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2차대전 미 해군의 상징 거대한 항공모함의
그늘에 가려졌던 가련한 호위항모들에 대한 뒷이야기다.
미드웨이 해전을 보면서 미 항공모함 어떤 것이 박살나고
일본 건 어느 게 박살났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호위항모는
우리의 상상보다 숫자가 훨씬 많았다.
그러나 미드웨이 해전 같은 것에 끼기 힘들었다. 태생적으로 속도가
느리고 방어가 너무 약했기 때문. 그러나 그들도 정규 항모 이상의
고통스런 전투를 경험했으며, 또한 엄청난 피해를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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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Guts, No Glory
By James L. Noles, Jr (Air & Space magazine. 2004. 7)
조셉 카스텔로 중위는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그의 와일드캣을 조종하고 있었다.
진동하는 기체에서 그는 착륙을 위해 공중에서 순서대로 줄을 섰다. 그 비행기가
착륙하려는 곳은 미 해군 호위항모(Escort Carrier) 리스콤 베이(Liscome Bay)이었다.
카스텔로 중위는 1943년 10월 동안 착륙연습을 한 조종사 36명 중에 하나로, 이제
카스텔로와 비행대는 솔로몬 섬의 일본군 거점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아 이동하기
위해 지상에서 이륙해 리스콤 베이로 향했다.
높은 곳에 위치한 플랫폼은 살벌했다. 착륙유도장교는 패들을 들었고 카스텔로를 유도
하기 시작했다. 착륙은 거대한 정규 항공모함에 하는 것보다 약간 더 힘들고 위험했다.
자칫하다가는 항모와 출동해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다. 호위항모의 갑판은 정규 항모
보다 훨씬 작다. 착륙에 거의 곡예에 가까운 기술이 필요하다. 리스콤베이 갑판요원과
함교의 장교들은 다가오는 전투기들을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지켜보고 있었다.
카스텔로는 약간 높게 다가온다고 짐 비슬레이는 생각했다. 비슬레이는 배행사가 아니라
배의 병참관이었다. 그는 이번 것이 착함실패라고 봤다. 카스텔로의 비행기 바퀴는 갑판을
빠르게 닿았고 고착줄(arresting wire)을 못 잡고 위를 튕겨 지나갔다. 와일드캣은 다시 이륙
하려고 노력했으나 강한 충격과 함께 비행기 바퀴가 쪼개져버렸다. 날카로운 금속 끌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비행기는 갑판 우현으로 사라져 태평양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비슬리는 배의 끝으로 뛰어갔고 조종석에서 몸부림치는 카스텔로를 봤다. 안전벨트를
풀기도 전에 기수는 물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카스텔로 중위는 죽었다. 10월 16일,
카스텔로는 호위항모 리스콤 베이의 첫 번째 전상자로 기록되었다. 그는 50년 뒤, 발표
되지 않은 그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그 순간은 내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난 샌
디에고에서 카스텔로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작별키스하는 장면을 봤었다.”
리스콤 베이...
카스텔로가 소속한 와일드캣과 어벤저 수뢰기 조종사들이 속한 제39혼성전대(VC-39)는
정말 소름이 끼친다. 중위와 같은 경험 많은 조종사조차도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실시된
훈련사고는 피해갈 수 없었다. 이 사고들의 특징은 운명적으로 다른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것. 배속된 39혼성전대 77명 조종사들과 승무원들은 샌디에고로 이동해 처음으로 리스콤
베이의 배다리 트랩(gangboard) 갑판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그들 중 반이 착륙에 성공하지
못했다.
[2차대전 당시 미군 호위항모는 일부 이름이 만(滿, bay) 이름이었다.
이후 베이라고 기술된 것은 다 ‘만(滿)’을 뜻한다. 이후 무수한 베이란
이름의 항모 이름이 아래 나옴. 잇빨중사 주]
리스콤베이는 전쟁 동안 모진 기록을 가졌다. 미국 항공모함 사상 가장 많은 엄청난
인명이 익사로 죽었다. 아는 사람만 안다. 일본군이 엑서스급 항공모함 프랭클린을
공격했을 때보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래도 프랭크린은 침몰하지 않고 떠 있었다.
난 리스콤 베이의 이야기를 듣고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는 등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리고
결론은 이 리스콤베이의 역사는 반드시 알려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책 [영원했던
23분]이 알라바마 대학에서 지난 달 출간됐다. 호위항모의 작은 부분만 접해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호위항모에 관한 기록은 2차대전 해전사에서 거의 없고, 각 소규모의
역사와 개인들을 만나봐야 알 수 있는 정도다.
호위항모는 원래 정식명칭이 carrier vessel escorts 또는 약자로 CVE라 불렸다. 이는
미국이 전쟁에 들어가던 시절 루즈벨트 대통령이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온 물건
이었다. 영국과 소련에 보내는 보급품이 실린 함선들은 유보트를 만난 대서양 깊숙이
침몰하곤 했다. 1941년 1월 초, 루즈벨트 대통령은 취약한 수송선을 호위하기 위해
상선이나 유조선을 항공모함으로 만드는 일을 해군에게 재촉했다.
해군은 이 계획에 주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Bogue급 상선을 개조하는 것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Cimmaron급 유조선을 개조하는 것을 전환되어 첫 개조품이 나오게 된다. 이
개조 항모가 처음 나타난 것은 1943년으로, 이 호위항모에는 와일드캣과 어벤저 수뢰기
를 합해 총 27대가 실렸다. 미 해군은 남서태평양에서 일본군과 싸우기 시작했고 전쟁의
파도는 연합군 측으로 서서히 바뀌었다.
해상작전이 점차 증가되자 호위항모의 요구는 점차 높아져갔다.
테티스 베이... 현재 중형 정찰기 수송임무를 하는 듯. 복엽기도 하나 보임.
1943년 산업가 헨리 카이저는 한 해 총 50대의 호위항모 생산 수주를 따냈다. 보기에
불가능한 내용이었다. 150미터 길이의 이 CVE는 엑서스급 항공모함의 갑판 길이 반
밖에 되지 않았고 최고속도도 또 그 반인 18노트 이상 나지 않았다. (시간당 33km)
미 해군은 이 첫 호위항모를 대서양 선단에 붙여 유보트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겼고,
태평양에선 연합군의 침공에 항공지원으로도 사용했다. 그러나 그렇게 작고 그렇게
느린 배를 전투에서 어떻게 사용하겠는가?
카이저가 걱정하는 것은 미 해군의 문제이기도 했다. “44년에는 18대 이상 건조,”를.
카이저는 자신의 조선소에서 만들겠다고 정부에 약속했다. 당시 카이저는 그 외에도
리버티쉽(Liberty ship)을 60일 마다 하나씩 만들겠다고 공언한 상태였다. 리버티쉽
기술을 호위항모에도 똑같이 적용시켰고 여러 섹션을 따로 만들어 조립하는 형태로
작업했다.
미국 언론은 이 호위항모를 ‘아기 항공모함’이란 말로 불렀고 혹은 ‘지프용 항공모함’
이라고도 불렀다. 영국은 이것을 ‘백화점 항공모함’이라 불렀고 미국의 산업을 동전
넣고 빼내는 자동 판매기처럼 생각했다. 이렇게 빨리 배를 건조했기에 그런 배들의
승무원 편의시설은 불편했다. 사람들은 호위항모의 약자 CVE를 이렇게도 말했다.
“가연성의(combustible), 부서지기 쉬운(vulnerable), 소모성(expendable) 제품.”
카이저가 맨 처음 취역시킨 개조 호위항모는 ‘카사블랑카’였다. 1943년 4월 5일.
명칭에도 CVE급 전함으로 명명되었다. 두 번 째로 취역한 것이 리스콤 베이였고
2주 뒤에 나왔다. 그는 대략 1주일에 한 대를 완성, 총 50대를 인도했겠다고 했다.
이 호위항모 기록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용접으로 붙인 외피, 얇은 격벽, 변덕스러운
증기엔진에 매우 급하게 건조했다. 그래서 회의론자들은 이 제품을 ‘카이저의 관’이라
불렀다.
그래소 리스콤베이의 장교와 수병들은 불편한 시설에도 열심히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1943년 8월 7일 취역한 항모는 허둥지둥 만든 임시 침상에 병사들이 거주하며 순항을
시작했으나, 10월 중순이 되도 와일드캣과 어벤저 28대가 도착하지 않았다. 22일 진주만
의 끓는 열기를 뒤로 하고 항모는 첫 전투명령을 수령한다.
미 육군이 침공하는 마킨 환초 공격을 지원하라는 거였다.
마킨 환초는 길버트 제도였고 유명한 타라와 환초 100마일
북쪽인데, 하와이와 오스트레일리아 딱 중간에 있다.
2일 동안 리스콤 베이의 항공기들은 다른 자매항모 ‘산호해’와 ‘코레히도’의 비행기들과
함께 섬의 일본군 거점을 폭격하고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대항하는 일본기는 없었으나
며칠이 지나자 리스콤 베이의 승무원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이 느리고 외피가 얇은
항모로 마킨 환초에서 얼마나 남아 작전해야 하는가였다.
11월 24일, 동이 트기 직전의 어둠에서, 승무원들은 최악의 공포를 깨달았다. 일본
잠수함 I-175에서 발사한 어뢰가 항모 우현 고물을 때렸기 때문이다. 어뢰는 최악의
장소를 강타했다. 그곳엔 약 7만 파운드의 폭탄이 적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5km
떨어진 전함 미조리에도 그 충격파가 몰려왔다. [이물-배의 앞쪽. 고물-뒤쪽]
함장은 나중에 이렇게 썼다.
“맞았다는 첫 징후는 빠르고 밝은 섬광이었다. 그리고 2-3초 후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은 배를 집어삼키고 일대를 엄청난 빛으로 조명했다. 불길이 한
100미터는 공중으로 솟구쳤고 잔해와 파편들이 몇 분 간 온 사방의 바다로 떨어졌다.
다시 두 번째 강한 폭발이 첫 번째 것 약 20초 뒤였다. 큰 연기와 불이 다시 치솟아
겉으로 보기에는 불타는 난파선처럼 보였다.”
VC-39의 와일드캣 조종사였던 셀던 메이는 어뢰가 때릴 당시
위쪽 침실에서 자고 있었다. 폭발은 그를 강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잠시 기절했다 일어나니 사람들이 내 방을 통해서 뛰고 있었다. 난 잠이 덜 깼지만 내
구명의를 들고 배를 벗어날 방법을 찾기 위해 뛰었다. 다시 폭발들이 이어졌다. 결국 난
대공포탄 적재실의 구멍 난 곳을 통해 객실 통로로 기어나왔다. 그때 배는 우현으로 30도
정도 기울어 있었다. 내 아래 고무 구명정에 탄 두 명을 발견했고, 로프를 타고 내려가
거기에 탔다.”
비행간판과 복도 혹은 구멍 난 곳을 통해서 병사들이 사방으로 어두운 바다를 향해 뛰어
내렸다. 그 엄청난 화재에선 방법이 없었다. 어뢰가 때린 23분 뒤 리스콤 베이는 침몰했다.
총 644명과 함께 수장되었다. 이중에는 당시 3급 조리병이었던 도리스 밀러도 있었는데,
밀러는 영웅적인 행동으로 흑인 수병 최초로 해군 최고훈장을 받았었다. 진주만공습 당시
밀러는 전함 웨스트버지니아의 취사병이었는데, 그날 갑판으로 가 한 번도 배우지 않았던
대공기관총을 잡고 사격했으며 그의 부상당한 상관을 구출해 해군십자훈장을 받았었다.
리스콤 베이의 함장 어빙 위트지는
생존해서 자신의 배가 침몰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리스콤 베이가 태평양에서 격침된 바로 같은 날, 보그급 상선을 개조한 호위항모
‘블럭 아일랜드’는 노포크 외곽에서 아기 항공모함의 능력을 시험하고 있었다. 당시
핵으로 가동되는 대잠수함 킬러헌터 그룹에 속해서 행동하고 있었다. 보통 CVE 한
대에는 4-5대의 구축함이 호위했다. 블록 아일랜드도 대서양에서 독일 유보트를
파괴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항모의 조종사들은 새로 편입된 VC-55전대로 한 달
전에 이미 유보트 하나를 잡았다.
블럭 아일랜드...
데니 몰러 중위는 VC-55 연합전대의 기술장교였다. 모든 전대의 조종사들과 같이
야간비행 스케줄에 의해 같이 움직였다. 블록아일랜드는 구축함 호위 속에 정찰기
네 대를 발진시켰다. 각 정찰기는 30도 분할 사분의를 휴대해, 그걸 이용해 항모로
돌아와야 했다.
밤 동안 무선침묵을 해야 했기에 조종사들은 항법계산으로 호위항모를 결사적으로
찾아야 했다. 나침반/항속거리 계산해 곧 항모가 나타날 거라 생각하며 정찰기들은
날았다.
몰러의 설명. “우리가 이륙하기 전에 갑판엔 칠판을 가져다가 그날 착륙할 때까지의
항법을 대충 브리핑했다. ‘우리 항모 진행로는 이렇고 저렇고 풍향은 이렇고 저렇고,
하여간 행운을 비네!’ 항모는 이동하고 항법계산도 항상 이동한다. 이런 상태로 어두운
밤에 조종석에서 항모를 찾는 건 정말 쉽지 않다.”
1944년 3월 19일, VC-55 전대는 유보트 하나를 또 잡았다. U-1059. 5월 29일 카나리아
제도 근처에서 블록아일랜드는 사냥을 위해 항로를 변침했다. 그러나 어둠이 내릴 무렵,
독일군 U-549가 호위 구축함 차장을 뚫고 들어와 항모를 향해 어뢰 세 발을 발사했다.
몰러는 함 앞쪽의 조종사들이 모인 전대 대기실로 뛰었고, 어뢰폭발로 블록아일랜드의
비행갑판은 큰 구멍이 났다. 불안한 가운데 피할 수 없는 명령이 떨어졌다.
“함을 버려라(Abandon ship).”
몰러. “난 그렇게 높은 곳에서 다이빙할 자신이 없었다. 우린 신발을 벗어
구두끈을 묶어 목에 걸었다. 이어 물로 로프를 내렸다. 물론, 물에 들어간
즉시 신발들은 사라져버렸다.”
몰러와 동료들은 매웨스트 구명조끼를 입고 부유하다 코르크로 떠 있던 그물망을
발견했고, 날이 새기 전에 호위 구축함 아렌스가 차가운 대서양에서 이들을 구조했다.
그러나 리스콤베이와 다른 것은 사망자가 6명밖에 없었다는 것. 블록아일랜드 생존자
들은 한 달 뒤 새로운 킬러헌터그룹에 속해 ‘크로티안’에 승선한다.
명칭은 사진에....
몰러는 1944년 여름 호위항모에 태울 비행사를 조달하는 모집책 역할을 했다.
그러던 중 태평양에서 어느 배를 타고 가다가 갈 만한 항공모함 전대를 찾던
조종사 켄 스나이더와 대럴 베넷을 발견했다.
“자네들 항모 찾지 않나?”
“네, 맞습니다.”
“나를 따라오게.”
“어느 항모죠?”
“뭐, 끝에 Bay가 붙지.”
“에이......”
“아니면 섬으로 갈 걸.”
“... 앞장 서십시오.”
둘은 걸려들었다.
스나이더.
“오갈 곳도 없고 덥썩 물었죠. 베넷은 갬비어 베이, 난 키트컨 베이.”
곧 이어 스나이더는 ‘키트컨 베이’의 와일드캣 조종사로 들어갔다.
“아이쿠, 큰일 났죠. 그건 그냥 딱딱하고 작은 악마였죠. 얼마나 좁던지...
비행기는 좋았습니다. 항모는 정말 무서웠죠. 그냥 접시 정도 크기였습니다.”
[정규 항공모함에 타는 조종사들은 미 해군 안에서도 최고 엘리트들이었다. 그리고 현재도. 잇빨 주]
키트컨 베이...
그래 여름 키트컨베이의 스나이더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바빴다. 미군이 필리핀으로 근접
하면서 했던 상륙작전에 모두 지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타니안, 괌, 앙구아, 펠렐리우 등.
이 모든 각 침공에서 호위항모에 소속된 전대들은 각별한 용기로 작전했다. 펠렐리우에선
상륙한 미 해병대 앞에 일본군 탱크가 몰려나와 한 시간 동안 이를 격퇴하기 위해 분투했다.
1944년 가을, 미군은 필리핀에 반격을 시작했고, 일본군 제독은 오히려 대담한 반격을
시도했다. 이 복잡한 작전에서 일본군은 미군의 대형 항공모함을 레이테만으로 유인하는
작전을 썼다. 교두보로 나오게 미끼를 쓴 것이다. 그 해상부대 Taffy 3에 스나이더의 배
키트컨 베이도 참가했고, Samar 동쪽 바다는 무시무시한 곳으로 변한다.
1944년 10월 24일, 키트컨 베이의 수병들은 빠르게 아침을 먹었고, 당시 일본군 전함
순양함 구축함 약 24대가 아침 안개를 배경으로 은밀히 접근해왔다. 호위항모와 구축함
으로 비교적 경무장으로 구성된 소함대 Taffy 3는 레이테의 교두보와 일본 다케오 구리타
부제독의 부대 사기에 끼게 되었다.
해군소위 한스 젠센은 당시 호위항모 ‘카다샨 베이’의 어벤저 수뢰기 조종사로 처음
으로 일본군 함대를 발견한 인물이다. 아침 6시 30분, 젠센의 어벤저는 일본군의 대공
포화를 받았다. 이 소식을 접한 스프라규 제독은 휘하 함장들에게 절박한 위험신호를
보냈다. 잠시 후, 호위항모‘ 세인트 로’의 조종사인 미 해군소위 윌리엄 브룩스는 이런
무전을 보냈다. “적 수상함대. 전함 네 척, 순양함 7척, 구축함 11척이 우리 해상부대
20마일 북서쪽에서 30노트로 접근 중!”
당시 경무장에 방어가 취약했던 호위항모는 간신히 18노트를 낼 수 있었고,
그 뉴스에 호위항모는 공포를 느꼈다. 스르파규는 이 아기-항공모함에 모든
비행기를 발진시키라고 명령했다.
6시 55분, 경계경보가 울렸고 키컨 베이의 스나이더와 동료들은 자신들의 비행기를 향해
달렸다. 이후 마지막 비행기가 투석되어 이륙한 그 순간 일본군 포탄이 배 근처에 분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편대장인 잭 크라우제와 스나이더는 적 전함을 향해 날았다. 날다 보니
구름이 잔뜩 끼었다. 그래서 비행기들은 구름 속에서 흩어져 단독비행으로 흘렀다. 미군
와일드캣과 어벤저 조종사들은 일본 함정을 향해 내리꽂기 시작했다.
스나이더는 그가 본 배 앞이 땅딸하게 생긴 일본 군함을 지목해 달려들었다. 일본군 대공
포탄이 날개와 동체에 펑펑 구멍을 냈으나 비행기는 여전이 포효하며 날았다. 스나이더는
와일드캣에 달린 50기관총으로 응답했다. 그리고 다음 배로 향했다. “목표를 선택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화환 목걸이 같이 일련 된 모양으로 뭉쳐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이 지나면서 전투는 함포전투로 양상이 전개되었다.
먼저 호위항모 ‘화이트 플레인스’가 맞아 일부 기능이 일시 넉아웃되었고 특히 조타가
박살났다. 일본군 포는 다시 이 경항모에 집중되어 ‘칼릴인 베이’ ‘판쇼 베이’ ‘갬비어
베이’가 두들겨 맞았다. 가장 치명적으로 맞은 것은 갬비어 베이로 마치 동전던지기로
선택된 듯이 심하게 맞아 결국 비틀리면서 침몰했다.
그리고 스나이더 소위의 고향이 바로 캠비어 베이였다. Taffy 3의 구축함과 구축함의
호위함들은 용감하게 거대한 일본 전함들을 공격했고 통탄할만한 손실을 맛봐야 했다.
구축함 호엘과 존슨이 글짜 그래도 물속으로 무너졌고, 호위구축함 사무엘 로버츠도
같은 운명이 되었다.
갬비어 베이의 침몰 장면...
갬비어 베이의 원래 모습...
스나이더와 마찬가지로 다른 미군 조종사들은 매우 혼란스러운 전투에서 탄약이 떨어질
때까지 싸웠다. 그리 길지 않았다. 탄약이 떨어졌지만 스나이더는 일본 전함을 괴롭히기
위해 계속해서 공격하는 척 하강비행을 했고, 폭탄이 없자 심지어 일본 전함에 텅 빈 보조
연료통까지 폭탄처럼 투하했다. 이들은 사실상 아무런 방어대책 없는 자신의 호위항모에
일본 전함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최대한 괴롭힌 것이다.
스나이더. “결국 연료 게이지가 0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건 딱 20분 정도 비행할
연료가 남았다는 뜻이다. 내 편대장 크라우제와 편대원 모두 같은 상황이었다. 결국
편대장은 육군이 점령한 해안의 타크로반 비행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타크로반
상공에 도착했을 때 비행장은 온통 넝마가 된 비행기들로 꽉 차 있었다. 착륙할 공간이
없었다. 우리는 15마일 남쪽에 투락이라는 비행장이 있다는 걸 기억했고 기수를 돌렸다.
거기도 엄청 붐볐다. 그러나 우린 착륙에 성공했다.”
스나이더의 친구였던 스모크 베넷은 캠비어 베이의 생존자 중 하나였다.
호위항모 전대들이 벌떼처럼 일본군을 공격하고 있는 동안, 단장 스프라규는 구축함과
호위구축함에게 두 번이나 대담한 기동을 시켰다. 이로 인해 구리타 함대는 혼란 속에
빠져든다. 거기다 일본 전함들은 호위항모에서 날아온 미군 전투기들을 보고 착각에
빠져, 미군 함대를 공격할 생각을 안하고 방어진을 치기 시작했다.
일본군 순양함 세 척이 침몰되자 일본 함대는 더욱 미군이 강력하다는 착각에 빠졌다.
사실 미군 함대는 그때다 싶어 퇴각하고 있었다. 이 전투는 곧 Battle off Samar로 명명
되었고, 해군 역사가 사무엘 엘리오트 모리슨은 이렇게 말했다. “태평양 전쟁 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전투였다.”
10월의 필리핀 주변 해군 행동은 시간이 흐르자 일본해군의 압력은 점차 하강했다.
그러나 이후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일본군의 자살적인 카미카제 공격의 도래였다.
Taffy 3의 호된 시련 3일 뒤에 호위항모 세인트 로가 카미카제에 의해 당했다. 그래서
호위항모와 해당된 비행전대들은 끊임없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방을 경계해야 했다.
그 이후에는 상륙군을 위한 내륙공격에 들어갔다.
1945년 5월 3일, 신형 brand-new 호위항모가 나왔는데, 침몰한 전임 호위항모의
이름을 따 블록아일랜드로 명명되어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그것은 신형 Bay-class
호위항모의 시작이었다. 이 신형 베이급 호위항모는 기존의 것보다 훨씬 크고 빨랐으며
다른 카이저 회사의 배 중에서 가장 튼튼했다.
함장은 프랜시스 휴그스로 침몰한 블록아일랜드의 바로 그 함장이었다.
블록아일랜드는 그 전년도에 독일군 유보트 U-549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고
승무원 대다수는 구조되었었다.
그러나 이름만 같았지 블럭아일랜드는 호위항모의 미래를 보여주는 굉장한 기능을
선사했다. 새로 나온 블록 아일랜드에는 미 해병대 전단 MCVG-1으로 무장했다. 이
전단은 어벤저와 함께 콜세어와 F6F 헬캣 전투기가 있었고, 이 조합은 오키나와와
이오지마에 대한 지원 임무에서 좋은 성과를 보였다.
브루스 포터 소령은 블록아일랜드의 VMF-511 전대 전투기 부전대장으로 근무했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 포터는 에이스가 되었고 미 해병대 최고의 야간전투기 조종사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호위항모에 대한 야간착륙은 결코, 한 번도 가볍지 않았다.
“로그북을 보니 43회 야간 착륙을 했는데,
정말로 어디 비교할 바가 아니다.
매번 착륙은 모두에게 하느님의 은총이라 여겼다.”
블록아일랜드의 포터 소령과 같이 해군조종사들도 다른 호위항모 세 대로 오키나와
전투 동안 공중지원을 했다. 나중에는 한국전에도 갔다. 그러나 2차대전 후 호위항모의
운명은 자명했다.
1947년 미 해군 프로젝트 27A에 의하여 엑서스급 항공모함들은 현대화되었다.
무거운 제트기들을 위해 격납고를 더 크게 넓히고 핵무기와 유도미슬 발사대를
장착했다. 그러나 더 이상 호위항모의 역할은 없었다.
해군은 하나 둘 씩 고철업자에게 넘겼다.
오늘날 미 해군에는 비슷한 종류의
갑판이 작은 Wasp와 Tarawa급 상륙돌격함이 있고
미해병 스퍼코브라와 해리어 등이 같이 작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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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ort carrier : Wikipedia,
호위항모는 원래 영국 해군이 먼저 사용하던 작고 속도가 느린 항모였다. 영국 말고도
일본제국해군과 일본 육군항공, 미 공군이 만들어 사용했다. 보통 대형 항공모함보다
1/3 정도로 가볍고, 적은 수의 비행기 수용과 함께 속도/무장도 약했지만 값싸고 빨리
만들 수 있었다. 가장 큰 이점은 역시 부족한 정규항모의 임무를 분담했다는 것.
그러나 허약했기에 여러 대가 침몰하여 거대한 인명을 손실시켰다. 호위항모는 CVE이고
경항모는 CVL인데 서로 컨셉은 비슷했지만 경항모는 보통 속도가 빨라 항공모함 함대를
따라다니면 전투할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호위항모는 보통 전투함대를 따라갈 속도가
못 되었다. 호위항모는 정규 항모보다 승무원도 1/3 정도.
유럽과 태평양에서 보통 수송함대를 잠수함과 항공기 공격으로부터 방어했고, 침공시엔
상륙부대 지원에 쓰였다. 그리고 호위항모의 비행기들은 정규 항모의 비행기 손실을 보충
하는 예비 비행기 역할을 했고, 항공기를 운송하는 역할도 했다.
레이테만의 Battle off Samar에서는 일본 중부군의 야마토를 포함한 전함과 순양함들이
미국의 호위항모로 구성된 함대 Taffy 3와 만났다. 호위항모와 구축함은 대규모 메이저
해전에 맞는 함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지원이 없던 일본 함대는 미국의
와일드캣과 어벤저의 공격을 받고 방어진으로 전환했고, 미 구축함들은 어뢰를 발사했다.
미국은 호위항모 1척과 구축함 세 3척이 침몰했고, 대신 일본 순양함 세 척을 침몰시켰다.
미국은 2차대전 동안 총 151개의 항공모함을 만들었는데, 그중 122개가 호위항모였다.
현재 남아 있는 호위항모는 없다. 만들어진 호위항모 중에 가장 많았던 것은 카사블랑카
급으로 50대가 만들어졌고, 보그Bogue급이 두 번째로 45대로 전쟁에 사용된 것은 130대
정도다.
영국이 맨 처음 만든 호위항모 HMS Audacity는 노획한 독일 상선 하노버를 개조한 것이었고
1941년 취역해 선단 방어용으로 썼다. 그러나 영국의 호위항모들은 어뢰 한 발에 침몰하는 등
취약했고 인명손실도 엄청났다. 그 이전인 1942년 미국은 보조항공모함(ACV)의 개념을 받아
들여 ‘롱아일랜드’를 만들어 대서양대잠수함전과 북아프리카 침공작전에 사용했다.
HMS Audacity
영국 상선 개조 호위항모 다섯 척은 렌드-리즈 법에 따라 미국에서 증여된 것.
북아프리카에서 미국 호위항모 과달카날이 1944년 독일 유보트 U-505를 노획한 일은
유명하다. 태평양에 사용된 호위항모들은 궁핍하기도 해 비행기 수리부속이 없으면 외딴
육군 비행장에 가서 빌려오기도 했다. 1944년 10월 25일 필리핀 레이테 부근 해전에 있던
미국 호위항모는 총 16척, 세 개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때 미군 전투기 한 대는 육탄
돌격해 한 일본 순양함의 기계실을 들이받았다.
2차대전 다음 세대: 제트기와 헬기가 등장한 2차대전 후에 호위항모들은 일을 잃었다.
그러다 한국전이 터지자 미군은 호위항모를 한국에 보냈다. 당시는, 비싼 신형 대신 보낸
거였다. 보통 장비 수송과 헬기 항모로 사용되었고 유도미슬도 시험적으로 장착되었다.
살아남은 호위항모 몇 척은 베트남전 초기에 항공기 수송을 위해 쓰였고 운항은 민간인
들이 했고 보급선 개념으로 운영되었다.
호위항모의 마지막 장은 두 가지로 결론난다. 테티스 베이 호위항모는 헬기 항모로
개조되어 미 해병대가 상륙작전에 사용했고, 이 테티스는 나중에 상륙돌격함이 되었다.
두 번째 버전은 ‘길버트 아일랜드’로 부가장비를 모두 떼어내고 거대한 높이의 안테나
네 개를 비행갑판에 건설했고 격납고에는 24대 정도의 군용무전트럭이 연결되었다.
‘아나폴리스’도 같은 명목의 무선중계함이 되어
베트남전 동안 사용되어 베트남과 미 본토의 무선을 중계했다.
호위항모의 마지막 분투... 썬텐과 운동 여건으로는 미 해군 최고함정이 되었다.
다른 모든 군용기나 함정은 일부가 살아남아 박물관이 되었지만,
호위항모는 현재 살아남은 것이 없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것은
길버트 아일랜드로 1976년 고철로 해체되었다.
마지막 경항모 카보트로 2002년 해체되었다.
마무리로 올리는 사진.. 자세히 보시면 상황이 장난 아닙니다.... 그림 배경의 항모는 이제 판별 가능하시죠?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二八中死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2.05 조종사가 낙하산을 당긴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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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개뼈(Keith) 작성시간 11.12.05 '미스터 로버츠'라는 영화에서 항상 항공모함이나 전함같은 멋있는 그리고 쾌적한 환경을 부러워하고 전출할 기회만 생각하던 수송함 넘버원 로버츠가 생각납니다..그렇게 소원하던 전투함으로 갔으나 결국 전사하는..쾌속정규항모보다는 극한의 인내를 요구하는 호위항모지만 미국이 드넓은 태평양을 커버하는데 일등공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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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람돌쇠 작성시간 11.12.11 자주는 못 오지만 올 때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본문 중에 '수뢰기'보다는 '뇌격기'가 쬐끔 더 무난한 표현인 것 같네요. -
답댓글 작성자二八中死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2.11 아예 그게 더 좋겠죠...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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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빤스지기 작성시간 12.02.24 리스콤베이의 사상자는 나중에 원자폭탄을 실고 귀향하다가 일본군 어뢰에 침몰한 미해군 순양함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나요ㅜㅜ) 이 800여명을 잃기 전까지 단일 피해로 최고로 많이 잃어죠
그 순양함이 뭐드라 영화 죠스에도 그 이름이 등장했는데
아! 인디애나 폴리스!!
카이저에서 만든 배들이 문제가 뭐냐면
전체 용접으로 만들었는데 당시 용접기술이 떨어져서 균열이 자주 생겼고, 강판도 탄성이 적은 일반 강판
그리고 용접공들이 경험이 없는 주부(아줌마)들이아주 많았었죠,,,,