 선생님급 연극 연출가는 왕이다. 극에 대해 의견 밝히지 못한다. 연출자들의 독선 군기 제왕적 면모. 돈 없는 분야도 권력의 룰이 흐른다. 어쩌면 심하다. 가난한 연극에도 규칙과 군기가 허벌나다. 그러나 자유로울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최악은 동문끼리 만든 극단이다. 학번 우선주의 대학의 연장처럼 보인다. 그런 극단 작품은 한계가 보인다.
나 같은 불만으로 이것저것 다 더러운 사람들이 작가주의를 택한다. 자기가 확실히 경험하고 아는 걸 쓰고 연출하고 연기까지도 하는 것. 하나 더한다면 자신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보여주는 것까지. 어쩌면 난 그런 형태가 맞는 인간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꾸준히 글을 써왔고 그 결과인 이 소설을 당신이 읽고 있다. 그 노력은 대학에서 극작과 강의를 들으면서 시작되었다. 자기 글 자랑하면 자기 인생 자랑하는 놈이니 나는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수준이다. 사물과 세상에 꼼꼼한 편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꾸 아니란 생각이 들지?’
차장에 기댄 머리가 중력에 지면서 눈꺼풀이 무겁다. 자꾸 감긴다.
‘이 피곤함과 역겨움을 통과하는 시간이 더러운가?’
최피디님도 그런 경향 있지 않나 추측한다.
나는 흘러왔다 : 페추니아 꽃을 짓밟은 거인, 위기를 재치로 해결하는 분장사, 망해가는 부잣집 냉소적인 아들, 심령 주술사, 시칠리아의 폭력적인 남편, 예수 십이사도 중 하나, 뮤지컬 가스펠, 17세기 미국 청교도 담임목사, 수궁가의 호랑이, 중국 첩자 무술인, 중국 무령군 절도사, 한국전쟁 연대장, 불임 중년 남편, 미국 남부 노예 감독, 조선 정부 북간도 관찰사, 아가씨와 건달들의 도박사, 사육신 시기 세조, 여자에게 원나잇 사기 치는 버스 운전사, 기억 안 나는 것도 있고 주요 배역이 아닌 연극/뮤지컬 코러스도 있다.
”아저씨. 눈뜨세요. (조합) 실장님이 하차하래요!“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